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무용수 김기민
비상의 끝에서 시작되는 춤

마린스키 발레 ‘해적’(2022) ©Alexander Neff
전통의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가 야성의 20세기 발레, 베자르와 만난다 마린스키 발레의 무대에서 날아오른 그가, 베자르의 세계에 잠시 착륙했다. 김기민의 도움닫기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긴 탐구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최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춤을 몸에 새기고, 새로운 전설의 명단에 오를 또 한 번의 시작을 앞둔 그를 만났다
총괄 허서현 기자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INTERVIEW
# PROLOGUE

(c)YOON6PHOTO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금… 오후 3시쯤이네요.”
러시아에 있는 김기민과는 화상으로 만났다. 한낮에 시작한 인터뷰는 그의 얼굴에 강렬한 노을이 비칠 때까지 이어졌다. 2011년에 입단한 마린스키 발레에서 수석무용수로 승급된 지 11년 차. 유독 수명이 길지 않은 무용수로서의 시간에 빗대어 본다면, 그에게도 축적된 세월이 조금씩 기울며 무게를 더하고 있다.
“제가 요즘, 말을 잘 못하더라고요.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과 달리 여러 생각이 들다 보니 이 얘기도 하고, 저 얘기도 하고…. 그래도 읽는 분들이 ‘아, 김기민이 요즘 이런 시기를 겪고 있구나’ 하고 느끼시겠죠?”
인터뷰는 오는 4월, 베자르 발레 로잔이 25년 만에 갖게 된 서울 공연을 앞두고 성사됐다. 베자르 발레 로잔은 1987년 스위스 로잔에서 모리스 베자르(1927~2007)가 창단한 무용단이다. 이 무용단의 전신은 1960년 브뤼셀에서 창단된 20세기 발레단(Ballet du XXe Siècle)으로, 창단 직후 ‘볼레로’(1961), ‘불새’(1970) 등의 대표작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번 내한 공연 중 김기민은 베자르 발레 로잔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발레의 상징과 같은 작품인 ‘볼레로’의 주역무용수로 이틀간 무대에 오르게 됐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연신 “답변이 이상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마린스키 발레를 둘러싼 변화나 최근 입단하며 화제가 된 신출내기 후배 전민철에 관한 질문은 채 건네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본인이 출연하는 공연일이 이미 매진된 것에 대한 축하에도 “관심에 무척 감사하지만, 동시에 모리스 베자르라는 무용수가 남겨둔 유산을 누리는 것인데 지나치게 나라는 존재만 주목받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한 마음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혹독한 시베리아의 바람을 정통으로 견딘 그의 뚝심은 감출 수 없었다.“분명한 건 김기민의 무대는 앞으로가 더 재밌을 겁니다.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문장이지만, 사실이에요. 예전 무대가 더 좋다는 건 김기민의 성장이 멈췄다는 말이잖아요. 저는 언제나 120%의 노력을 하고, 그것이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커리어의 시작은 늘 지금부터죠.”출연을 앞둔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에 대한 경험담에서 시작해 춤의 해석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미래에 관한 질문에 남긴 “한국 발레를 위한 일을 할 것은 확실하다”라는 든든한 답변까지. 이 인터뷰는 러시아 발레의 정점에서 날아오른 ‘플라잉 킴’ 김기민이 얼마나 넓은 세상에 닿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러시아의 춤, 베자르의 비밀을 만나다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해도 결국 본질에 다다르면 하나로 모인다고 했던가. 마린스키 발레에서의 15년, 작품을 마디마디 나눠 “뜯어보듯” 연구해 온 김기민에게 베자르 발레 로잔과의 작업은 도리어 흥미로웠다. 마치 동작마다 숨겨진 비밀의 열쇠를 찾는 기분이었다고.
“물도 마시지 않고 세 시간을 연달아 연습했는데 재밌어서 쉬고 싶지도 않았어요. 동작 하나 넘어가지 않고 ‘스탑(Stop)’. 그 다음 동작에서 또 ‘스탑’. 그런데 동작을 끊어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제가 원래 좋아하는 방식이거든요. 저는 이걸 ‘작품을 뜯는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러니 그 ‘스탑’이 제겐 행복이었죠.”
