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COVER STORY _글 정옥희(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자하로바가 한국에 온다. 2005년 볼쇼이 발레의 ‘지젤’…

‘사우스랜드’ 모든 것을 잃더라도 바꿀 수 있다면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볼 수 있는 자이다.  그리고 단점을 보았을 때 자신의 자유나 생명을 걸고서라도 규탄할 수 있어야 한다  -캐서린 던햄, ‘사우스 랜드’ 프롤로그- 취기가 오른 젊은 백인 남녀 렌우드와 줄리가 목련이 흐드러진 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눈다. 줄리의 장난스러운 놀림에 렌우드가 발끈하여 그녀를 흠씬 구타하고는 달아난다. 정신을 잃었던 줄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다. 치욕과 분노, 절망이 교차하던 순간 그녀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아내어 눈을 번뜩인다. 그리고 외친다. “깜둥이(Nigger)!” 무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줄리에게 손을 내밀었던 흑인 노동자 리처드는 백인 폭도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뒤 목련 나무에 목이 매달린다. 코러스가 시체를 수습하여 애도의 행진을 하는 동안 리처드의 연인 루시가 목련 꽃을 들고 나타나 절규하고, 줄리는 시체의 불탄 옷자락을 찢어 전리품으로 챙겨 들고 빠져나간다. 린치 댄스   캐서린 던햄(Katherine Dunham, 1909~2006)의 ‘사우스랜드(Southland, 1951)’ 1막은 남녀의 데이트 폭력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데이트 폭력의 희생자가 다음 순간 인종차별의 가해자로 탈바꿈한다. 젠더와 인종의 위계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백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폭행한 것은 사적인 일로 치부되었으나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폭행한 것은 사회적 갈등으로 탈바꿈한다. 게다가 성폭행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서구사회에서는 흑인 남성의 성적 능력이 우월하다는 우생학적 믿음이 만연했고, 백인 남성은 그들(흑인 남성)이 우리의 소유물(백인 여성)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두려움은 잔혹한 복수를 정당화한다. 린치(lynch)는 백인 여성을 강간한 (혹은 그렇다고 여겨진) 흑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백인 남성의 집단 폭력행위이다. ‘사우스랜드’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빌미로 한 린치의 발생과 결과를 다룬 댄스 드라마다. 1막의 엔딩에서 루시가 바닥을 나뒹굴며 절규하는 동안 코러스 가수가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를 노래한다. 아벨 미어폴(a.k.a. 루이스 앨런)의 시를 바탕으로 빌리 할리데이가 불러 유명해진 곡이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리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가 매달린 채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멋진 남부 풍경에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 그리고 어디선가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 까마귀가 뜯어 먹고 비를 맞고 바람을 빨아들이면 이상하고 슬픈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지네.” 성기가 훼손되고 나무에 매달려 불타버린 린치 희생자의 이미지는 흑인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우드랜드’에서 ‘이상한 열매’ 노래에 맞춰 루시가 애도하는 장면은 펄 프리머스(Pearl Primus)의 동명 무용작품인 ‘이상한 열매’(1943)를 연상케 한다. 프리머스의 작품은 흑인 여성의 짧은 솔로 작품으로 직설적인 제목과는 달리 나무나 시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우스랜드’의 1막은 프리무스의 ‘이상한 열매’에 인과 관계와 내러티브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2막이다. 2막은 1막의 시공간에서 분리되어 어디에나 있음직한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다. 한 무리의 흑인이 춤추고 노래하며 무언가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1막에서 극을 해설했던 코러스가 리처드의 시체를 들고 천천히 입장한다. 군중들은 순간 정지된 화면처럼 얼어붙었다가 서서히 일그러진다.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 바닥에 끊임없이 칼을 던지는 남성, 바닥을 나뒹구는 커플 사이로 눈먼 거지가 홀연히 무언가를 바라본다. 모두가 느끼지만 형언할 수 없던 진실, 직접 겪지 않더라도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차별을 직시하는 것이다. ‘사우스랜드’는 노골적이고 불편한 방식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무대 위의 폭력을 안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액자 틀이 부서지자 린치는 특수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이 점에서 ‘사우스랜드’는 도발적이고 전복적이다. ‘N 단어’를 내뱉는 고통  ‘사우스랜드’의 주인공 커플인 줄리-렌우드, 루시-리처드는 실제 무용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루시는 루실 엘리스가, 리처드는 리카르도 아발로스가 맡았고, 줄리는 던햄무용단의 유일한 백인 단원인 줄리 로빈슨 벨라폰테가, 렌우드는 렌우드 모리스가 붉은 가발과 화장으로 분했다. 작품에서 백인폭도는 무형의 존재로 처리되기에 실제 무대에 등장하는 백인은 줄리-렌우드이고 실제 백인은 줄리 뿐이다. 그런데 줄리가 연기하는 줄리는 인종적 위계를 악용해서 참사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비극의 발단은 성폭행한 렌우드이겠지만 비난의 타겟은 줄리가 된다. 특히 자기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리처드의 불탄 옷자락을 전리품으로 챙겨 든 줄리와 억울하게 연인을 잃은 루시가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1막이 끝나는 던햄의 연출은 젠더보다는 인종 문제를 부각하며 줄리에 대한 비난을 증폭시킨다….

