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21년 09월

파리 오페라 발레 수석무용수 박세은 – 춤으로 딴 파리 하늘의 별

“COVER STORY – 발레리나 박세은” 파리 오페라 발레 수석무용수 박세은 춤으로 딴 파리 하늘의 별…

음악이 직업이 되어간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아티스트 에세이 – 김동현” 음악이 직업이 되어간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공감은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공감을 통해 나와 ‘비슷하다’는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구와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바람의 섬에는 평화의 팡파르가 제26회 제주국제관악제

제주관악제 바람의 섬에는 평화의 팡파르가  제26회 제주국제관악제 8.8~15 코로나 시기, 다시금 초심으로 언젠가 음악평론가 이장직은 “제주도 섬 전체가 거대한 악기이자 무대”라고 했다. 제주 곳곳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돌담이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면 그 고망(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제주국제관악제의 ‘섬, 그 바람의 울림’이란 부제가 퍽 와닿는다. 제26회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장 이상철)는 8월 8~15일까지 섬 곳곳에서 펼쳐졌다. 공연은 주로 제주시에 위치한 제주문예회관과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시에 위치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펼쳐졌다. 세 개의 주요 공연장에선 관악단·협연·실내악이 고루 나뉘어 올랐다.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해외 관악인들의 참여는 무산됐다. 이에 관악제는 해외 아티스트 대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는 한국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무대를 꾸몄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시즌제’를 도입한 것. 관악제 측은 “여름에 열리던 축제가 프로그램 다양화로 포화상태에 이르러 분산 개최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문제로 통영국제음악제나 평창대관령음악제도 페스티벌을 시즌별로 분산해 운영 중이다. 고기석 집행위원장은 “여름 시즌이 ‘대중성’에 초점을 둔다면 겨울은 ‘전문성’에 무게를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겨울 시즌은 12월 3~7일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리며, 제주국제관악콩쿠르 4개 부문(트럼펫·호른·테너트롬본·금란 5중주) 결선과 처음 시도되는 제주관악작곡콩쿠르의 실황 결선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울러 온라인 확산을 위해 영상물 제작에 다큐멘터리 형식을 도입했다.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제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상 공연을 촬영했고, 주요 공연은 유튜브(제주국제관악제·아르떼TV)와 네이버TV에 생중계됐다. 희망의 선율로 채워진 개막 공연 개막 공연은 8월 8일 저녁, 제주아트센터에서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객석 500석이 사전예약으로 매진됐다. 휴가철을 맞아 제주도에 많은 인구가 몰려온 만큼 관악제는 방역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객석 거리두기 실천과 함께 관객 손목에는 일제히 체온 확인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지휘자 이동호가 이끄는 제주특별자치도립 서귀포관악단이 축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첫 곡은 지난해 관악제에서 초연된 작곡가 이문석(1960~)의 피아노와 관악 앙상블을 위한 ‘멜 후리는 소리’(협연 김지민). ‘멜’이란 ‘멸치’의 제주도 말이다. ‘멸치 후리는 소리’는 해안가에서 그물로 멸치를 후리면서 부르는 민요다. 밀물 때 그물을 넣고 줄곧 작업을 한 후 동이 틀 무렵 해안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끌어당기는 작업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멜 후리는 소리’는 부지런히 그물질하는 어민들을 묘사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곡이 빨라지면서 그물 당기는 사람들의 단결된 힘이 오롯이 드러났다. 제주 민요를 담은 힘찬 첫 곡으로 공연장 분위기는 신명을 더했다. 이어서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무대에…

사각지대로 향한 시선,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INTERVIEW_글 박찬미 기자 사각지대로 향한 시선,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그의 시선은 주목받지 못한 음악과 사람을 향한다 랜들 구스비(1996~)는 최근 미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본지와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는 두다멜/LA 필과 할리우드볼 데뷔를 치렀다. 지난해 10월에는 데카(Decca) 레이블과 전속계약도 맺었다. 계약서 서명이 마르기도 전에, 구스비는 자신의 데뷔 음반 콘셉트를 제안했다. 아프리카계 음악 유산을 조명하는 것, 도전적인 아이디어였다. 데카는 젊은 음악가의 뜻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탄생한 음반이 지난 6월 발매된 ‘뿌리(Roots)’(Decca)다. 랜들 구스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교포 한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뿌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터. 그는 “고립된 공간에서 연습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음악가에게는 더더욱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번 음반은 아프리카계 뿌리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아프리카계 작곡가들을 주목했다. F. 프라이스(1899~1952)의 ‘경배(Adoration)’, 윌리엄 그랜트 스틸(1895~1978)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875~1912)의 ‘딥 리버(Deep River)’ 등 흑인 최초로 자신의 작품을 메이저 악단과 오페라단에 올린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한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가 클래식 음악에 녹아든 사례도 짚어낸다. 흑인의 삶을 다룬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야사 하이페츠 편곡 버전), 뉴욕에 머물던 드보르자크가 흑인 영가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소나티나’ 등이다. 음반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수많은 이름이 거론됐다. 