그간 마린스키 발레에서의 메소드와 충돌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충돌이라고 할 부분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잘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어요.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뿐 본질적으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같기도 하고요. 한 장르 내에서 춤을 잘 공부하면,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되죠.
베자르 발레 로잔에서 무용수로 오래 활동했던 예술감독 줄리앙 파브로와 리허설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작업 방식은 지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었어요. 하나 예를 들자면 팔 전체를 내릴 때 팔꿈치를 일부러 접지 말고 손가락이 떨어지니까 팔꿈치가 어쩔 수 없이 접히게 움직이라는 식의 그들만의 언어였죠. 처음엔 ‘굳이 그게 중요한가?’싶지만, 그렇게 움직여야만 그 동작의 맛이 나더라고요.
‘볼레로’에서는 ‘선율(라 멜로디)’이라는 주역으로 분합니다. 줄거리나 구체적 역할이 묘사된 클래식 발레와는 다른 형태의 작품인데,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볼레로’의 공연 이미지가 조금 어두워 보여서 그렇지, 막상 관람하는 관객으로서는 난해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무용수는 다르죠. 정말 힘든 작품인데… 비유하자면 영어 단어에서 ‘take’ 같아요. 외우긴 쉽지만, 용법에 따라 의미가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제대로 익히기 어려운 단어잖아요. 실제로 동작도 많이 반복돼요. 리허설 때 이 역할을 30년 넘게 공연해 온 무용수 엘리자베스 로스도 함께 했는데, 작품의 어려움을 호소했더니 30년 넘게 춰도 실수를 한다고 웃으며 위로해 주더라고요.
야성의 전설을 꿈꾸다

마린스키 발레 _잠자는 숲속의 미녀 (2025) (c) Mikhail Vilchuk
사실 모리스 베자르의 대표작 ‘볼레로’는 시대를 풍미할 남성 무용수가 거쳐 가야만 하는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초연은 발레리나 두샨카 시프니오스가 맡았으나, 오늘날 ‘볼레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용수가 호르헤 돈(1947~1992)이기 때문이다. 베자르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그는, 완벽한 테크닉과 야성적인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무용작은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1)에도 등장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누레예프를 연상케 하는 극 중 무용수 세르게이로 분해 춤을 추는 이도 호르헤 돈이다. 사실상 기존의 클래식 발레에서 주목받을 기회가 적었던 남성 무용수들의 신체와 움직임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볼레로’가 당대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다. 김기민과 ‘볼레로’의 만남 또한, 훗날 기억될 전설의 기록이 될 수 있을까?
처음 ‘볼레로’를 접한 것이 호르헤 돈의 영상이었다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호르헤 돈이 가진 동물적인 느낌의 움직임을 아주 좋아해 제 춤에 적용해 보기도 하고요. 베자르와 호르헤 돈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최근엔 이렇게 안무가와 무용수의 협업이 돋보이는 방식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안무가와 무용수의 관계가 있나요?
작품을 볼 때 ‘저 무용수가 잘하네’ 혹은 ‘안무가 좋네’라고 분리돼서 느껴지기보다, 전체가 조화로운 무대를 바라는 것 같아요. 베자르가 활동하던 골든 에이지 시절의 안무가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요.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볼쇼이 극장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만들 수 있었던 건, 무용수 바실리예프, 미술가 비르살라제, 음악가 하차투리안과의 만남 덕분이었죠.
베자르의 호르헤 돈처럼, 누군가의 뮤즈가 돼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나요?
하죠. 그런데 이미 불가능해서 좀 바보 같은 상상인데… 롤랑 프티(1924~2011)나 베자르의 뮤즈가 되면 어떨지 생각해요. 사실 모든 작품을 그렇게 접근하긴 합니다. 이 작품의 기초가 무엇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한달까요. 물론 작품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죠. 무용수 중에서도 예전 작품에 자기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품의 시초를 파고들어 그걸 다시 끄집어내려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는 후자에 해당하는 무용수고요.
