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젊은 음악가 18인의 교단 진입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8일 7:32 오전

COVER STORY

K클래식 파워, ‘교육’으로 이어간다

젊은 음악가 18인의 교단 진입기

©박진호

 

 

 

 

 

 

 

 

 

 

 

 

연주자로서 치열한 시간을 지나온 음악가들이 이제 국내 대학 강단에서 또 다른 역할을 시작하고 있다. 스승의 달을 맞아, 본지는 이 변화의 최전선에 선 젊은 교수 18인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총괄 유내리 기자 사진 박진호

* 김다솔·이지혜·김영욱은 연주 일정으로 촬영에는 함께하지 못했으나, 별도의 인터뷰로 참여했다.


COLUMN

국내 음악 강단에 세대 교체 바람이 분다

스타 음악가들의 임용 소식은 해외 음악계에서 ‘K클래식’의 ‘K’ 마크를 빛냈던 이들의 귀환이자, 그들의 노하우가 국내 음악 교육의 비료가 되는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계기로 국내 음악교육계와 강단의 성향도 점차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교육의 변화에서 시작한 K클래식 붐

K클래식의 저력을 낳은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국내 음악교육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3년 국립예술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다. 이강숙(1936~2020) 초대 총장의 첫번째 조건은 ‘좋은 스승 모시기’였다. 당시 학교 설립 전이던 1980년대는 음악교육 체질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월간 ‘객석’ 1984년 9월호는 ‘음악원 탄생은 필요한가?’라는 대특집을 게재했는데, ‘음악원’은 기존의 음악대학과 체질이 완전히 다른 전문화된 음악교육기관이었다.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1990년에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립예술학교 설립계획을 공표했다. 문학평론가 출신의 이어령(1934~2022)이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1990~1991)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대통령령 제13528호)이 제정되었고, 뒤를 이은 이수정 장관(1991~1993)이 이 영(令)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이강숙은 이를 위한 자문위원 중 한 명이었다. 교육적 청사진 그리기와 교수진 추천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이강숙은 이내 곧 장관의 눈에 들었고, 학교 설립이 추진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진이었다. 2016년 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뛰어난 교수진’이 곧 ‘뛰어난 커리큘럼’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은 어떤 문화권에 있느냐에 따라 ‘저절로’ 배우는 것과 ‘억지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절로 배우는 것은 억지로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고 그 효과도 크죠. 그래서 그 학교의 ‘히든 커리큘럼’이 무엇이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예종의 히든 커리큘럼은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하는 교수들’이고,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그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믿음 하에 이강숙은 당대 최고의 연주 활동을 보여주고 있던 음악가들을 교수진으로 영입했다. 스승은 제자라는 화살을 쏘아 올리는 활이라 하지 않던가. 이강숙 사단은 그 어떤 화살도 높이 쏘아 올릴 수 있는 강한 활을 지닌 궁수 부대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이 가져온 변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0년대에 새로운 예술학교라는 이점으로 주목받았다면, 2000년대부터는 스타급 교수진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이 모여 있는 유럽에서도 음악학도들에게는 난제라는 현지 국제 콩쿠르에서 재학생들이 입상 트로피를 거머쥐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루빈슈타인 콩쿠르에서 19세의 손열음이 3위에 입상했고, 2006년 18세의 김선욱이 영국 리즈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 세대와 달리 해외 유학을 거치지 않고, 국내 교육만으로 다져진 영재들이었다. 기사마다 스승 김대진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스타 피아니스트의 영예에 스타 교육자라는 명예가 얹어진 순간이었다.

2011년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1995년만 하더라도 1차 예선 진출자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2011년에 한국인이 22명이나 진출하자 벨기에 국영방송은 전문가들을 한국에 파견했고,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파견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교수들은 인터뷰에 응하며 교육 비법을 이야기했다.

 

교육자로 변신 중인 K클래식 주역들

10여 년이 지난 지금, K클래식의 전환점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콩쿠르에 입상하고, 현지에서 인정받으며 우수한 경험을 쌓은 음악가들이 국내 교육계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귀환’이 만들어낼 연주 활동은 물론, 교육계로도 그 에너지의 물꼬가 트이며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또 하나의 여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음악학도들의 유학 목적이 바뀌고 있어 이러한 흐름의 합류가 더욱 기대된다. 외국 명문 음악교육기관에서 학위 취득이 우선이던 1980 ~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는 그 목적이 콩쿠르 출전과 입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지 오케스트라·오페라극장 입단을 주목적으로 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활동한 후, 귀국하여 국내 강단에 서게 된 이들은 현장에서나 체득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다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수할 수 있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후 연세대에 부임한 플루티스트 조성현, 레겐스부르크 필하모닉·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트럼피터 성재창,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후 한양대 교수로 부임한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서울시향·스웨덴 왕립오페라·오슬로필 수석 역임 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호르니스트 김홍박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관악기 분야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에 비해 교육적 환경이 부족했는데, 이들의 활약이 그 공백을 메우는 데 힘이 되고 있다. 김덕우 중앙대 교수(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 이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악장·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 김재원 이화여대 교수(프랑스 툴루즈 카피톨 국립오케스트라 악장) 등이 국내외 오케스트라에서 악장과 수석으로서 가꿔온 경력도 후대에게 전승되어 국내외 악단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노부스 콰르텟의 김영욱(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같은 전문 실내악단 출신의 노하우도 실내악 토양이 약한 국내 교육계에서 축복 같은 단비라 할 수 있겠다.