구스비는 “음악의 본질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 음반은 한 개인의 뿌리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를 만들어온 사람들, 이를 향유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두다멜/LA 필과의 데뷔 무대를 며칠 전 마쳤다! 그날 밤, 어땠나? 정신 없었다! 공연 직전까지 미국 동부 버몬트의 옐로우 반(Yellow Barn) 뮤직 페스티벌에 있었다. 이곳에서 5주 동안 여섯 개의 새로운 작품을 익혀 공연해야 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LA 필과 협연할 작품을 연습했다. 축제가 끝나자마자 LA로 향했고, 바로 그다음 날 할리우드 볼에서 리허설을 했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는 무대다. 규모도 엄청나고, 우상으로 여기던 음악가들이 서온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객석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고, LA 필 단원 중에 친분이 있는 사람도 여럿 있어 생각보다 편했다. 두다멜 역시 따뜻하게 날 맞아주었다.프랑스의 작곡가 조제프 볼로뉴(1745~1799)의 바이올린 협주곡 9번을 선보였다. 흔치 않은 선곡인데. 그날 청중 대다수가 처음 듣는 작품이었을 거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작품을 다른 악단들과 협연할 기회가 많았다. LA 필 데뷔와 같은 큰 무대에서는 여러 번 연주한 경험이 있는 곡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볼로뉴의 것을 제안했다.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다.데뷔 음반 ‘뿌리(Roots)’ 역시 주목받지 못한 ‘아프리카계 음악 유산’을 모은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나? 작년, 전미를 뒤흔든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이었다. 팬데믹으로 집에 혼자 있는 와중에, 인종 차별 희생자에 관한 뉴스를 매일 접하니 무기력해지더라. 음악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음반은 아프리카계 음악인으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방법이었다.플로렌스 프라이스, 윌리엄 그랜트 스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등 쉽게 만날 수 없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실었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우리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몇몇 수록곡은 세계초연 녹음이다. 작품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음악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작곡가들의 경험을 상상해보고 자신을 이입하면, 작품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곡가들은 피부색이 다르단 이유로 차별을 겪었지만, 음악으로 극복해갔다. 그 과정이 내게 영감이 됐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음반을 통해 전해지길 바랐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작업 과정에서 영감을 준 인물이 있나? 피아니스트 미셸 켄이 프라이스 작품 연구에 도움을 줬다. 프라이스 전문가인 그와 논의하며 작품 속 디테일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하이페츠 편곡 버전의 ‘포기와 베스’를 연구할 때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케 아구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하이페츠가 생전 마지막 15년을 함께한 동료였다. 하이페츠와 직접 이 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는 아구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이페츠의 연결된 듯한 느낌도 받았다. 한편, 콜리지 테일러 퍼킨슨(1932~2004)은 그의 ‘Blue/s Forms’를 흑인 최초로 뉴욕 필에 입단한 바이올리니스트 샌포드 앨런에게 헌정했다. 앨런에게 퍼킨슨과의 작업기가 어떠했는지 자문도 구했다. 국가예술기관인 ‘스핑크스’가 이들과의 접점을 마련해주었다. 스핑크스는 한국에 생소한데,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최근 이 단체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던데. 스핑크스는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주력한다. 최근 받은 ‘골드 메달 엑설런스’도 유색인종 예술가를 대상으로 고무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이에게 수여된다. 10여 년 전, 스핑크스 주최 콩쿠르에 참여하면서 단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스핑크스를 통해 여러 악단과의 협연 기회를 얻어, 프로 음악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스핑크스가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학교, 양로원에 찾아가 내 이야기와 음악을 나눈 것이었다. 십 대였던 나는 누가 내 이야기와 음악에 관심을 보일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청중이 입을 떡 벌리고 귀 기울여주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클래식 음악이 ‘주류’는 아니지만, 누구나 이것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커뮤니티로 이 음악을 전하고 싶어졌다.스핑크스에서 만난 또 다른 인연인 자비에르 폴리는 수록곡 ‘셸터 아일랜드(Shelter Island)’를 썼다. 셸터 아일랜드는 펄먼 뮤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다. 그곳에서 키운 폴리와 나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 ‘셸터 아일랜드’다. 여기엔 블루그래스, 대중가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등의 요소가 모두 녹아 있다. 다른 수록곡들도 마찬가지다. 여러 시대와 세계로부터 받은 영향이 스며있다.이 음반은 한 개인 음악가의 성취물이기도 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오늘을 새긴 기록물이다. 당신의 음반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아프리카계 음악인의 존재를 ‘기념’하는 음반. 한편으로, 요새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으니 음반을 들으며 긴장을 풀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열린다면, 잘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어머니는 재일교포 한국인이다. 당신 뿌리의 일부가 아시아로도 향해 있는 셈이다. 아시아의 클래식 음악을 조명할 계획도 있나? 어머니는 일본어를 제1언어로 쓰셨고, 나도 자라면서 그 언어를 배웠다. 내 조상 중 한국인이 있으면서도, 일본 문화를 향유했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롭다. 물론 아시아의 음악 유산에도 관심이 많다. 