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직업이 되어간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9월 20일 9:00 오전

“아티스트 에세이 – 김동현”

음악이 직업이 되어간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공감은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공감을 통해 나와 ‘비슷하다’는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구와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때만큼 외로운 순간도 없다.  ‘공감이 주는 행복’에 대한 나의 오랜 추억은 예원학교 재학 시절에 있다. 나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전교생 중 유일하게 악기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당시 신기해하는(긍정적으로) 친구들도 많았지만, 신기함은 곧 낯섦과 공존하기에 나를 ‘독특한 아이, 남다른 아이’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던 중 예원학교에 입학하고 만난 학우들은 나와 같이 일반 초등학교에 재학하다 왔지만,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음악’이 주는 동질감은 학교와 친구들을 향한 나의 애정을 배로 증가시켰다. 이렇듯 공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또 외롭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길
무라카미 하루키(1949~)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 스스로 소설가라는 직업을 돌아보며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그의 글이 이제 막 음악이 직업이 되어가는 소위 ‘뉴비(Newbie)’ 연주자인 나에게 적잖은 공감을 끌어냈다. 문학과 음악, 이 외 여러 분야는 결국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갈래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랬다.
저자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물고기와 같다고 한다. 물속에서 항상 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는 죽고 만다는 물고기의 삶이 소설가의 생애와 비슷하다는 것.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하는, 어떠한 명석함보다 그것을 대신할 만한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악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우리가 연습실에서 (혹은 다른 어딘가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각자의 음악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지, 혹 멈춰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맑은 생각을 하기에 연습실은 최적의 환경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 틀어박혀 여러 가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며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며 시간을 보내고, 온종일 단 한 단락의 음악적 완성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 하루의 작은 성과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 납득하고 넘어가는, 어찌 보면 둔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항상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쉽지만은 않은 과제다.
그렇기에 환기를 시켜줄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드라이브를 가는 등 음악 활동 이외에 본인만의 환기구를 마련해 놓지 않고는 건강하게 음악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하루키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 받은 것이라는 자아의 솔직한 인식과 함께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으려 애썼기에 소설가가 됐다고 했다. 그는 그러한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자격을 소중히 지켜나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그 신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 또한 각자의 실력과 관계없이 음악으로 울고, 웃고, 행복하고 또 슬플 ‘자격’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연주자로서 우리의 음악을 듣는 청자를 미소 짓게 할, 눈물 짓게 할 책임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뛰어난 능력이고, 그 능력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습한다. 감사함과 책임감을 동반한 음악가가 되어가겠다고 나도 글을 쓰며 다시 다짐한다.
가장 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시작일 때
이따금 어린 후배들이 질문을 보내올 때가 있다. “어떻게 연습해야 악기를 잘할까?”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할까?” 등의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최선의 답을 한다. 하지만 나 역시 꾸준히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확신에 찬 ‘정답’을 이야기하긴 어렵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내가 아직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선배 연주자들, 선생님들만큼 오랜 세월 동안 음악 생활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질문의 답을 찾던 중, 마침 하루키의 책에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 질문의 첫 번째 답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음악가에게 대입하면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가 된다.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흔해 빠진 대답’이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고, 빠뜨릴 수 없는 훈련이다. 그리고 이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기초 체력’이라고 덧붙였다. 예측 가능한 답이지만, 바꿔 생각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답일 것이다. 음악을 공부하는 우리가 ‘과연 클래식 애호가보다 음악을 많이 듣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부끄럽지만). 물론 연주자에게 연습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악기 이전에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많이 듣고, 많이 느낄수록 그 가치가 크고 중요하게 와 닿는 것 같다. 저자의 글에서 목적어를 ‘음악’ 또는 ‘연주’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곡이라도 더 많은 ‘음악’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연주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연주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연주도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들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선율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연주를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연주를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자 음악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세월과 경험이 빚는 음악
저자의 두 번째 답 역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하루키는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이야기한다. 즉, 주변의 사람들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쾌한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로 하여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상력이란 기억이다’라고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말한다. 그 뜻은,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이라고 작가는 풀이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다.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음악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음악에 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작업이 소설을 쓸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민망하지만) 후배 학생들에게 매번 (내가 생각해도 질릴 정도로) 질문하는 것이 있다. “이 부분을 연주하며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원하는 답변이 있는 것도, 정답이 존재한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다짜고짜 “이 부분에서는 활을 이 위치에서 이 정도 써야 해”라는 말보다는 좀 더 와 닿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 활을 그 정도로, 혹은 그 위치에서 써야 하는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의도치 않게 프로그래밍 된 로봇의 연주처럼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 질문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답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워하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혹여나 내가 맞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돌아보기까지 했는데, 저자가 어느 정도 내 편을 들어준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나는 음악을 만들어갈 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여러 시간적, 공간적 요소를 머릿속에서 골라 적용해왔다. 영화의 한 장면, 맑은 하늘 혹은 흐린 하늘 등의 시각적인 데이터는 물론이고, 냄새나 촉감 등 우리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데이터는 모두 음악을 만드는 데에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같이 풍부한 경험을 쌓자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기억에 새기자고.
독자에 따라 이 글이 독후감에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이제 막 연주자 생활을 시작한 ‘신입생’으로서, 연주자 생활을 조금 했다고 바로 그들의 생활에 대해 통달한 듯,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을 쌓은 듯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다. 그렇기에 선배 예술가(소설가)의 이야기를 빌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내가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같이 공부하는 음악인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전한다.

공연 정보
김동현 바이올린 리사이틀 9월 27일 오후 7시 30분 신영체임버홀

에세이 속 책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견해를 담은 책이다. 자신의 글쓰기 현장과 이를 지탱하는 문학과 예술을 향한 본인의 생각을 글로 풀어낸다.

글 김동현
김동현(1999~)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제오르제 에네스쿠 콩쿠르 2위, 레오폴트 아우어 콩쿠르 1위를 수상하며 연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에 오르며 주목받은 그는 현재 뮌헨 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하고 있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버트 맥도널드를 사사하고 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