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REVIEW |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한 시대에 묻어나는 현악 4중주의 매력
이든 콰르텟 리사이틀
8월 10일 오전 11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이든 콰르텟이 6번째 리사이틀을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기에 걸친 프로코피예프·드뷔시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정주은·이소영(바이올린), 임지환(비올라), 정우찬(첼로)으로 구성된 콰르텟은 프레미오 파올로 보르치아니 콩쿠르 2위로 주목 받은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연의 문은 프로코피예프 현악 4중주 1번이 열었다. 1악장의 시작부터 제1바이올린의 강한 존재감이 드러났다. 2악장은 느리게 시작하지만 곧 비바체의 신경질적인 질주 속에 삼켜지는데,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연주가 이어졌다. 피날레인 3악장에서 이든 콰르텟은 홀의 분위기에 적응한 듯 한층 풍부한 음악을 펼쳐냈다. 이어진 드뷔시 현악 4중주 g단조에서는 음색을 바꾸어 드뷔시 특유의 질감을 만들어냈다. 롯데콘서트홀의 울림은 다소 짙은 편인데, 앞선 프로코피예프 연주에서는 더 ‘날것’에 가까웠으면 하는 음색이 다소 희석되는 듯한 아쉬움도 있었으나 드뷔시에서는 그 잔향이 잘 어울렸다. 우아한 분위기의 1악장과 다소 재치가 느껴지는 2악장에 이어 3악장에서는 편안함 속에서도 일말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4악장은 시원한 피날레로 마무리됐다.
2부에서 연주자들은 의상을 갈아입었다. 흑백 계열이었던 1부와 달리 진홍색 옷차림이 돋보였는데, 2부를 장식한 프로코피예프 현악 4중주 2번 ‘카바르디니안’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했다. 첫 곡으로 연주된 1번보다도 한층 더 날카롭게 치고 나온 제1바이올린은 대번에 관객의 집중을 이끌었다. 특히 이 곡은 가장 많은 준비를 한 듯, 전 악장 내내 뜨거운 에너지가 쏟아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앙코르는 황재인의 ‘아리랑 날리라’가 장식했다. 4년 전 같은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이든 콰르텟의 첫 단독 데뷔 리사이틀에서도 오른 이 작품에는 여러 지역의 아리랑 가락이 엮여 있었다. 현대적인 화성과 주법으로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흐름은 본 프로그램들과도 동일한 맥으로 연결되었다.
전체적인 연주에서 이든 콰르텟에 드러나는 것은 안정감과 균형이었다. 모난 구석 없이 촘촘하게 쌓아올린 그들의 소리에는 서로 호흡하는 실내악의 매력이 한껏 묻어났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스테이지원
그가 ‘악마’라고 불린 이유
뮤지컬 ‘파가니니’
6월 20일~8월 30일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김은영(작곡·연출)/임세영(작곡·음악감독)/정도영(안무)/
콘(KoN)·홍석기·홍주찬(파가니니), 김종구·김경수·윤형렬(루치오), 안리나·유주연(샬롯) 외
뮤지컬 ‘파가니니’는 제목 그대로 음악가 파가니니를 조명한 작품이다. 살아있을 적부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 그의 삶은 현대에 와서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며 꾸준히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그 가운데, 뮤지컬 ‘파가니니’는 파가니니의 사후를 배경으로 그의 아들 아킬레의 시선에서 작품이 진행된다. 임종 전 성사를 둘러싼 종교적 논란과 ‘악마’라는 오명 속에 시신의 매장마저 불허된 탓에 아킬레와 종교 법정간 긴 싸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종 증언 속에서 파가니니의 생전 모습이 회상의 형태로 등장한다.(8월 9일 2회차 공연 관람)
사건의 발단은 ‘카지노 파가니니’ 사건이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치던 파가니니(콘(KoN) 분)의 이름을 붙인 카지노의 개업을 앞두고 카지노 사업 허가가 불발되자, 막대한 돈을 투자한 콜랭(이준혁 분)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파가니니의 재산을 노리며 그를 악마로 몰아간다. 그 가운데, 과거 구마 의식 거행 중 불의의 사고로 트라우마에 갇혔던 루치오 신부(김경수 분)는 파가니니가 악마임을 확신하며 그의 주변을 배회하고, 콜랭의 약혼녀지만 파가니니의 도움으로 무대의 꿈을 이룬 샬롯(안리나 분)은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며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흘러간다. 결국 아킬레(이세헌 분)의 간곡한 호소에도 파가니니의 매장은 또 한 번 불허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파가니니는 마침내 안식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의 가장 영리한 아이디어는 주인공 파가니니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아들의 눈으로 아버지를 조명하는 설정이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빠른 몰입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흐름은 서사에 효과적인 입체감을 부여했다. 무대는 하나의 세트로 고정됐으나, 중심의 철골 구조물이 회전하며 효과적인 공간의 전환을 느끼게 했다. 무대 안쪽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악단도 인상적이었으며, 이날 출연한 모든 배우들은 만족스런 기량을 보였다.
