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42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헬싱키 필하모닉 총감독 야리 에스콜라
시벨리우스의 도시에서, 음악의 미래를 묻다

©Maarit Kytöharju
야리 에스콜라(1973~)는 음악학을 전공한 뒤 악보 출판과 저작권 관리, 오케스트라 기획 등 클래식 음악 산업계에서 30여 년간 활동했다. 출판사 페니카 게르만(Fennica Gehrman) 책임자와 쿠오피오 음악센터·쿠오피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총감독을 거쳐 지난해 헬싱키 필하모닉 총감독에 취임했다. 시벨리우스 작품의 악보 편집과 편곡에도 참여했으며, 노벨상 시상식에서 연주되는 스웨덴 국가 편곡을 맡기도 했다.
발트해의 바닷바람이 푸른 침엽수림 사이를 지나고, 호수마다 맑고 청량한 빛이 고이는 나라 핀란드. 이곳에서 탄생한 음악을 140여 년간 품어온 헬싱키 필하모닉이 오는 10월 20~22일,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1882년 창단된 헬싱키 필하모닉은 북유럽 최초의 상설 오케스트라로 핀란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함께해 왔다.
2011년 8월 헬싱키 뮤직센터 개관 행사에서도 그 역사는 이어졌다. 헬싱키 필하모닉과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합창단이 함께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지휘한 이는 유카 페카 사라스테(1956~)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헬싱키 필하모닉은 다시 사라스테와 함께 창단 이래 첫 내한 무대에 오른다.
이곳의 총감독 야리 에스콜라는 서면으로 보낸 질문에 며칠 지나지 않아 빼곡한 답변을 보내왔고, 화상으로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글만으론 부족했던 답변을 입체적으로 채워 넣었다. 세심함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음악학과 해석학을 공부하고, 악보 출판사를 운영하며 저작권과 원전을 다뤄온 이력처럼, 그는 근거를 확인하고 맥락을 파고드는 사람이다. 그 성정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케스트라 예산의 항목 하나하나를 정확히 짚어내고, 100명이 넘는 단원과 한 명씩 커피를 마시며 이들의 사정을 파악하는 사람. 헬싱키 필하모닉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에스콜라가 아닐까?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사서에서 총감독까지, 단단하게 다진 성장
음악학자로 출발해 출판과 저작권, 오케스트라 경영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출발점에 있던 음악학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사고방식과 시선을 남겼나?
음악학이 내게 준 소중한 자산은 지적 호기심을 실무에 적용하는 힘이다. 문헌을 탐색하고 출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복잡한 해석 속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능력. 지금도 악보와 문헌을 파고들던 당시의 태도를 떠올린다. 또한 방대한 음악사와 여러 양식을 독파해 온 시간은 악단 운영에 정교한 지도가 되어줬다. 시즌 레퍼토리를 기획할 때도 작품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떤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는지까지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보 출판사 페니카 게르만(Fennica Gehrman)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
출판업계의 경험은 창작자, 즉 저작권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주었다. 스타 지휘자나 솔리스트와 달리, 정작 음악의 원천을 빚어내는 작곡가들은 무대 뒤편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나는 창작자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에 걸맞게 존중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내부 단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오케스트라의 부속품이 아니라 빛나는 예술가로 무대 위에 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매 시즌 단원들이 협연자로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스물 여섯 살에 헬싱키 필하모닉에서 1년간 근무했던 시절을 ‘황금 같은 한 해(Golden year)’라고 표현했다. 기억나는 일화가 있을까?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헬싱키 필하모닉에서 오케스트라 사서로 일했다. 1년이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한 시간이었다. 잊지 못할 순간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가 자신의 작품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했던 공연이다. 리허설이 끝난 뒤 그와 함께 헬싱키 시내를 거닐며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펜데레츠키는 연습실에 올 때마다 새로 작곡한 악보를 건네며 독일 마인츠의 출판사로 부쳐달라 부탁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머니에서 배송비를 꺼내 쥐여주던 그의 손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웃음), 세계적인 거장의 신작이 완성되는 과정에 아주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헬싱키 필하모닉으로 돌아왔다. 부임 후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악단은 20여 년 전보다 훨씬 국제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젊고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연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악단 전체에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업무가 지닌 ‘연속성’이다. 이 자리에 왔을 때는 다음 투어와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리더십은 새로운 것을 불쑥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흐름을 이해한 후 점진적으로 나만의 결을 더해가는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