이미 어떤 프로젝트를 시도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REPORT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2016년 미국 오케스트라 연합(LAO)은 미국 악단·지휘자·사무국 직원 등의 인종·민족·성별 구성 비율을 분석한 보고서 ‘오케스트라계 인종, 민족, 성별 다양성(Racial/Ethnic and Gender Diversity in the Orchestra Field’을 발표했다.  2014년, 악단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비(非)백인의 약 6배였다. 10명 중 비백인은 약 1.4명, 그마저도 아프리칸, 히스패닉, 아시안 등으로 나누어져야 하는 셈이다.랜들 구스비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훨씬 더디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미국의 인구총조사(2020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내 인종 다양성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2020년 백인 인구와 그 외 모든 인종을 합한 인구의 비율이 1대1에 가까워졌을 정도다.느리지만 분명히, 클래식 음악계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1980년에서 2014년, 악단 내 비백인 음악가 비율은 4배 증가했고, 지휘자와 음악감독직에도 다양한 출신의 인물이 선발돼 2016년에는 그 비율이 21%에 달했다. 세계적으로, 아프리카계 음악인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진다. 세쿠 카네 메이슨(첼로)과 이사타 카네 메이슨(피아노)은 데카 레이블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고, 피에르 불레즈와 페테르 외트뵈시를 사사한 케빈 존 에두세이(지휘)는 뮌헨 심포니를, 조나단 헤이워드(지휘)는 북서독일 필하모니를 이끌고 있다. 웨인 마샬(피아노·오르간·지휘)은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신포니카 오케스트라의 수석객원지휘자와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WDR)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글 박찬미…

혁명과 독재의 예술사, 서거 200주기 맞은 나폴레옹과 예술

SPECIAL NapoleonArt of Revolution & Empire PART1 | 나폴레옹과 음악    PART2 | 나폴레옹과 발레     PART3 | 나폴레옹과 미술     PART4 | 프랑스 현지의 나폴레옹 관련 예술 행사 혁명과 독재의 예술사 서거 200주기 맞은 나폴레옹과 예술 세상은 산 나폴레옹을 저버렸으나, 죽은 나폴레옹은 세상을 얻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 1821)가 사망한 지 정확히 200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점에서다. 그의 이름은 예술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했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나폴레옹을 향한 다각적 접근이 이뤄졌다. 평화에 싫증 난 평화론자, 비판을 허용하는 독재자,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미래지향적 야심가 등 나폴레옹의 상충하는 성향 때문이다.그러나 젊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국민 앞에 처음 등장했을 땐 열렬한 기대와 지지를 받았다. 베토벤이 그러했듯,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여세를 몰아 세상에 자유를 가져올 영웅이라 믿었다. 혁명으로 국내 정세가 불안할 때 이탈리아 원정을 승리로 이끌어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북돋는 한편, 나폴레옹의 불굴의 투지와 진취적 기상은 당시 정쟁과 부패에 찌든 총재정부와 좋은 대조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런 대중의 희망을 발판 삼아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고 권좌에 올랐다. 실망한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던 계획을 철회해버렸다.서양사학자 이용재는 나폴레옹이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것은 그가 세운 공로가 남들보다 우월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구세주로 부각할 줄 아는 능란한 정치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검열제도를 확대해 비판 여론을 단속하는가 하면 관변 언론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치자의 이미지를 심어나갔다는 것이다.  예술도 여기에 활용됐다. 회화로 자신의 위업을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각인시켰고, 음악으로 과거의 영광을 찬양하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음악당, 발레단, 미술관 등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개혁가로서의 실천도 해나갔다. 이에 따라 음악, 발레, 회화 등의 예술은 변화해갔다.예술에 남은 나폴레옹의 흔적을 따라, 파리의 예술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집 지면을 준비했다. 음악의 중심지였던 궁정 음악당, 나폴레옹이 단행한 파리 오페라 발레 조직 개혁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르니에 극장, 그리고 그가 기틀을 마련한 루브르 박물관, 올해 나폴레옹 서거 20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개최하고 있는 앵발리드까지 들러보자. 각 공간에 흐르는 당대 예술은 나폴레옹의 성향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글 박찬미 기자 PART1Napoleon’s art music 나폴레옹과 음악황제가 사랑한 음악황제를 사랑한 음악가 나폴레옹의 음악 취향은 매우 분명했다. 그는 성악 작품을 선호했으며, 무엇보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좋아했다. 프랑스인으로서는 조금 특별한 그의 음악적 취향은 그가 코르시카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항상 조용하고 슬픈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음악을 즐겨 듣는 것은 주로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가 음악회에 도착할 때는 정치 현안들로 인해 근심이 가득한 잔뜩 경직된 얼굴이었지만, 음악회가 끝나고 나면 주위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기분이 좋아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대 수많은 음악가가 나폴레옹을 추종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나폴레옹의 승전, 결혼, 즉위, 득남, 재혼 등 나폴레옹의 개인적 또는 공적인 경사에 맞추어 작품을 헌정했다. 거기에 나폴레옹이 작곡가에게 위촉한 작품까지 더해져, 나폴레옹이 주최하는 축하 행사나 축제에는 음악이 넘쳤다. 황제의 이탈리아 음악 취향나폴레옹이 가장 총애한 작곡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조반니 파이시엘로(1740~1816)➊였다. 나폴레옹이 파이시엘로를 처음 만난 것은 1797년 1차 이탈리아 원정 때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망 있는 두 작곡가였던 파이시엘로와 루이지 케루비니(1760~1842)에게 모젤 주둔군 총사령관이었던 루이 나자르 오슈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경합을 벌이게 했는데, 거기서 파이시엘로가 우승을 차지했다. 