베자르 시절의 20세기를 황금시대라고 느낀다면, 20세기와 21세기의 발레 경향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다른 것 같아요. 최근의 발레 작품은 열린 해석이 많아요. 안무를 보여주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객에게 맡기는 거죠. 그 경향에 비춰보면 내가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을 보여주는 안무가 관객에게 촌스럽다고 느껴질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고요. 무엇이 정답인지 확신은 없지만, 너무 어려운 예술이 되지는 않길 바라요. 우리만의 예술을 하는 건 아닐까, 이기적인 방식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죠.
‘볼레로’에 김기민만의 어떤 해석이 담길지 더 궁금해지네요.
제가 말하는 게 혹 관객들에게 고정관념이 될까 봐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요. 왜냐하면 저도 매일이 다르거든요. 아마 이번에 공연하는 이틀 내에서도 다를 거예요. 다만 ‘볼레로’의 음악은 하나하나 악기가 쌓이면서 진행되잖아요. 거기에 하나씩 이야기를 많이 붙였어요. 악기 하나가 사람일 수도, 자연일 수도, 손에 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형체일 수도 있겠죠.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동작에 의미를 담는 걸 잘하는 재주는 좀 있거든요.(웃음) 저만의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 _라 바야데르 (2023) (c) Natasha Razina
마린스키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2011년, 김기민의 마린스키 발레 입단은 화제였다. 예원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며 순수 국내에서만 교육받던 그가 이 보수적인 발레단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우리 무용수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지금에 빗대어도 흔한 일이 아니다.
마린스키 발레의 기원은 1738년 제정 러시아 시절 시작된 발레 학교(지금의 바가노바 아카데미)다. 왕실의 발레 학교에서 성장한 무용수들은 황실 발레단이 되었다. 발레단의 순혈주의가 유지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바가노바 아카데미의 춤 메소드를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긴 무용수들로, 자연스럽게 마린스키 발레의 자리는 채워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초빙 교수로 와있던 마린스키 발레의 전 솔리스트 블라디미르 킴과 마르가리타 쿨릭은 김기민의 러시아 진출에 중요한 스승이자 길잡이 역할을 했다.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기민이 두 사람을 ‘마마, 파파’라고 칭하는 장면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입단 4년 만에 김기민은 동양인 최초의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곧 그는 마린스키 발레에서 탄생한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의 얼굴이자, 남다른 체공 시간을 자랑하는 ‘플라잉 킴’이 됐다. 2015년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초청으로 선보인 나탈리아 마카로바 버전의 ‘라 바야데르’로 “김기민은 마린스키 발레의 새로운 별이다. 그의 점프는 경이롭고, 턴은 절묘하며, 움직임은 우아하다”(뉴욕타임스)는 호평을 받았고, 2016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초청돼 선보인 누레예프 버전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으로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자 무용수상을 받았다. 강수진(1999), 김주원(2006)에 이은 수상이었고, 남성 무용수로서는 국내 최초였다. 2019년과 2021년에는 그의 단독 리사이틀까지 열렸다. 수석무용수 중에서도 모두가 갖는 기회는 아닌 만큼, 15년간 러시아에서 그가 쌓아온 치열한 세월에 대한 증명과도 같아 보였다.
현지의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건, 무용수로서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일 것 같아요.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무용수 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수석무용수로 누리고 있는 여러 특권이 있죠. 가끔 후배들에게 “나는 내 맞춤 슈즈가 제작되니까 주문하는 대로 이름 쓰여 있는 발레 슈즈를 신어”라고 하면 그런 걸 보고 “와, 진짜 부럽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정말 보람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제가 한 작품을 다시 볼 때예요.
공연했던 영상을 다시 보기도 하나요?
가끔 우연히 제 영상이 떠서 보게 되면 마치 일기처럼 그 작품을 준비했던 순간들이 다 기억나요. 어떤 파트너랑, 무슨 동작을 위해서, 이런 노력을 했었지 하면서요. 직업병이라 춤에선 고쳐야 하는 점들이 잔뜩 보이지만, 그 순간의 제가 부끄러운 적은 없어요. 저는 그 어떤 공연도 대충 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작품을 뜯고, 뜯고, 뜯은 것에서 더 뜯고…. 모든 작품에 빠짐없이 최선을 다한 덕분에 실망스럽진 않더라고요. 뿌듯해요. 유명한 무대에 섰다는 기록보다, 어떤 무대를 봐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는 게 제겐 가장 자랑할 만한 커리어인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발레단을 이끈 유리 파테예프 시절을 지나, 2024년부터는 안드리안 파데예프(1977~)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변화를 실감하는지요.