여러 콩쿠르 입상 후 독주와 협연의 경력으로 무장한 음악가들도 제자 양성을 위한 텃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노버 요아힘·파가니니·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으로 빛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서울대 교수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를 비롯하여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 1위로 입상한 경력으로 ‘콩쿠르 퀸’이라는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은 이화여대 교수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연세대 교수로 자리 잡았다. 경희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소프라노 황수미, 뮌헨 ARD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임용되어 화제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출신의 피아니스트 임효선과 김태형이 젊은 교수진으로 그보다 먼저 정착한 상황하에 ‘젊은 교수진’의 퍼즐이 더욱 뚜렷해진 셈이다. 이외 피아니스트 안종도(연세대, 롱티보 콩쿠르), 윤홍천(한국예술종합학교,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클리블랜드 콩쿠르), 김다솔(서울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게자 안다 콩쿠르), 소프라노 캐슬린 김(한양대,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프라노 양귀비(이화여대, 독일 켐니츠 오페라극장), 바리톤 이동환(한국예술종합학교, 아우크스부르크 극장), 지휘자 홍석원(서울대, 인스부르크 티롤 주립극장) 등의 교수 임용도 꼽을 수 있겠다.

K클래식의 주역들은 외국 음악계는 물론, 국내에도 새로운 변화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K클래식’의 역사와 현주소를 다시 쓰고 있는 주역들이 이른바 ‘포스트-K클래식’의 청사진을 그리는 자산이 되고 있는 지금이다. 주역들의 귀환과 이들을 통해 배출될 다음 세대의 연결 고리. ‘K클래식 오딧세이’는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GROUP INTERVIEW PART 1

성장을 마주하는 첫 도전

©박진호

【 2025~2026년 임용 교수진 】 성장을 마주하는 첫 도전 강단에 선다는 것은 직함 하나를 더 얻는 일이 아니라, 연주자로 살아온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통과하는 일에 가깝다. 방금까지 자신이 치열하게 건너온 연습과 무대, 콩쿠르의 시간을 이제는 학생들의 언어로 번역해 건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교수들은 누구보다 분주하고, 누구보다 예민하다. 누군가를 이끄는 일이 결국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임을, 이들은 가장 생생한 현재형으로 마주하고 있다

최성혁 기자

 

김재원 이화여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석사과정·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부악장·프랑스 툴루즈 카피톨 국립오케스트라 종신 악장을 역임했고, 2025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관현악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재원(1994~)은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 누군가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의 ‘책임’을 항상 의식하며 지내고 있다. 음악가의 길을 ‘마라톤’에 비유한 그는 단순히 테크닉적인 지도만이 아니라, 제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곁에서 응원하는 것이 교수의 중요한 역할임을 새기곤 한다.

음악가의 길을 ‘마라톤’에 빗댔는데.

말 그대로 긴 여정이다. 감내해야 할 고통도, 시간도 끝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경험한 시간들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조언과 방향을 제시하고, 꾸준히 인내할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결국 삶의 일부로서 음악을 받아들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음악과 함께 오래 걸어갈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음악 교육이다.

언급한대로 제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체적인 교육 방식이 있다면?

학생들을 지도하며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이 부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캐릭터는 무엇인지’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테크닉적인 훈련을 탄탄히 하는 동시에, 각자가 지닌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왜 음악을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음악가로 길러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연주자로 지내온 삶, 그리고 강단에 선 이후의 삶에서 변화된 부분들을 느끼는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내 음악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 그리고 학생들이 내 연주를 보러 올 때 레슨 과정에서 나누었던 내용들을 실제로 접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대에서 주고받는 에너지와 경험의 중요성을 느끼기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앙상블을 기획하기도 하고,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에 학생들을 초대해 함께 관람하기도 한다. 클래스의 학생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수업에 임해주는데,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문태국 연세대 교수·첼리스트

뉴잉글랜드 음악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2011년 앙드레 나바라 콩쿠르와 2014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2026년 3월부터 연세대학교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해 교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문태국(1994~)에겐 아직 밀도 높은 스케줄 관리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열정적으로 따라와 주는 학생들 덕분에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끼며 이 삶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라고. 특히 캠퍼스 특유의 낭만, 계절마다 변하는 캠퍼스의 분위기가 가져다주는 생동감은 그에게 큰 활력이다.