나폴레옹이 이 작품의 악보를 직접 파리 음악원에 기증한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1802년 7월 20일 나폴레옹은 그를 불러들여 새로 개관한 자신의 음악당(나폴레옹의 집권기에 따라 통령채플, 황실채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_편집자 주)을 맡기는 등 융숭하게 대접했다. 파이시엘로는 그 보답으로 수많은 미사와 모테트, 대관식 음악을 헌정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따듯한 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리에 2년밖에 머무르지 않고 1804년 나폴리로 돌아가 1806년 나폴리 왕이 된 나폴레옹의 맏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위한 실내악과 교회음악 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나폴리 행 배경에 관한 여러 추측이 있는데, 그중 1803년 나폴레옹에게 헌정한 오페라 ‘프로세르피나➋’의 흥행 실패와 그 배후에 프랑스 음악가들의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 설득력을 얻는다. 파이시엘로는 프랑스를 떠났지만 나폴레옹은 그가 여전히 파리 음악원의 교수 자격을 유지하게 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1802년 나폴레옹이 제정한 훈장으로, 전장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에게 수여 한다_편집자 주)도 수여했다. 비록 파이시엘로와의 경합에서는 졌지만, 케루비니 역시 나폴레옹에게 여러 작품을 공적으로 위촉받은 작곡가다. 그의 오페라 ‘피말리온느’(1809/피그말리온)를 포함해 궁정 음악회에서 그의 작품들이 자주 무대에 올랐다. 그가 나폴레옹을 증오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나폴레옹의 왕정복고 직후에 있었던 일이고, 그 소문 자체도 의심할 여지가 있다.  파이시엘로가 나폴리로 떠난 후 여러 음악가가 그가 맡았던 일들을 대신했다. 음악당의 후임자로는 장 프랑수아 르 쥐외르(1760~1837)가 내정되었다. 나폴레옹이 그를 파이시엘로만큼 총애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나폴레옹이 1804년 초연한 르쥐외르의 오페라에 감명받아 그에게 6,000프랑을 하사했으며 금으로 된 담뱃갑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나폴레옹은 파이시엘로가 맡았던 궁정극장의 음악회를 위해 드레스덴 잭슨 궁정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니난도 파에르(1771~1839)를 데려왔다. 1807년 그는 공식적으로 제국의 종신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직을 맡았는데, 이는 음악적 능력보다는 그가 아부를 잘하고 나폴레옹을 잘 섬긴 덕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수와 반주자로서 음악적 활동은 계속했지만, 파리에 온 이후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인 ‘누마왕’(1808) ‘클레오파트라’(1808) ‘디도’(1810) 등은 모두 궁정극장에서만 연주되었을 뿐 일반 청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스파레 스폰티니(1774~1851)는 나폴레옹에게 파이시엘로, 르쥐외르, 파에르 다음으로 총애를 받은 이탈리아 작곡가로, 황비 조제핀의 특별한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오페라 ‘베스타 여사제’(1807)➌가 연주될 수 있었던 것도 황비가 고집한 덕분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나폴레옹도 이른바 ‘황제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인정하고 보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나폴레옹은 스페인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스폰티니에게 ‘페르낭 코르테즈’(1809)➍를 위촉하기도 했다….

박규희 클래식 기타 독주회 외

공연수첩  앙상블블랭크 & 이한나 리사이틀 현대음악 유행을 꿈꾸다8월 5일 금호아트홀 연세 검은 슈트와 구두 차림의 지휘자. 그가 움직일 때마다 슬쩍슬쩍 새빨간 양말이 드러났다. 앙상블블랭크와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함께한 공연에는 ‘검은 정장에 빨간 양말’ 같은 재치가 이따금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무게감 있는 현대음악이 친근함을 입었다.앙상블블랭크는 현대음악 단체다. 2017년 작곡가 겸 지휘자인 최재혁이 창단했다. 새빨간 양말의 주인공인 그는 지휘뿐 아니라 재치 있는 해설로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비주류의 음악을 모았다”는 그의 자조 섞인 설명처럼,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에런 코플런드(1900~1990), 사무엘 바버(1910~1981), 몰튼 펠트만(1926~1987), 스티브 라이히(1936~)의 작품들과, 최재혁(1994~), 그리고 만 스물셋의 작곡가 김혁재의 신작 두 편 등으로 꾸며졌다. 첫 곡, 코플런드의 ‘애팔래치아의 봄’에서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상쾌한 정취와 함께, 현대음악의 신선함이 객석으로 불어왔다. 더욱 높아진 기대감으로 나머지 레퍼토리들을 감상했는데, 최재혁과 김혁재의 초연 신작이 가장 흥미로웠다. 최재혁의 비올라와 타악기를 위한 ‘마이 라이프 인 비올라’는 두 악기가 시끄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작품. 최재혁은 연주를 맡은 이한나에게 자신의 비올라를 빌려줬다. 거친 연주법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올리스트의 활은 브릿지 가까이를 마구 긁어댔고, 퍼커셔니스트 한문경의 손톱은 나무 합판을 할퀴어 냈다. 여기에도 세밀함과 과격함 사이 다이내믹이 있었는데, 그 순간들을 연결해 나가며 나름의 ‘감상법’을 터득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라츠 음대에서 클라우스 랑을 사사하는 김혁재. 힙합과 록을 거쳐 작곡에 눈 떴다더니, 그 작품명에서부터 ‘분노’가 반짝인다. ‘Same New Shit’. 이 곡은 새로운 음악·음향·미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뿐이라는 김혁재의 선언문이었다. 젊은 작곡가의 패기와, 세상에 대한 일침이 뒤섞여, 곡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형상이었다.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음악제 ‘빈 모데른’을 창설해 운영했다. 당시 극장 총감독이었던 드레제의 증언에 따르면, 빈 모데른을 필두로 “현대음악을 접하려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프로그래밍, 김혁재와 같은 작곡가를 발굴하는 ‘눈과 귀’는 5년 차를 맞은 앙상블블랭크의 노련미를 암시했다. 그리고 꽉 들어찬 이날 공연장은 이에 대한 청중의 화답을 의미했다. 최재혁과 앙상블블랭크가 이 여세를 몰아 ‘비주류’의 설움을 풀고, 국내에 현대음악을 유행시키진 않을까. 긍정적인 예감이 든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앙상블블랭크 박규희 클래식 기타 독주회 기타로 만난 바로크 정취8월 11일 롯데콘서트홀 노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박규희(1985~)는 나폴레옹 코스테(1805~1883)의 ‘출발’ Op.31을 시작으로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의 ‘그랑 호타’, 망고레의 ‘훌리아 플로리다’ 등을 선보였다. 