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매튜 본 & 백조의 호수 그로테스크한 날갯짓의 미학 _2

매튜 본은 자신이 이룬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1995년 작 ‘백조의 호수’가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성공을 거두었어도, 순식간에 지나갈 작은 움직임을 고치고 또 고친다. 한 번의 성공 때문이 아닌 계속해서 나아지려는 노력이 만들어 낸 전설, ‘백조의 호수’가 돌아온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9월 16일 9:00 오전

 

라반센터의 학생무용단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홍콩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중국항공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끼리 무용단을 차릴 참이어서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어폰이 들어있던 비닐봉지에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쳐스’라 써있는 겁니다. 뜻이 통하는 말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매튜 본과 그의 날개 AMP’ p.84)

안무가 매튜 본과의 인터뷰

당신의 무용 작품은 크게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하이랜드 플링’처럼 유명한 고전발레를 재해석한 것과, ‘도리안 그레이’ ‘파리대왕’처럼 고전발레는 아니지만 강렬한 원작을 재해석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에 언급한 모든 작품은 발레와 책, 영화에서 이야기의 기본 뼈대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나만의 이야기로 채웠다. 기존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고, 유명한 신화나 이야기를 새롭게 비틀었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도 유명한 제목을 가진 공연이 관객에게 더욱 쉽게 어필한다. 사람들은 공연에서 친숙한 부분을 찾으며 작품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2018/2019 시즌에 오랜 히트작 ‘백조의 호수’를 다시 올렸다. 감회가 어떠한가?

‘백조의 호수’를 오랜만에 다시 올리는 이유는 아직 보지 않은 젊은 세대를 위해서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사랑해주고, 보고 또 보다가, 이제는 아직 보지 않은 친구나 가족까지 데려온다. 이 작품이 이제껏 성장해 온 이유는 다른 이들과 이 작품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 덕택이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21세기에 걸맞도록 새롭게 개작되었다고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온 작품을 왜 지금에 와서 개작할 생각을 했는가?

개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24년이나 되었으니 좀 새롭게 해볼 기회라 보았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작업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하지만 베테랑 관객일지라도 새 버전을 낯설게 느끼진 않으리라 본다. “저건 굳이 왜 했지?” “기발한 아이디어였는데 왜 없애버렸지?”라고 갸우뚱거릴 만한 큰 변화보다는 수백 개의 작은 변화를 주었으니까.

그중 가장 큰 변화라 한다면? 

조명이다. 새 조명디자이너 폴 콘스타블이 합류했는데, 그는 ‘백조의 호수’를 영상이나 공연으로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접근할 수 있었고, 결과물도 확연히 달라졌다. 출연진 또한 완전히 교체됐다. 새로운 무용수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할 터이니, 작품이 신선하고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백조의 호수’ 초연 때로 돌아가 보자. 고전발레 버전이 굳건한데도 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발레와 비슷한 ‘백조의 호수’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너무 많으니까! 우리는 컨템퍼러리 댄스시어터 컴퍼니다. 움직임을 통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관객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게 하는 게 크나큰 목표였다.

‘백조의 호수’ 리허설 현장 ©Clark Thomas Photography

영국왕실 기사직을 수여받은 매튜 본 ©Press Association

익숙한 백조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 전략은 무엇이었나?

알다시피 남성백조가 주요 아이디어였고, 이에 못지않게 주요한 아이디어는 현대 영국 왕실의 추문이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다이애나비와 찰스 왕세자, 사라 퍼거슨, 카밀라 파커 볼스, 마가렛 공주까지, 왕실 인사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왕자가 진짜 자신이 될 수 없다거나 자기가 함께 있고 싶은 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설정은 현재 왕실체제에 매우 시의적절했다. 따라서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왕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의 왕실 가족 말이다. 초연 때 이 부분이 크게 부각되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관심은 남성백조로 쏠렸다.

확실히 ‘남성백조’는 왕실에 대한 풍자보다도 강렬한 한 방이었다.

남성이 백조를 춤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독특하게 다가온 듯하다. 남성백조라니,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마도 풍자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작품이라고 예측했으리라. 작품에 유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진지하다.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 단단히 자리 잡은 이미지를 지워버릴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남성백조가 그걸 해냈다.

초연 때의 반응이 기억나는가?

초연 때 왕자와 백조가 함께 춤을 추자 관객들이 나가버렸다. 백조가 튀튀와 포인트슈즈로 춤추지 않는다고 울어버린 소녀들, 작품에 과격하게 반응했던 관객들, 그리고 아예 보러오길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바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다들 ‘게이 백조의 호수’라고 떠들었다. 그게 작품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당연히 이야기 속에 그런 요소가 있다. 동성애자 관객들이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였고, 나는 이를 중시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작품엔 이것보다 훨씬 다양한 측면이 있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전보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작품의 설정에 쇼크를 받는 관객은 별로 없다. 다양한 관객층이 보러 와서 이 작품을 자신의 미래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방황하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이 역시 객석에 있는 젊은 세대에게 매우 의미 있는 측면일 것이다.

