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카 페카 사라스테, ‘헬싱키의 악단’에서 ‘세계의 악단’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0월 7일 6:00 오전

WELCOME 1 내한하는 화제의 예술가들

 

핀란드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카 페카 사라스테

‘헬싱키의 악단’에서 ‘세계의 악단’으로

역대 지휘자와 연주 프로젝트로 살펴보는 핀란드 대표 관현악단의 역사

JUKKA-PEKKA SARASTE

©Felix Broede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HPO)는 1882년에 ‘헬싱키 관현악 협회(Helsinki Orchestra Association)’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로베르트 카야누스(1856 ~1933)로, 헬싱키 시민들이 정기적으로 위대한 관현악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첫해에 출연료 없이 지휘를 맡아 1882년 10월 3일 첫 연주회를 열었다. 북유럽 최초의 상설 전문 관현악단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1885년에는 부족한 연주자의 양성을 위해 ‘관현악단 학교’를 설립하여 관현악에 대한 열정을 교육으로 확장했다.

 

북유럽 최초 전문 관현악단의 탄생과 시벨리우스

핀란드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와의 관계도 곧 시작되었다. 1892년에 ‘쿨레르보’를 시작으로, ‘핀란디아’와 교향곡 전곡 등 그의 관현악곡 대부분을 작곡자의 지휘로 초연했다. 이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카야누스의 지휘로 시벨리우스의 곡을 중심으로 연주하여 유럽 청중에게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알렸으니, 사실상 HPO가 시벨리우스의 명성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1957년 9월 30일 시벨리우스의 장례식에서도 HPO는 당시 수석지휘자 타우노 한니카이넨(1896~1968)의 지휘로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을 연주했다.

관현악이 헬싱키의 음악 문화에서 주류로 자리 잡자, 단체는 1894년에 보다 전문성을 드러내는 ‘헬싱키 필하모닉 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에는 수석 첼리스트였던 게오르크 슈네보이트(1872~1947)가 ‘헬싱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설립하면서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1914년에 두 악단은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통합되었다. 1932년, 정확히 50년 동안 HPO를 위해 헌신했던 카야누스는 마침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경쟁자였던 슈네보이트가 후임자 자리를 차지했지만,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결국 1940년에 물러났다. 1942년에 임시 지휘자로 자리에 오른 시벨리우스의 처남 아르마스 예르네펠트(1869~1958)도 격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하고 포디엄에서 내려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력의 기틀을 다지다

1945년 전쟁 후의 악단 재건은 마르티 시밀레(1898~1958)에 맡겨졌다. 단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해 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5년간의 재임 동안 악단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진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그 뒤를 이은 타우노 한니카이넨은 1951년부터 12년간 연주력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고, 핀란드 대표 관현악단으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 ©Felix Broede

그러다 1965년 요르마 파눌라(1930~)의 취임으로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핀란드를 지휘자의 나라로 키운 교육자로 알려진 그는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확보해 실력을 향상시켰고, 현대음악과 핀란드 작곡가의 신작으로 악단의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1975년에 부임한 파보 베르글룬드(1929~2012)는 재임 기간이 4년에 불과했지만, 퇴임 후인 1984년 HPO의 첫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녹음을 시작해 1987년에 이 역사적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제1회 카라얀 지휘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았던 오코 카무(1946~)는 1981년부터 재임한 7년 동안 오케스트라의 세대교체를 이끌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90년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 지휘자 세르지우 코미쇼나(1928~2005)의 취임은 그 ‘새로운 길’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었다. HPO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수석지휘자였던 그는 악단의 연주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시벨리우스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으로 3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악단의 성장을 이끈 독특한 프로젝트

1995년, 악단의 분위기를 쇄신할 지휘자로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2024)이 낙점되었다. 세게르스탐은 뛰어난 청음 능력과 깊은 몰입으로 이끄는 리허설로 단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2004년에 HPO의 두 번째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시벨리우스 이후 핀란드 대표 작곡가로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1928~2016)가 자리 잡게 한 것 또한 세게르스탐과 HPO의 노력 덕택이었다. 세게르스탐은 퇴임 후 2007년 ‘명예지휘자’라는 칭호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인 2000년, HPO는 ‘대자녀(代子女, godchild)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0년에 태어난 아이를 대자녀로 초청하고, 이에 응한 가족에게 ‘음악회에 온 곰 인형’이라는 음반을 제공한 후 이들을 7년간 봄과 가을에 초청해 아이들의 음악적 발달에 맞춰 설계된 콘서트를 열었다. 후속 연구에서는 참여 아동의 71.4%가 이 프로젝트로 인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어린 시절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HPO는 2012년에 두 번째 ‘대자녀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7년 동안 진행했고, 2020년에는 ‘HPO 키즈 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꿔 세 번째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수석지휘자로 부임한 욘 스토르고르스(1963~)는 시벨리우스 연주를 이어 가는 동시에 망누스 린드베리(1958~),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 등 동시대 핀란드 작곡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연주하며 세게르스탐의 노력을 더욱 확장했다. 2016년에 이 악단의 수장을 맡은 수산나 멜키(1969~)도 시벨리우스의 작품에서는 투명한 음향과 정교한 균형을, 현대음악에서는 치밀한 해석을 선보이면서 핀란드 음악의 전통과 현재를 함께 조명했다.