기자가 집중적으로 살펴본 연주는 기타곡으로 만나본 스카를라티의 건반 악기를 위한 소나타 K32·K322·K208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이었다. 세 살 때 기타를 시작한 박규희는 도쿄 음대·빈 국립음대·알리칸테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그는 벨기에 프렝탕 기타 콩쿠르 우승(2008) 이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연주에 앞서, 박규희는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두 작품이 기타로 편곡된 것이 기타리스트들에게 얼마나 뜻깊은지 설명했다. 새로운 레퍼토리 확장을 넘어 건반과 바이올린 활의 기교와 감성을 비로소 기타 음색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커 보였다. 그래서 연주 시작 전 손을 주무르는 박규희의 모습은 사뭇 경건해 보였다. 먼저 만나본 스카를라티(1685~1757)의 작품에서는 기타의 나른한 음색이 작품에 퍽 어울렸다. 그 이유는 연주법에서 비롯된다. 하프시코드와 기타는 줄을 뜯어 소리 내는 원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얼핏 비슷한 음색을 가진 듯하지만, 기타의 소리는 활이나 건반과 해머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모나지 않고 더 솔직하게 들린다. 연주법의 차이에서 오는 기타의 매력은 악상의 유연성에서 더 부각됐다. 기타의 소리는 손끝에서 빚어지기에 다이내믹 활용이 훨씬 자유롭다. 당대 연주에서는 금기시되는 페달링은 기타의 영역이 아니므로, 폭넓은 다이내믹의 운용은 오히려 기타에 유리한 연주였다. 연이어 만난 바흐(1685~1750)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샤콘’ 또한 여러 버전으로 편곡되어 소개되고 있다. 기타의 음색으로 만난 ‘샤콘’은 비록 활시위의 화려함과 에너지는 없지만, 중반부에 정적에 이르는 파트에서 약음 된 소리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지로 울리는 저음부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대위가 명확하지 않게 들린 것은 아쉬웠다. 기타의 음색으로 만난 두 작품은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주제가 부각된 연주보다 말년의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박규희의 연주는 대위를 구분해 주제를 잡기보다, 이미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 음악을 통째로 흘려보내는 듯 자연스러웠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뮤직앤아트컴퍼니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일상판소리 십오분전’ &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가감’전통음악은 완성품일까7월 28·29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8월 4·5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전통음악을 해체·조립한 두 편의 공연이 열렸다. 창작판소리와 동·서양 악기를 조립한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신작과 전승된 민속음악에 악·가·무를 더하고 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기획공연이다.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판소리 완창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5명의 소리꾼은 유튜버 열풍, 불안과 폭식증, 중고거래 사기, 일상 속 공상, 반복적인 직장 생활을 소재로 각각 15분짜리 무대를 선보였다. 한 무대에 단 3명(소리꾼·고수·악기 연주자)이 오르는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옴니버스 음악극처럼 풍성했다. 무엇보다 젊은 소리꾼이 오늘날 선보이고픈 판소리의 매력을 떼어와, 다른 장르 및 악기와 결합해보는 실험의 장이었다. 소리꾼 김은경은 내용인 브이로그처럼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판소리를 만들어 보였다. 정지혜는 판소리의 비극미를 극대화하는 데 첼로의 구슬픈 음색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단 15분 만에 청중을 웃기고 울리며 판소리의 맛을 제대로 살린 무대로는 이승민의 ‘출입국 관리사의 일탈’을 꼽고 싶다.지난 2월, 새로운 예술감독을 맞은 민속악단은 기획력이 돋보이는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지기학 예술감독은 전통의 어법으로 전통예술 공연물을 창작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음악에서의 ‘더늠’과 ‘덜이’를 변주에 활용했다. 민속악단은 경기민요 ‘창부타령’과 서도민요 ‘산염불’을 성악을 덜어낸 기악곡으로 재구성하고, 가야금병창과 잡가에 색다른 악기를 더했다. 또한 ‘태평무(太平舞)’를 춤 없이 무대에 올렸다. 이러한 ‘편곡’의 묘는 첫날 공연된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에서 발휘됐다. 가야금병창에서 장구를 북으로 대체하고, 퉁소를 더했다.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듯한 북소리, 낮고 구성진 퉁소의 음색이 어우러져 “음악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와닿았다. 반면, 가야금병창에 같은 현악기가 더해지자, 다른 노래가 나오는 이어폰을 한쪽씩 낀 것처럼 두 악기의 선율과 소리, 장단이 섞여 오히려 감상하기가 어려웠다.전통음악은 완성품일까? 전통음악의 요소를 모듈처럼 활용한 두 공연의 의의를 전통은 박제된 무언가라는 고정관념을 덜어내고, 생명력을 더한 데서 찾고 싶다. 청중이 듣기에 더 좋다면, 오늘날 선보인 ‘일상판소리 십오분전’과 ‘가야금병창에 퉁소를 더늠’이 후대의 전통이 될 수 있을 테니.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국립국악원·판소리공장 바닥소리 뮤지컬 ‘비틀쥬스’ 과연, 성공적인 초연이었나?7월 6일~8월 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만약 당신이 뮤지컬 ‘비틀쥬스’에 관심을 가졌다면, 무엇 때문인지 묻고 싶다. ‘비틀쥬스’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올린 지 2년도 안 되어 한국에 상륙했다. 브로드웨이 현 뮤지컬 경향이 궁금한 많은 이들이 대거 공연장을 찾았다. 기자는 팀 버튼(1958~)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겼다.각별한 주목을 끈 만큼이나 실망의 목소리도 컸다. 개막부터 순탄치 않았다. 무대 기술 문제로 개막을 두 번이나 연기한 것. 그런데 이러한 이슈는 오히려 ‘비틀쥬스’ 무대 스케일에 대한 상상을 증폭시켰다. 6월 19일 개막 예정이던 뮤지컬은 7월 6일에 막이 올랐다. 브로드웨이의 최신 기술이 세종문화회관에 어떻게 구현될지 더욱 궁금해졌다.1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비틀쥬스’는 2019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마법 같은 비주얼로 인해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거대한 집 형태의 무대 세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특수효과를 더했다. 이번 공연도 오리지널 프로덕션 버전을 공수해 다채로운 소·대도구가 등장했다. 