처음으로 강단에 서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면?

음악가로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경험을 나누며 학생들이 더 효율적으로 성장하고 높이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연구하며,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에너지를 학생들과 나누는 ‘영감의 매개체’가 되고자 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뒷모습을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교수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본인의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볼 때, 지금 학생들과는 분위기에 차이가 있을 듯한데.

과거에 비해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소속감에서 오는 결속력은 다소 옅어졌을지 모르나,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고 본인의 색깔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교수로서도 학생 한 명 한 명을 독립된 예술가로 존중하며,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그들의 주관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아직은 학생들과의 거시적인 호흡과 디테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배움과 고민을 즐기는 내 성향이 학생들과 시너지를 낼 때,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든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겸허함을 잃지 않으며 진심 어린 마음으로 진실된 가르침을 끊임없이 전하고 싶다.

제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을 믿되,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음악과 세상 앞에 겸손하기를!”

 

홍석원 서울대 교수·지휘자

©황필주

서울대학교 작곡과 지휘 전공을 거쳐,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디플롬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카라얀 지휘 콩쿠르 3위 및 ‘차세대 지휘자상’ 등으로 이름을 알렸고, 2025년부터 서울대학교 작곡과 지휘 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직은 한국 지휘자들의 세계적인 활약이 기악이나 성악에 비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밝힌 홍석원(1982~).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 세계적인 지휘자를 길러낼 바탕을 마련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강단에 섰다. 그가 교육자로서 강조하는 덕목은 실력의 상승보다도 좋은 인성의 함양,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기쁘게 대하는 마음이다.

 

앞서 언급한 덕목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휘자의 음악적인 역량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휘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고, 그들을 대해야 한다. 때문에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그 많은 작업들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끌어갈 때 관객들에게도 그 진실함이 음악으로 전달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교육자로서 이러한 덕목들을 제자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아직 강단에 선 기간이 길지 않은데, 교육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아직까지 더 나은 교육 방식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과정이라 느낀다. 그럼에도 제자들이 내 지도를 믿고 따라와 주고, 또 수업에 즐겁게 참여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발전하는 모습을 통해 얻는 보람과 기쁨이 기대했던 수준보다 훨씬 크더라. 타인의 지휘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에 이렇게 기뻐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앞으로 제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부끄럽지 않은 음악가가 되어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제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더 나은 교수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제자들에겐 “주어진 시간이 있을 때 제대로 연습하고 공부하거나, 아니라면 차라리 제대로 놀기라도 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항상 공부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나 한정된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동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바리톤

영남대학교 성악과를 거쳐,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오페라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3년 벨베데레 성악 콩쿠르 우승 이후 베를린 도이치오퍼와 아우크스부르크 국립극장 등에서 활동했으며, 2026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성악이란 오랜 시간 축적된 해석을 통해 ‘기다림’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동환(1981~)은 말한다. 전임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올해 처음 정식 강단에 서게 된 그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끝까지’ 지켜주는 교육자를 지향하고 있다.

‘기다림’과 ‘천천히’와 같이 인내의 시간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늘날은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그 과정에서 음악적 시야와 표현력이 넓어진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빠르고 여과 없는 정보 속에서 방향성이나 인내력을 잃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기에, 음악가로서 가져야 할 필수적인 그 가치를 좀 더 강조하려는 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무대에서 소통하려는 능력은 지금의 학생들이 갖는 분명한 강점이다.

그러한 강점이 본인이 성악가로서 지향하는 지점에 맞닿아 있는가?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겪어온 경험과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참된 성악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잘 이해하고 타인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스스로도 단순히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자가 되려고 한다.

더 나은 교육자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예정인가?

가르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끝까지 배우는 사람’으로 남으려 한다. 결국 좋은 교육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아닐까? 제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가며 나 또한 함께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즐거움이자 보람이다.

 

김다솔 서울대 교수·피아니스트

©Holger Talinski

하노버 국립음대와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수학했으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2위, 에피날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강사를 역임했으며, 2025년부터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단에 서기를 마음먹었던 당시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는 김다솔(1990~)은 각오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바쁘게 흘러간 생활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발전해 가는 제자들의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시야에서 바라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생들의 시야’를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레슨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마다 다른 개성과 강점을 금방 포착하게 된다. 때문에 지도 과정에서 도와줘야 하는 부분도, 레슨을 진행할 때의 태도도 학생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레슨을 받는 학생 개개인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려와 존중은 중요한 요소 아니던가. 학생들을 대하는 배려와 존중의 시작이 바로 그들의 입장, 즉 그들의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육자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귀감이 된 인물이 있다면?

