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음악의 미래를 만들다,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 대표 앨런 플레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7월 24일 9:00 오전

BEHIND THE MUSIC SCENE 14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 대표

앨런 플레처

앨런 플레처(1956~)는 프리스턴대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뉴잉글랜드 음악원 원장·카네기 멜론 음악대 학장을 역임했다.
그의 작품들은 피츠버그 심포니, LA 필, 애틀랜타 심포니 등에서 초연된 바 있으며,
2006년부터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을 이끌고 있다.

 

뮤직 텐트 ©Elle Logan

자연과 함께,

음악의 미래를 만들다

어린 학생은 음악가로 대성하고,

교육자로 돌아와 다음의 꿈나무를 가꾼다

연재 |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02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 대표 케이틀린 머리 03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헤플리거 04 브레겐츠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디엠 0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06 콘세르트헤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07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이본 텀 08 서구룡문화지구 대표 베티 펑 09 대만 국립가오슝아트센터 대표 치엔 웬핀 10 도쿄 산토리홀 대표 쓰쓰미 쓰요시 11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12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 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경영감독 루카스 크레파츠 14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 대표 앨런 플레처

매년 7월,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아스펜의 거리 곳곳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 음악 학도들로 북적인다. 바로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아스펜 음악학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1949년부터 시작된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의 정식 명칭은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 및 학교’(이하 아스펜 페스티벌)로 월터-엘리자베스 부부가 주창했다. 스키 회사를 설립한 이 부부는 스키의 메카로 알려진 아스펜을 국제적인 관광 도시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름을 꼬박 채워 열리는 페스티벌은 올해 6월 29일부터 8월 20일까지 개최된다. 대략 300여 개의 행사가 기획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페스티벌을 위해 아스펜을 찾는다.

수많은 세계적 연주자를 배출해 낸 아스펜 페스티벌은 약 40국에서 온 음악 학도들과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오케스트라·실내악·독주·심포지엄·마스터 클래스·개인 레슨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훈련을 받으며, 본격적인 전문 연주자로 성장할 준비를 한다.

올해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비롯하여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길 샤함·장영주,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 등이 페스티벌을 찾아 학생들과 열정을 불태울 예정이다. 음악가들과 학생들이 교류하고 성장하는 발판을 제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앨런 플레처를 만나 아스펜 페스티벌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물었다.

앨런 플레처는 한국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그의 조부는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의 제2대 병원장이었고, 아버지는 아직도 한국말을 하신다며 한국과의 각별함을 이야기했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인터뷰를 해나가는 그의 어조에서 수많은 음악가를 탄생시킨 베테랑 선생님다운 진지함이 묻어났다.

 

자연에서 열리는, 강도 높은 음악학교

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아스펜 페스티벌로 옮겼다.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그러나 아스펜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공연 기획에도 참여할 수 있다.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Elle Logan

©Carlin Ma

페스티벌 기간에 음악학교도 함께 운용된다. 일반 음악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대학에서는 아무래도 이론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아스펜에서는 오롯이 연주 실기만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예를 들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공연 기회가 연 2~3회 정도 주어진다면, 아스펜 음악학교에서는 8주간 8개의 다른 프로그램으로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전문 오케스트라가 1년간 소화하는 프로그램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리허설 횟수도 기성 오케스트라와 똑같이 4회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몰두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와 마지막 리허설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 경험은 이후 전문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 오디션 때 큰 도움이 된다.

 

➊ 뮤직 텐트 공연 ©Grittani Creative

페스티벌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

연주 기회를 가급적 동등하게 제공하려 한다. 만약 페스티벌에서 브람스의 작품만을 다룬다면, 타악기나 하프 연주자들은 연주할 기회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브람스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즌에도 슈트라우스나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도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페스티벌이다 보니, 운영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남다를 것 같다. 반면 운영하며 느끼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지.

➋ 뮤직 텐트 외부 ©Alex Irvin

페스티벌을 통해 성장해 전문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 작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내셔널 카운슬 오디션을 통해 성악과 학생이 입단했고,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린 전공 학생이 악장으로 들어갔다. 종종 피아니스트들의 콩쿠르 입상 소식도 전해진다. 반면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원 조성이다. 학생들의 성장만큼 관객에게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기부자들의 지원이 학생들은 전문 연주자로 기르는 거름이 되고, 다시 그들이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교육자가 된다. 이 순환 구조가 이어지도록 중간에서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기부자들이 페스티벌을 통해 직접 연주자와 인연을 맺기도 한다. 관객과 연주자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때다.

 

 

➌ 관객 참여 프로그램 ©Tessa Nojaim

➍ 음악감독 로버트 스파노 ©Elle Logan

축제에서 성장한 영재는 스승으로 돌아온다

아스펜 음악학교를 거친 유수의 음악가들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핀커스 주커만·조슈아 벨·길 샤함이 이 음악학교를 거쳤고, 다시 돌아와 매년 후학 양성에 힘써주고 있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은 자신의 첫 오페라 무대가 아스펜 페스티벌이었다. 현재 페스티벌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이 다양하다. 연령에 따른 실력 차이도 있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나.

