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무용수 김별,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8월 18일 10:05 오전

RISING STAR

 

발레 무용수 김별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빈의 러브콜을 받은 무용수에게 국립발레단에서 밟아온 5년의 여정을 묻다

2024년 ‘계절; 봄’(이영철 안무)에 출연한 김별 ©Andrej Uspenski

 

 

 

 

 

 

 

 

 

 

이곳의 세계는 꽤나 냉정하다. ‘인턴’의 위치인 준단원과 코르드발레 시기에 군무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드미솔리스트를 거쳐 솔리스트로 승급한 뒤에야 비로소 주역을 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다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승급 이후에도 위치에 걸맞은 기량을 갖췄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이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등급제를 거스르고 주인공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발레의 세계에서 김별(2003~)은 혜성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1년, 열아홉 나이로 국립발레단 준단원으로 입단한 김별은 2024년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과 ‘돈키호테’의 키트리·메르세데스 역, 존 노이마이어 ‘인어공주’의 인어공주 역에 ‘깜짝’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놀라움도 잠시, 2025년에는 ‘카멜리아 레이디’의 마농·올랭피아 역까지 꿰찼다. 코르드발레, 즉 군무 단원이 내로라하는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솔리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그러니 지난 6월 들려온 그의 빈 국립발레단 입단 소식은 놀라웠지만, 의외의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한 번도 어려웠을 일생일대의 기회가 몇 번이나 그에게 찾아왔던 건 우연이 아닐 테니. 하지만 길지 않은 경력에도 매 순간 수많은 안무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의 매력이 무엇일지는 무척 궁금했다. 아니, 그 전에 ‘김별’은 어떤 사람일까. 그런 호기심부터 피어났다.

 

한 장의 챕터를 마무리하며

지난 6월 전주에서 열린 ‘백조의 호수’ 무대를 끝으로 김별은 국립발레단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막이 내리는 순간에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후련하고 뿌듯하기도 했죠. 한 장의 긴 챕터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랄까요.” 다가올 출국을 앞두고 그간 미뤄두었던 일상을 천천히 되찾고 있는 그는, 마지막 공연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국립발레단의 익숙한 품을 떠나 그가 향하는 새로운 보금자리는 ‘문화예술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발레단이다. 2024년 영국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스’에 오른 이영철 안무작 ‘계절; 봄’의 무용수로 참여했고, 그때 인연을 맺은 빈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알렉산드라 페리에게 안부차 보낸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가 뜻밖의 입단 기회로 이어진 것. “빈 국립발레단의 무대에서는 작품마다 무용수의 개성과 예술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요. 무대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죠.”라며, 김별은 동경했던 발레단에 합류하게 되어 설레는 마음을 물씬 드러냈다.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입단 전까지 체력 관리에 신경 쓰며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겠다는 발레리나에게서 스물넷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프로’로서의 면모가 돋보이기도 했다.

 

군무와의 호흡으로 깨달은 또 다른 책임감

김별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성장’과 ‘책임감’이었다. 기대도, 설렘도 아닌 책임감. 어린 나이에 홈스쿨링을 병행하며 발레를 배운 김별은 매일같이 연습과 레슨으로 하루를 보내며 외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입단을 준비할 때는 그저 좋은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어요. 물론 몸이 지치거나 힘든 순간은 있었지만, 발레를 좋아했고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준단원으로 시작해 국립발레단에서 차근차근 승급 단계를 밟아 온 김별은 무엇보다 군무를 통해 “무대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같은 호흡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서로를 믿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다년간의 군무 경험은 주역을 연기할 때도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군무 단원들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함께 만들어 가면서, 김별은 주역이라는 큰 의미를 느끼는 동시에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지난해 또 다른 주역인 마농과 올랭피아 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를 꼽았다. 처음으로 드라마 발레를 경험한 작품이자, 무용수로서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역할에 깊이 몰입했던 기억이 나요. 드라마 발레는 단순히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는 장르니까요. 무대에 설 때마다 매번 다른 인물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과정이 정말 행복했어요.”

 

행복하게 춤추고 싶은 발레리나

그간 국립발레단에서 미처 다 경험해 보지 못해 아쉬운 점은 없을까. 김별은 “어린 나이에 입단해서 다양한 작품과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무용수로서도 많이 성장했다”며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다”는 마음을 전했다. “물론 더 많은 작품과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늘 있지만, 그건 아쉬움이라기보단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가고 싶은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 국립발레단 단장 강수진(1967~)과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영철(1978~)을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스승으로 떠올리기도 했다. 그들은 무용수로서 갖춰야 할 기술뿐 아니라 마음가짐을 가르치며, 후배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믿어주는 스승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은 해외 진출을 앞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약 5년의 발레단 생활 동안 실력과 내면을 쌓아온 김별. 어느 날 무대 위에서 느낀 “박수 받을 때의 행복감”을 따라 발레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 어린 무용수는 군무와 주역, 두 자리를 오가며 남다른 책임감을 지닌 발레리나로 성장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목표는 ‘춤출 때 가장 행복한 무용수’가 되는 것이라고. “제가 행복하게 춤을 춰야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니까요. 앞으로도 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주어진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춤추는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장지현 기자 사진 국립발레단

김별(2003~) 예원학교를 거쳐 홈스쿨링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2021년 국립발레단에 준단원으로 입단했다. 국립발레단의 2024년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에 발탁된 후 ‘인어공주’의 인어공주, ‘카멜리아 레이디’의 마농·올랭피아 등 주역을 맡았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탄츠올림프 무용콩쿠르 등에서 입상했고, 올해 9월 빈 국립발레단 입단을 앞두고 있다.

 

ABOUT

빈 국립발레단을 거쳐 간 한국 무용수들

빈 국립발레단은 1920년 창단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발레단이다.

빈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가장 먼저 활약한 한국 무용수는 현재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로 재직 중인 김기민(1992~)이다. 그는 2018년 ‘해적’의 콘라드 역과 ‘지젤’의 알브레히트 역으로 활약하고, 2019년 누레예프 갈라 공연에서 주역을 맡는 등 ​객원무용수로 빈 관객에게 이름을 알렸다.

정식 단원으로 입단한 첫 한국 무용수는 강효정(1985~)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활동한 그는 2021년 빈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해 2025년까지 수석무용수로 활약했다. 현재는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 수석무용수로 재직 중이다. 이어 심지은이 2024/25 시즌부터 빈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코르드발레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김별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빈 국립발레단에서 한국 무용수의 계보를 잇고 있다.

김기민 ©Marinsky Theatre

강효정 ©Andreas Jakwerth

심지은 ©Andreas Jakwe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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