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IS NOW
피아니스트 임주희
받은 빛으로, 준비하는 또 다른 무대
메세나가 건넨 기회에서 다음 세대를 향한 다짐까지, 임주희가 말하는 음악의 가치

©Shin-Joong Kim
젊은 연주자가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피나는 노력만큼이나 지속적인 무대와 꾸준한 신뢰다.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자신이 향했던 믿음을 언젠가 다른 신진연주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8일, 홍석원이 이끄는 국립심포니콘서트오케스트라와의 협연부터 27일 뉴욕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룬 리와 함께한 실내악, 그리고 이번 11월에 이어질 협연과 콩쿠르 결선까지. 독주와 협연, 실내악을 유려하게 오가며 분주한 가을을 관통하고 있는 임주희를 만나 무대의 진짜 의미와 음악을 나누는 온기에 관해 물었다.
무대와 사람을 잇는 음악을 꿈꾼다
11월 4일에 오를 ‘희망 Dream NEXT Concert: STAGE’는 한국증권금융 꿈나눔재단의 신진유망연주자 지원사업으로 마련된 무대다. 이처럼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신진연주자들에게 어떻게 실질적으로 힘이 된다고 느끼나?
젊은 음악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대’다. 신진연주자 입장에서는 기회의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장기적 부담이 있는데, 누군가 가능성을 믿고 꾸준히 지원해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힘이 된다. 경제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계속 음악을 해도 좋다’는 환경과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지원일 수도 있다. 이번 지원을 통해 새로운 관객과 연결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이번 사업에 선정된 후, 여러 매체를 통해 활동을 알릴 기회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본 무대에서는 정치용이 지휘하는 트리니티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협연한다. 난곡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해석의 방향은?
기술적인 난곡으로 악명이 높지만, 난이도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음악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긴 곡이 하나의 큰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클라이맥스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에 앞선 작은 프레이즈들과 긴장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니까.
자신이 받은 기회를 다음 세대에 이어주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앞으로 무대에서 느낀 감정과 음악을 통해 받았던 힘을 관객이나 후배 음악가들과 나눌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아직 배워가는 과정에 있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음악가 말이다.
경쟁의 무대에서 참된 음악을 말하다
11월에는 미국 하이디 헤르만스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최종 3인으로 무대에 오른다. 결선까지 중요하게 지켜온 연주 원칙이 있다면?
음악 안에서 느끼는 이야기와 흐름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봐주셔서가 아닐까 싶다. 무대에 올라가면 가능한 한 준비한 음악 안에 완전히 들어가려고 한다. 늘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곡을 어떻게 진심으로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11월 14일에 열리는 콩쿠르 결선에서 세 명의 참가자는 각각 45분씩 연주한다. 긴 프로그램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다.
바흐와 쇼팽, 라벨과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이번 콩쿠르를 위해 새롭게 쓰인 새뮤얼 애덤스의 위촉작 ‘Arpa’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음악적 언어를 가진 작품들을 하나의 흐름 안에 담으려고 했다. 특히 현대곡인 위촉작이 다른 작품들과 동떨어져 들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전체 음악적 여정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 청중이 다섯 작곡가의 작품을 각각 기억하는 것을 넘어, 45분의 연주를 하나의 이야기로 느꼈으면 한다.
10월 말, 뉴욕 코지우스코 재단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룬 리와 실내악으로 호흡을 맞췄다. 솔로 무대와 비교했을 때, 실내악 무대에서 피아노가 지녀야 할 가장 이상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그 무대에서 쇼팽 발라드 2번과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실내악에서 피아노가 이상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곡에 따라 음악을 이끌어야 할지, 다른 연주자를 빛나게 해줘야 할지 판단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지는 이미 나와 있다. 모든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듯이, 내가 중심이 아닌 순간에는 소리를 잘 조절하면서, 다른 연주자를 밝게 비춰줄 수 있는 은은한 빛이 되고자 한다.
어린 시절 ‘유망주’에서, 이제는 스스로 음악적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다. 연주자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달라졌나?
어릴 때는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현재는 어떤 레퍼토리를 선택하고, 어떤 무대에 도전하며, 어떤 음악가가 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다. 자유가 커진 만큼 책임감도 커졌고 성공과 실패 모두 내 몫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누군가가 기대하는 모습보다, 스스로 믿는 음악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음악가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한때 ‘객석’의 연재 코너 ‘아티스트 에세이’에서 젊은 음악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솜씨가 매우 훌륭했다. 그림에 대한 재능은 언제부터 알았고, 음악 활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생후 36개월쯤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림도 늘 그 곁에 있었다. 어릴 때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을 참 좋아했는데, 영화배우들을 그리다가 나중에 연주 활동을 하면서 음악가들을 그리게 됐다. 그림은 한정된 캔버스 안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여백으로 남겨둘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여백을 다루며 훈련된 감각이 무대 위에서 음색을 빚어내고 곡의 분위기와 장면을 상상할 때 아주 깊은 영감이 되어준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한국메세나협회
임주희(2000~) 9세에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줄리아드 음악원 학사·석사과정(로버트 맥도널드 사사)을 마쳤고, 예일대에서 보리스 베르만을 사사하며 최고연주자과정를 밟고 있다. 지나 바카우어·클라라 하스킬 피아노 콩쿠르 등에 입상했고, 런던 심포니·서울시향·도쿄 필하모닉 등과 협연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희망 Dream NEXT Concert: STAGE’
정치용/트리니티 필하모닉(협연 임주희·김다미)
11월 4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