취임 1주년 맞이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애순

미래를 앞당긴 그녀의 ‘1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한국 현대무용을 이끄는 안무가 리스트에서 첫 줄을 장식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각인시켜온 안무가라고 한다면 안애순을 꼽을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여백’ ‘열한 번째 그림자’ ‘온 타임’ ‘PLAY-굿’ ‘백색소음’ ‘S는 P다’ 같은 수작들을 발표해온 안애순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담은 현대무용으로 한국 현대무용의 가능성을 타진한 동시에 무용과 타 예술 분야의 통섭과 협업을 통해 세계적인 무용 동향을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명성과 인지도를 고려하면 지난해 7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취임 1주년을 맞이한 현재, 안 감독의 역량은 예술 창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예술 행정에서도 발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른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예술의전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과 제작 시스템의 도입

안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건 민간 무용단을 3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국립현대무용단에 쏟아붓고 있다. 한국의 안무가들은 대부분 재정적인 문제로 열악한 제작 여건 속에서 창작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안무를 비롯해 연출·무대미술·음악·의상 등 여러 분야를 실질적으로 꾸려나가는 전지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최근의 다매체적인 무용 경향에서는 분야 간 통섭과 협업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이것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민간 무용단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안애순은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전문적인 프로그래밍과 제작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술 창작 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창작을 최우선시하는 현대무용단으로서는 예술감독뿐 아니라 외부 안무가들도 수시로 들어와 원활하게 창작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립현대무용단 자체에 안정적인 체계를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무용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건이기도 하다.

안 감독의 의욕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취임 1년 동안 프로그램 운영 횟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 골자만 보더라도 메인 공연에 해당하는 안 감독의 ‘불쌍’이라든지 ‘이미아직’이 있었으며, 국내외 안무가의 창작 공연, 신진을 위한 ‘여전히 안무다 : 안무LAB 리서치 퍼포먼스’와 더불어 지역 순회공연 프로그램, 무용학교와 강연 프로그램 등이 다채롭게 추진되고 있다. 제작진 역시 무용계 시스템과 무용 창작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각 분야의 베테랑급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젠 실험성과 완성도를 갖춘 예술 작품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어떤 성과로 가시화되고 있는지 확인할 단계에 들어섰다.

 


▲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연계사업으로 진행한 ‘국립무용단과 함께하는 무용도전!’에 참여한 아이들과 안애순 예술감독

예술적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

앞에서 나열한 프로그램들 중에서 특히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담은 것들을 언급해달라고 하자 안 감독은 망설임 없이 세 가지를 꼽았다. ‘여전히 안무다 : 안무LAB 리서치 퍼포먼스’는 젊은 무용가들이 3개월간의 리서치 과정을 통해 창작자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프로그램이다. 한국 무용계의 미래를 책임질 안무가를 육성한다는 취지가 두드러진다. 올해는 공영선·오설영·전혁진·정세영·최승윤·황수현이 그 혜택을 받게 되었다.

‘국내 안무가 레지던시’는 말 그대로 국내의 유망한 안무가들을 초청해 창작 작품을 의뢰하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해외 안무가 레지던시’도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할 만한 수작(秀作)이 탄생되면 이를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로 끌어올린다는 연계된 계획도 있다. 전자에서는 노정식과 김성용이, 후자에서는 루이사 코르테시와 미체케 디 스테파노가 이번 가을을 책임질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재능 있는 안무가들에게 안정적인 창작 기회를 제공해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고무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중장기적 플랜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더 바라는 바는 안 감독이 세계적인 수용력을 갖춘 창작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써 국립현대무용단을 빛내는 것이다. 불러들인 그 누구보다도 ‘안애순’의 안무적 역량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의 첫 창작 ‘이미아직’

지난 5월 중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 ‘이미아직’은 안애순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 선보인 첫 번째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목인 ‘이미아직’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는 상이한 시간의 개념을 나란히 붙여놓은 것이다. ‘몸은 이미 죽었더라도 그 혼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죽음에 대한 한국적인 관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꼭두·굿·도깨비 같은 생사와 관련된 전통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작품의 구성을 다채롭게 확장시켰다.

‘이미아직’은 안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컨템퍼러리 댄스로 설명될 수 있다. 그녀에게 일반 독자를 위해 컨템퍼러리 댄스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컨템퍼러리 댄스라 함은 최근의 현대무용으로, 무용의 경계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혁신적인 창작 작업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을 위한 일종의 공식이라고 한다면 ‘개별적인 관조로 이루어낸 해체와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현대무용에다가 다른 움직임 영역을 녹여놓기도 하며 무용과 음악·연극·영상 같은 타 분야를 섞어놓기도 한다. 각각은 새로운 것이 없는 요소들이지만 이것들을 해체해서 재구성한 결과물은 충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컨템퍼러리 댄스의 적절한 예로 언급될 수 있는 ‘이미아직’은 ‘몸은 이미 죽었으나 혼은 아직 떠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무용, 무대미술과 소품, 음악과 성악, 조명 등의 통섭과 협업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 사요 국립극장에 초청받는 쾌거

안 감독은 인터뷰 도중 기쁜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요 국립극장 관계자가 ‘불쌍’을 관람한 후 초청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최근작 ‘이미아직’은 2016년 6월에 사요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이제 개런티 문제만 조율하면 된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요 국립극장은 파리 오페라 발레·국립안무센터와 함께 프랑스의 3대 무용 관련 공공기관이다. 파리만국박람회가 개최된 1937년에 개관한 사요 국립극장은 2008년 무용 중심 극장으로 지정되었는데 프랑스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부담하는 5개의 국립극장 중 유일한 무용 중심 극장이다.

그동안 마기 마랭·모리스 베자르·윌리엄 포사이스·트리샤 브라운 등 세계 최정상급 안무가만 초청해온, 정말이지 콧대 높은 극장으로 유명한데 그곳에 안 감독이 이끄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입성한다는 것은 일종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현대무용의 경향을 주도하는 프랑스 소재의 국립극장에 적지 않은 개런티까지 받으며 진출한다는 점은 우리 무용단의 해외 진출에서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안 감독은 미처 알지 못했던 무용 행정가로서 능력을 새로이 발견했다. 취임 1주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이미 많은 것을 펼쳐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창작적 재능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좀 더 안무가로서 활동에 집중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신작들을 발표하기를 바라고 있다. 안 감독 역시 1년 동안 숨 가쁘게 달리면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체계를 어느 정도 잡아놓았으니 이젠 창작에 몰두하고 싶다고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을 위한 안 감독의 신작은 내년 봄에 발표될 예정이다.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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