변화는 받아들여야죠. 작품이든 자리든, 그리고 무용수에게도 수명이라는 게 있고 변화는 언제나 있는 것이니까요. 유리 파테예프 단장님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마린스키 발레 입단을 못 했을 거예요. 좋은 작품도 많이 경험할 수 있었고요. 무용수의 경력에 발레단장은 정말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감사하게도, 저는 두 단장님 모두 잘 만난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발레단의 스타일과 잘 맞아야 하는데, 두 분 모두 마린스키 발레 무용수 출신으로 ‘만약 누군가 우리 발레단을 지휘해야 하면 꼭 해야 할 사람’ 중에 꼽히는 분들이죠.
이번 베자르 발레 로잔과의 협업처럼 외부 활동을 위해선 발레단의 배려가 필요할 텐데요.
사실 외부에서의 제안은 많이 와요. 저는 단장님께 언제나 마린스키 발레에서의 공연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리죠. 공연 수보다는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기에 발레단에서도 편안하게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체력은 타고난 편이라 공연은 더 할 수도 있거든요. 갈라 공연보다는 전막 발레를 선호하는 편이고, 그 나라에서 보여주지 않은 작품 위주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작품 욕심이 좀 많은 편이라서요.
이제 마린스키 발레에서 김기민의 스테디셀러는 뭔가요?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돈키호테’의 바실리오?
한 가지를 꼽기 정말 어렵네요. 관객에 따라서 어떤 분은 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좋아하시고, ‘해적’의 김기민을, ‘사랑의 전설’의 김기민을 제일 좋아하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여러 번 공연한 작품들은 이제 어떤 순서로 준비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하는 어떤 작품이든, 이전보다 더 성장해 있는 김기민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김기민’인 건가요?
며칠 전에 키를 쟀는데, 진짜로 0.3cm 커졌더라니까요.(웃음) ‘됐다. 지금부터 다시 커리어 시작이다’라고 할 만하죠?
한국 발레의 다음을 함께 꿈꾸며
지난 2월, 국립발레단을 12년간 이끈 강수진이 오랜 단장 생활을 마무리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 시절, 울퉁불퉁한 발 사진 한 장으로 대중에게까지 회자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의 존재는 발레계에 오래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해외 유수의 발레단에서 강수진과 같이 구슬땀을 흘리는 무용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 나아가 단체의 최전선에서 ‘수석’의 이름으로 세계를 몸에 흡수한 이들의 존재감을 떠올리면, 우리 발레계의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이 움튼다.
‘넥스트 김기민’을 꿈꾸는 한국의 어린 무용수들이 꾸준히 탄생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발레 교육의 성과가 훌륭하지만, 최근 몇몇 우려되는 점들이 콩쿠르에서 보였어요. 한국 무용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버릇이 보인달까요. 처음에는 잘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만의 표현이 필요한 부분을 모두가 똑같이 추는 걸 보며 확실히 문제라고 느꼈어요. 콩쿠르에서의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물론 저는 외부의 시선이지만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이야기이길 바라요.

(c)YOON6PHOTO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춤 외적인 부분의 시야가 넓어진 점도 있나요?
원래 저는 주장이 강한 편이라, 여러 발레단을 보며 저만의 고민을 깊게 해온 것 같아요. 좋은 무용수는 많지만 잘 활용되지 않는 단체도 있고, 무용수들의 실력에 비해 발레단의 성과가 좋은 곳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고요. 사실 지금으로선 단체의 장이 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아요.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열심히 한 건, 발레계 전체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 같아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발레뿐 아니라 오늘날 예술이 변질되어 간다고도 느껴요. 예술의 위기 앞에, 어떻게 하면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발레, 1960~80년대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심장을 울리는 춤이 있었던 것 같아요. AI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의 발레단 운영 방식이나 작품 선택의 경향이 이러한 필요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 이후의 김기민의 삶에 대해서 체감하기도 하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기도 하는지 궁금하네요. 이를테면 ‘플라잉 킴’ 댄스 컴퍼니 창단이라든지?
