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빅 라이브 뮤직마켓

문화가 깃든 음악, 음악이 깃든 도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중세 시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스페인의 도시 빅(vic)에서 카탈루냐 음악의 생생함을 경험하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알고 있는 스페인.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각 지역마다 독립적인 문화와 언어, 식생활 풍습, 기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공용어로 알려진 에스파냐어는 내륙 중심부에 자리한 수도 마드리드 인근 카스티야 지역의 언어다. 끊임없이 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도 불사한 바 있는 북동부 바스크 지역과 프랑스와 가까운 지중해에 면한 카탈루냐는 에스파냐어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치 정부를 넘어 완전한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여러 움직임을 강하게 펼치는 중이다.

북서부에 접한 갈리시아 지역 또한 갈레고어를 사용하며 인접한 포르투갈과의 언어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과 같은 켈틱 문화권에 놓여 있다. 남부 지역인 안달루시아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증명하듯 이슬람 문화권의 마지막 흔적이 강하게 배어 있는 곳이며, 오래전 정착한 집시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고 또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기에 더더욱 매력적인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2007년부터 3년간 워멕스(WOMEX)가 내리 열린 세비야는 개인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익숙한 곳이다. 필자의 첫 번째 워매드(WOMAD) 참가 역시 카사레스에서 열렸다. 이와 더불어 순례의 종착지로 유명한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난해 워멕스를 통해 방문하면서 필자의 스페인 사랑은 거의 완성된 그림을 갖추게 됐다.

 

 


▲ 중세 시대 건물과 분위기를 간직한 도시 빅(vic)

오랜 역사를 지닌 카탈루냐 음악의 플랫폼

스페인의 빅 라이브 뮤직마켓(Mercat de Musica Viva de Vic, 이하 MMVV)을 위해 찾은 곳은 스페인 북동부 지방인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빅(vic)이라는 도시였다. 중세 시대 건물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에 도착한 늦은 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농장의 건초 더미에서 풍기는 듯한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이 도시가 시골이 아닌 제법 규모 있는 도시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하고 질 좋은 소시지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88년 창설되어 올해 27회째 맞은 MMVV는 유럽에서 열리는 몇몇 뮤직 마켓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켓이다. 매년 9월에 개최되며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 음악뿐 아니라 스페인 전역의 음악을 포함하며, 포르투갈과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지중해권 음악과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남미 음악까지 소개하고 포럼 및 정보 교환 등 상호간 네트워크 장을 마련하는 자리다.

기간 중에는 개막식과 개막 공연이 열린 극장을 비롯한 공연장 2곳과 2개의 야외 텐트 무대, 라이브 카페 1곳과 시 중심부 광장에 설치된 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쇼케이스와 공연이 열렸다. 도시에서도 연중 가장 큰 이벤트인 MMVV 기간에는 공식 쇼케이스와 별도로 중세 건물들이 빼곡한 도시 곳곳의 골목과 작은 광장들에서 다양한 공연이 밤늦도록 열린다. 9월 중순은 한국뿐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가장 좋은 계절인 듯하다. 그리고 햇살은 스페인답게 최상급으로 내리쬐어 공연을 즐기는 데 상쾌한 기분을 더해준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온 트리오 숨라(summrra)

40여 개에 이르는 쇼케이스 중 단연 올해 최고 공연으로 기억될 팀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온 숨라(Sumrra)였다.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구성된 밴드인데, 연주를 들으면서 이들을 굳이 재즈 트리오로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성 15년 차인 이들의 완벽한 앙상블에서 비롯된 완성도, 여기에 드러머가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는 이들이 흔한 재즈 트리오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음악 자체는 대단히 실험적이지만 이들은 반드시 라이브를 봐야 하는 부류의 트리오라고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라이브가 모든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카보베르데의 신성이자 소녀티를 막 벗은 엘리다 알메이다(Elida Almeida)의 라이브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다. 월드 스타 마리자를 필두로 크리스티나 브랑코, 아나 모우라, 지젤라 주앙 등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따라갈 여성 파두 가수가 부지기수지만, 아직은 알메이다의 성량과 표현력에 버금가는 파두 여자 가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리다 역시 카보베르데의 상징이자 월드뮤직계의 전설이 된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의 발아래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물론 세자리아는 마흔이 넘어 정식 음반을 내고 활동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오프닝 콘서트를 장식한 포르투갈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안토니오 잠부조(Antonio Zambujo)는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에도 초청된 바 있는 가수라 더 반가웠는데,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 무대에서 숙련된 보컬로서 역량을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다루는 성량과 기교, 표현력 또한 대단했다. 향후 브라질의 전설인 카에타노 벨로주의 뒤를 잇는 포르투갈어권 최고 남성 싱어송라이터가 될 것을 확신한다.

MMVV의 일정 이후 바르셀로나 시에서 개최하는 대표적인 축제 라 메르세(La Merce)에 초청받아 5일간 바르셀로나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부터 탈카란 룸바 빅 밴드 같은 공연들은 물론이거니와 2010년 유네스코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한 인간 탑 쌓기인 카스텔 팀들의 경연은 라 메르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마 필자는 이번 라 메르세 기간 동안 가장 호사를 누린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공휴일이자 라 메르세의 마지막 날엔 국제 필름 커미션 총회가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옛 투우 경기장을 개조한 쇼핑몰 옥상에서 열렸다. 영화나 TV 시리즈 드라마, 광고 등의 촬영과 제작을 지원하는 기관인 필름 커미션 세계 협회 회원들이 모인 올해의 주제는 ‘필름 투어리즘(Film Tourism)’이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를 전후해 몇몇 할리우드 영화가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제작되었고, 이를 통해 관광 산업을 더욱 증진시키기 위한 시 차원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필자에게 바르셀로나는 예상대로 완벽한 도시였다. 문화와 예술, 이벤트, 공원, 쇼핑, 먹거리와 지중해를 낀 바다까지 말이다. 단, 하나 필자 같은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진 이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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