그 가운데,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파가니니역을 맡은 콘(KoN)이었다. 그의 연주에는 파가니니다운 기교적 현란함을 넘어서, 파가니니를 있는 그대로 체화한 진심이 녹아 있었다. 공연이 종료된 후에도 그가 자아낸 깊은 여운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HJ컬쳐
CLASSICAL MUSIC
발트앙상블 리사이틀 ‘신고전주의’
이심전심, 하나의 호흡으로
8월 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발트앙상블(대표 최경환, 음악감독 이지혜)의 음악과 인터뷰로 단원들을 지켜본 지도 어느덧 6년이 넘었다. 쇼스타코비치와 R. 슈트라우스를 연주한 2020년, 멘델스존과 무소륵스키를 들려준 2022년의 무대를 지나 다시 만난 이들에게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단원들 사이의 끈끈한 결속, 그리고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의 호흡을 알아채는 이심전심의 음악이다.
‘Neo Classic(신고전주의)’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공연은 발트앙상블 부음악감독이자 비올라 수석 김세준이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안 모음곡’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협연 배지혜), 다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뮤즈를 인도하는 아폴론’이 이날의 프로그램을 이루었다.
‘이탈리안 모음곡’은 맑은 햇살과 같은 가볍고 투명한 음향으로 시작됐다. ‘서곡’에서 악장 이지혜와 수석연주자들이 주고받는 솔로는 곡 전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창단한 해인 2015년부터 꾸준히 다듬어 온 현의 레이어는 한층 성숙한 일체감을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무수한 오케스트라를 경험하고 있는 단원 한 명 한 명의 톤이야말로 발트앙상블의 최대 강점이라 하겠다. 이런 특징은 ‘세레나데’에서 더욱 선명했다. 아티큘레이션을 맞추는 것만 아니라, 호흡하는 방식까지 맞추며 다정한 선율을 이어나갔다. 마치 “우리에겐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해. 한 번 들어볼래?”하고 말을 거는 듯한 친근감이 배어있었다. ‘타란텔라’에 이르면서 음악의 몸짓은 한층 활발해졌다. 이 모음곡이 발레 ‘풀치넬라’의 음악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춤추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리듬에는 생생한 탄력이 실렸다. ‘가보트와 2개의 변주’부터는 고전적인 음악의 흐름 가운데 풍자적 요소를 설핏 드러내며, ‘신고전주의’의 분위기를 내었다.
