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김동완, 소리꾼의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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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8월 8일 9:00 오전

HIGHLIGHT

소리꾼의 유랑

뮤지컬배우 김동완

2010년 초연한 뮤지컬 ‘서편제’가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 순간에 그가 있다

뮤지컬 ‘서편제’에 서는 김동완(1979~)은 어릴 적 사촌 누나 손에 이끌려 종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서편제’를 본 기억을 꺼냈다. “당시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유봉, 송화, 동호 셋이 소리를 흥얼거리며 걸어오는 장면만큼은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그들이 고집스럽게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던, 참으로 괴상한 이야기로 기억한다고.
2017년 공연 이후 약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서편제’는 2020년 10주년 공연이 예정됐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취소됐다. 곧 원작 사용 기간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이번이 뮤지컬 ‘서편제’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무대에 김동완은 동호 역으로 선다.
‘서편제’는 소설가 이청준의 작품이 원작이다. 이후 영화와 뮤지컬로 변용되며 그야말로 ‘불멸의 이야기’가 됐다. 동일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문자, 영화는 영상으로 사건을 묘사한다. 뮤지컬은 단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감성적인 정서를 담아낸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넘버 중 특히 ‘살다 보면’은 드라마나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 유튜브 커버 등으로 수없이 불려졌다.
그룹 신화의 멤버였던 김동완이 뮤지컬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지도 어느덧 10년. 뮤지컬 ‘서편제’가 흘러온 시간과 결을 같이한다. 김동완은 2011년 ‘헤드윅’을 시작으로 평균 2년 주기로 새로운 뮤지컬 배역으로 올랐다. 이번 ‘서편제’로 새로운 ‘소리길’을 걷고 있는 김동완과 대화를 나눴다.

‘헤드윅’ ‘애드거 앨런 포’ ‘시라노’ ‘잰틀맨스 가이드’ ‘썸씽로튼’까지… 2011년부터 본인의 호흡으로 조금씩 뮤지컬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일상에서의 기억을 종종 리셋 시키곤 하는데요. 그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네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큰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라는 말처럼, 유명 연예인이기에 겪는 수많은 수모를 묻어두고 이를 발판 삼아 다음 작품으로 도약할 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여행 가기 전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짜고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특별히 한 작품을 꼽기보다 출연했던 모든 작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지금까지 선보인 역할 중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배역이 궁금한데요.
모두 ‘나에게 가장 잘 어울렸어’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이 부분이 아쉬웠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아쉽지 않았던 적이 없고, 오히려 좌절한 적이 많았죠….

그렇지만 작품마다 다른 창법을 구사한 것이 인상 깊었어요.
이번 뮤지컬 ‘서편제’를 준비하면서 ‘내가 발성 기반이 약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차가 쌓인 선후배들과 함께하며 나의 ‘소리길’을 찾고 있는 과정이에요. 마치 작품 속에 연이어 나오는 대사처럼 말이죠. 때문에 이번 작품이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가수’와 ‘뮤지컬배우’는 분명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겁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가수들이 뮤지컬배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뮤지컬배우로서 제대로 정착한 몇몇 말고는 보이질 않아요. 도전하는 가수들도 예전보다 많이 적어진 듯하고요. 가수는 재능과 매력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뮤지컬은 기능과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커리어 전환에 있어서 어떠한 훈련이 가장 많이 필요했나요?
약 4분가량 무대에서 열창하는 가수와 달리, 뮤지컬배우는 2~3시간 동안 노래와 연기를 겸하는 무대 위에 서야 하죠. 고통 속에 묵묵히 자신을 집어던지길 반복하는 사람만이 나이를 먹어서도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역시 몸을 소중히 여기고 연습을 게을리 않는 뮤지컬 선배들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참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모든 인물이 애달프게 다가오는 ‘서편제’

‘서편제’에서 ‘동호’ 역을 맡았습니다. 동호는 집을 떠났지만 ‘송화’로 상징되는 판소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돌아옵니다. 동호와 같이 본연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연예인으로 살고 있는 김동완 씨도 마찬가지일 것 같이요. 가수·뮤지컬배우·연극배우·영화배우 등 다양한 롤(role)을 소화하고 있잖아요. 극중 동호처럼 버릴 수 없는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 자신으로서의 삶입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걸 좋아하지만, 유명한 사람이 어느 지점에 올라서면 여기저기서 울타리를 들고 본인들의 무리에 가두어 놓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죠. 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쓰기 싫은 감투를 머리에 얹고, 하고 싶지 않은 말과 행동들을 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서 평생 자유를 누리려 노력해야만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편제’에서 공감이 가는 인물, 혹은 공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 있는지 궁금해요!
공감이 가지 않는 인물은 없습니다. 잘못된 행동도 그 일을 처음부터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하니까요. 이야기 말미에서 어렵게 만난 남매가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것마저도 이해됩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영화 속에서 “한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지요”라는 송화의 대사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편제’에서 얘기하는 전통과 가장 대비되는 대중음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요. 따라서 ‘서편제’에서 보여주는 ‘전통성’ 같은 것들이 보수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나요?
제가 맡은 동호는 전통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소리가 하고 싶은 지경이에요!(웃음)