어린 참가자들도 동일한 조건으로 오디션을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재능이 출중하다. 이 말은 아홉 살이어도, 커티스 음악원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린 연주자일수록, 스타 연주자로 성장할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자 왕이나 고토 미도리, 조슈아 벨은 여덟 살부터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특히 유

자 왕은 페스티벌에 5~6회 참여 후, 15세부터는 협연자로 페스티벌을 찾을 정도로 성장했다. 16세 미만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이상의 연령대는 기숙사에서 지낸다. 보통 기악과 학생은 23세, 성악과 학생은 26세까지도 참여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역시 어린 나이부터 아스펜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와의 에피소드 중 기억나는 것이 있나.

그와 우리의 인연은 20년이 넘을 정도로 길다. 학생으로 시작해, 이제는 후학 양성을 하는 소중한 존재다. 학생들의 멘토이자 희망이다. 한 번은 장영주가 비발디의 ‘사계’를 학생들과 함께 연주한 적 있었다. 실내악 연주라 리허설 과정도 긴밀한 협의 하에 이루어졌는데, 학생들이 그에게 배운 점이 정말 많았을 것이다.

 

페스티벌에 기타 학교가 있다는 점과 랑랑 재단과 협업하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기타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기타를 가르치는 샤론 이스빈과 함께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악기와 협연할 기회가 주어지며, 매해 새로운 곡도 초연하고 있다. 랑랑 재단을 통해서는 매해 10~15명의 피아니스트를 지원하고 있다. 랑랑이 직접 페스티벌에서 학생을 지도하기도 한다.

 

아스펜 음악학교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활동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현재 전체 480명 중 38명이 한국 학생으로 다양한 전공을 가졌다. 대부분 미국에 거주 중인 유학생들이지만, 한국에서 아스펜 페스티벌을 위해 오는 학생들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출신 연주자들의 높은 음악적 수준은 교육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학생들도 열심히 노력하기에 결과 역시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화합의 시너지

올해는 배우이자 가수인 오드라 맥도날드,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가 함께한다.

오드라 맥도날드와 지휘자 앤디 에인호른이 함께 한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게 성악가와 함께 공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오드라가 협연을 하는 식이다. 막심 벤게로프 역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며, 마스터 클래스에서 협주곡을 직접 가르친다.

 

현재 음악감독은 로버트 스파노가 맡고 있다. 페스티벌 내에서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페스티벌의 기획은 최소 2년 전부터 이루어지며, 그는 기획과 지휘 학교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2025년 기획을 진행 중이다. 지휘 아카데미 또한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지휘과 학생들이 평소에는 드문, 실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얻는다. 스파노의 지도 아래 매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학생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각 분야의 훌륭한 선생은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연주자를 모으기도 쉽지 않을 텐데.

다행히 한 번 페스티벌의 교수가 되면, 오랜 기간 지도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교수를 초빙하는 경우가 드물다.(웃음) 연주 실력은 물론 교육에도 재능 있는 교수들을 모시며, 감사하게도 뛰어난 연주자들이 이곳에 교수로 초청되는 것을 좋아해 주는 편이다.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있다. 언젠가 새로운 교수를 찾아야 했는데, 축제에 참여하는 뉴욕 필의 수석 하피스트에게 빈 필의 수석을 소개 받기도 했다. 어렵게 연락처를 얻어 “아스펜에서 하프 선생을 구하고 있는데…”라고 운을 떼자마자 “네”라는 대답을 들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하피스트를 교육자로 모시는 데에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놀랍고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페스티벌이 아스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이곳의 자연을 즐기고자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스키로도 유명한 곳인데, 아스펜 경제인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여름에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아무래도 겨울에 스키를 타면, 저녁에는 피곤해서 바로 잠드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웃음) 여름에는 점심 식사 후 자전거도 타고, 쇼핑도 하고, 공연도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많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오프닝 공연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오르며, 다닐 트리포노프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조이스 양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르네 플레밍의 리사이틀(뉴욕 카네기홀 매진 공연으로, 올해 최고의 클래식 프로그램 상을 수상)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 35년간 아스펜 페스티벌을 찾은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고별 연주를 꼽고 싶다.

 

정명화 전 음악감독이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끌 당시, 벤치마킹한 축제 중 하나가 아스펜 페스티벌이었을만큼 이곳의 페스티벌과 음악학교는 성공적이다. 앨런 플레처는 “페스티벌의 목적은 다양한 학생들이 수준 높은 음악 수업을 받고 프로 음악가로 진출할 때 필요한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것”이라고 거듭 언급하며, 아스펜의 정체성이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후학양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올해도 대가의 노하우와 젊은 열정이 만드는 시너지가 아스펜의 여름을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여름의 청량한 음악 축제를 즐기기 위해, 아스펜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떤가.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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