그 무용단은 계속 다 날아다녀야 하려나요.(웃음) 아직 제 이름을 걸고 단체를 만들 수준의 무용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작품을 한국에서 선보이면 좋겠다!’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자주 보여드리고 싶은데, 아쉬운 점은 그간 한국 관객들에게 제 클래식 작품 공연조차도 아직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거예요. 아마 기존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것 두 가지를 모두 다 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한국 발레를 위해서 일할 것은 확실해요. 그 일이 꼭 한국 안에서 이뤄지지만은 않겠지만요. 우선은 재밌는 발레 작품들을 한국에 많이 선보이는 일에 힘써볼 예정입니다!
글 허서현 기자
Performance information
베자르 발레 로잔 내한 공연
4월 23·25일 GS아트센터 ‘햄릿’ ‘불새’ ‘볼레로’(김기민 출연)
4월 24·26일 GS아트센터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 ‘불새’ ‘볼레로’
김기민(1992~)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 이원국·김선희·블라디미르 킴·마르가리타 쿨릭을 사사했다.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 국내 최연소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2011년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 이듬해 퍼스트 솔리스트로 승급했으며 2015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대상(2012),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자 무용수상(2016) 등을 받았다.
COLUMN
베자르의 예술혼을 잇는 발레단
베자르 발레 로잔
김기민과 함께 오는 20세기 야성의 발레단이 궁금하다

‘볼레로’(c) Admill Kuyler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 이하 BBL)은 1987년 창단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유명한 창작 단체로서 명성을 확립했다. 그 이유는 단체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베자르, 다시 말해 모리스 베자르는 20세기 후반에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스펙터클, 클래식 음악에서 팝까지의 영역 넘나들기, 도발적인 관능성, 공공연한 남성 무용수 부각, 대규모 일반 관객 동원 등으로 큰 화제를 일으키면서 ‘20세기 발레 혁명가’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1927년 새해 첫날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베자르는 어려서부터 문학과 연극에 미쳐 있다시피 했으며 14세에 건강을 위해 발레를 배우면서 평생에 걸친 춤 인생을 시작하였다. 성인이 되고 무용수보다 안무가로서 역할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기존의 통념을 따르기보다 자기만의 상상력과 개성을 표현하는, 혁신적이고 감각적인 안무로 평단의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끌어냈다. 1959년 벨기에 라 모네 극장에서 위촉받아 만든 ‘봄의 제전’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했다. “사슴의 발정처럼 촉발되었다”라는 말이 대변해 주듯이, 남녀 무용수가 마치 벌거벗은 듯 살색 타이츠를 입고 등장하여 적나라한 성적 본능을 표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에 대한 엇갈린 찬사와 비난은, 이듬해 파리 세계연극제에 초청되어 안무 부문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일단락되었다. 이후 ‘볼레로’(1961) ‘로미오와 줄리엣’(1966) ‘불새’(1970) ‘니진스키, 신의 광대’(1971) ‘우리들의 파우스트’(1975) ‘상상 속의 몰리에르’(1976) ‘1789년 그리고 우리들’(1989) ‘삶을 위한 발레’(1997)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베자르는 20세기에 도발적인 안무가 중 하나였으며, 그처럼 확연하게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낸 안무가도 드물었다. 그의 예술적 특징이라면 우선, 시대의 현실적인 주제를 과감하게 작품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발레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철학적 논제나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지향했는데, 이를테면 ‘불새’는 정치적인 선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혁명적 행위로 타버린 재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를 그려냈다. 기존의 발레가 전설·동화·소설 등에 근거하여 예쁘기만 한 춤을 춘 것과는 분명 차별화되었다. 베자르의 작품에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이 열광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한, 무대 위에 은근한 성적 암시가 아닌 관능적인 성적 도발을 펼친다. 그를 세계적인 안무가의 반열로 끌어올린 ‘봄의 제전’ 역시 초연 때 선정성에 있어 대대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그밖에 여러 작품에서도 성 충동이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시각적인 관능성을 강조하는 기재로 몸에 제2의 피부처럼 딱 붙는 레오타드 의상을 선호했다.
