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라이, 아름답고도 황홀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12일 9:00 오전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 7

로렐라이 아름답고도 황홀한

작곡가들이 빠져든 로렐라이는 과연 구원 되었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사이렌'(1900)

에밀 크루파 크루핀스키
‘로렐라이'(1899)

에드바르트 폰 슈타인레
‘로렐라이'(1864)

 

 

 

 

 

 

 

 

 

 

 

 

“날은 이미 저물었고, 벌써 추워졌어요, 왜 그렇게 혼자 숲속으로 말을 타고 가고 있나요?

숲은 길어요, 당신은 혼자이고요, 아름다운 신부여, 내가 집으로 데려다줄게요!”

“남자들의 기만과 간계는 엄청나죠, 제 마음이 찢어지네요,

숲속의 피리가 여기저기서 혼란스럽게 들려요, 오 도망치세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몰라요!”

“이토록 아름답게 꾸며진 여인과 말이라니, 저 싱싱한 육체는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비로소 네가 누구인지 알았다, 신이여, 저를 지켜 주소서! 너는 바로 마녀 로렐라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라인강의 저 높은 바위 위, 내 성이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지.

날은 이미 저물었고, 벌써 추워졌어, 너는 다시는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야”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숲의 대화’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 작센의 앨버트 왕자와 결혼했던 1840년, 음악사에는 휘황찬란한 왕실 결혼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의미 있는 두 사람의 결합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상호 협력적이고 동등한 파트너십을 보여준 한 쌍. 바로 클라라와 로베르트 슈만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클라라 부친의 극렬한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부부의 서약을 맺었다. 1840년은 ‘가곡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이때의 슈만은 충만한 영감을 악보 위에 쏟아냈다.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는 ‘리더크라이스’ Op.39, ‘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 ‘시인의 사랑’ Op.48 등 슈만의 가장 사랑받는 가곡들이 이 시기에 작곡됐다.

그중 ‘리더크라이스’는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1788~ 1857)의 12개의 시를 가지고 작곡된 연가곡이다. 1839년부터 로베르트와 클라라가 함께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수집했다고 한다. 12곡 중 세 번째 노래인 ‘숲의 대화’에서는 라인 강의 전설 로렐라이를 다룬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아이헨도르프에게 민요와 전설은 중요한 소재였다. 예로부터 배가 난파되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라인 강의 로렐라이 이야기는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는 슈만의 손을 거쳐 ‘숲의 대화’라는 마치 드라마와도 같은 가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미모의 로렐라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로렐라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이 곡이 독일 민요라고 소개되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이라는 가사 때문에 구전동화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로렐라이는 1801년에 쓰인 클레멘스 브렌타노(1778~ 1842)의 담시에 나오는 작가의 창작물이다. 작품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라인강 유역의 바하라흐에 어느 마법사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또한 좌절까지 안겨주었다. 그녀 주변에 남자들은 많았지만 그들과의 사랑과 인연은 그 어떤 구원도 될 수 없었다.”

이 이야기가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의 전설로 통용될 정도로 유명했다. 물론 로렐라이 캐릭터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바다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서 암초에 배가 부딪혀 죽게 만드는)이나 에코(실연 후 죽어서 목소리만 남아 결국 나르시스를 물에 빠져 죽게 만드는) 이야기나,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한 물의 정령 운디네(훗날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의 모티브가 되는)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브렌타노의 로렐라이는 실연으로 인해 마녀가 된다. 로렐라이의 미모에 반한 남자들을 그녀를 쫓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거나 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는다. 결국 그녀는 교회 재판에 회부되는데, 재판장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화형 대신 수도원행을 명한다. 그녀의 수도원행에는 기사 3명이 동반하지만, 죽음을 결심한 그녀는 라인 강 절벽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를 구하고자 했던 기사들조차 익사하고 만다.

 

클라라와 리스트에게 영감을 주다

슈베르트·슈만 등 수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사랑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그는 작품이 누렸던 인기와는 반대로 평생 병마와 정치적인 박해를 견뎌야 했다. 1824년에 그가 쓴 비관적인 어조의 ‘로렐라이’는 40명 이상의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라드리히 질허(1789~1860)가 민요조로 작곡한 곡이다.

“내가 왜 이리 슬픈지 나는 모르겠네 예부터 전해지는 어떤 동화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네. (중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가 저 위에 황홀하게 앉아있고, 그녀의 금빛 장신구가 반짝이고, 자신의 금발을 빗고 있네.

황금 빗으로 머리카락을 빗으며 그녀는 노래했다네,

그 멜로디에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서 사공의 마음을 비탄으로 물들게 했네,

그는 암초를 보지 않고, 오로지 절벽 위만을 바라보니, 파도가 결국 사공과 배를 삼켜버린 듯하네,

그리고 그것은 로렐라이가 노래로 그렇게 만든 것이라네.”