협업형 리더십은 실제 조직 운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 여러 관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논의의 장에 부치지만, 최종 방점을 찍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다. 설령 모두가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과 맥락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핀란드 사회 특유의 맥락도 깃들어 있다. 헬싱키 필하모닉의 총감독은 재정과 행정, 예술경영 전반을 아우르는 공무원 신분이다. 협업형 리더십은 조직 내부 단원들의 지식과 경험, 헌신을 바탕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단원들과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들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방식인데, 굳이 개별적인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해 존재한다. 무대 위 연주자들이 없다면 행정 조직 역시 존재 이유가 없다. 102명의 단원과 1:1로 깊이 연결될 때, 비로소 동료가 된다. 조직 내에서는 은근한 압박으로 속내를 털어놓기 힘든 순간들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는 1:1 미팅은 단원들이 솔직해질 수 있는 안전지대다. 부임 첫해 동안에는 약 50명에 달하는 단원들을 만났고, 그 시간 동안 정말 원 없이 커피를 마셨다(웃음).
모두에게 열린 음악을 위하여
부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과제는 무엇이었나?
조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가 가진 고유의 강점과 과제, 사람과 재정, 그리고 수십 년간 다져진 일의 맥락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상임지휘자 유카 페카 사라스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그리고 클래식 레이블 ‘온딘(Ondine)’과 새로운 녹음 계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며 오랜 협력의 장을 다시 열었다.
헬싱키시 산하의 오케스트라로서 공공 예산과 자체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연간 총예산은 약 1,100만 유로(한화 약 170억 원)다. 이 가운데 자체 티켓 판매 수익이 약 10%, 핀란드 중앙정부의 법정 지원금이 약 20%를 차지하고, 나머지 70%는 시가 지원한다. 공공 재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전형적인 핀란드식 모델이다. 공공 문화 서비스로서 티켓 판매도 중요하지만, 악단의 존재 목적은 결코 이윤 창출에만 있을 수는 없다.
평균 객석 점유율이 90%를 웃돈다. 정말 이상적인 수치인데?
다섯 종류의 정기구독 시리즈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고, 충성도 높은 고정 관객층이 있으며 그 위에 개별 티켓 판매가 더해지는 구조다. 더불어 헬싱키시가 지향하는 ‘공공서비스’라는 정체성이 더해진다. 티켓 가격도 대략 5~50유로 수준으로, 가장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정부가 극장과 오케스트라, 박물관에 재정을 투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모든 사람은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유네스코 인권선언의 철학 때문이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 ©Felix Broede
유산을 잇고, 새로운 방식을 찾다
시벨리우스의 초연 오케스트라로서 그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벨리우스는 헬싱키 필하모닉의 유전자이자 악단이 품은 강력한 서사다. 그는 교향곡 1번부터 6번까지,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수많은 걸작을 직접 지휘하며 초연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헬싱키 필하모닉 ‘최초의 상주 작곡가’였던 셈이다. 시벨리우스라는 이름이 독보적이다 보니,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다른 핀란드 작곡가들의 빛을 가리는 양면성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유산을 계승하는 방식을 두 갈래로 가져가고자 한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끊임없이 무대 위로 불러내는 동시에, 그의 명성에 가려졌던 핀란드 작곡가들의 보석 같은 작품들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핀란드와 북유럽에서 오늘날 뛰어난 작곡가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촘촘한 네트워크 밀도에 있다. 인구 약 560만 명의 국가에 30여 개의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고, 음악대학의 규모도 아담하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와 작곡가, 지휘자가 자연스럽게 함께 활동한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마그누스 린드베리(1958~),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 칼레비 아호(1949~) 같은 거장들이 있다.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핀란드 음악계는 상당한 다원주의를 보여준다. 과거 총렬주의(음높이·리듬·셈여림·음색 등 음악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일정한 ‘열’에 따라 조직하는 작곡 기법)와 아방가르드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나, 지난 15년 사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며 현재는 조성음악을 쓰든, 어떤 양식을 택하든 스승 세대의 미학을 강요하는 교조주의가 사라졌다.
