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 피리는 노래하고, 태평소는 길을 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0월 12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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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는 노래하고, 태평소는 길을 낸다

 

최경만 ‘피리 & 태평소’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 C560288 (1CD)
최경만(피리·태평소), 김영길(아쟁), 이철주(대금), 김무경(해금) 외

 

피리와 태평소는 모두 작은 서(舌)를 물고 숨을 불어넣어 소리 내는 관악기다. 하지만 쓰임과 인상은 다르다. 대나무 관대의 피리는 관·현합주부터 노래와 춤의 반주까지 한국음악 곳곳에서 선율을 이끈다. 반면 태평소는 멀리까지 뻗는 큰 소리로 행차와 군악, 풍물판을 채웠다. 하나가 가락을 품는 악기라면, 다른 하나는 소리로 길을 내는 악기다.

두 악기를 평생 손에 쥐어온 최경만(1947~)은 16세 무렵 지영희에게 피리를 배우고, 최인서에게 태평소 가락을 익혔다. 현재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삼현육각 피리 보유자로, 경기·서울의 민간음악은 물론 서도소리까지 폭넓게 몸에 담아왔다. 이번 음반은 2008년부터 2021년까지 발표한 네 장의 음반에서 곡을 골라 묶었다. 새 녹음이라기보다 여러 시기에 남긴 연주로 한 명인의 음악 세계를 다시 그린 초상에 가깝다.

첫머리 ‘취타풍류’에서는 피리와 아쟁이 짝을 이룬다. ‘취타’는 임금과 관리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등에 쓰이던 관악 중심의 음악이다. 여러 악기가 함께하던 음악을 두 악기로 줄이고 풍류의 음악으로 새로 빚으니 선율의 윤곽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최경만의 피리가 앞에서 길을 내면 김영길의 아쟁이 낮은 음으로 발걸음을 받친다. ‘취타’로 시작해 ‘길군악’ ‘길타령’ ‘긴염불’ ‘삼현타령’ ‘별곡타령’으로 이어지는 동안 장단은 차츰 짧아지고 음악의 걸음도 빨라진다.

태평소 세 곡에 이르면, 이 악기가 지닌 또 다른 얼굴이 모습을 드러난다. ‘능게’는 시원하고 호방하다. 꽹과리·장구·북·징 위를 타고 오르는 가락에는 야외음악의 신명이 가득하다. 그러나 ‘긴염불’과 ‘긴아리랑’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긴 호흡과 섬세한 음정 유지가 쉽지 않은 태평소로 느린 선율을 밀고 당기며 노래한다. 특히 ‘긴아리랑’은 노래 한 자락이 태평소라는 몸을 새로 얻은 듯하다. 큰 소리 뒤에 숨어 있던 서정적인 면모도 드러난다.

피리독주의 ‘긴아리’ ‘자진아리’ ‘수심가’ ‘엮음수심가’에서는 최경만의 또 다른 장기가 보인다.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전승된 민요 속의 음을 굵게 떨고 밀어 올리거나 끌어내리며 새로운 표정들을 만든다. 특히 길게 뻗은 음이 흔들릴 때 사람의 목청이 들리는 듯하다. 피리가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밴 노래가 피리를 통해 다시 나오는 것 같다.

마지막 ‘염불풍류’에서는 피리 두 대와 대금·해금·장구·북이 모인다. 느린 ‘긴염불’에서 타령과 굿거리를 거쳐 ‘당악’으로 갈수록 장단은 짧아지고 속도가 붙는다. 그 중심에서 최경만의 피리는 음악의 뼈대를 세운다.

흩어져 있던 연주를 다시 모은 이 음반은 한 명인의 회고록이며, 그가 지나온 한국 민간음악의 지도다. 최경만이 한평생 불어온 숨을 따라가다 보면 피리와 태평소가 얼마나 많은 노래를 품을 수 있는 악기인지 보인다. 지난 9월 2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명인 최경만 여든 해의 울림-산수예찬’은 그 긴 음악 인생을 다시 한자리에서 펼쳐 보인 무대였다. 음반에 담긴 지난 연주와 무대 위 현재의 소리가 맞물리며, 최경만의 음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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