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 소호플레이스 ‘타오 오브 글래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0월 12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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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플레이스 ‘타오 오브 글래스’ 7.25~9.12

 

글래스의 현대 음악을 ‘철학’과 ‘상상’으로 물들이다
한 음악가를 지극하게 동경한 어느 연출가의 최종 결실

‘타오 오브 글래스’ ©Johan Persson

 

 

 

 

 

 

 

예술가의 집착은 작품이 된다. 어린 시절 같은 음반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펠림 맥더모트(1963~)는 훗날 자신이 동경하던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는 연출가가 됐다. ‘타오 오브 글래스’는 한 작곡가의 음악을 오랫동안 사랑해온 한 예술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한다.

제목의 ‘글래스(Glass)’는 미국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필립 글래스(1937~)의 성이다. 짧은 음형을 반복하면서 미세한 변화를 겹겹이 쌓아가는 음악으로 잘 알려진 그는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1976)과 영화 ‘디 아워스’(2002)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2019년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에서 초연되고 이번에 런던 소호플레이스 무대에 오른 ‘타오 오브 글래스’는 글래스의 음악을 중심에 두고 연극적 스토리텔링과 라이브 연주, 퍼펫과 오브제 퍼포먼스를 함께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원작 애니메이션을 연극으로 각색한 ‘이웃집 토토로’(2022)의 연출로 2023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맥더모트가 썼고, 커스티 하우슬리(1978~)와 공동 연출했다. 맥더모트는 세 명의 인형 조종사와 함께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대 한쪽에는 피아노·바이올린·클라리넷·타악기로 구성된 연주자들이 자리하여, 글래스가 이 작품을 위해 쓴 10곡의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펠림 맥더모트 ©Johan Persson

 

 

 

 

 

 

미완성의 파편을 새로 빚다

이 작품을 만든 계기는 맥더모트와 글래스가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였다. 둘은 모리스 센닥(1928~2012)의 그림책을 함께 무대화하려 했지만 센닥의 죽음으로 작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한 작품 역시 창작자의 삶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에 어린 시절과 꿈, 삶과 죽음, 도교적 사유와 글래스의 음악이 더해졌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의 조각들은 새로운 공연의 재료가 됐다.

맥더모트는 글래스의 음악이 자신의 삶을 관통해 흐르는 강물과 같았다고 말한다.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의 맥더모트가 있다. 그는 글래스의 음반을 반복해서 들었고, 훗날 동경하던 작곡가를 몰래 따라갔던 일화를 털어놓기도 한다. 팬과 우상의 관계로 시작한 인연은 어느 순간 창작자와 창작자의 관계로 바뀐다. 맥더모트는 글래스와 함께 오페라 작업을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음악을 무대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 됐다. ‘타오 오브 글래스’는 서로 다른 언어로 예술을 만드는 두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악가는 새로운 곡을 건네고, 연출가는 그 음악에서 떠오른 이미지와 생각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도교적 사유

‘타오 오브 글래스’는 처음에는 맥더모트의 기억을 따라가는 자전적인 독백극처럼 시작한다. 맥더모트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글래스의 음악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자연스럽게 한 예술가의 성장담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게 되지만 서사는 희미해진다. 대신 음악이 길게 이어지고, 인형과 그림자, 꿈과 삶과 죽음에 관한 단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을 밀어가는 대신 기억과 음악, 철학과 이미지의 조각들이 무대 곳곳에 흩어진다.

여기서 제목의 ‘타오’가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타오(Tao)’는 ‘도(道)’를 뜻한다.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은 무엇인가를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중시한다. ‘타오 오브 글래스’의 이야기도 정해진 방향을 따르기보다 자유롭게 흘러가며, 때로는 맥더모트가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듯하다. ‘도’라는 요소는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보다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주목하게 한다.

작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실마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 수선 방식인 ‘킨츠기(金継ぎ)’다. 공연 중 맥더모트는 깨진 도자기의 균열을 감추지 않고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인 뒤 그 틈을 금으로 드러내는 이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깨진 흔적까지 새로운 아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타오 오브 글래스’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 꿈과 죽음, 퍼펫과 음악을 하나의 매끄러운 서사로 정리하지 않는다. ‘도’가 작품이 흘러가는 방식을 보여준다면, 킨츠기는 그렇게 흩어진 재료들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Johan Persson

©Johan Persson

 

추상에서 형상으로

음악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장면이 많지만 공연의 호흡은 상당히 느리다.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고, 하나의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맥더모트가 추상적인 생각을 연극적 이미지로 바꾸는 순간들은 강렬하다. 글래스의 음악 위로 사람과 오브제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귀로 듣는 음악은 무대 위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악보가 인쇄된 커다랗고 얇은 시트들이 무대 위로 쏟아져 내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세 명의 인형 조종사가 그것들을 하나씩 모아 붙잡고 형태를 만들면, 조금 전까지 흩어져 있던 악보는 어느 순간 피아노 앞에 앉은 글래스의 형상이 된다. 음악을 기록했던 종이가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몸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피아노 내부의 해머와 구조물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으로 변하고, 종이와 악보, 인형과 사람의 몸은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무엇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눈앞의 물질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는 순간,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빛났던 맥더모트의 연극적 상상력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흩어진 악보가 모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듯, 이 공연 역시 맥더모트의 삶에 남은 여러 조각에서 태어났다.

십 대 시절 글래스의 음악을 집요하게 반복해 들었던 기억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도 예술가에게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오래된 동경은 글래스와의 협업으로 이어졌고, 미완성으로 남은 작업은 새로운 창작의 재료가 됐다. 깨진 조각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킨츠기처럼, 맥더모트는 자신의 기억과 집착, 실패를 다시 이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했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소호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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