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최석규, 화면의 시대를 지나, ‘다중우주’의 장으로 모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0월 1일 7:25 오후

FESTIVAL IN AUTUMN 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최석규

화면의 시대를 지나, ‘다중우주’의 장으로 모으기

숏폼과 OTT 시대에도 왜 극장으로 모이는가. 예술감독의 마지막 화두에서 해답을 만나본다 

©박진호

 

 

 

 

 

 

 

 

 

 

 

 

 

손 안의 숏폼과 OTT가 일상을 점유한 시대다. 집을 벗어나지 않고도 예술의 향유의 욕구를 얼마든지 충족할 수 있는 환경에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람’의 의미는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각자 안방과 스크린 속에 머물 수 있는데도 왜 우리는 굳이 집을 나와 타인과 어깨를 비비며 ‘극장’에 모여야 하는가.

202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에 부임했던 최석규 예술감독의 지난 5년은 ‘축제’에 관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콘텐츠가 너무나 빠르게 소비되고 소진되는 현실 속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시대의 맥락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큐레이터십’이었다.

“큰 발견과 변화는 예술가의 질문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하는 그는 그동안 충분히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랍·이슬람권을 비롯해 선입견 속에 갇혀 있던 존재의 목소리를 SPAF의 장 위로 꾸준히 불러내 왔다.

그리고 5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올해, 최석규 예술감독은 ‘예술의 다중우주’라는 주제로 우리를 다시 무대 앞으로 불러 모은다. 5년에 걸쳐 단단히 벼려온 이 큐레이터십의 현장이야말로, 스크린 속에 머물던 우리를 다시 생생한 축제의 현장으로 불러 모으는 가장 확실한 힘이 아닐까? 9월의 햇살이 아르코예술극장을 뜨겁게 달구던 날, 최석규 예술감독을 만났다.

 

20대에 처음 축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 예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다. 때로는 다음 시대를 먼저 보여주지만, 지금의 사회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특히 서울처럼 공연예술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은 도시에선 SPAF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현시대에 축제는 무엇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먼저 동시대의 담론이 무엇인지, 공연예술의 미학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관객이 공연을 경험하는 방식은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 타 축제들과의 차별성도 빼놓을 수 없다. 숏폼과 OTT의 시대를 살면서 보는 방식도, 듣는 방식과 감각하는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VR처럼 몰입형 경험과 촉각이나 소리처럼 다른 감각을 중심에 둔 작업도 많이 생겨났다.

©박진호

축제의 연결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고민이 올해 ‘예술의 다중우주’라는 주제로 이어진 것인가?

사실 공연예술은 주제를 하나의 키워드로 규정하기 어렵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관객마다 전혀 다른 주제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는 서로 다른 작품을 아우를 수 있겠다고 여겼다. 예술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사용하는 매체와 미학도 다르다. 서로 다름이 한자리에서 충돌하고 교차하는 것, 그게 축제이지 않을까?

 

올해 7월에 열린 제80회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은 아시아 언어 최초로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내세웠다. 이 기획이 한국과 아비뇽의 만남에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티아고 호드리게스 감독과는 2022년 처음 만났다. 이후 그가 아비뇽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초청 언어’(특정 언어권의 예술과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취지)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영어·스페인어·아랍어에 이어 2026년의 초청 언어로는 한국어가 선정됐다. 2023년부터는 호드리게스 감독이 SPAF를 찾아와 직접 공연을 보고 예술가들을 만나며 한국의 공연예술을 리서치했다. 사회적 맥락이나 새로운 서사에 관심을 두는 그의 방향이 SPAF와도 닮아 있었고, 그 3년의 탐색이 올해 SPAF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그 교류의 중심에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가 있겠다. 줄리 델리케가 연출하고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이 출연한 작품으로, 지난 7월 아비뇽에서 세계 초연된 뒤 이번 SPAF를 통해 서울 무대에 오른다.

여백을 극대화한 낭독극이었기에 서늘하도록 아름다웠다. 한 배우가 중립적으로 텍스트를 전달했다면, 다른 배우는 작품 깊숙이 들어가 뜨겁게 몰입했다. 섭씨 40도를 웃돌았던 아비뇽의 폭염 속에서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순간은 공연 말미 한강 작가가 직접 자신의 글을 낭독한 장면에서 찾아왔다. 과거 “글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쓸 때가 많다”고 밝혔듯, 실제 그의 낭독에서는 오랜 시간 몸 안에 스며든 문장이 목소리를 타고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는 듯했다.

 

성곽 도시 전체를 물들이는 아비뇽의 풍경을 뒤로한 채, 서울에서 축제를 만들며 느꼈던 현실적인 아쉬움이나 고민은 없었나?