한국 현대무용단 LDP 이탈리아밀라노를 넘다

만남으로 관점의 교차를 경험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현대무용가를 주축으로 한 LDP(Laboratory Dance Project)가 밀라노 엘포 푸치니 극장(Teatro Elfo Puccini)에서 열린 무용축제 ‘밀라놀트레(MILANoLTRE)’에 참가했다. 밀라놀트레는 밀라노(Milano)와 올트레(Oltre)의 합성어로 ‘밀라노를 넘어’라는 의미다. 밀라노의 빛나는 발레 역사에 빗댄다면 ‘스칼라 극장의 고전을 넘어’로 까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현대무용 축제다. 엘포 푸치니 극장에는 공연장 세 개가 있는데, 대극장은 ‘셰익스피어’, 중극장은 ‘파스빈더’, 소극장은 ‘바우쉬’로, 연극·영화·무용의 대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LDP가 선보인 6일간의 데뷔무대  제32회 밀라놀트레는 9월 17일부터 10월 14일까지 진행되었고, LDP는 셰익스피어 홀에서 장장 6일간 공연했다. 9월 27·28일은 ‘룩 룩(Look Look)’과 ‘노 코멘트(No Comment)’, 29·30일에는 ‘바우(Bow)’, 10월 1·2일에는 ‘노 필름(No Film)’과 ‘노 코멘트’가 무대에 올랐다. LDP 레퍼토리는 기교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각 작품의 개성은 뚜렷한 편이다. 밀라노 관객은 서울보다 연령대가 높았고, 작품 감상의 연륜도 깊어 보였다. 특히 로비에서 예술가들을 기다렸다가 감동을 전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동규 작 ‘룩 룩’은 화려한 문양의 의상 덕에 올해 밀라놀트레 포스터 모델로도 빛을 발했다. 의상은 요란하지만 정작 얼굴은 천으로 가린 군무가 객석을 누비며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쳐다보는 해프닝이 익명성의 용기를 강조한다. 요란한 굉음, 규칙적 박자, 손가락을 던지는 리듬감, 반복적인 행진, 상처를 주고받는 이미지 등이 줄곧 ‘보기(look)’를 강조한다. 전 출연진이 중앙에 모여 질주할 때 관객은 그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키고, 땀에 젖은 얼굴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에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안무가의 고민을 나눠 갖는다. 신창호의 ‘노 코멘트’는 전쟁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2002년에 초연하여 가장 많은 초청공연을 기록했다. LDP의 특징을 확정한 작품으로 남성 출연진 10명에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요구하고 그 탁월함을 즐긴다. 군무가 발을 구르고, 물구나무서기로 이동하고, 격렬하게 몸을 치고 흔들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분위기를 누르는 암전과 다시 절정을 향하는 몸짓의 활력이 충돌하는 구도다. 전 출연진이 객석을 활보할 때 관객의 호응도가 절정에 달하며, 이번에도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전미숙의 ‘바우’는 영국·독일·한국·스위스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작을 거쳤다. 이번 축제에서는 67분간 단독 공연했는데, 안무가의 섬세하고 전문적인 재능이 돋보였다. 서양 노인의 모습이 연상되는 가면을 착용한 출연자가 돗자리 앞에서 절을 하고, 잔걸음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소녀가 그와 대무한다. 차를 마시고, 돗자리를 굴려 접거나 펴고,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하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부채를 활짝 펼치며 날고, 걷다가 살짝 뛰어 앉으면 큰절 자세가 만들어진다. 제사·혼례·사교, 심지어는 인생이나 죽음에 대한 상념까지도 불러일으키는 동작의 이미지가 무용 예술의 힘을 느끼게 만든다. 아크람 칸 무용단에서 다년간 활동한 김성훈의 ‘노 필름’은 독재자 이야기다. 무대 색감을 흑백영화처럼 단순화시키고, 히틀러의 육성과 환호하는 민중의 반응을 그대로 들려주며 과거의 한순간에 집중한다. 하지만 안무자는 그 장면이 현실일 수 있다는데 방점을 두었다. 한 남자의 폭력을 강조하고, 군무가 일상복이나 군복으로 등장해 순응과 항거 분위기를 전개 시킨다. 흰 바닥에 검정 물감을 쏟아 그 위에서 고통을 겪는 패배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며 ‘노 필름’으로 명명했다. 드라마와 절도 있는 기교가 균형을 이룬 전개다.   파스빈더에서 펼쳐진 두 개의 이야기 중극장 파스빈더에서는 같은 기간에 두 개의 공연이 있었다. 솔로 ‘나’는 기억이다(‘I’ Is Memory)’를 공연한 루이즈 르카발리에는 아마도 올 축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무용가 중 하나일 것이다. 