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건용

새로운 오페라 생태계를 위하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그는 오늘도 물음을 던진다. 더 좋은 성악가는 어디에 있을지, 오페라를 한 번도 ‘밥’처럼 먹어보지 못한 관객은 누구일지, 오전 11시의 오페라를 어떻게 전할지. 곧 다가올 창작 오페라의 실크로드를 그리면서, 지금 오페라의 지구본을 돌린다

2013년 4월. 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아이다’

예고는 되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을 기념하는 무대가 곳곳에서 오르고 있다. 4월의 마지막 주. 한 주 동안 세 곳에서 ‘베르디’제 미사일을 발사했다. 국립오페라단은 ‘돈 카를로’를 발사했다. 그 사이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오텔로(콘서트 버전)’를 발사했다. 각각 ‘바이로이트제’ 강병운과 사무엘 윤을 장착한 블록버스터급이었다. 강 건너에는 이건용 단장이 서울시오페라단의 ‘아이다’를 발사한다. 많은 이들은 두 곳의 화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듯 짐작했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떨어진 ‘아이다’호의 위력은 대단했고 4일 동안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멀리 이건용 단장의 흐뭇한 미소와 그 뒤로 지휘를 맡은 정치용이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모습이 보였다.

2014년 3월. 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의 ‘리골레토’

‘오페라 마티네’가 오른 오전 11시. 피아노와 5대의 현악기로 압축된 서곡이 흐른다. 이어 이건용 단장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4분간의 해설은 흥미진진한 장면이 펼쳐질 1막 2장 바로 앞까지 관객을 모셔다 놓는다. “정말, 음산한 장면입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보시겠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 리골레토가 만토바 공작을 죽이기 위해 청부하는 장면이 약 8분간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이건용 단장이 무대 위로 나왔다. 다시 5분 동안의 해설이 이어지고 “‘리골레토’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악하고 추한 사람만은 아닙니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있습니다. 여주인공 질다입니다”라고 끝맺자 질다가 나온다. 사랑해서는 안 될 만토바 공작을 향한 아리아를 부르는 그녀를 보며 관객들이 가슴을 누른다. 100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이건용’이라는 인물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만 한정시킬 수 없는 이다. 그는 음악의 ‘내(內)’와 ‘외(外)’가 묘하게 맞물려 있는 독특한 입방체다. 먼저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진골’이다. 대학 시절인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석기시대’가 당선되었는가 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연출가 문호근과 연극반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는 연필로 쓴 곡과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소설이 놓여 있었다. 오선지와 원고지, 음악과 연극 ‘사이’를 살아낸 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대 교수로 안착한 후에는 국악과 양악, 독주곡부터 오페라를 넘나드는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의 펜은 오선지를 넘어 저서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7)’와 같은 사유의 무늬를 남기는 데도 충실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와 총장직 역임과 정년 퇴임, 그리고 지금의 ‘이건용 단장’이 되었다.

7월 14일 여름. 그에게 ‘오페라’로만 인터뷰를 열고 닫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묻고 싶었다. 단장으로서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가 아닌 얼마나 낮은 곳으로 오페라를 흘려보냈는지 그 깊이와 넓이에 대한 것을.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터뷰 한 시간 전에야 그에게 주어진 ‘2년’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퇴임’ 인터뷰가 될지도 모를 상황. 먼저 ‘연임’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오늘 연임이 확정됐습니다. 원래의 2년에 3년이 더 붙은 거죠. 저로서는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놀 나이이니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사실 놀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듭니다.”

‘2년’이 주어졌던 자에게 약속보다 더 긴 ‘3년’이 주어졌다는 것, 그건 그동안의 성공과 앞으로의 기대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머릿속에 ‘아이다’ ‘오페라 마티네’ ‘세종 카메라타’ 등이 떠올랐다. 그건 서울시오페라단의 산물이자 국내 오페라 생태계를 다양하게 한 대극장과 소극장, 창작 오페라로서의 성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별로 이루어진 게 없다”고 답한다. 잠깐의 침묵, 그는 정말로 없다는 듯 다음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지켜보라는 말을 눈빛으로 하고 있는 듯했다.