첼로 수석이자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부수석인 배지혜가 이어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카덴차에도 절제미가 있었고, 2악장의 느긋함과 여유가 관객에게도 잘 전달되었다. 빠른 패시지가 이어지는 3악장에서도 앙상블과 충분히 교감을 이루었다. 앙코르로는 카살스의 ‘새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인터미션 후 연주된 스트라빈스키 ‘뮤즈를 인도하는 아폴론’를 위해 단원들은 하얀색 의상으로 교체했고, 전반부보다 한층 정제되고 장중한 음향으로 작품을 열었다. 발트앙상블은 신화 속 예술의 신과 뮤즈들의 이야기를 현악기에 담아냄과 동시에, 무대 뒤 화면에는 AI 컨텐츠 크리에이터 킵콴(윤석관)의 그림을 비추어 음악을 들으며 여러 상상을 펼치도록 도왔다. 시와 몸짓, 춤을 관장하는 뮤즈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아폴론과 뮤즈 테르프시코레의 이인무(二人舞),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코다와 피날레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했지만, 발트앙상블 특유의 또렷함이 관객이 이 여정 속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게끔 했다.
앙코르는 김세준(하노버 NDR 라디오필 비올라 종신 수석, 발트앙상블 부음악감독)이 작곡한 ‘이탈리안 사크레’가 연주되었다.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이 음악적 콜라주는 “너무 원시주의적이어서 불편하실 수 있다”던 김세준의 걱정과는 달리 낯선 충돌조차 유머와 감각적인 구성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음악회를 유쾌하게 아물렸다. 젊은 창작자의 감각이 빛난 희망찬 결말이었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Ralachoi/발트앙상블
국립합창단 광복절 기념음악회 ‘눈물상자’
눈물에서 공감으로, 음악으로 허문 경계
8월 1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박천휘(작사·작곡)/민인기(지휘)/국립합창단·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김승대(아저씨), 최은영(아이), 길은배(할아버지), 신소현(내레이션) 외
작가 한강(1970~)의 동화를 원작으로 박천휘가 작사·작곡해 국립합창단(단장 겸 예술감독 민인기)이 광복절 기념 음악회에서 초연한 ‘눈물상자’는 합창과 오케스트라, 배우들의 연기를 결합한 음악극이다. 총 3부 16곡으로 구성된 ‘눈물상자’는 ‘눈물단지’라 불릴 만큼 남들보다 쉽게 눈물을 흘리는 아이와 눈물을 모으는 ‘눈물상자 아저씨’, 그리고 평생 한 번도 울지 못한 할아버지의 만남을 통해 눈물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임을 이야기한다. 아이 역의 최은영, 눈물상자 아저씨 역의 김승대, 할아버지 역의 국립합창단 베이스 단원 길은배가 출연했고, 신소현의 내레이션과 프라임필하모닉의 연주가 더해진 약 90분의 여정이었다.
현대 문화의 특징은 서로 다른 장르와 양식을 자유롭게 뒤섞는 데 있다. ‘눈물상자’ 역시 전통적인 음악극의 틀에 머물지 않고, 현대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와 작곡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박천휘는 그레고리안 성가풍의 합창부터 지브리 풍의 오케스트라 사운드, 1980년대 포크와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대중음악적 어법,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멜로디의 차용과 패러디까지 한데 어우러지게 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었다.
지휘자 민인기(1962~)가 이끄는 국립합창단은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의 틀에만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음악, 고전과 현대, 양악과 국악을 넘나들며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기술의 발전과 대중의 취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연극·판소리·무용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도 적극적으로 시도해 왔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공동체에서의 삶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감이자, 합창이라는 원형과 외형 속에 우리 사회의 본질을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정서와 공감대, 시대상을 담아냈다.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개인과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것들의 조화’를 만들어내려는 것, ‘음악 속 화합’이라는 합창의 본질을 국립합창단이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피리를 부는 장면에서 나무로 된 피리 소리 대신 관현악단의 클라리넷이 나온 것처럼 핀 마이크를 장착한 배우들과 무대 위 어쿠스틱 오케스트라와의 음향적인 괴리가 컸고, 원작 동화를 미리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작품의 서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사와 가사 전달이 효과적이지 않았고, 자막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립합창단의 음악극 ‘눈물상자’는 한강의 시적인 문장을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눈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부터 출발해 타인의 상처와 기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깊었다. 특히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공연된 이번 무대는 상처와 기억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자는 작품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렸다. 분열과 갈등의 기억을 넘어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결국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공감’이기 때문이다.