공중부양·불꽃과 같은 다양한 특수효과는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게 했다. 총 18번의 전환을 거치는 무대는 그야말로 ‘유령의 집’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정말 팀 버튼의 세계관을 뜻하는 ‘버트네스크(Burtonesque)’를 완벽히 구현해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생긴다. 팀 버튼의 내러티브 구조에서 드러나는 권선징악은, 어쩌면 현대인들에게는 대단히 지루한 주제이다. 그 지루함을 팀 버튼은 침울하면서도 유머가 담긴 특유의 괴이함으로 치환시킨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그로테스크 미장센이 각 캐릭터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뮤지컬에서도 현실에 없는 캐릭터들을 표현하기 위해 분장과 의상에 많은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주인공 비틀쥬스만 해도 스트라이프 의상을 네 종류, 가발을 6회 변경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지속된 화려한 볼거리는 놀이동산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주었지만, 은근하면서도 기묘한 팀 버튼의 세계관과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작품 전반에 녹아든 미국식 블랙 코미디 대사들이 한국인 정서와 잘 맞도록 번역이 되었는지도 의심이 든다. 비틀쥬스(유준상)는 관객과 소통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지만, 능청스러운 연기에 녹아들지 않는 어색한 대사가 내심 아쉬웠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 새로운 대형 뮤지컬을 그리워하던 관객에겐 기분 좋은 자극이었을 테다.글 장혜선 기자 사진 CJ ENM

미래의 지휘자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 미래의 지휘자 ‘거장’이라 불리던 이들 이래로, 지휘계의 맥이 끊겼다. 이를 봉합하고 나선 오늘의 차세대 지휘자들은 누굴까? 독일인 비평가 위르겐 케스팅은 올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한 지휘자에 대해 “수치를 모르는 자아도취한 자”라고 칭하는 한편, 그 어느 지휘자도 축제의 흥행을 이끌지 못했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적어도 후자에 있어서, 그는 맞는 말을 했다.클래식 음악의 몰락은 지휘자들의 비상(飛上)을 막았다. 무티, 바렌보임, 틸레만, 게르기예프, 래틀 같은 일부 베테랑들은 여전히 신문 일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간 세대는 빈의 링슈트라세 대로에서 나체로 춤이라도 추지 않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 30여 년 전, 나는 저서 ‘거장 신화-클래식 음악의 종말과 권력을 추구한 위대한 지휘자들’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위대한 지휘자들은 눈에 보이는 권력의 정점에 서서 자신들의 종족이 멸망으로 가는 길을 닦아 왔다.” 그 예측은 이제 실현되고 있다. 위대한 지휘자는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다.(편집자주_‘거장 신화’는 2014년 우리말로 번역(김재용)된 바 있다) 지휘계에 희망은 없는 걸까?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다수의 평범한 핀란드인, 환한 웃음 가득한 젊은 여성들, 조작된 대회의 수상자들, 유명인 꿈나무들뿐이다. 지금껏 지휘계의 미래가 이렇게까지 암울했던 적은 없었다. 본인의 나이대에 비해 지나치게 어린 느낌의 민소매 차림을 한 그리스인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언론의 관심을 먹고 사는 구스타보 두다멜, 야니크 네제 세갱을 제외한다면 중년층은 텅 비어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위르겐 케스팅의 실존적인 암울함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볼까 한다. 두 개의 양성소에서 황금 같은 인재들을 길러내기 시작했다. LA 필하모닉의 두다멜 펠로우십 제도는 유망한 젊은이들을 선발해, 이들에게 1년 동안 일절 타협이 없는 전통적인 방식의 견습직으로 활동하게 한다. 역경이 가득한 이 학교의 졸업생으로는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리투아니아)·엘림 찬(홍콩)·젬마 뉴(뉴질랜드)·가천 웡(싱가포르)·마르타 가르돌린스카(폴란드)가 있다. 이들 모두는 오케스트라 세계의 생존 경쟁에서 꽤 괜찮은 첫 번째 울타리 안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조짐이 좋지 않은가? 이게 다가 아니다.네슬레(Nestlé)사가 매년 후원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강력한 미르가와 세 명의 영국인인 케렘 하산, 벤 게르논, 조엘 샌더슨, 스위스의 유망주 로렌조 비오티, 우즈베키스탄의 아지즈 쇼카키모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우리는 미래의 인재 자원이 형성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비오티(1990~)는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를, 하산(1992~)은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심포니를 맡았고, 쇼카키모프(1988~)는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에 둥지를 틀었다.신고전주의를 고수했던 브루노 발터는 “지휘자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재능, 지성, 매력, 건강한 신체, 수많은 행운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야망이 포함된다. 푸르뱅글러, 카를로스 클라이버, 첼리비다케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은 모두 상대를 무너뜨릴 때를 알고 있었다. 유망했던 다른 후보들은 무자비함이 모자라 실패하고 만 것이다. 주목해야 할 차세대 지휘자 6인내가 지금 소개하려는 40대 미만의 지휘자 여섯 명은 성공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었고, 지난 세기 이래로 만난 그 어떤 이들보다 탄탄한 재능을 갖고 있다. 이 미래의 위대한 지휘자들을 특별한 순서 없이 추려 보았다.알페시 초한(1990~)은 어린 시절부터 지낸 집에서 음악감독으로 있는 버밍엄 오페라 컴퍼니까지 버스로 출퇴근한다. 전 오페라 감독인 그레이엄 빅에게 발탁된 초한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과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 이미 영국 중부의 관객들과 음악가들을 압도했다. 현재 시티 오브 버밍엄 심포니를 맡고 있는 미르가가 내년에 떠나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그때쯤이면 초한은 버밍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뒤셀도르프의 악단에서 계약직 자리를 획득했다.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1986~)는 홍보가 필요 없는 사람이다. 