캐나다 무용단 ‘라라라 휴먼 스텝스’ 영상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그녀가 환갑을 맞이해 등장한 무대는 경이로움과 감동의 대상이었다. 18세에 직업단체에 입단한, 아마존의 여전사를 연상시키던 그녀의 공중 도약은 전무후무한 활력을 과시했었다. 이번 작품은 브누아 라샹브르와 루이즈 르카발리에가 2006년 공동 안무했다. 한 평론가는 “내면의 충동이 뼈·근육·장기·관절 같은 신체 전체를 움직인다. 변형으로 가득한 준명상적인 춤”이라고 묘사했다. 2006년 현대무용단 푸 글로리외(Fou Glorieux)를 창단해 현재까지 깊이 있는 움직임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자 하나와 그 뒤에 놓인 바를 활용한 느리고 집요한 동작 전개는 그녀의 몸이 곧 기억임을, 몸과 함께 생존하는 예술이 곧 무용임을 설명했다. 그녀의 최근 수상 경력이 화려해 놀랐고, 극장을 찾은 캐나다 공무원들의 공개적 축사에 더욱 놀랐다. 또 다른 안무가 안토니오 몬타닐은 카롤린 칼송의 격려로 안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며, 아카데믹한 기교보다는 일상적이고 충동적인 움직임을 구사했다. ‘빔비(Bimb(y)i)’는 인간처럼 변해가는 부엌 로봇을 연상시키는 희극적 작품이고, ‘세도 알루사르미(Cedo all’usarmi)’는 조명과 인체의 접촉과정을 강조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스트라빈스키’

안성수, 정영두, 김재덕과 코리안심포니. 그의 음악에서 춤을 깨운다. 2017년 안성수 예술감독 취임 이후 국립현대무용단은 음악과 함께 진화 중이다. 취임 후 첫 신작인 ‘제전악-장미의 잔상’(2017년 7월)은 창작국악과 함께 했다. 이를 위해 작곡가 라예송은 새로운 국악을 빚었다. 안무가 로렁스 야디와 니꼴라 껑띠용을 초빙하여 만든 ‘슈팅스타’(2017년 11월)에서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월드뮤직 그룹 블랙스트링이 함께 했다. ‘스윙’(2018년 4월)에서는 스웨덴 스윙재즈밴드 젠틀맨 앤 갱스터즈와 함께 했다. 무대에는 무용가와 음악가들이 공존했고, 연주와 안무가 몸을 섞었다. 음악의 뼈대를 올곧이 드러내며, 춤의 살을 붙이는 작업으로 일관해온 안성수의 전력이 무용단의 기획력으로 녹아들어간 것이다. 지난 9월, 라벨의 ‘볼레로’를 놓고 김용걸, 김보람, 김설진이 함께 한 ‘쓰리 볼레로’를 지나 국립현대무용단은 11월에 ‘쓰리 스트라빈스키’를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의 세 곡에 맞춰 세 안무가 함께 하는 형식으로, 안성수는 ‘봄의 제전’, 정영두는 ‘심포니 인 C’, 김재덕은 ‘아곤’를 선보인다. 음악도 정치용 예술감독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 무용과 함께 실연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코리안심포니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존 애덤스의 ‘셰이커 룹스’이라는 동일한 음악을 놓고 이해준과 정수동이 각기 다른 선보였던 ‘오케코레오그래피’ 이후 2년 만이다.   안성수의 첨예, 김재덕의 경쟁, 정영두의 자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그는 바흐나 헨델처럼 자신의 작품을 ‘춤곡’이라 명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를 ‘춤의 작곡가’로 기억한다. 1910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출세작 ‘불새’부터 마지막 발레음악이라 할 수 있는 1957년 초연작 ‘아곤’에 이르기까지, 춤의 음악을 빚던 이 시기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세 배나 많은 음악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라고 한다. 그의 고향도 마린스키 발레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춤의 지기(地氣)를 받고 태어났던 것이다.  안성수는 ‘봄의 제전’을 선보인다. 1913년 5월의 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가득 찬 관객들의 야유와 소동 속에서 태어난 곡이다. 사실 그 소동은 음악에 대한 반응이었다기보다는 발레에 대한 통념을 뒤엎은 니진스키(1890~1950)의 안짱다리 위주의 파격적인 안무가 야기한 관객들의 거부감과 혼란이었다. 그런 결과를 뻔히 내다보고서 공연을 강행한 디아길레프(1872~1929)의 흥행 전략도 녹아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무용음악에는 복잡다단하고 강렬한 리듬이 두드러진다. 5박자, 7박자, 11박자 등 스트라빈스키 이전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은 변박들이다. ‘봄의 제전’에서 해방된 리듬은 온갖 기묘하고 복잡한 형태로 감정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여러 악기로 형성된 육중한 오케스트라는 ‘초대형 타악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소리와 박자를 ‘중첩’한 특징도 도드라진다. 