글 성용원(작곡가) 사진 황필주/국립합창단
OPERA
예술의전당 ‘투란도트’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
7월 22~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정선영(연출)/로베르토 아바도(지휘)/국립심포니·노이오페라코러스·CBS소년소녀합창단/
에바 프원카·서선영(투란도트), 백석종·김영우(칼라프), 황수미·신은혜(류), 심인성·박영두(티무르) 외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가 처음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투란도트’. 2022년 ‘SAC 오페라 갈라’로 시작한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는 이후 로열 오페라 프로덕션의 ‘노르마’(2023)와 ‘오텔로’(2024)로 이어졌으며, 작년에는 위촉 창작 오페라 ‘물의 정령’의 초연을 선보였다. 이번에 오른 ‘투란도트’는 예술의전당이 기성 레퍼토리를 직접 기획·제작한 전막 오페라였다. 기자는 본지 7월호에 실린 연출가 정선영의 인터뷰에 동석해 연출 의도를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했다. 연출가는 희생을 통해 단순히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가 아닌, 고통에 찬 세상을 끝맺고 희망으로 향하는 서사를 그려내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7월 22일 관람)
1막은 어둡고 황폐한 성벽 앞에서 시작했다. 가로막힌 벽 앞에 모인 사람들은 벼랑 끝에라도 몰린듯 했다. 이윽고 그 사이로 등장한 류(황수미 분)·티무르(심인성 분)와 칼라프(백석종 분)는 합창 사이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작에서 처형 선고를 위해 찰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투란도트는 성문 사이로 눈부시게 비치는 ‘빛’으로 표현됐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외형이 아닌, ‘빛’이라는 무형의 대상에 사로잡힌다.
2막 1장에서도 벽은 굳건했지만, 세 명의 대신 핑·팡·퐁은 그 앞의 그루터기에 앉아 이야기를 펼쳤다. 그들은 푸른 천으로 연못을 만들거나, 붉은 천을 두르고 춤추며 그들의 처지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연출가는 흘려보내기 쉽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이 ‘막간극’과 같은 장면을 꼽았는데, 장면은 소소했지만 연출가의 애정이 엿보였다. 이어진 2장에서 천자는 흰 샤막 뒤에서, 투란도트(에바 프원카 분)는 폐허의 잔해와 같은 구조물 위에서 등장했다. 엉겨 붙은 쇳덩이 속에 투란도트의 깊은 상처가 보이는 듯했다.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려 혈안이 되는 3막에서는 ‘칼날의 비’로 극한에 달한 투란도트의 내면이 표현됐다. 그 가운데 류의 희생으로 심경이 변화한 투란도트는 칼라프를 받아들이는데, 원작의 강압적인 키스가 아닌, 그의 진심어린 간청에 탄복한다. 마지막에는 모든 어둠이 걷히며 투란도트와 칼라프는 푸른 하늘을 향해간다.
