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태형,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12일 9:00 오전

ARTIST’S ESSAY
일상의 예술사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피아니스트 김태형

ⓒ임주희

파리에는 아니마토(Animato) 재단이 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파리에서의 독주회를 마련해 주는 아주 고마운 재단이다. 재단의 음악감독인 마리안 리비츠키가 직접 세계 각지의 유명 콩쿠르를 찾아다니며 피아니스트를 발굴, 파리 코르토 홀에서 연주할 기회를 제안한다. 대부분의 경우 콩쿠르 우승자가 수혜자이지만, 우승자가 아니더라도 리비츠키의 귀를 만족시킨 피아니스트 역시 제안을 받게 된다. 나의 경우, 포르투 콩쿠르(2004)를 통해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초청 연주를 해왔기 때문에 아니마토 재단과는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번은 연주가 끝나고 재단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평소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아니마토 재단은 근 몇 년 동안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통과의례가 됐다. 그들을 지켜본 소감은 무엇인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사실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테크닉은 기가 막히게 좋아지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음악의 깊이가 중요하다’라는 뻔한 대답이 나올 거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점점 더 빨리 치는 것 같다!”라는 흥미로운 대답을 들었다.

Lento(느리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른 세계에 살고 있다. 전자기기는 몇 년만 지나도 어느 순간 구형이 되어있고, 더 빨라진 인터넷 속도 때문에 사람들의 인내심은 더 짧아지고 있다. 옛날 영화의 전개는 매우 느리게 느껴지며,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영상은 대부분 5분 길이로 짧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고 바다처럼 넓게 퍼져있으며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생각하는 ‘미학’의 기준이 바뀌고 있지는 않은가? 음악의 템포와 연주 스타일이 현대사회의 지나치게 빠른 템포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영향을 받고 있다면 연주자로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의나 타의에 상관없이 현대에 풍화되는 ‘속도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래전 뮌헨의 한 식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동료들과 모임을 가졌었다. 식당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앙 페라스(1933~1982)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이 번갈아 가며 긴 독백을 이어가는 것이 특징인 쇼송(1855~1899)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였다. 주목할 점은 그의 연주가 매우 느렸다는 것. 그럼에도 그가 만들어내는 바이올린의 음색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절망적이고 슬펐다. 나는 그 이유를 ‘느림’에서 찾았다.

그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음악의 템포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중 한 명은 “페라스처럼 느리게 연주하면 ‘선생님’들이 너무 느리다며 템포를 빨리하라고 다그쳤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느린 템포로 그와 같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느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당대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

슈만(1810~1856)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은 ‘매우 빠르게(Presto)’로 시작한다. 아주 빠르고 잽싸게.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다. 곡의 후반부, 코다에 가면 ‘매우 빠르게(Presto)’의 최상급인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로 바뀐다. 가능한 빨리 연주하라는 의미인가? 하지만 곡이 끝나기 직전 슈만은 ‘점점 더 빠르게(Immer schneller und schneller)’라고 적었다.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연주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니. 숨이 헐떡여진다.

슈만이 원한 것은 무엇일까? 앞뒤 볼 새 없이 숨이 헐떡여질 만큼 내달리는 기분을 청중이 느끼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 시대적 배경을 들여다보자. 당대 교통수단인 마차는 평균적으로 시속 60~70km를 달렸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가 시속 60km로 달린다면 이 속도가 얼마나 느리게 느껴지겠는가?

시속 300km를 달리는 KTX를 타고도 놀라울 게 없는 오늘날이다. 그러한 현대에 사는 청중이 이 곡을 들을 때 숨을 헐떡일 수 있는 속도의 연주를 느끼게 하고 싶다면. 무조건 더 빨리 연주해야 하는 걸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슈만이 의도하는 빠르기는 피아니스트가 단지 손을 기술적으로 움직여 연주하는 것이 아닌, 연주를 듣는 사람이 숨이 헐떡여질 만큼 다급한 ‘감정’을 느끼기를 바랐을 것이다. 손이 빠른 연주는 단지 기교에 불과하지만 ‘감정’의 헐떡임을 표현하려면 연주의 표현법부터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의 속도에만 급급한 나머지 우리는 중요한 내면을 보지 못한 채 피상적인 외형만을 쫓는다. 마치 작곡가가 표기한 빠르기를 기술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그 의미를 읽어내고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예술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빠른 템포 속에 사는 우리가 당대 느린 속도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그 너머에 있는 진실한 가치는 심미안을 키워내는 예술가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 김태형 피아니스트

김태형(1985~)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뮌헨 음대에서 수학했다. 이후 그랑프리 아니마토 콩쿠르(2008)·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10)에서 입상하여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실내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진 그는 2013년 트리오 가온을 결성해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첼리스트 사무엘 루츠커와 함께 실내악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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