시간이 갈수록 남성 중심적인 안무도 짙어졌는데, 여기에는 베자르의 성적 기호가 반영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베자르는 “원시시대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춤을 더 많이 췄다는 점을 상기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남성 무용수 중심의 안무 스타일은 힘 있고 역동적인 장면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무용에 음악과 연극, 의상·장치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방식은 베자르 안무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고전발레에 근거를 두면서 현대무용, 민속무용과 사교댄스, 동양무용, 그리고 대중 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동작을 접목함으로써 발레의 움직임을 대폭 확장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융합시켰으며 의상이나 장치에서도 정형미와 고정관념을 깨뜨리곤 했다.
20세기의 혁신, 오늘의 유산이 되다

‘불새’ (c) Admill Kuyler
현재 BBL을 이끄는 줄리앙 파브로(1977~)는 베자르 생전인 1995년부터 단체에 몸을 담으며 주요 레퍼토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맡아왔고, 2024년부터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베자르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안무의 지평을 열겠다는 단체의 목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번 BBL 내한 공연은 베자르 사후 20년 가까이 된 시점에서 그의 예술 유산을 얼마만큼 잘 이어오고 있는지, 더 나아가 새로운 창작을 통해 동시대 감각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역사적인 명작 ‘볼레로’는 기본 선율이 반복되면서 발전과 변화, 그리고 회귀를 거듭해 가는 라벨의 동명의 곡에 맞춰 진행된다. 1961년 초연 당시에는 여성 무용수에 의해 추어졌다가 1970년대 후반 호르헤 돈이라는 불세출의 남성 무용수에 의해 새롭게 재현됨으로써 지금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올라섰다. 무대 중심의 주역 무용수는 ‘선율’을, 그 주위를 둘러싼 남성 군무는 ‘리듬’을 구현한다. 단순하게 반복되며 고조되는 리듬에 맞춰 움직임은 점차 강렬해지고, 축적된 에너지는 마침내 절정의 순간 폭발한다. 이 점층적 상승의 구조는 억눌린 감정이 해방되는 과정처럼 관객의 감각을 끝까지 끌어올리며, 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로 완성한다.

줄리앙 파브로(c) Anoush Abrar
‘불새’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바탕으로, 자신을 불태워 다시 태어나는 존재이자 혁명과 재탄생의 상징을 추상적인 춤의 언어로 구현한다. 여기서 ‘불새’는 불 속에서 사라지고,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존재다. 생명과 기쁨의 새이며, 혁명과 재탄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흐 음악을 사용한 ‘라 루나’는 1984년 전설적인 여성 무용수 루차나 사비냐노(1943~)를 위해 안무된 솔로 작품이다. 다음 세대의 세계적인 발레리나 실비 길렘에 의해 국제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각 세대를 대표할 만한 여성 무용수에 의해 추어지는 만큼 이번 내한에서 BBL의 솔렌 뷔렐도 기대해 볼 만하다.
베자르가 2007년 작고한 이래로 BBL의 운명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베자르의 예술적 유산을 잘 잇고 동시대 감각을 반영한 신작들을 보충해 가면서 현재에까지 역량을 유지하고 있다. 절대적인 안무가 사후에 살아남은 무용단의 모범 사례로 거론될 수 있으리라 본다.
4월 공연에서 아시아 초연작이 공연된다. 요스트 브라우엔라에츠가 안무의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2022)는 조니 캐시의 음악을 통해 존재의 여운을 시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며, 발렌티나 투르쿠 안무의 ‘햄릿’(2024)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동시대 안무가들의 작품인 까닭에 두 작품에 더 매료될 관객도 있으리라 본다.
2011년 대전 공연 이후 15년 만에 그리고 서울 공연으로는 25년 만에 내한하는 BBL 공연은 4월 23~26일까지 펼쳐진다. 모리스 베자르의 작품은 정교함이 부족하고 버라이어티쇼처럼 통속적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동시에 20세기 발레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여러 혁신을 단행했으며, 발레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얻을 가능성을 실현하였다. ‘20세기 발레 혁명가’의 예술적 유산을 21세기의 시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점에서 BBL 내한 공연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글 심정민(무용평론가) 사진 BB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