이 작품의 핵심을 ‘한국인 특유의 한(恨)’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말하는 ‘한’이 좀 흐릿하게 이해돼요.
극중 이런 대사가 있어요. “사람들 중엔 자기 가슴에 한덩어리를 지니고 그것을 조금씩 갈아 마시면서 자신의 소리를 열고 더 깊게 만드는 의인들이 있대.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우리 누이는 저렇게 훨훨 날아다니는데… 난… 난… 그럴 수 있을까?” 동호가 성공에 도취해 대마초까지 손 대며 부르짖는 대사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에 대해 잘 설명한 대사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서편제’

목청껏 울고 노래하는 판소리의 매력

김동완 씨가 국악과 가까워진 계기가 영화 ‘소리꾼’(2020)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몰락양반 역을 맡았죠. 추임새를 넣는 한 장면을 위해 판소리를 배웠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낙원상가를 종종 방문하는데, 그곳에 판소리 교실을 하시던 보라사부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우연하게도 남편분이 KBS PD 출신이어서 저를 살갑게 맞아주셨어요. 판소리를 배운 기간은 짧았지만 그게 재산이 되어 이렇게 또 활동하게 되네요.

뮤지컬 ‘서편제’도 소재가 판소리를 중심을 이뤄집니다.
그래서인지 ‘서편제’를 국악극이라고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사실 ‘서편제’는 90% 이상 현대적인 음악으로 구성된 뮤지컬입니다. 송화의 정체성을 위해 ‘춘향가’ ‘심청가’가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보편적인 뮤지컬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전통 판소리의 가장 큰 특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판소리는 정교한 음악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특성을 함부로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판소리가 가진 매력을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해 보여서 참 아쉽습니다.

이번 뮤지컬 출연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요?
슬프고 슬픈 극이라 제 마음이 좀 걱정되지만, 오랜만에 목청껏 울고 노래할 수 있을 무대이기에 기대가 됩니다.

뮤지컬 ‘서편제’나 영화 ‘소리꾼’을 통해 쌓은 이미지로 나중에 도전하고 싶은 사극이 있나요?
사극은 제가 늘 하고 싶은 장르인데, 아시다시피 배우들은 누군가 불러줘야만 작품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사극을 꼭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기다려야죠.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승마를 좀 배워둘까 생각 중입니다. ‘서편제’ 이후 제가 서게 될 다음 무대는 가수로서의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PAGE1·커넥티드 컴퍼니

‘서편제’의 매체 변용 – 소설, 영화, 뮤지컬

1993년을 소위 “서편제의 시대”라고 말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임 감독은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판소리와 민요를 배우는 수강생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영화의 또 다른 성과도 있다. 바로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의 재발견. 많은 이들이 ‘서편제’의 원작을 영화로 알고 있는데, 사실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집 ‘남도사람’이 원작이다. 소설집은 총 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소설 ‘서편제’(남도사람1) ‘소리의 빛’(남도사람2) ‘선학동 나그네’(남도사람3)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흥미롭게도 영화가 흥행하자 ‘남도사람’은 ‘서편제’라는 제목으로 변경되어 발간됐다. 영화의 흥행은 그만큼 문화예술계에 큰 여파가 됐다.
뮤지컬 ‘서편제’는 2010년 초연했다. 음악감독 김문정을 비롯해 안무가 남수정,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조명디자이너 구윤영, 영상디자이너 정재진의 손끝에서 탄생한 뮤지컬은 초연 이후 2012·2014·2017년까지 총 네 시즌의 공연을 거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엮은 아름다운 선율,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영상과 조명은 원작이 가진 묵직한 감동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각자가 선택한 길을 걸어가며 겪는 아픔을 승화하고 소리를 완성하는 여정이 전통 한지를 한 겹 한 겹 덧붙여 표현한 순백의 회전무대에 감각적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