사실상 그녀가 버밍엄에 도착했던 5년 전부터 대형 악단들은 미르가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뉴욕 필하모닉은 관심을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그녀가 살고 있는 잘츠부르크는 미르가를 여름 페스티벌의 고정 출연진으로 보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족을 우선하는 미르가이지만, 그녀에겐 맹렬한 야망과 넘치는 업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또한 미르가는 공연을 훌륭하게 마친 뒤 자신의 음악가들과 함께 사적인 노래 모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엘림 찬(1986~)은 앤트워프 심포니의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수많은 공연의 객원지휘자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조그만 체격과 다정다감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리허설에서는 강철과도 같은 단호함을 보이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주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로 박자 하나 놓치지 않고 있다.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 새로 부임한 산투 마티아스 로발리(1985~)는 연습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앙상블의 음색을 바꾸는 몇 안 되는 지휘자 중 하나이다.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그는 말수가 적은 핀란드인 중에서도 더욱 말이 없으며, 미르가와 비슷하게 그의 인기 또한 이미 드높다.동료 핀란드인인 클라우스 메켈레(1996~)는 이미 파리 오케스트라와 오슬로 필하모닉을 책임지며, 데카(Decca)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7곡을 녹음하는 중이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걸 맡고 있진 않냐고? 우리는 첫 번째 음반을 기다리고 있다. 더블 버튼 슈트 차림으로 프로필 사진 포즈를 취하는 그는 어째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듯하다.라하브 샤니(1989~)는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네제 세갱의 뒤를 이어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맡고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제자인 그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피아니스트로도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있다. 이스라엘 필에서 그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결단력과 사교성을 보여주며 레퍼토리와 평판을 바꿔 나가는 중이다. 지휘계의 미래는 밝다이들 모두가 잘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가는 내가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끝까지 잘 버티리라고 내 직감은 말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뒤따라올 것이다. 독일인 요아나 말비츠(1986~)는 육아 휴직으로 뉘른베르크 극장 음악감독직을 내려놓았지만 머지않아 다시 복귀할 것이다. 래틀의 전 어시스턴트인 덩컨 워드(1989~)는 네덜란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으며, 지휘계에서는 희귀한 미국인 라이언 밴크로프트(1989~)는 BBC 웨일즈 내셔널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고 있다. 러시아인 막심 에멜리아니체프(1988~)는 모차르트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유행에 뒤처진 것 같기도 하지만 고음악 운동이 활력을 다한 현재로는 중요한 임무라고 볼 수 있다.중간 세대가 실패한 곳에서 지휘봉을 이어받은 새로운 세대가 기회로 전율하고 있다. 지휘계의 미래는 밝다. 정치적 이슈가 재능의 맥박이 뛰어야 하는 동맥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다면 전 세계 대부분이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뤄보도록 하겠다.번역 김진 Conductors of the future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의 영어 원문을 함께 제공합니다 The German critic Jürgen Kesting caused a flutter at Salzburg this summer by calling out one maestro for ‘a shameless ego trip’ and claiming none of the rest had pulling power at the box-office. He was right on the second count, at least.The collapse of classical recording left conductors without promotion. While a few old-timers – Muti, Barenboim, Thielemann, Gergiev, Rattle – remain headline names, the middle generation would not get more than a flicker of attention if they danced naked down Vienna’s Ringstrasse. Thirty years ago, I ended my book ‘The Maestro Myth’ with the words, ‘the great conductor has paved the way to his own extinction’. That prediction has now come to pass. The Great Conductor is defunct.What we are left with is a slew of featureless Finns, toothy young women, rigged competition winners and outright wannabees. The future of conducting has never looked so bleak. With the exception of the sleeveless Greek Teodor Currentzis, who dresses one generation too young for his age, and the media-savvy Gustavo Dudamel and Nézet-Séguin, the middle-aged shelf is bare.That said, I do not share Kesting’s existential gloom and I am about to tell you why. Two nurseries are starting to produce golden sticks. Dudamel’s fellowship scheme at the Los Angeles Philharmonic selected promising youngsters and given them a year’s old-fashioned apprenticeship in a unionised shop where the players take no prisoners. Graduates of this school of hard knocks include Mirga Gražinytė-Tyla (Lithuania), Elim Chan (Hong Kong), Gemma New (New Zealand), Kahchun Wong (Singapore) and Marta Gardolínska (Poland). All have now landed good first jobs around the middle of the orchestral snakes and ladders board. That’s promising, but there’s more.In Salzburg the annual Nestlé competition has yielded the dominant Mirga, plus three Brits – Kerem Hasan, Ben Gernon and Joel