모교인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의 총장 게랄드 파우트 교수다. 그를 사사하며 5년간 그의 어시스턴트를 맡았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교육과 연주의 완성도를 놓지 않는 그를 보며, 나 또한 제자들을 가르침과 동시에 스스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성취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학생들이 음악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 말로는 간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임무가 아닐까 싶다. 최종적으로 앞날을 결정하는 것은 학생 본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까지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고 도우며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목표를 빠르게 쟁취하려고 서두르지 않고 ‘여유와 인내’로 음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그런 음악인으로 내 제자들을 이끌고 싶다.

 


 

GROUP INTERVIEW PART 2

새로운 시대와 달라진 세대를 이끄는 힘

©박진호

 

【 2022~2023년 임용 교수진 】 학생을 대하는 방식에도, 수업을 설계하는 태도에도, 교육자로서의 호흡이 조금씩 생겨난다. 처음에는 더 많이 주고 싶어 조급했고 더 빨리 끌어올리고 싶어 마음이 앞섰다면, 이제는 각자의 속도와 성향을 읽으며 제자에게 맞는 길을 고민하게 된다. 연주자와 교육자라는 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세우는 법,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견디는 법도 이 시기에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된다

유내리 기자

 

 

김홍박 서울대 교수·호르니스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서울시향·오슬로 필하모닉에서 부수석과 수석을 역임했으며, 2023년부터 서울대학교 관현악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은사였던 라도반 블라트코비치가 늘 이야기했듯, 김홍박(1982~)은 ‘호른’이라는 악기에 머무르지 않는, 트인 시선을 강조한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 속에서 영감을 길어 올려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 임용 초기에는 더 많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 때로는 학생들을 다그치거나 방대한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일도 있었지만, 점차 각자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며 스스로 음악을 구축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관악기는 현실적으로 오케스트라 취업을 최우선 목표로 두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 오케스트라에서는 ‘트라이얼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주자의 인성과 협업 능력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결국 이는 ‘건강한 오케스트라 문화’를 전제로 한 평가 방식이다. 곧 이 문화를 이끌어갈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역량이기도 하다.

교육자로서 중요히 여기는 태도가 있다면?

제자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바르게 성장했으면 한다. 인생의 선배이자, 음악 선배로서 제자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도 늘 신중을 기하며 조심해야 한다고 느낀다.

‘연주자’와 ‘교육자’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이 두 역할이 서로를 더 성숙하게 완성한다고 여긴다. 연주자로서의 고민이 있기에 현실적인 눈높이에서 제자들을 타이를 수 있고, 교육자로의 고민이 있기에 음악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깊게 만들어준다고 느끼니까.

 

황수미 경희대 교수·소프라노

ⓒ김제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사·석사를 거쳐 뮌헨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독일 본 오페라극장 솔리스트를 지낸 뒤 2022년부터 경희대학교 성악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에서는 매 학기 전임교수와 학생 간의 상담을 통해 수업에 대한 만족도부터 진로 고민까지 폭넓은 대화를 나눈다. 황수미(1986~)는 이 과정을 통해 많은 학생이 각자의 방향을 찾아간다고 느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제자들에게 정답처럼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돕는 데 의미를 둔다.

오늘날 학생들에게서 변화된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전 세대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이 컸고, 성악과 특성상 전 학년이 함께 참여하는 수업이나 학교에 대한 소속감으로 임해야 하는 연주가 많았다. 요즘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지며 ‘필참’이라는 문화는 사라지는 추세다.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 서로 이해하고 함께 참여하는 모습이 줄어드는 모습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반드시 갖추게 하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공연의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연주자에게도 기획력과 감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관객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 전반을 고민해야 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본인만의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고유한 색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학생들뿐 아니라 현재 활동하는 연주자들에게도 요구되는 경쟁력이다.

어느덧 임용 3년 차로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욕심과 열정으로 모든 학생을 이끌고 가려다 보니 지치기도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역량과 비전을 파악한 후, 이에 맞게 수업을 이끈다. 올해 2월에 학부생 두 명과 석사생 세 명이 졸업했는데, 모두 새출발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꼈다. 특히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학생을 보며, 내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단단하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안종도 연세대 교수·피아니스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과 함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2년 롱티보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와 최고 독주상, 최고 현대작품해석상을 받았으며, 2022년부터 연세대학교 피아노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각에 앞서, 대리석 속에 이미 형상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던 미켈란젤로처럼, 안종도(1986~)는 제자들이 가진 예술적 기질을 읽어내는 데서 가르침을 시작한다. 그에게 스승이란 제자들이 지닌 특성을 먼저 알아보고, 그것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안종도의 레슨실은 깊은 예술을 사유하고, 그 사유를 타인과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음악가를 길러내는 공간이다.

