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12일 9:00 오전

신간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외

무대 뒤로 흐르는 예술의 역사

글 임원빈 수습기자

 

클래식이 좋다

조희창 저

작곡가들의 뒷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재밌는 입문서가 발간됐다. 책은 비발디(1678~1741)부터 피아졸라(1921~1992)까지 약 300년에 걸친 29명의 작곡가를 소개한다. 저자는 ‘객석’ 기자와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장을 지냈고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을 출간하는 등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소개해왔다. 작곡가의 삶의 행태는 작품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베토벤이 ‘걸작의 숲’을 이룬 배경에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같은 절망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서정은 곤궁한 삶과 연결되어 있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러시아의 정치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작곡가의 삶에 대한 이해는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곡가마다 6개의 대표곡을 선정, QR코드를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18,000원 | 미디어샘

 

 

다뉴브 연가

김운하 저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들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신문기자로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조선일보’ 기자로 10년을 국내에서 일한 다음 주미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미국으로 갔다. 유신을 앞둔 1972년의 일이었다. 군사정권의 압력은 미국까지 뒤따라 그를 특파원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는 34살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원치 않았던 디아스포라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애틋한 동반자에게 책을 헌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내의 60세 생일을 기념해 ‘제1 시집’을 출판한 바 있다. 이번 책에는 아내의 70세와 80세 생일을 맞아 썼던 시들을 엮어 넣었다. 따듯한 봄과 함께 찾아온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현재 저자는 ‘객석’의 오스트리아 통신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14,500원 | MCN미디어

 

 

베토벤 현악 사중주

나성인 저

베토벤(1770~1827)은 클래식 음악 모든 장르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다른 장르에 비해 베토벤 현악 4중주에 접근하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후기 4중주곡이 난해한 이유도 있지만, 동시대 청중은 화려하며 선율적인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과 인문학의 만남을 시도하며 저술 활동을 해온 저자 나성인. 이번 신간에선 베토벤 현악 4중주를 연구하며 얻은 경험을 풀어 놓는다. 저자는 베토벤의 초기·중기·후기의 현악 4중주 해설에서 각기 다른 방식을 취한다. 초기는 베토벤 현악 4중주가 탄생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네 명의 사람’, 중기는 작품에서 시간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살피는 ‘네 개의 시간’, 후기는 청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도 작곡을 계속했던 베토벤의 ‘네 가지 자아’로 음악을 분석한다.

18,000원 | 풍월당

 

 

 

빈티지 오디오 가이드

김상도 저

빈티지(Vintage)는 와인에서 유래된 말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수확 시기를 뜻하는데 근래는 ‘복고’의 의미로 쓰인다. 본격적으로 오디오 제품이 생산되고 판매된 1930년대부터 디지털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의 생산품을 흔히 ‘빈티지 오디오’로 지칭한다. 빈티지 기기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 주로 마니아층 위주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저자는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 중 갑작스럽게 오디오의 매력에 빠졌다. 망설임 없이 일을 정리한 뒤 오디오 세계에 입문했고, 현재는 빈티지 오디오 숍 ‘블루문 오디오’를 운영한다. 저자가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빈티지 오디오 입문자들의 기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25,000원 | 창해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김주연 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초연되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탄생한 도시 페테르부르크. 이 도시는 그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등 여러 번 이름을 바꿔가며 황제의 도시에서 전쟁의 도시, 혁명의 도시로 탈바꿈해 왔다. 페테르부르크는 배역을 달리하며 여러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와도 같다. 책은 제정 러시아 시기의 예술 현장을 돌아본다. 치열함과 찬란함이 교차하는 순간, 그곳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예술가들을 ‘무대’라는 키워드로 살핀다. 문학과 연극을 전공한 저자는 ‘객석’의 연극 전문 기자로 글을 써왔다. 곳곳에 녹아든 섬세한 표현 덕분에 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않았더라도 그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2020~2021년 ‘한-러 수교 30주년의 해’를 맞아 러시아 예술을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15,800원 | 파롤앤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책 속으로

 

#41쪽 #시간이 멈춰 있는 도시 #여전히 숨 쉬는 예술

십여 년 전 그토록 조용하고 고즈넉한 정취를 자랑하던 페테르부르크의 루빈슈타인 거리가 트렌디한 바와 클럽이 즐비한 번화가로 변모한 것을 보면, 확실히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이 도시도 자본주의와 상업화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흥청대는 거리 한복판에서 여전히, 작은 연습실에 모여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삶을 응시하고 연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위안을 준다. 오늘도 누군가는 저 화려한 거리 한복판을 가로질러 극장의 캄캄한 암전 속으로, ‘위대한 정신적 모험’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리고 무대 위의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예리하고 처절한 삶의 진실들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 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의 삶은, 결코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 레프 도진과 말리 드라마 극장이 만들어낸 위대한 전통은 이렇듯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57쪽 #극장 박물관 #아카이브의 원조 #그때 그 물건

순간의 예술인 연극의 특성상, 공연 자료와 의상, 무대와 소품 등은 누군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모아놓지 않는 이상 하룻밤의 꿈이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 이곳 극장 박물관에 차곡차곡 정리되어있는 빛바랜 전시물을 보다 보면, 그 옛날부터 공연에 관련된 자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이들의 노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 이처럼 러시아 공연예술의 연대기와 귀중한 자료들, 그리고 극장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다양한 전시로 꾸며져 있는 극장 박물관은 페테르부르크의 수많은 극장과 공연을 순례하기 전, 한 번쯤 둘러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 ‘고전예술의 성지’로 불리는 페테르부르크의 명성은 바로 이러한 무대의 계보학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이 작은 박물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72쪽 #시간 속에 새겨진 시와 음악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쉐레메테프 궁전은 건물 자체로도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다. 일단 이곳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 예전에 화려한 분수가 있었던 관계로 ‘파운틴 하우스’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원래 이름보다 별칭이 더욱 유명해졌다. (···) 쉐레메테프 궁전 바로 뒤쪽 별채에는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박물관이 있다. (···) 모든 러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20세기 시인이자 그 스스로 페테르부르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시인이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녀의 삶은 대부분, 이 파운틴 하우스와 연결되어 있다. (···) 이혼과 사별, 아들의 체포, 남편의 전처와의 공동생활 등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겨준 곳이었음에도아흐마토바는 이 저택을 깊이 사랑했고, 자신의 시 속에도 ‘파운틴 하우스’란 이름으로 여러 번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시를 사랑하는 페테르부르크 시민 대부분이 이곳을 쉐레메테프 궁전보다 파운틴 하우스라 부르며 시인을 기억한다.

#117쪽 #혁명과 애국 사이 #조국을 위한 진혼곡

쇼스타코비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고 페트로그라드에서 자라 레닌그라드에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즉, 그는 한 도시의 이름이 여러 번 뒤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 도시와 영욕을 함께한, 이 도시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증언자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단순한 전쟁 기념 교향곡일 수 없었다. 누구보다 이 도시를 사랑했고 또 이 도시의 고통을 함께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을 통해 이 도시에서 죽어간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이 도시를 위한 레퀴엠이자 음표로 세운 묘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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