Sandelson – a Swiss one-to-watch Lorenzo Viotti and a prodigiously gifted Uzbek, Aziz Shokhakimov. We are seeing the making of a future talent pool. Viotti, 31, is now in charge at Dutch National Opera; Hasan, 29, has an Austrian orchestra; while Shokhakimov, 32, is starting with the philharmonic orchestra of Strasbourg.The augustan Bruno Walter used to say that conductors are not born, they have to be made. The ingredients include ability, intelligence, charm, good physique, a lot of luck and – crucially – ambition. Legends such as Furtwängler, Carlos Kleiber and Celibidache all knew when to go in for the kill. Many fine prospects have fallen short for lack of ruthlessness. I believe the six under-40s I am about to present have got what it takes, and half a dozen talents is a bigger lineup than we have seen any time since the last century. These, in no determined order, are the big sticks of the future.Alpesh Chauhan, 28, works a bus ride from where he grew up as music director of Birmingham Opera Company. Spotted by the late opera director Graham Vick, Chauhan has overwhelmed Midlands audiences and musicians with a prodigious Wagner Rheingold and Shostakovich Lady Macbeth of Mtsensk. Word on the street is that he could take over the city’s symphony orchestra when Mirga leaves next year, but Chauhan may have outgrown Birmingham by then. He has already landed a part-time link with the orchestra in Düsseldorf. Mirga Gražinytė-Tyla, 35, needs no hype. Major bands have been bidding for her practically from the moment she arrived five years ago in Birmingham. The New York Philharmonic has made no secret of its interest. Salzburg, where she lives, sees her as a fixture at its summer festival. Mother of two, she is putting family first – but the ambition is fierce, the engagement total and the energy inexhaustible. She likes to have a private sing-song with her musicians after a good concert.Elim Chan, 35, is making waves as music director in Antwerp and across a swathe of guest dates. Slightly built, sweetly personable and with a hint of steel about her in rehearsal, she has not missed a beat since winning a contest at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Santtu-Matias Rovali, 35, newly installed at London’s Philharmonia, is one of the rare conductors changes the sound of an ensemble just by entering the rehearsal room. Naturally gifted, he is short of words even for an inexpressive Finn, there’s already a buzz about him akin to Mirga’s.Fellow-Finn Klaus Mäkelä, 25, is already head of the Orchestre de Paris and the Oslo Philharmonic, with whom he is recording the seven Sibelius symphonies for Decca. Too much, too soon? We await the first release. He poses for portraits in double-breasted suits to look more like a grown-up.Lahav Shani, 32, has succeeded Zubin Mehta as music director at the Israel Philharmonic and Nézet-Séguin at the Rotterdam Philharmonic. A Daniel Barenboim protégé, he lives in Berlin and continues to accept festival dates as a piano soloist. At the Israel Phil he has been both decisive and diplomatic, changing repertoire and reputation in a very short space of time.I’d be sacked by my insurers if I guaranteed that all of these talents will come good, but my instinct is that most will last the course. And, if they don’t, there are others coming up behind. The German Joana Mallwitz, 35, has just given up her Nuremberg job for a childbirth break but she will bounce back before long. The former Rattle assistant Duncan Ward, 32, leads a Dutch orchestra and a rare American Ryan Bancroft, 32, conducts the BBC national orchestra in Wales. The Russian Maxim Emelyanychev, 32, is making a name for himself as a Mozart specialist, unfashionable but essential now that the early-music movement has run out of puff.Where the middle generation has failed, the new batons are quivering with opportunity. The future of conducting is looking bright – everywhere except in Russia and America, where political concerns have clogged the arteries that ought to be pulsing with talent. But that’s a topic for another day. Norman Lebrecht 글 노먼 레브레히트 영국의 음악·문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텔레그래프’지, ‘스탠더즈’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블로그(www.slippedisc.com)를 통해 음악계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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