공유를 위한 발돋움

한국 ‘최초’의 오페라 무대는 1948년 명동 시공관에 오른 ‘춘희’였다. 이후 한국의 성악가들은 오페라 공연에 끊임없이 열과 정성을 쏟았다. 극장을 비롯한 제반 부대시설, 연출가, 성악가, 관련 스태프 등 오페라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오페라가 무대에 오른 것은 그것이 유럽 예술의 대표적인 장르라는 믿음과 수용자나 사회적 요구라기보다는 성악가 자신들의 요구에 의한 산물로서 발전시킨 데에 있었다. 경제가 발전할 때 오페라도 함께 발전했다. 부유층은 때로 오페라 관람을 경제적 계급의 ‘구별 짓기’나 과시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건용 단장은 오페라를 예술가나 가진 자의 특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나눠야 할 문화로 본다.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유’인 것이다.

그럼 그가 부임한 2012년 7월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공석이던 서울시오페라단에 이건용이 단장으로 취임한다. 패는 곧 갈린다. 한 측에선 그의 이력은 오페라 중심이 아니라고 했다. 반대 측에선 오랜 시간 창작을 일삼아 해온 작곡가로서 단장직을 창조적으로 수행하리라는 기대를 건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이러한 정치적 세속이 아닌 ‘청중’에 집중되어 있었다.

“밥처럼 제공해야 할 오페라와 요리처럼 제공해야 할 오페라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두 가지를 다 차려주는 게 오페라단의 역할이죠. 시민들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 무대를 며칠 내로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매일 밥만 먹나요? 입맛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고급 요리도 필요하죠.”

요리사와 엄마. 새로운 맛을 주기 위한 ‘실험’과 일상의 식탁을 차리는 ‘실용’은 그에게 택일이 아니라 동시에 챙겨야 할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100명 중 90명이 ‘안다’고 합니다. 그중 ‘토지’를 읽어본 사람 손들라고 하면? 2~3명일 겁니다.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알지만 실제로 접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그는 ‘청중 개발’에 안테나를 곧추세운다. 하지만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전 단장의 공석으로 그동안 비어 있던 시간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단장 취임작이라 할 수 있는 ‘3색 모차르트 오페라(3色 MOZART Opera, 2012년 11월 17~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이런 난항이 낳은,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였다. 당시 그는 프로그램북에 지금의 상황과 현실을 정직히 담아낸다.

지난 7월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작 기간만 최소 3개월 걸리는 오페라를 7월에 취임한 단장이 한 편 이상 공연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지원을 받는 예술단체가 매년 세 편씩 제작해오던 오페라를 한 편만 하고 말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모차르트의 작품 세 편을 매일 번갈아 올리는 이번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은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답으로 계획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가 연일 교차하며 한 무대에 올랐다. 자본은 적었고 무대는 작았다. 서울시오페라단의 ‘그랜드’한 무대를 기억해온 예술가와 관계자들은 대책 없는 ‘축소’라 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은 달랐다. ‘간편’ ‘용이’ ‘쉬움’ ‘재미’라는 단어들이 그들의 반응을 대변했다. 객석 점유율 100퍼센트와 유료 점유율 96퍼센트라는 반응은 대형 무대와 넉넉한 예산만이 오페라의 충분조건이라는 고정관념에 “그것들은 필요조건 중 하나”라 답하는 이건용 단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세 공연 모두 매진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이건용 단장의 미소에 2년여 전의 믿음과 확신이 돋아났다.

 

성악강국을 위한 눈과 손

그럼 다시 공연 당시 프로그램북의 첫 장으로 돌아가보자.

세계에서 좋은 성악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좋은 성악가는 좋은 오페라를 만드는 필수조건입니다. 그 점에서 우리나라는 좋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조건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세 편의 작품에 169명의 성악가가 지원했습니다. 학력·경험·기량을 갖춘 이들이었어요. 놀라운 숫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페라단도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오디션을 했습니다. 캐스팅이 안 된 이들은 후에 따로 섭외해 다른 작품에 출연시킬 정도로 좋은 성악가들이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코지 판 투테’ 팀이 참 좋았습니다.”