교육자의 길을 확신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 있었는가?

수업으로 새롭게 발견되는 기쁨과 음악적 영감은 분명 큰 보람이지만, 일상 속 연습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안 또한 있었다. 그러던 중, 무대 위에서 제자가 기량을 온전히 펼치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무척이나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때서야 비로소 ‘가르치는 일’이 나의 길이라는 확신 또한 얻었다.

최근 진로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고 있다.

내가 유학을 떠났던 2000년대 초반에는, 클래식 음악이 서구에서 시작된 만큼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이 필수라기보다 ‘선택’에 가깝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건, 더 깊어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진로로 전향해도, 그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음악의 길’이라 본다. 어쩌면 이는 20세기 이전 음악가들이 보여주었던 전인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다시 가까워지는 흐름일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반드시 갖추게 하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스스로 기획하고 외부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주체성이 필요하다. 19세기의 클라라 슈만은 연주뿐 아니라 기획·홍보·네트워킹까지 모든 과정을 감당했다. 지금 역시 다르지 않다. 연습실 안에서의 노력만큼, 그 밖의 세계에 대한 흥미와 감수성이 필요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이 다시 음악으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뉴잉글랜드 음악원, 뮌헨 국립음대,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모차르트 콩쿠르와 사라사테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악장·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을 거쳐 202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생들과 수업에서 만날 때마다 이지혜(1986~)는 ‘좋은 교수’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신중히 되묻는다. 그의 목표는 ‘연주자로서의 성취’가 아니라, 학생이 성과에 도달한 이후 어떤 삶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쌓아온 음악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이지혜는 ‘자립’적이고 ‘건강’한 음악가를 길러내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음악은 결국 나누고 소통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해석을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꾸준히 노력하며 배움을 쌓아가는 태도 역시 기본이다. 요즘은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많아졌지만, 무분별한 노출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의도와 기획이 분명한 상태에서 신중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요즘 학생들은 진로를 택할 때, 다양한 선택지를 가능성으로 열어둔다.

그 흐름은 환영할 만하다. 바이올린은 진로의 스펙트럼이 넓고,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연주자와 교육자로서 모두 중요한 자산이 된다. 다만 현실적인 조건을 지나치게 우선시하여,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본인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경우는 조심해야 한다. 교육자의 역할은 충분한 도전을 돕는 동시에, 경험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할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다.

AI와 디지털 매체의 발전으로 음악 교육 환경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 접근과 학습의 효율을 높여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예술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나 기술의 모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스로 탐색하고 느끼며 발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창의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태도다.

 

김영욱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Jino Park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노부스 콰르텟 멤버로 모차르트 콩쿠르 1위, ARD 콩쿠르 2위 등을 기록했으며, 2022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주자의 성취를 가늠하는 기준이 콩쿠르 수상이나 오케스트라 입단에 머무르지 않는 시대, 김영욱(1989~)에게 음악 교육은 기술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한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의 교육은 ‘잘 연주하는 사람’을 넘어, 스스로 성찰하고 타인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음악가를 향한다.

‘연주자’와 ‘교육자’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느끼는 책임감이나 무게가 어떻게 달라졌나.

한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됐다기보다는, 교육자라는 역할이 더해지며 또 하나의 큰 책임이 생겼다고 느낀다. 그로 인해 연주자와 교육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본래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운용하는 데 익숙한 편이었지만, 임용 이후에는 의식적으로 계획을 세워 연습 시간과 개인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하게 됐다.

제자들의 입학부터 졸업, 그리고 이후의 진로까지 시간을 함께한 소감은 어떠한가?

졸업 이후 유학이나 사회로 나가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먼저 연락을 주거나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 그럴 때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다.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에 더욱 깊이 와닿는다. 초기에는 ‘사제 관계’라는 인식이 분명했다면, 지금은 각 개인의 시간을 함께 지나가는 관계에 가깝다고 느낀다.

학생들의 진로 고민 속에서, 유학을 선택하는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최근 유학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관성적으로 유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유학을 하나의 선택지로 두되, 그것을 당연한 답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각자가 왜 이 길을 선택하는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그 균형을 늘 고민하고 있다.

 

손정범 경희대 교수·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뮌헨 국립음대와 뮌스터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7년 ARD 콩쿠르 피아노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 2011년 에네스쿠 콩쿠르 입상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2022년부터 경희대학교 피아노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학’이라는 오래된 공식이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손정범(1991~)은 제자들이 ‘순수 예술’이라는 고립된 성에 머물지 않길 바란다. 음악의 본질을 지키되, 변화하는 환경 속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사회적 가치로 확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 그가 말하는 오늘날 교육자의 역할이다.