 

1843년에 클라라 슈만은 하이네의 시로 가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곡은 그녀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다. 로베르트가 적은 일기에 따르면, 클라라가 놀라운 작곡 능력을 가지고 있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당시 아내와 엄마라는 위치는 그녀가 작곡에 마음껏 전념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 로베르트는 1841년 클라라의 작품도 함께 실은 악보 출판을 추진할 정도로 아내의 작곡을 독려했다. 비록 작곡가로서 클라라의 위치는 남편에 가려졌지만, 최근에는 클라라의 작품이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녀의 ‘로렐라이’는 절정의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화려한 반주부가 돋보이며 극적인 구성도 훌륭하다.

당대 슈퍼스타였던 프란츠 리스트도 하이네의 ‘로렐라이’에 곡을 붙였다. 1841년에 처음으로 작곡하고 1856년에 개작했으며, 1861년에는 피아노 솔로를 위해 다시 편곡했을 정도로 애정이 대단했다. 리스트가 워낙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음악 쪽에서 세운 업적이 크다 보니 그의 80여 곡에 달하는 가곡은 다소 소외되어 있다.

피아노의 거장으로 경력이 절정에 달했던 1840년대 초반부터 그는 페트라르카와 괴테, 하이네의 시로 가곡을 작곡했다. 파리에서 벨리니와 로시니의 오페라를 충분히 경험했고, 또 당대 프리마돈나들과 교류할 정도로 오페라에 조예가 깊었다. 리스트의 가곡은 성악의 드라마틱한 성향이 두드러진다. 19세기 중반에 피아노로 세상을 호령했던 클라라와 리스트가 각각 작곡한 ‘로렐라이’를 비교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칼 요제프 베가스
‘로렐라이'(1835)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인어'(1900)

 

 

 

 

 

 

 

 

 

 

 

 

 

카탈라니의 명작 오페라, 로렐라이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푸치니·레온카발로·마스카니 등 베리스모(사실주의) 작곡가의 오페라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이들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했고, 단명(短命)하는 바람에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곡가가 있다. 바로 39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알프레도 카탈라니(1854~1893)이다.

카탈라니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라 왈리’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그럼 나 멀리 떠나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한 명가수들의 절창 덕에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드물게 공연되고 있다.

카탈라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였지만 평생 “이탈리아보다는 독일 스타일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바그너 음악에 심취했고 독일 교향곡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의 대표작 ‘라 왈리’는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부터 소개할 오페라 ‘로렐라이’도 독일 라인 강을 배경으로 한다. 다작을 하지 않았던 카탈라니의 작품 리스트에 독일어권을 배경으로 가진 오페라가 1, 2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작곡가가 지향했던 곳이 알프스 너머 북쪽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오페라 ‘로렐라이’는 원래 1880년 초연된 오페라 ‘엘다’이다. 로렐라이 이야기를 발트해로 배경을 옮겨 만들었는데, 작품은 10년 뒤 ‘로렐라이’로 개작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카탈라니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또 바그너 오페라의 이탈리아 출판권을 소유하고 있던 출판사 ‘카자 무지칼레 루카’는 1888년에 출판사 ‘리코르디’에게 인수되는데, 카탈라니는 ‘리코르디’가 자신이 아닌 푸치니에게 더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로렐라이’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카탈라니의 예감은 적중했다. 1992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 ‘라 왈리’를 올려야 했지만 출판사 지원이 줄어든 탓에 대본가 루이지 일리카를 영입하고도 본인이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듬해 지병이 악화되어 카탈라니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러 가지 이유로 카탈라니가 저평가 받았지만, 그 가치를 알아본 명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 덕분에 그의 작품은 재조명됐다. 자신의 딸을 ‘왈리’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카탈라니의 오페라를 사랑했던 그는 유럽과 미국에 카탈라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966/67 시즌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잊혀진 이탈리아 오페라 걸작을 발굴하는데 힘썼던 음악감독 잔안드레아 가바체니의 지휘로 ‘로렐라이’가 다시 상연됐다. 당시 실황이 음반으로 발매되어 있는데, 모노 음질임에도 ‘로렐라이’가 얼마나 훌륭한지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통신원)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과 마인츠에서 오페라를 전공했다. 마인츠 극장에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로 데뷔한 후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며 오페라와 종교음악을 노래하고 있다

 

추천음반

슈만 가곡

바바라 보니(소프라노)/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피아노)

아슈케나지를 파트너 삼아 녹음했다는 것은 로베르트·클라라 슈만의 가곡에 있어서 피아노가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성기의 바바라 보니(1956~)가 들려주는 ‘로렐라이’와 ‘숲의 대화’는 청량한 매력을 더해준다.

리스트 가곡

디아나 담라우(소프라노)/헬무트 도이치(피아노)

리스트 가곡의 섬세함을 이토록 완벽한 성악 기량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수는 흔치 않다. 마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담라우(1971~)와 도이치의 열정적인 ‘로렐라이’ 뿐만 아니라, 그간 빛을 보지 못한 리스트의 가곡이 이 음반에서 빛을 발한다.

카탈라니 오페라 ‘로렐라이’

피에로 카푸칠리(바리톤)/카를라 가바치(소프라노) 외

1968년 밀라노 실황 영상. 현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케스트라는 카탈라니의 사운드를 훌륭하게 구현한다. 이토록 환상적인 캐스팅을 과연 우리 시대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싶다. 콘체르탄테 형식이라도 꼭 부활했으면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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