다른 한편 성악가들에게는 오페라 무대가 꼭 필요합니다. 무대를 위해서 태어나고 무대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성악가입니다. 좋은 오페라 무대는 좋은 성악가를 만들어내는 불가결의 환경입니다.

2013년, 서울시오페라단이 엔진을 풀가동시킨 ‘아이다’의 연습실. 이건용 단장은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팀’ ‘B팀’ ‘C팀’ 대신 차별 없이 ‘25일 팀’ ‘26일 팀’ ‘28일 팀’으로 불러달라 정중히 제안했다. 3명의 소프라노와 테너는 똑같은 아이다와 라다메스로 대접받으며 각자 땀을 부지런히 흘렸다. 이건용 단장은 젊은 피를 수혈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역으로 젊은 성악가들에게 ‘좋은 오페라 무대’를 제공한 셈이다.

“‘아이다’에 젊은 성악가들로 앙상블을 구성했는데 그 팀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라는 그에게 그 팀의 구성원을 거론해달라고 하자 망설인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성악가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하자 그는 5회 공연 중 단 1회를 장식했던 손현희(아이다 역)·이원종(라다메스 역)·김정미(암네리스 역)·최기돈(아모나스로 역)을 꼽는다.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도 한국 성악가의 우수성은 주변에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독일 음대의 교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술피리’ 오디션에서 여성 주역 3명이 다 한국인이었다며 어떻게 교육했는지를 묻더군요. 라 스칼라에서 만난 코치는 한국 성악가들이 빠지면 유럽 오페라 극장들이 타격받는다고 전했고 콩쿠르에 한국인은 못 나오게 했다가 유명무실하게 되니 할 수 없이 무대에 세운다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시절, 이탈리아 현지 유학생들의 활약을 눈여겨 보고 교류를 원하던 학교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악가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엄정한 안목, 즉 참다움을 꿰뚫는 눈과 가혹한 관리의 손을 금강안 혹리수(金剛眼 酷吏手)라 하던가. “캐스팅을 제대로 하면 공연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말하는 이건용 단장은 오선지에 음표를 새겨 넣듯 새로운 성악가를 ‘눈’으로 찾고 ‘손’으로 곧추세우는 것, 그것 또한 기획과 창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건용 단장의 ‘눈’과 ‘손’은 권위가 아닌 낮은 자세를 겸비하고 있다.

베이스 전승현(서울대 교수)과의 일화 하나. 독일에서 카머젱어(궁정가수) 칭호를 받고 활동하던 전승현과 이건용 단장은 안면도 없는 사이였다. 평소 유튜브의 영상으로만 전승현을 접한 이건용 단장은 ‘마탄의 사수’(2014년 5월 21~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은둔 수도자 에레미트 역 출연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이건용 단장은 “특별한 이야기를 쓴 것은 없고 꼭 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말만 담았다지만, 거성(巨聲)을 뿜어내는 거성(巨星)은 이 진실한 자세에 흔들렸던 것이다.

 

오전 11시의 오페라 혁명

이제 대중화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대중적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특정한 예술 수요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즉 유통된다는 뜻이다.