어느덧 연차가 쌓인 지금,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소통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었나?

초기에는 학생의 연주력을 교정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먼저 살피게 되었다. 유학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는 법을 넘어 한 사람의 삶에서 음악이 어떤 자리에 놓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생을 대하는 시선 또한 ‘지도자’에서 ‘긴 호흡의 동반자’로 옮겨졌다.

AI와 디지털 매체의 확산이 음악을 공부하는 방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AI는 연습의 보조 도구로서 매우 큰 가능성을 지닌다. 다만 예술의 핵심인 ‘불완전함 속의 인간미’와 ‘찰나의 영감’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기술을 영리하게 활용하되,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해석과 감동을 지켜내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의 학생들과 한때의 자신에게 각각 한 문장을 건넨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현재의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사유하고, 연습 하라”고 전하고 싶고, 학생이었던 내게는 “생각 좀 줄이고, 연습 하라”고 전하고 싶다.

 

송지원 이화여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뉴잉글랜드 음악원·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모차르트 콩쿠르 1위 등으로 주목받았으며, 2022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관현악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주자를 넘어 기획·경영 등 가능성을 탐색하는 오늘의 음악대학 학생들. 송지원(1992~)은 그 안에서 어떤 균형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지금의 교육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라 믿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길을 택하든, 음악을 붙잡고 있는 시간만큼은 밀도 있게 통과해야 한다는 것.

유학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흐름과 함께, 현실적인 진로를 중심에 두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흐름이기에 학생들의 입장이 충분히 공감된다. 다만,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대학에서 배우는 기간만큼은 전공 악기에 오롯이 매진하여 보람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주자가 아닌 다른 진로를 고민하면서 음악에만 몰두하기란 쉽지 않기에, 각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여 요구하는 기준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어느덧 임용 4년차인 현재,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임용 초기에는 학생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졸업 후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의 동료’로 느낀다. 실제 협연 무대에서 제자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함께 연주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 그 변화가 더욱 실감이 난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 한 문장을 건넨다면?

“젊었을 때 더 많은 레퍼토리를 하나라도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익혀놓은 곡은 훨씬 깊이 남으며, 그 과정에서 음악적 시야와 작곡가의 어법을 이해하는 폭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임지영 연세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Ho Chang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와 쾰른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23년부터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임지영(1995~)은 유연한 틀 위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가고 있다. 학생들의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존중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가진 고유한 색을 찾아가려는 의지를 중요히 여긴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음악에 색을 입히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음악가로 키우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을 경험하면서도 변화의 흐름을 함께 지나온 세대로서, 임지영은 ‘본질은 지키되, 방식은 유연하게’라는 기준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궁극적으로 어떤 음악가를 길러내고 싶은 것인가?

교육은 한 사람이 본인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끌어주는 일이다. 기량이 높은 음악가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음악가’로 교육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음악가는 왜 자신이 음악을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성장의 시기와 속도는 모두 다르기에, 제자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또한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다.

요즘 들어, 은사님께 들었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고.

김남윤 선생님은 레슨실에 들어오는 첫걸음만 보아도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이제 그 말씀이 이해가 간다. 어떤 성향을 가진 친구인지, 그날 어떤 연주를 할지 가늠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며, 그때의 은사님이 떠오르고 그리워지기도 한다.

곧 중간 실기를 앞둔 제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힘을 믿으세요.”, 사실 누군가는 더 빨리 성장하고, 기회를 얻는 것을 보며 늘 비교하게 되지만 결국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은 ‘빠름’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이다.

 


 

GROUP INTERVIEW PART 3

치열함 끝에 마주한 교육의 본질

©박진호

【 2019~2021년 임용 교수진 】 더 오래 가르쳤다는 것은 더 많은 답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섣불리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이 시기의 교수들은 결과를 재촉하기보다 기다림의 의미를 알고, 성취를 독려하면서도 한 사람의 삶을 함께 바라보는 법을 안다.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언제 밀어주고 언제 물러설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학생 곁에 남을 것인가를 묻는 일에 가까워진다

홍예원 기자

 

양귀비 이화여대 교수·소프라노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뮌헨 국립음대에서 디플롬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이탈리아 술모나·함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독일 켐니츠 오페라극장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다. 2021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성악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각자의 계절에 맞춰 꽃을 피울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 양귀비(1983~)는 교육을 ‘나무를 가꾸는 일’에 비유한다. 몸이 곧 악기가 되는 성악의 특성상 기술보다 연주자의 인성과 심리 상태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임용 초기에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제자들이 제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내하며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성악은 연주자의 몸과 컨디션이 곧 소리로 직결된다.