오페라 무대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여러 갈래가 있으나, 그중 핵심을 ‘가수들의 역량’이라고 할 때, 이 공연은 성공적이라 평할 만했다. 프원카에게는 시원하게 뚫고 나오는 음량은 물론 흔들림 없는 강직함이 돋보였고, 백석종은 시종일관 찬란한 윤기가 빛났다. 황수미의 음성은 류와 아주 잘 어울렸으며, 그 외 심인성을 비롯한 조역들도 만족스러운 실력을 보였다. 지휘자 로베르토 아바도는 이 작품의 폭발적인 음량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정제된 짜임새에 초점을 뒀는데, 관객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도 했다. 그럼에도 전막을 이끄는 그의 지휘에는 노련함과 함께 작품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있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잘 맞지 않았던 순간이나, 의도 파악이 어려웠던 검무 장면, 전사를 연상시키는 투란도트의 의상 등이 그러했다. 연출 의도를 즉각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어둡고 황량한 무대를 스치는 ‘빛’은 전체 서사의 흐름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으며, 청명한 하늘이 표현하는 ‘희망’이라는 종착지는 인상적인 감동을 남겼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
‘니벨룽의 반지-하이라이트’
바그너, 폭염 속 블록버스터의 가능성
8월 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아드리앙 페뤼숑(지휘)/부천필하모닉/사무엘 윤(알베리히·하겐), 최인식(보탄·방랑자), 이명주(브륀힐데), 김재형(지크프리트), 김승직(지크문트), 김은희(지클린데) 외
브륀힐데가 신들의 멸망을 알리라고 명한 뒤 하겐은 라인 처녀들의 반지를 따라 강물로 들어갔다. ‘신들의 황혼’의 피날레였다. 4대의 하프를 비롯한 120명의 부천필하모닉 단원들과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은 지쳐 보였지만 미소를 띠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4시간을 훌쩍 넘긴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압축한 하이라이트만으로 포만감이 대단했다. 기획사는 공연에서 ‘바그너’와 ‘작품’ 그 자체를 가장 먼저 내세웠다. 그 뒤에 성악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순서로 구상이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였다. 공연 전과 인터미션 때 음악평론가 유정우의 해설을 반복 상영하며 줄거리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전예완의 번역은 가사뿐 아니라 설명으로 발췌된 곡들 사이사이 오솔길을 냈다. 짧은 순간 굵은 줄기를 잘 전달해 이야기를 살리니 바그너의 장대한 악극이 뮤지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링 사이클’을 한두 장에 압축한 여러 음반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지 셸 지휘의 하이라이트 앨범이나 마젤이 편곡·지휘한 ‘무언의 반지’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관현악만으로도 바그너 악극의 줄기는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철저하게 성악 위주로 접근하며 오케스트라 노출을 극소화했다. 그래서인지 ‘발퀴레’ 1막 전주곡 등이 생략된 점은 아쉬웠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단연 돋보였으며, 독일 본고장에서 축적된 경륜이 느껴졌다. 전형적인 오페라 콘체르탄테가 그러하듯 다른 성악가들은 다소 정적이었는데, 사무엘 윤은 그 사이를 종횡으로 누비며 생동감을 부여했다. 알베리히와 하겐을 맡은 그는 작품을 완전히 소화한 여유와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브륀힐데가 첫 도전이었던 소프라노 이명주는 작품이 진행될수록 넉넉한 가창과 표현으로 예상치 못한 호연을 펼쳤고, 바리톤 최인식은 묵직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로 보탄의 존재감을 뽐냈다. 테너 김재형의 지크프리트는 직선적이고 거칠었지만 충실했다. 적절하고 위엄 있는 에르다를 불렀던 메조소프라노 정주연도 기억에 남는다.
페뤼숑은 ‘발퀴레’ 후반부가 늘어져 긴장감이 희박해진 것 등을 제외하면 대장정의 흐름을 잘 이끌어주었다. 부천필은 가끔씩 또렷하지 못한 부분을 보였지만, 장대한 작품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지구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라인의 황금’에서 모루 소리가 꽹과리 소리처럼 들린 점은 아쉬웠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중요하다. 1997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바그너 페스티벌’을 잊지 못한다. 한스 발라트(1929~2014)가 지휘를 맡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진 30명과 르네 콜로(테너)·안나 토모바 신토브(소프라노)·강병운(베이스)이 ‘발퀴레’ 1막에 출연했다. 이처럼 객원 수석 등으로 오케스트라를 보강한다면 더욱 탄탄한 바그너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4시간짜리 공연을 보면서 중간에 이탈하는 관객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놀라웠다. 폭염 속에 바그너가 클래식 음악의 블록버스터가 될 가능성을 열어준 공연이기도 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TRADITIONAL
전주세계소리축제
스물다섯 해의 내공, 전주의 소리가 깊어졌다
8월 12~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외

8월 14일 오후 6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예인협회 ‘In천지’의 공연
소리 없이 강하다. ‘세계’라는 이름을 내걸고 막이 오른 제25회 전주세계소리축제 현장에서 내내 떠올랐던 생각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동시대의 국내외 음악을 중심으로, 전북을 대표하는 ‘소리’라는 문화적 자원을 소개하는 예술제다. 올해 축제는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중심으로 전주 전역에서 열렸다.
