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41 |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총감독 매튜 실보크
혁신의 도시에서 다시 쓰는 오페라의 미래
매튜 실보크(1976~)는 영국 출생의 예술경영인.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와 비영리 행정 전공 과정을 이수했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를 거쳐 2016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제7대 총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숨 쉬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한계를 넘어서는 이 곳의 독보적인 DNA는 첨단 IT 기업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104번째 시즌을 맞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또한 ‘혁신과 도전’의 최전선에서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이 조직의 수장 역시 완벽주의라는 격식을 깨고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전통적인 오페라하우스의 보수적인 틀을 과감히 탈피하여 실리콘밸리식 창의적 에너지를 경영 체제와 극단 문화에 성공적으로 이식해 낸 것이다. 이러한 행보의 정점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인 김은선이 존재한다. 클래식 음악계의 판도를 바꾼 김은선 감독과의 계약 연장은 이 극단이 나아갈 대담한 로드맵과 비전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이기도 하다.
두터운 역사적 유산 위에 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김은선과 함께 정통의 깊이를 더하는 한편, 동시대의 아픔을 투영한 신작들을 무대에 올린다. 다음은 오페라단 대표인 매튜 실보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긴 역사 위에 세운 혁신의 시스템
올해 104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이 역사적인 이정표 앞에서 느끼는 소회와 책임감이 있다면?
매일 아침 무대 뒤 출입구를 들어설 때마다 오페라단이 걸어온 역사의 무게를 느낀다. 1935년, 소프라노 커스틴 플라그스타드(1895~1962)가 처음으로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 사이클을 부르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1977년 처음으로 ‘투란도트’의 칼라프 역을 맡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단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이다. 대표로서 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50년 후, 100년 후 사람들이 기억할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 질문은 내게 부여하는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감이다.
수장직을 맡은 2016년 이후부터, 9,000만 달러(약 1,200억 원)의 연간 예산과 최대 1,000명에 달하는 직원을 관리한다. 본인의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오페라 대표의 역할은 다면적이지만, 그 본질은 하나다. 오페라단의 탁월한 인재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 세상을 바꾸는 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창의성을 우선시하는 예술적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재정적 자원을 확보하며 모든 구성원이 존중과 신뢰 속에서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곳 고유의 DNA인 ‘혁신과 도전’은 오페라하우스의 경영과 조직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기술과 예술은 모두 창의적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샌프란시스코는 기술과 더불어 문화의 중심지이다. 오페라단은 오랫동안 새로운 작품, 새로운 배급 방식, 관객과 소통하는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며 ‘새로움’의 최전선에 서고자 했다. 특히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정제해 가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방식을 적용한 업무 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전통적인 오페라는 본질적으로 완벽주의를 지향한다. 그러나 혁신의 관점에서 완벽주의가 반드시 옳은 목표는 아니다. 도전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오페라단 문화 안에 녹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니벨룽의 반지’ ©San Francisco Opera

‘니벨룽의 반지’ ©San Francisco Opera
김은선과 함께 그리는 2030년의 오페라
2019년 김은선 지휘자를 음악감독으로 임명한 데 이어, 계약을 2030/31 시즌까지 연장했다. 김은선과 함께 구상하고 있는 오페라단의 로드맵은?
김은선(1980~) 음악감독은 오페라단의 예술적 탁월함이 세계 무대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도록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일례로 매년 베르디와 바그너 작품을 각 한 편씩 다루는데, 이 여정은 2028년 바그너 ‘반지’ 사이클 완성으로 이어진다. 올 시즌에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와 ‘반지’ 사이클 중 ‘라인의 황금’을 선보인다.
2027년부터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사이클을 필두로 공연을 시작해 2028년 완결한다.
‘반지’를 처음 제작한 지 10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 오케스트라에는 새로운 단원들이 합류했고, 다양한 관객층도 유입되었다. 그렇기에 2028년의 본격적인 전체 사이클에 앞서 2027년 6월 ‘라인의 황금’과, 같은 해 가을에 ‘발퀴레’를 단독 공연으로 먼저 선보인다. 이어 2028년 늦봄에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을 각각 공연한 뒤, 여름에 전곡 사이클을 무대에 올린다. 2028년 여름이 오기 전 ‘반지’ 사이클의 절반을 미리 준비하고 리허설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니벨룽의 반지’와 같이 호흡이 긴 서사를 기획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인간다움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것이 삶의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경험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오페라 관람 경험을 어떻게 간소화하고 공연 시간을 단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우리는 모든 연령대의 관객이 ‘파르지팔’과 같은 기념비적인 대작에도 깊이 몰입하며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객들이 짧고 효율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감정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나는 ‘반지’와 같은 대규모 예술 작품이 현 사회가 요구하는 정서적·문화적 갈증을 채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시몬 보카네그라’(2023) ©Hans Jörg Michel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2025) ©Ellie Kurttz_English National Opera
이번 시즌 개막작으로 ‘시몬 보카네그라’를 선택한 이유는?
‘시몬 보카네그라’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1940년 시즌 개막작으로 미국 서부 초연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당시 주역인 바리톤 로렌스 티벳(1896~ 1960)의 건강 악화로 취소해야 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이후 2008년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개막 무대를 장식했고, 이제 김은선 감독의 지휘와 아마르투브신 엥흐바트(1986~)의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
여성 작곡가 테아 머스그레이브(1928~)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1977)도 무대에 올린다.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야심 찬 세 남자 사이에서 왕좌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열 여덟 살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권력을 지닌 지도자가 감당해야 하는 고독과 무게’라는 주제는 16세기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진실이다. 이번 프로덕션은 현대 스코틀랜드의 일상과 종파 간 폭력이 교차하는 배경 속에서 작품을 재해석함으로써, 극 중의 갈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본인에게 헌정된 존 애덤스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포함하여, 지난 10년간 매해 신작을 위촉하거나 공동 제작하는 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오페라단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다. 새로운 시도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지역 사회와 함께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지난 11월 세계 초연한 ‘손오공(The Monkey King)’은 8회 공연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창의적인 여정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마약성 진통제 위기를 다룬 ‘갤러핑 큐어(The Galloping Cure)’를 비롯해 동시대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가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페라는 다른 매체에서는 불가능한 렌즈를 통해 난해한 문제를 탐구할 수 있다. 우리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여 다각도의 성찰을 끌어내고, 복잡한 사회적 이슈 속에서 각자의 공감 지점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이노센스(Innocence)’가 그러했듯, ‘갤러핑 큐어’ 역시 약물 중독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심도 있게 조명할 것이다. 오페라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한다.