아비뇽이 가장 부러웠던 건 7월 한 달간 아비뇽 전체가 마법처럼 하나의 거대한 축제장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이다. 물론 서울과는 도시의 조건 자체가 다르다. 전통적으로 축제를 만들기 좋은 곳은 인구 20~30만 명 정도의 소도시다. SPAF 초창기에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공연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모여 맥주를 마시며 밤새 여운을 나누기도 했다. 여건이 달라진 지금은 옛 분위기를 되살리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이라는 대도시 구조 안에서 SPAF는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축제의 밀도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 질문은 여전히 내게 숙제다.

 

새로운 형식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SPAF 무대 중 오페라극 ‘세 번째 전쟁’은 창작 과정부터 함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눈에 들어온다.

독일문화원에서 추천받은 희곡집을 통해 박본을 알게 됐다. 정치풍자극 ‘으르렁대는 은하수’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북한처럼 현실적인 대상이 등장하면서도 세계 자체는 초현실적이었다. 구체적인 지역과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거시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박본을 애도함’이라는 작품에서는 악보와 글쓰기가 뒤섞여 있기도 했다. 그 무렵엔 2기 협력예술가를 찾고 있었고, 그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랬더니 ‘전쟁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렇게 작품 ‘세 번째 전쟁’이 시작됐다. 자체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함께 제작에 들어갔고, 첫해에는 한국과 아시아, 광주를 중심으로 전쟁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했다. 올해 완성된 공연으로 지난 5월 광주에서 초연했다.

 

디지털 다큐멘터리 연극 ‘기억의 저편’과 XR 몰입형 연극 ‘블러: 경계가 흐려질 때’처럼 익숙한 무대와 관객의 관계를 뒤집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런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불규칙에 끌리는 편이다. 물론 규칙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불규칙이 들어왔을 때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규칙과 불규칙이 정반합을 이루고 새로운 형식으로 변주되고 진화하는 것, 그게 예술의 중요한 특징 아닐까 싶다. 이진엽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찰나의 찰나’에서는 ‘모래’가 하나의 언어가 되고, 플뢰르 앨리스 노블의 비주얼 퍼포먼스 ‘루만’에서는 종이와 미술, 프로젝션, 몸과 음악이 만나 독특한 시각성과 물질성을 만든다. 어떤 작품은 현실과 가상을 오가고, 어떤 작품은 디지털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만든다. 비누 거품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에 몸만 남는 작업도 있다. 결국 ‘연극, 무용은 이래야 한다’는 기존의 규칙보다 서로 다른 예술 언어와 매체가 만나 어떤 새로운 감각과 형식을 만들어내는지를 본다.

 

지난 5년을 통해 SPAF에 남겼다고 생각하는 가장 분명한 색깔은 무엇인가?

하나의 명확한 관점과 시선을 던지도록 큐레이션하려 했던 것 같다. 전체 라인업 20편을 부감하는 기획자와 달리, 관객이 실제 무대에서 마주하는 건 많아야 네다섯 편, 보통은 한두 편이다. 그렇기에 축제 전체의 방향도 중요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제대로 닿는 일이다. 축제에는 ‘왜 지금, 이 작품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가’에 대한 선명한 질문과 지향점이 존재해야 한다. 훗날 수장이 바뀌더라도 이 무대에 남겨지길 바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 SPAF는 확실한 관점을 가지고 시대를 바라보고, 이런 작품들을 큐레이션했었지” 하고 기억되길 바란다.

제26회 SPAF 해외초청작 낭독극 ‘새’

제26회 SPAF 해외초청작 연극 ‘사이의 거리’

제26회 SPAF 협력예술가 신작 오페라극 ‘세 번째 전쟁’

 

 

 

 

 

 

글 유내리 기자 사진 박진호·SPAF

 

최석규(1967~) 춘천마임축제 사무국장·부예술감독,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영국 연극학교(Royal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2005년 아시아나우 프로덕션을 설립, 한영예술교류의 해 예술감독, 서울아트마켓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2022년부터 SPAF를 이끌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202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20편 공연 중 일부) 10월 8~25일
해외초청작(7편) – 연극 ‘사이의 거리’ 외
10월 8~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SPAF 협력예술가(5편) – 음악극 ‘세 번째 전쟁’ 외
10월 16·1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팸스×스파프 초이스(5편) – 무용 ‘씨름’ 외
10월 14·15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창작랩 아시아극작가 프로젝트(2편) – 낭독극 ‘네오메트로폴리스’ 외
10월 14일 NC문화재단 스테이지 블랙
살롱넥스트 – 연극 ‘복제인간 시&번개와 천둥’
10월 21·22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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