14일 오후 1시 30분, 다소 한산했던 평일 낮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젊은판소리 다섯바탕’ 중 ‘흥보가’ 공연은 한마디로 산뜻했다.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단원 최광균(1991~)의 놀부와 흥부를 넘나드는 표정 연기는 다채로웠고, 위를 치고 꺾여 내려오는 소리는 구성졌다. 젊은 소리꾼은 1시간짜리 독창 중 연신 “그것은 물을 한 잔 마시고 불러보것다”를 외치며 머쓱해했지만, 그 또한 판소리 무대에서만 꺼낼 수 있는 재치이자 애교 같은 것이 아니던가. 대목을 지날수록 소리꾼의 소리와 몸짓이 풀렸고, 고수 윤영진의 추임새를 따라 나오는 그의 진짜 실력에 어느새 팔을 풀고 집중했다.
오후 6시, ‘흥보가’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 예술감독 김차경의 소리와 고수 김태영의 장단으로 다시 모악당 무대에 올랐다. 노래, 특히 판소리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땐 내용과 가사를 음미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김차경은 압도적인 성량과 음색, 그 기세만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자식에게 먹일 밥이 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흥보 마누라의 대목에서 소리꾼은 처절한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몰입도를 끌어올렸고, 그가 가히 ‘절창’임을 실감케 했다.
공연의 앞뒤 약 30분은 두 사회자의 진행을 따라 예인협회 ‘In천지’의 전통연희와 줄놀음으로 꾸며져,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의 흥을 돋우고 나름의 ‘준비운동’ 시간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기획에서 ‘소리’를 표방하는 축제답게 ‘판소리 다섯바탕’이 축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후 야외에서 흐르는 소리를 따라가자, 놀이마당에서는 마지카밴드의 잔잔하면서도 낯선 아랍풍의 음악이 선선해진 전주의 밤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축제는 전주한옥마을 한복판에 있는 전주대사습청에서도 이어졌다. 15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이어진 ‘소리프린지’는 무료로 열려,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쉼터처럼 찾아와 공연을 관람했다. 특히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된 아쟁앙상블 난새의 공연은 ‘프린지’ 공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무대였다. 두 대의 아쟁과 신디사이저·드럼·소리꾼이라는 독특한 구성으로 시선을 끌고, 새타령 등의 선율이 녹아든 곡으로 친숙함을 더했다. 관객이 추임새와 소리에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한 소리꾼 이혜민의 재치 또한 낯선 분위기를 전환하기에 충분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는 ‘축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었고, 콘텐츠와 구성력·기획력도 훌륭했다. 친절하고 적극적인 안내원과 자원활동가, 편의시설, 티켓 뽑기와 같은 이벤트가 매끄럽게 자리한 현장은 축제가 25년간 다져온 내실을 가늠케 하기도 했다. 이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외부 관객을 유치해, 전주가 가진 강한 ‘소리’가 지역을 넘어 넓게 뻗어나갈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다음 과제인 듯했다.