                                       ‘나의 음악을 지켜보는 얼굴들’ 중 ‘문화예술의 대중화-어떻게 가능한가’에서

그는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전에 엄밀한 논리를 펼치던 이론가다.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7)’는 창작자를 ‘논리와 윤리’로 무장시키는 저서였다. 후에 나온 ‘나의 음악을 지켜보는 얼굴들(2005)’은 제목 그대로 그의 음악을 지켜보는 얼굴들, 즉 수용자인 관객과 대중을 향한 책이다. 두 권 사이에 놓인 시간은 ‘창작자’만큼 ‘수용자’를 챙기며, ‘추상’적 사유에서 ‘실용’적 사용으로 자세를 전환하는 시간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수난곡을 위촉해왔다고 치죠. 저는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가 노래하고 지휘하며 누가 들을 것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작곡합니다. 오페라의 청중을 생각하는 지점도 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청중은 내게 자신들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죠. 하지만 제가 위촉자를 위해 작곡하는 것이나 그들의 입맛을 고려해 오페라를 제공하는 것이나 같은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옆에 있는 사람부터 생각하자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을 ‘오페라 마티네’에 꼼꼼히 반영했다. 그리고 관객이 먹어야 할 영양소 같은 고전들을 골라 오전 11시에 올렸다. 2013년 8월 첫 공연인 ‘마술피리’의 대성공 이후 매월 두 번째 화요일마다 선보인 ‘라 트라비아타’ ‘코지 판 투테’ ‘돈 조반니’와 창작 오페라 ‘왕자와 크리스마스’의 관객석은 늘 가득 찼다. 2014년 매월 세 번째 화요일마다 선보인 ‘박쥐’ ‘아이다’ ‘리골레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마탄의 사수’ ‘카르멘’도 마찬가지였다. 실연으로 접하려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명품 오페라를 일상 속 문화의 밥으로 순치시킨 것이었다. 그럼 잠시 ‘오페라 마티네’를 둘러싼 소문을 짚고 넘어가 보자.

소문 ① ‘오페라 마티네’는 표 구하기 힘들다? “매회 관람하는 고정 관객이 많아 일찍 매진됩니다. 충성도가 높은 관객들이죠. 한 사람이 여러 장을 구매해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도 매진의 한 원인입니다.”

소문 ② ‘오페라 마티네’는 주부들의 천국이다? “처음에는 주부들이 많이 왔습니다. 모임 약속을 아예 ‘오페라 마티네’로 잡아서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하고 고궁에 놀러 가는 이도 있더군요. 요즘에는 남성 관객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소문 ③ 이건용 단장은 객석에 누가 왔는지 알고 있다? “해설을 위해 무대에 오르면 어떤 이들이 객석에 앉아 있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소문 ④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연주회장에 있다? ‘오페라 마티네’는 단출하고 배우들도 가볍게 팍팍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443석의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극장이 벤치마킹하려 해도 음향 좋고 성악가의 동선을 고려한 적당한 공간이 아니면 힘들 겁니다.”

소문 ⑤ ‘오후 2시의 오페라’설? “점점 관객이 많아지는 걸 보며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 딱 200석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작품을 양일간 하자’ ‘오전 11시 공연 후 오후 2시에 한 번 더 하자’는 주위의 권유가 있는데, 일단 금년 말까지는 지금의 형식을 유지한 뒤 생각해보려 합니다.”

소문 ⑥ ‘오페라 마티네’는 20세기 오페라도 가능하다? “베르크의 ‘룰루’요? 아니면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이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티네를 하려면 오케스트라를 작은 앙상블로 압축해야 합니다. 그 부분에서 현대음악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소문 ⑦ ‘오페라 마티네’는 ‘포장 이사’가 가능하다? “어떤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협찬을 하면 공연을 통째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무대가 간단하여 이동도 쉽습니다.”

 

‘우리의 오페라’를 꿈꿔야 한다

한편 ‘오페라 마티네’를 짓던 주방에서 ‘세종 카메라타’를 준비하는 주방으로 가면 이건용 단장은 오페라 창작의 전위와 실험을 모색하는 요리사가 된다. 카메라타란 16세기 말에 고대 그리스극의 부흥을 위해 피렌체의 바르디가(家)에 모인 작곡가·시인·학자·예술 애호가들의 그룹명이다. 이건용 단장을 주축으로 극작가 배삼식·고연옥·박춘근·고재귀와 작곡가 임준희·신동일·최우정·황호준이 2013년 1월부터 함께 모여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창작 오페라에서 중요한 말(대사)과 음악의 어우러짐을 연구하고 논했다.

이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창작 오페라에 대한 그만의 여러 이유가 원동력이 되었다. “서울과 같은 도시에 자국의 오페라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는 당위, “왜 남의 오페라만 해야 하는가”와 “그럼 우리는 어떤 오페라를 해야 하는가”라는 성찰과 물음, “이제 서양의 오페라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오페라로 대답하기를 요구한다”는 문화적 강요, “한국어는 노래를 만들기에 정말 좋은 언어”라는 모국어에 대한 믿음 등이다. 그리고 합창 오페라 ‘솔로몬과 술람미(1986)’와 오페라 ‘봄봄(2000)’ ‘동승(2004)’ 등을 작곡했던 그의 경험도 한몫했다.