‘토스카’ 리허설을 진행하는 김은선 ©Sasha Arutyunova

©Cory Weaver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세 개의 축
지난 3년간 진행해 온 ‘오페라 포 더 베이(Opera for the Bay)’ 프로그램은 관객층 확대에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오페라를 한 번도 관람한 적이 없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공연마다 최소 100석의 10달러짜리 ‘돌비 티켓(Dolby Tickets)’을 제공한다. 판매를 시작하면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인기 있는 작품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천 여장이 매진되기도 한다. 돌비 티켓을 구매한 관객의 재방문율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돌비 티켓에 활용했던 마케팅 전략을 일반 구매자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첫 방문객의 재방문율 역시 두 배로 증가했다. 시즌권 프로그램인 ‘오셔 정기권(Osher Subscriptions)’ 역시 신규 관객 유입과 관객층의 평균 연령을 낮추며, 재방문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미래 관객을 위한 지속 가능한 관객 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일이다.
환태평양 네트워크가 향후 아시아 기반 오페라단과의 본격적인 공동 프로덕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가?
물론이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을 날이 무척 기다려진다. 지금 아시아에 지어지는 오페라하우스의 수준은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생각한다. 환태평양 전역의 파트너들과 손잡고 창작 오페라부터 전통 레퍼토리까지 새로운 프로덕션을 함께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이다. 아시아와 호주, 남북미를 잇는 오페라단이 만들어낼 음악적 시너지는 상상만 해도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탄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메롤라 오페라 프로그램’과 ‘애들러 펠로십’은 어떻게 연계되는가?
우선 ‘메롤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악가들은 12주간의 집중 훈련을 통해, 운영진과 서로를 깊이 알게 된다. 향후 ‘애들러 펠로우’를 선발할 시점이 되면, 그들이 지닌 예술적 역량은 물론 학습 태도, 동료들과의 소통 방식, 자신의 커리어를 대하는 자세까지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메롤라와 애들러 프로그램의 연계는 체계적이고 밀도 높은 트레이닝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시스템이다.
위대한 도시는 위대한 문화로 정의된다
바쁜 경영 활동 속에서 자신을 다잡는 루틴은 무엇인가?
매일 아침 산책을 하며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삶의 모든 일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음을 상기하며 어떤 문제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편이다. 상황이 아무리 절박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해결책을 찾고 반대편 출구를 발견한다. 또한 ‘공연’이라는 본질과 늘 가까이 지낸다. 리허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연 중에는 객석이나 무대 뒤에 머물며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그 본질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우리가 창조하는 예술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며 눈앞의 난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를 오랫동안 지켜봐 준 후원자들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음악과 드라마가 어우러진 오페라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을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현재 예술계가 어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라도 예술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위대한 도시는 결국 위대한 문화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혁신을 이끄는 힘은 완벽함이 아닌,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 정신에서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실리콘밸리의 창의적 에너지와 김은선 감독의 리더십을 원동력 삼아 새로운 전선(戰線)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두려움 없는 결단이 바탕이 될 때, 오페라가 낡은 형식을 벗어나 음악적 지평을 새롭게 넓혀갈 수 있는 법이다. “위대한 도시는 결국 위대한 문화로 정의된다”는 총감독의 말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정은 이미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