2026/27 시즌부터 본격화된 ‘Orchestra on Its Own(오케스트라 스스로)’은 단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프로젝트다. 어떻게 시작됐나?
2026/27 시즌부터는 전체 시즌 중 3주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배정된다. 출발점은 단원들 스스로의 갈증이었다. 보다 실내악적인 호흡으로 서로의 소리를 밀도 있게 듣고, 음악적 해석의 책임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의 바람이다. ‘지휘자-악장-수석진-단원’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위계를 잠시 허물고, 모든 단원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동등한 자리에서 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초안은 예술위원회 내 단원 대표들의 아이디어이며 기획팀은 실무적 조율을 돕는 조력자다. 실제 리허설 과정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수석들이 먼저 모여 곡의 뼈대와 방향을 다듬고, 무대 위에서는 모든 단원들이 평등하게 서로를 바라보되 악장이 중심축을 맡는다. 특정 악기의 독주가 나오면 해당 연주자의 예술적 해석을 존중하며 따라간다.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방식이 헬싱키 필하모닉에는 아주 낯선 경험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헬싱키 필하모닉에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 2024)이 수석지휘자로 재임하던 시절(1995~2007)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집단 내부에는 이미 창의성이 살아 숨 쉬고 있으므로 굳이 지휘자가 필요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300곡이 넘는 교향곡 중 상당수는 애초에 지휘자 없이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젊은 시절 그의 교향곡 두 곡의 악보 정서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큐를 준다’ ‘팀파니를 들어라, 이게 시작 신호다’와 같은 구체적인 지시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이미 할 줄 아는 것을 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호기심 많은 연주자 집단이다.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Felix Broede
한국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10월 20~22일, 헬싱키 필하모닉은 대구·대전·서울에서 창단 이래 첫 한국 공연을 갖는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의 지휘로 양인모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시벨리우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과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첫 한국 방문을 앞둔 소감은?
핀란드와 한국은 도시와 대학, 여러 문화기관을 잇는 끈끈한 협력으로 맺어져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 역시 양국의 단단한 유대 속에서 진정한 문화 사절의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젊고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그는 지난 2022년 헬싱키에서 열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핀란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번 내한 공연의 솔리스트와 레퍼토리가 두 나라의 깊은 음악적 전통 사이에 특별한 대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임기 동안 헬싱키 필하모닉을 어떻게 이끌고 싶은가?
미래의 모습을 굳이 미리 그려두고 싶지 않다. 오케스트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자연스럽게 진화해 나갈 것이다. 핀란드 사회의 개방성과 교육, 신뢰와 사회적 안정, 그리고 헬싱키가 품은 국제적 지향성이 그 밑거름이다. 사회적 배경과 악단의 지향점이 맞물릴 때, 오케스트라는 공공 자금의 안정적인 뒷받침 속에서 지역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으며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10년 뒤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성공적인 여정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자연스레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헬싱키 필하모닉이 시벨리우스라는 위대한 이름 속에서 자신들만의 단단한 정체성을 벼려왔듯, 언젠가 한국의 오케스트라들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과 결을 지닐 수 있기를. 더 많은 한국 작곡가의 선율이 무대 위에 오르고, 그 선율들이 차곡차곡 쌓여 깊은 소리와 영혼을 완성해 가는 날을 조용히 그려본다.
글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헬싱키 필하모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