학생들에게 기술 외에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성악가는 별도의 악기 없이 본인의 몸을 악기로 사용한다. 그래서 기술적인 발전 못지않게 인내심과 선한 마음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나 역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학생의 장점을 먼저 발견해 주는 친절한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소리가 트이는 시기가 다른 만큼, 그 ‘때’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성악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임용 5년 차를 지나며, 부임 초기에 비해 교육관이 어떻게 변화했나?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내가 했던 방식만을 고집했다. 연습량이나 콩쿠르 출전 횟수에 엄격한 기준을 정해두고 제자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무를 키우는 마음으로 임한다. 내가 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을 주는 것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결국 학생 저마다의 시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슨실 밖에서는 학생들에게 ‘큰 언니’ 같은 스승이 되고자 노력한다고 들었다.

권위로 질서를 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적으로는 친근하게 다가가려 한다. 학생 시절 은사님을 너무 어렵게만 대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밥을 먹으며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종종 만든다. 음악은 결국 삶의 투영이기에, 제자들이 선한 마음을 유지하며 긴 음악 여정을 버틸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조인혁 한양대 교수·클라리네티스트

©Jino Park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앙리 토마지 콩쿠르 1위, 칼 닐센 콩쿠르 3위 등을 수상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을 거쳐, 2021년부터 한양대학교 관현악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럽과 미국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쌓은 풍부한 실전 경험은 조인혁(1983~)의 강력한 교육 자산이다. 그는 연주 기술의 전수를 넘어 학생들이 무대 위에서 즉각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추도록 돕는 것을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더 나은 방법으로 가르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믿고 음악의 길을 선택한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 믿는다.

클라리넷은 앙상블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악기다.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음악 외적인 역량은 무엇인가?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에서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악기다.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건강한 인격이 갖춰질 때, 비로소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 음악가로 자립할 수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대학 교육의 방향성을 강조해왔다.

입시가 결과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학생들이 탄탄한 기본기 없이 대학에 입학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다시 기본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부임 초부터 기본기와 앙상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2026년 2월, 입시 심사부터 졸업까지 전 과정을 처음으로 함께 완주한 제자들이 사회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교육자로서의 활동이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가르침은 내 음악적 언어를 ‘이론화’하는 성찰의 기회다. 감각적으로만 해왔던 연주 디테일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내 연주 또한 객관화되고 견고해졌다.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는?

“젊음의 열정을 소중히 생각하고, 매 순간 치열하게 살자.”

 

조성현 연세대 교수·플루티스트

예원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오벌린 음악원, 하노버 국립음대, 뮌헨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를 거쳐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을 지냈으며, 2019년부터 연세대학교 관현악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화려한 테크닉 속에 연주자만의 호흡과 색채를 담아야 하는 플루트의 특성은 조성현(1990~)의 교육관과 닮아있다. 제자들이 정답을 맞히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발굴하도록 돕는 데 매진한다. 그에게 교육이란 학교 안의 성취를 넘어 졸업 이후의 삶 전체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임용 초기와 비교했을 때, 교육자로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부임 초에는 소리와 테크닉을 하나라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음악이 학교 안의 성취를 넘어 삶 전체로 이어진다는 점을 깊이 체감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속도에 맞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한다. 얼마 전 국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첫 제자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제자가 스스로 깨닫고 결과로 증명해낼 때, 교육자로서 형언할 수 없는 보람과 에너지를 얻는다.

플루티스트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과 교육자로서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나?

일방적으로 정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지양한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묻고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내 축구 동아리를 지도하는 등 음악 외적인 방식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간이 쌓여야 레슨실에서도 진정한 교감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연주 활동과 교육 활동이 서로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다시 고민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발견하곤 한다. 교육자와 연주자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확장시키는 관계다. 수업에서 얻는 영감과 에너지는 내 연주를 더욱 깊게 만들고,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연주자로 발전시킨다.

학생들이 전문 연주자로 자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성과 자기 관리 능력이다. 이제는 완벽함을 넘어 연주자만의 독특한 색깔로 관객을 설득하는 시대다. 자신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연습의 질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음악적 시야를 넓히며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가길 바란다.

 

김다미 서울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Jang Bong Young

커티스 음악원, 뉴잉글랜드 음악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뉴욕주립대(박사과정)에서 수학했다. 파가니니 콩쿠르 1위 없는 2위, 요아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2020년부터 서울대학교 관현악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다미(1988~)는 좋은 교수에 대해 ‘학생의 상태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연주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술적인 조언 이전에 학생의 심리를 먼저 살핀다. 교육자로서 보낸 지난 시간은 그에게 학생을 단순한 가르침의 대상을 넘어, 저마다의 속도 안에서 성장을 지속해 나갈 한 사람의 ‘음악가’로 깊이 이해하게 하는 성숙함을 안겨주었다.