글 장지현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BALLET
서울시발레단 ‘더블빌: 죽음과 소녀’
무심한 질서와 유쾌한 조롱
8월 14~16일 국립국장 해오름

에크만 안무 ‘선인장’(엘랑 콰르텟)
서울시발레단의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의 동명 현악 4중주곡을 공통분모로 삼은 더블빌이다. 크리스티안 슈푹(1969~)의 ‘일곱 번째 파랑’은 침착하고 정교하며, 알렉산더 에크만(1984~)의 ‘선인장’은 발랄하고 냉소적이다. 두 작품은 서로 경쟁하듯 원곡에서 멀어진다. 이쯤이면 ‘죽음과 소녀’는 미끼가 아닌가 싶지만, 두 작품 모두 연주자들을 무대 뒤에 숨기지 않고 춤과 직접 관계 맺게 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이룬다. 서사가 축소된 동시대 발레에서 음악이 반주를 넘어 무대의 행위자로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원곡의 주제를 그나마 붙들고 있는 쪽은 슈푹의 ‘일곱 번째 파랑’이다. 파란 레오타드를 입은 일곱 쌍의 무용수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로 도려내듯 정확하게 춤춘다. 현악기의 예리한 음색과 무용수의 절제된 힘이 맞물릴 때 쾌감이 짜릿하게 솟는다. 그러나 작품은 음악의 시각화에 머물지 않는다. 슈푹이 그리는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흔드는 사건이다. 첫 장면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군무의 파트너링은 ‘세계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안정된 질서를 구축한다. 이어 한 여인(강효정)에게 이른 죽음이 드리운다. 그는 파트너들을 붙잡아보지만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죽음은 공동체를 잠시 흔들었을 뿐, 공동체는 다시 작동한다. 무용수들은 줄을 맞추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다잡으며 질서 안으로 복귀한다. 슈푹은 이 사실을 감상적 애도 대신 정교한 군무의 질서로 보여준다. 그 서늘한 무심함이 작품의 여운을 만든다.
에크만의 ‘선인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질주한다. 겉으로는 흥겹지만 안으로는 날카롭고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현학적인 언어로 작품을 재단하는 비평가들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흰 정사각형 단상에 구획된 무용수들은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수행하듯 각자의 제단을 지키며 온몸으로 달리고 뛰고 부딪힌다. 그런데 강렬한 건 무용수들이 들어 올린 단상에 선명하게 남은 땀자국이다. 비평가들이 흰 종이를 말로 채우는 동안 무용수들은 땀으로 바닥을 적신다. 무엇이 더 진짜인가. 에크만의 답은 장난스러운 듯 단호하다. 보이스오버 역시 흥미롭다. 작품 곳곳에 비평가의 현학적 독백이 끼어드는 한편, 중간에는 연습실의 일상적이고도 고맥락적인 대화를 보여준다. 두 무용수(이상은·리앙 시후아이)는 움직임을 조율하고, 박자를 세고, 안무를 외우는 체화된 말들을 쏟아낸다. 서사적 깊이를 부여하는 크리스털 파이트식 보이스오버와 달리, 에크만의 언어는 메타적 농담이자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다. 두 무용수는 움직임에 쫀득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보이스오버를 능청스럽게 소화한다. 연습실의 무용수를 다룬 여러 작품 중에서도 ‘선인장’은 무용수들의 일상적 노동에 낭만은 덜고 농담은 더하여 제시한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제목의 ‘선인장’이 등장한다. 살색 레오타드 차림의 무용수들이 선인장 가시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토록 신나게 춤추던 무용수들이 선인장에 쩔쩔매며 꼼짝도 못한다. 비평은 온몸을 던지는 이들의 연약한 맨살을 찌르기만 할 뿐 쓸모없다고 항변하는 가운데, 비평가는 작품의 결말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얼버무린다.
서울시발레단의 창단 2주년 공연이기에 ‘죽음과 소녀’는 두 작품의 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맨땅에서 출발한 발레단이 동시대 발레의 주요 안무가들을 불러오고, 이를 소화할 기량을 갖추기까지 무용수도, 안무가도, 관객도 함께 성장해왔다. 지금까지 주요 작품을 공부하듯 섭렵해왔으니 이제는 오리지널 레퍼토리들로 진검승부를 할 때다.
글 정옥희(무용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발레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