성악곡을 쓰려는 제자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이해할수록 좋은 곡을 쓸 수 있다.” 작곡가가 말을 아는 것이 힘들 듯 극작가가 음악을 아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서로 배워야 좋은 작업이 나옵니다. 그래서 작곡가와 극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같이 대화하고 충돌하고 작업하면서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 프로그램북 중
 

‘세종 카메라타 오페라 리딩공연’(2013년 11월 20~2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은 세종 카메라타가 낳은 산물이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최우정·고연옥)’ ‘당신 이야기(황호준·고재귀)’ ‘로미오 대 줄리엣(신동일·박춘근)’ ‘바리(임준희·배삼식)’ 총 네 작품을 리딩 형식으로 선보였다. 그중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올해 11월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건용 단장은 기존의 창작 오페라의 발전이 막대한 자본 투하에 있다는 경직된 믿음보다는 악보에 잉크가 마른 뒤에야 접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창작의 길목에서 미리 접하며, 우회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 제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작곡가·극작가 중심의 세종 카메라타를 두고 작곡된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함께 고민할 성악가가 함께 하는 것과 무대적 상상력의 구현에 도움을 주는 연출가와 함께하는 방향으로 재설계 중이다.

무엇보다 이건용 단장이 세종 카메라타를 통해 얻은 것은 성악가들이 창작 오페라를 대하는 태도다.

“창작 오페라에 늘 준비되어 있는 성악가들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공주 역만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모든 성악가가 열심히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중 어떤 이는 자신이 맡은 역이 정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성공한 거 아닌가요?”

끝으로 필자는 이건용 단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사실 서울시오페라단이 지난 5월에 그랜드 프로덕션으로 선보인 베버의 ‘마탄의 사수’는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예측 불가의 무대였다. ‘아이다’와 같이 대중의 구미와 들어맞는 레퍼토리도 아니었고, 작품의 절반을 차지하는 연극의 장면들은 그간 구축해온 서울시오페라단 단골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탄의 사수’는 독일에서 ‘국민 오페라’로 불립니다. 그 전에도 독일어로 된 모차르트의 징슈필이 있었죠. 하지만 진정한 독일의 이야기와 정서를 가지고 독일식으로 만든 것은 ‘마탄의 사수’입니다. 지금 우리도 그 질문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에게 걸맞은 오페라가 있는지. 오래전 독일인들은 그들의 자국어로는 오페라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도 그와 비슷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건용 단장에게 ‘마탄의 사수’는 모험도 실험도 아닌 모국어 오페라에 대한 반성과 간절한 희망을 투영한 무대였던 것이다.

“앞으로 대극장 오페라·소극장 오페라·창작 오페라, 셋 다 잘해야 합니다. 여기에 중극장 오페라를 하나 더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이건용 단장은 내년에 609석의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올릴 한·일 오페라 교류를 구상하고 있다. 서울시오페라단에서는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일본에 건네고, 이에 준하는 일본 창작 오페라를 공수해오는 것이다. 그 외에 ‘어린이 오페라’와 몬테베르디 같은 ‘바로크 오페라’에도 관심을 가지며 오페라 무대의 세분화와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뉴욕이나 로마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걸 우리만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걸 깨우는 게 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심규태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마티네’ 시리즈는 매월 세 번째 화요일에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만날 수 있다.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8월 19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9월 16일),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10월 21일), 푸치니 ‘라 보엠’(11월 18일)을 선보인다. 작년에 리딩 공연으로 선보였던 창작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작곡 최우정·대본 고연옥)은 올해 수정과 보완을 거쳐 더욱더 세련된 옷을 입고 관객을 찾아간다. 이 작품은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세종문회화회관 M씨어터에서, 12월 16일 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오페라 마티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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