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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 OPERA
칼스루에 극장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1.24~5.7
성인(聖人)이 아닌 인간으로
수도복을 벗겨낸 법정 위의 수녀들, 연대와 신앙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끌어낸 연출

©Felix Grünschloß
풀랑크(1899~1963)의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20세기 오페라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쇤베르크 이후의 급진적 전위음악도 아니고, 스트라빈스키식 실험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도 아니다. 오히려 풀랑크는 비교적 전통적인 화성 안에서 묵직한 주제 의식을 풀어놓았다. ‘인간의 공포와 신앙,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는 오페라 장르 안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작품은 세계 주요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세기 오페라 가운데 상당수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남았지만 실제 무대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반면,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여전히 관객에게 직접적인 감정적 충격과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기능한다.
작품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말기인 1794년, 콩피에뉴의 카르멜회 수녀들은 혁명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지만, 이 보편성은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여성은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종교는 혁명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자연스럽게 카르멜회 수녀들 역시 반혁명적인 존재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이들은 202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공식 선포되며,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최근 가톨릭 교회사 안에서도 다시 조명되었다. 이 작품은 ‘국가는 어디까지 인간의 내면과 양심을 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공포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붙들며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스스로 단두대로 향하는 블랑슈
게르트루트 폰 르 포르(1876~1971)는 1931년, 나치즘이 급부상하던 시기에 소설 ‘단두대의 마지막 사람’을 발표했다. 헤르만 헤세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그녀를 추천했고, “매우 현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
그녀가 창조한 주인공 블랑슈 드 라 포르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 시대 전체를 뒤덮는 불안, 개인이 전체주의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1930년대 유럽인들의 감정과 정확히 겹친다. 따라서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나치 시대와 전체주의의 기억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이 영화와 연극, 오페라를 거치며 결말이 바뀐 점 역시 흥미롭다. 르 포르의 소설에서 블랑슈는 광분한 군중에게 살해당한다. 반면 조르주 베르나노스(1888-1948)가 집필한 영화 시나리오에서는 블랑슈가 수녀들을 따라 단두대로 향했음을 암시하는 수준에 머문다. 이후 시나리오는 희곡으로도 개작됐고,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화한 풀랑크는 결말을 더욱 분명하게 명시한다. 블랑슈는 끝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수녀들의 단두대 행렬에 합류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르 포르의 블랑슈가 시대의 희생자라면, 풀랑크의 블랑슈는 공포를 넘어 자신의 선택에 도달한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녀들은 수도자가 임종할 때 부르는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를 노래하며 차례로 처형된다. 오케스트라는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한 명씩 목소리가 사라진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가운데 하나다.

©Felix Grünschloß

©Felix Grünschloß
슈발바흐가 만든 현대의 카르멜회
이번 프로덕션은 작품의 본질을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연출가 안드레아 슈발바흐는 수도원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무대 디자이너 안네 노이저가 설계한 회전무대의 중심에는 거대한 법정 공간이 자리한다. 본래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정이 어떻게 폭력과 감시의 공간으로 변질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구호였던 ‘자유, 평등, 박애’라는 문구는 무대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관객은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훼손되는지를 씁쓸하게 바라보게 된다.
연출가는 종교적인 숭고함보다 여성들의 관계와 연대에 집중했다. 여타 연출과는 달리, 수녀들이 수도복 대신, 일상복을 입고 등장하는 설정 역시 그녀들을 성인(聖人)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 만든다.
이번 공연은 음악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지휘자 요하네스 빌리히는 풀랑크 음악 속의 섬세한 색채를 훌륭하게 끌어냈다. 극적 긴장을 정교하게 유지하면서도,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치밀하게 구축했다. 특히 피날레 부분에서 ‘살베 레지나’를 부르며 한 명씩 희생되는 비장한 장면에서도 과장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절제하는 해석을 선택했다.
블랑슈 역의 메조소프라노 타라 에로우는 이번 공연의 중심축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세계적인 경력을 쌓아온 그녀는 모차르트나 로시니 오페라처럼 고전 레퍼토리에서 탁월한 해석으로 인정받는 성악가다. 이번 무대에서 풀랑크의 음악으로 한층 더 깊어진 그녀는 불안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리는 블랑슈의 내면을 매우 세밀하게 표현했다. 특히 극도로 여린 피아니시모와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의 대비는 블랑슈라는 인물의 심리적 균열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블랑슈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녀를 수도원 밖 현실의 세계로 데려가려는 슈발리에 드 라 포스 역을 노래한 테너 김범진은 우아한 음색으로 역할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두 죽음이 만든 구조적 대칭
풀랑크는 죽음과 불안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응시한 사람이었다. 1936년, 그의 종교적인 ‘각성’ 이후, 가톨릭 신앙은 풀랑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작업을 지연시키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특히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그렇게 염려했던 그 병이 본인이 아닌, 사랑하는 애인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이었다.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최종본은 바로 내 사랑하는 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 완성되었다.”
이 작품에서 죽음은 정교한 구조적 대칭을 이룬다. 1막 피날레의 ‘불경한 죽음’과 3막 피날레의 ‘거룩한 죽음’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1막에서 멜라니 랑이 연기한 원장 수녀의 죽음 장면은 이번 프로덕션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그녀는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절규하는 인간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연출가 슈발바흐는 이 장면을 더욱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
죽음을 앞두고 공포와 환각에 빠진 채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원장 수녀를, 마리 수녀가 베개로 질식사시키는 것으로 처리했다.
1막에서 절규와 비명 속 비참하게 묘사되는 죽음은, 3막에서 수녀들의 굳건한 ‘살베 레지나’로 숭고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열여섯 명의 단두대 희생자 가운데 마지막까지 노래를 이어가는 이는, 원장 수녀의 죽음을 목격한 뒤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졌던 블랑슈다.
이토록 많은 상념을 남기는 오페라는 오랜만이다. 칼스루에 극장에서 얻지 못한 답은 앞으로 만날 또 다른 카르멜회의 수녀들에게 구해야 할 듯하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사진 칼스루에 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