아름다운 남성백조는 소년들이 춤에 입문하는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작품으로 인해 많은 소년이 춤을 선택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춤이 멋지고 남성적이면서도, 엄청난 예술성과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많은 소년들이 춤추고 싶어 하고, 백조가 되고 싶어 한다. 이 작품과 함께 자라온 우리 무용단의 무용수들이 모두 하는 말이다.

아담 쿠퍼와 함께한 ‘백조의 호수’ 리허설 현장 ©Clark Thomas Photography

 

 

 

 

 

 

 

 

 

 

 

여기엔 백조 역의 오리지널 캐스트인 아담 쿠퍼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공연 DVD나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아담의 춤은 ‘정답’이나 ‘이상’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것이 현재 작품을 이어나가는 무용수나 무용단에게 부담을 주진 않는가?   백조 역할을 하는 모든 무용수는 그 역할의 역사와 상징적인 위치를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새로운 무용수는 역할에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더해준다. 아담 쿠퍼가 이번 리허설 현장을 방문해 새로운 백조인 윌 보우지어, 맥스 웨스트웰과 함께 연습했다. 윌과 맥스는 아담의 경험을 충분히 흡수하면서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백조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이번 순회공연에서 백조 역을 맡은 윌 보우지어 역시 아담의 춤에 매료되어 댄서가 되려고 결심했다고 들었다. 무용단으로서도 뜻깊은 세대교체일 테다.

윌은 앙상블로 시작해 몇 년을 함께한 단원이다. 착실히 성장하여 이제 백조 역할까지 맡는 그를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윌 뿐만 아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출연진과도 나눈 이야기인데,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본 후 매료되어 공연, 특히 무용을 진로로 택한 이들이 다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을 공연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는 건 참 뜻깊다. 출연진이 그 작품에 출연하는 게 어릴 적 꿈이었다고 말하는 작품이 몇이나 되겠는가. 꿈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무용수들은 서로 연결된다.

초기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조의 호수’는 현재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이유는 인정욕구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상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주제들은 매우 보편적이며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백조의 호수’는 인간적인 작품이다. 메시지도 그러하거니와 우리가 서로 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인가?

관객에게 설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이 작품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 자신이 사는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왕실 혈통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면에서 좀 특별한 세계이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사회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대로 살아갈 수 없는 개인에게 공감할 수 있지 않나.

당신의 무용단(뉴 어드벤처스)은 수년간 세계 투어를 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투어에서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무용단의 실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맞다. 우리는 종종 동시에 두 개의 무용단으로 나뉘어 투어를 한다. 많은 부분을 조정해야 하고 때론 매우 어렵게 캐스팅을 결정해야 한다. 많은 관객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무용수와 크루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있다. 우리는 영국의 여느 무용단보다 투어 공연을 많이 소화하고 있으며, 모든 공연이 지난 공연만큼 좋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다. 뉴 어드벤처스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띤다. 하나의 프로덕션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도 구성원들이 남아있길 선택하니 더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다.

그동안 당신은 참신한 안무가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문화계 거물로 거듭났다. 당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겨난 변화가 있다면? 

안무가로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언젠가 내 무용단이 세계 곳곳의 다양한 장소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레즈 브라더스톤·폴 콘스타블·테리 데이비스·폴 그루투이스·에타 머핏 등과 함께 새로운 프로덕션을 만드니까. 모두 오랜 시간 함께해온 협업자다. 핵심 인물들은 바뀌지 않았으나 상황이 바뀌면서 최근에는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탐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발표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안무가 아리엘 스미스를 포함하여 여러 젊은 무용수·창작자와 함께 협업했다. 또한 해외 투어를 갈 때면 현지의 젊은 무용수를 선발해 함께 공연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일에 참여할 수 있어 즐겁다.

한국에 9년 만에 ‘백조의 호수’로 돌아왔다. 이 작품으로만 LG아트센터에서 벌써 다섯 번째다. 16여 년간 한국 공연을 이어오면서 한국 공연 시장이나 관객에게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았는가?

LG아트센터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이자 서포터였다. 우리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백조의 호수’로 다시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 한국 관객은 우리가 내한할 때마다 항상 따뜻하고 헌신적으로 맞이해 주었다. 이들에게 새로운 버전의 ‘백조의 호수’와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들을 소개하게 되어 기대된다. 이미 이 작품을 여러 번 본 관객들이라면 새로운 변화를 즐겨주시길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멋진 반응을 기대한다.

글 정옥희(무용 칼럼니스트·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

 

image description

‘매튜 본과 그의 날개 AMP’

(1999; 국내 번역 2005, 어드북스)는 영국의 무용비평가 앨러스테어 맥컬리가 매튜 본과 두어 달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본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박식한 맥컬리와 솔직하고 개방적인 본이 나누는 대화는 그 깊이와 넓이를 변화무쌍하게 조절해가며 본의 경력과 작품을 훑는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10월 9~20일 LG아트센터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