수업에서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학생의 ‘상태’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압박감을 마주하는 심리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이해하고 건네는 한마디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학생마다 기술적인 해결책이 시급할 때가 있고, 심리적인 안정이 먼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를 판단해 적절히 판단하는 것이 지난 시간동안 체득한 ‘좋은 교수’의 역할이다.

오늘날 학생들은 정보 접근성이 높지만, 독창적인 해석에는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본인의 스타일과 생각이 분명하다. 학생들이 단순히 잘 연주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왜 그렇게 연주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길 바란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는 것이 결국 설득력 있는 음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태도나,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부임 초기에는 내 경험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몰아붙였다. 대학 입학 후 번아웃을 겪거나 속도를 늦추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로는 나태함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이 거쳐온 입시 과정의 피로도를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회복하는 시간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연주자로서 가져야 할 연습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 소통 능력을 갖추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덕우 중앙대 교수·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서울시향에 입단해 제2바이올린 수석을 역임했다. 2021년 3월부터 중앙대학교 관현악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네 줄의 현 위에서 미세한 차이로 소리의 질감을 결정해야 하는 바이올린의 세계는 엄격하다. 김덕우(1985~)는 그 엄격함을 가르치되, 악기를 내려놓는 순간에는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 소통한다. 어느덧 임용 5년 차를 넘어서는 시점에서, 그는 제자들이 일궈낸 성취를 지켜보며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을 확인하고 있다.

바이올린 지도 시 기술적인 부분 외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연주자로서의 성실함과 기본 예의를 갖추는 면에서만큼은 엄격한 편이다. 잦은 지각이나 이유 없는 결석, 부족한 준비성은 음악가이기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기에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다만 수업 시간이 아닐 때는 최대한 벽 없이 소통하며 제자들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교육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최근 국립심포니 정단원이 된 제자가 기억에 남는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4학기 중 3학기 내내 오케스트라의 기초를 닦으며 수많은 도전을 이어온 친구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입단에 성공해 무대에서 행복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함께 고민했던 시간의 가치를 느낀다. 제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실질적인 성취로 이어자도록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사명이다.

은사님의 가르침 중 교육의 뿌리가 된 문장이 있다면?

“무대에서는 내 가르침을 잊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강효 교수님의 말씀이다. 그 한마디가 전문 연주자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나 역시 제자들이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끝없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꾸준히 나아간다면 반드시 자신만의 무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BEYOND ITEM

선물, 그 사이에 스며든 사제의 애정

스승의 날을 맞아, 음악가들이 간직해온 선물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는 스승에게서 받은 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고,누군가는 제자에게 애정어린 선물을 건넨다. 그 선물 안에는 각각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가 담겨있다.

#김덕우

박스에 보관한 제자들의 사랑
2025년 중앙대학교 제자들에게 받은 스승의 날 선물로, 평소 레고를 좋아하는 김덕우의 취향이 반영됐다. 미국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작 ‘LOVE’ 조형을 모티브로 한 레고로, 총 791피스로 구성된 아트 라인 시리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박스로 보관하고 있는 이유는 그날의 순간을 온전히 간직하고 싶어서다. 김덕우는 제자들에게 “뭐든지 최선을 다해 임하자. 비록 그것이 연습하는 시간이든, 노는 시간이든!”이라며, 응원의 한 마디를 남겼다.

 

#이동환

스승이 고른, 미래를 향한 선물
오페라 가수를 꿈꾸며 유학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각 성부의 주역이 담긴 오페라 악보를 선물한다. 자신이 배워온 음악을 전해주는 동시에,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라는 응원의 의미가 담았다. 사진 속 악보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악보로, 현재 그가 준비 중인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추어에서 프로 연주자로 나아가는 길목에 선 남학생들에게는 나비넥타이를 선물하고, 여학생들에게는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헤어핀을 선물하기도 했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가 건네는 마음은 같다. 각자의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내실있게 펼치길 바라는 마음이다.

 

#송지원

훨훨 날아오르는 응원
클리블랜드 음악원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세론(1941~)이 보내온 자수 테이블보다. ‘훨훨 날아라’라는 의미로 그가 송지원에게 늘 붙여줬던 별칭 ‘나비’를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은 지금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애정 담긴 스승의 선물처럼, 송지원은 내리사랑으로 제자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한다. 송지원은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도 꾸준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양귀비

‘양떼’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
교수로 부임했던 2021년 스승의 날, 제자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다. 똑똑, 노크 소리에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 놓여 있던 것은 ‘양’ 모양의 의자였다. 성이 ‘양’인 데서 출발해, 양귀비의 클래스는 ‘양떼’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저의 상징이 됐어요” 이 선물은 지금도 그의 연구실 한편에 놓여, 제자들과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양귀비는 제자들에게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우리 학생들에게 항상 고맙다”며 “앞으로의 긴 음악 인생에서 작은 빛처럼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도록 나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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