 

시민을 위한, 세계를 향한 오케스트라

‘시벨리우스&사라스테: 7개의 교향곡’
Ondine, ODE15252T

2023년 9월부터 HPO의 수석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유카 페카 사라스테(1956~)는 다시 한번 카야누스가 추구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모든 헬싱키 시민의 오케스트라’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2025년에 사라스테의 통산 세 번째, 그리고 HPO에게도 세 번째인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녹음을 마쳤고, 올해 6월 음반 ‘시벨리우스&사라스테: 7개의 교향곡’이 발매되었다. 사라스테는 시벨리우스뿐 아니라 브루크너와 말러,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동시대 작품을 프로그램에 함께 놓으며 HPO의 역사적 성과를 종합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프로그램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이으며 청중을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2023년에 처음으로 시행한 상주작곡가 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첫 상주작곡가는 영국 출신 작곡가 안나 클라인(1980~)이었으며, 캐나다 출신의 세미 무사(1984~)에 이어 2025/26 시즌에는 아이슬란드 작곡가 안나 소르발스도티르(1977~)가 맡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활동과 변화는 HPO가 추구하는 전통의 계승과 관현악단의 세계성, 그리고 ‘트렌드 리더’라는 지향성을 복합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헬싱키 필하모닉·유카 페카 사라스테 공식 홈페이지

 

PERFORMANCE INFORMATION
유카 페카 사라스테/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협연 양인모)
10월 22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시벨리우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1·2·8·9번, 교향곡 2번,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핀란드와 북유럽의 오케스트라들

핀란드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 시벨리우스 등 핀란드 음악가의 민족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은 1927년 10명의 연주자로 창단되어 1960년대에 교향악단의 규모로 성장했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 사카리 오라모(1965~) 등 핀란드 출신 지휘자들이 악단을 이끌어 왔으며, 2021년부터 니콜라스 콜론(1983~)이 수석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함경(오보에 제1수석)·에즈라 우(비올라 부수석) 등이 소속되어 있다.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 핀란드 남부 도시 라티의 시벨리우스 홀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또한 1910년에 창단된 핀란드의 대표적인 교향악단 중 하나다. 매년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다루는 축제를 개최하고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스모 벤스케·유카 페카 사라스테 등을 거쳐 2025년부터 핀란드 출신 지휘자 한누 린투(1967~)가 예술 파트너이자 시벨리우스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악단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투르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투르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다. 1790년 투르쿠 음악 협회가 설립되며 탄생한 악단은 1927년 핀란드 남서부에 위치한 투르쿠 시에 인수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욘 스토르고르스가 상임지휘자로, 덴마크 출신 크리스티안 클룩센(1981~)이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2022년 송다인이 플루트 수석으로 임명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북유럽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 1902년 설립된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 상주하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이다. 매년 노벨상 시상식 관련 행사에 참여하며, 연령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및 아카데미, 온라인 공연 영상 플랫폼 ‘콘서트하우스 플레이’ 등을 운영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앨런 길버트(1967~), 사카리 오라모 등의 지휘자가 악단을 이끌어 왔고, 2023년부터 미국 출신 라이언 밴크로프트(1989~)가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1987~)이 2025/26 시즌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했고, 비올리스트 박경민(1990~)이 최연소 수석에 임명된 바 있다. 2014년부터 이원희가 제2바이올린 단원으로 재직 중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 스웨덴 예테보리 콘서트홀 상주 악단인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05년 창단되어 1996년 스웨덴의 ‘국립교향악단’ 칭호를 받았다. 1982년부터 네메 예르비(1937~)가 수석지휘자로서 시벨리우스와 그리그 등의 작품을 녹음해 예테보리 심포니의 음악적 역량을 끌어올렸다. 구스타보 두다멜(1981~)·산투 마티아스 루발리(1985~) 등의 수석지휘자를 거쳐 현재 캐나다 출신 바바라 해니건(1971~)과 핀란드 출신 페카 쿠시스토(1976~)가 수석객원지휘자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 단원으로는 최연재(1998~)가 첼로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 또한 북유럽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손꼽힌다. 1919년 창단된 오슬로필은 시벨리우스와 아르투르 니키쉬(1855~1922)를 거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1927~), 마리스 얀손스(1943~2019) 등의 지휘자와 호흡을 맞췄다. 2020년부터 2026년 5월까지 핀란드 출신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1996~)가 수석지휘자로 활동해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등을 녹음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김홍박(1982~)이 호른 수석으로 재직했다.

덴마크 덴마크 국립교향악단 ● 덴마크 코펜하겐의 DR 콘서트홀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덴마크 국립교향악단은 1925년 국영 라디오 방송국 설립과 함께 창단됐다. 1967년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초대 수석지휘자로 부임한 이후 레이프 세게르스탐·토마스 다우스가드(1963~)를 거쳐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루이지(1959~)가 수석지휘자로 2016년부터 악단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현재 홍수진(악장)·홍수경(첼로 수석)·박철근(첼로 단원)이 악단에 소속되어 있다.

글 장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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