악보에 ‘현자의 행차’라고 적혀 있는 대목의 클라이맥스에선 서로 다른 두 가지 리듬 패턴이 중첩되어, 소리들은 서로 몸을 섞으며 협화음으로, 또 서로 밀어내며 불협화음을 만든다. 안성수는 학창 시절에 ‘봄의 제전’을 처음 접했다. 음악이 준 충격이 커서 찾아보니 유명 안무가의 작품영상이 나왔는데, 그 때에도 “음악이 너무 좋아서 작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안무작에는 ‘봄의 제전’의 음악적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춤과의 결구를 치밀하게 끼워 맞을 예정. 즉, “음악에서 느껴지는 관념에 기대기보단 음악이 춤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김재덕은 ‘아곤’을 맡았다. ‘아곤’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갈등, 대결, 경기 등을 뜻한다. 이 음악은 1957년에 발란신(1904~1983)의 안무로 뉴욕 시티발레단이 초연하였다. 표제의 특징은 음악에 잘 잘 배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오케스트라’이지만, 청각의 초점을 맞춰보면 그냥 ‘여러 악기가 한 자리에서 연주한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악기들의 대비와 갈등이 돋보인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에 맞춰 김재덕도 ‘아곤’적인 질문으로 춤의 재료를 모았다고 한다. “살다보면 두 사람이 만나는 때가 있을 텐데, 이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둘은 항상 같이 가야 할까? 좁은 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들을. 안성수와 김재덕에 비해 ‘심포니 인 C’를 맡은 정영두는 보다 자유롭다. ‘C조 교향곡’ 혹은 ‘심포니 인 C’라 불리는 이 음악은 1940년, 스트라빈스키의 지휘로 시카고에서 초연되었다. 4개의 악장으로 1악장은 드라마틱한 전개, 2악장은 서정적인 명상, 3악장의 활기, 4악장 힘찬 집약과 해결이 돋보인다. 춤의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가 ‘발레음악을 너무 작곡하여 이젠 음악만을 위한 곡을 남겨야지’라는 생각으로 작곡한 작품인 만큼, 음악은 춤과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그 ‘거리’는 정영두에게 상상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간극으로 다가갔다. 그는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빚어낸 춤의 정경을 펼치고, 관객들은 그것을 통해 마음껏 자신만의 정경을 상상하고 즐기게 될 것”이라 한다. 이와 함께 “메시지가 없을 때에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안무작 ‘심포니 인 C’의 특징이다. 국내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힘든 ‘아곤’과 ‘심포니 인 C’을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번 공연만의 특징이다.   스트라빈스키가 주는 춤의 상상력 전설적인 발레리나 플리세츠카야(1925~2015)는 무용가들에게 “무대에서 움직일 때 음악과 함께하라. 음악을 들어라. 음악은 무용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준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 음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분명 그것에 포함될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춤’이 담겨있다기보다는 ‘춤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포니 인 C’처럼 춤을 위해 태어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무가들은 창작품의 중요한 ‘소리부품’으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사용하는 게 아닐까. 박자와 엇박자 사이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리듬감, 협화음과 불협화음 사이에서 돋아나는 묘한 중첩의 레이어. 이 소리의 조각들은, 움직임과 춤 사이, 춤언어와 일상의 몸짓 사이에서 새로움 춤언어를 발견하려는 안무가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기 때문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스트라빈스키’ …

마린스키 발레 & 오케스트라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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