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모아나
바람 없는 파도, 낯익은 항해

감독 토마스 케일
음악 마크 맨치나
출연 드웨인 존슨, 캐서린 라가이아
[OST] 음악감독 마크 맨치나 | 월트 디즈니 레코드
마크 맨치나가 영화의 오케스트라 배경음악을 총괄했고, 애니메이션에서 ‘How Far I’ll Go’를 작곡했던 린 마누엘 미란다가 프로듀서로 다시 참여해 원작 넘버들의 색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편곡을 보탰다. 캐릭터가 아닌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소화한 ‘How Far I’ll Go’는 더빙이 아닌 실연이 주는 몰입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만 뮤지컬 넘버로서의 완성도가 아니라 화면과 어우러지는 전반적인 스펙터클과 강렬함만 놓고 보자면, 애니메이션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SET-LIST
01 Tulou Tagaloa 02 An Innocent Warrior 03 Where You Are
04 How Far I’ll Go 05 We Know The Way 06 How Far I’ll Go (Reprise)
07 You’re Welcome 08 Shiny 09 Along The Way (Malaga Ki Ei)
10 I Am Moana (Song of the Ancestors) 11 We Know Who You Are
12 We Know The Way (Finale) 13 Along The Way
아이들에겐 어린 시절 이불처럼 끌어안고 잠들던 동화가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줄거리가 아니라 분위기와 감정으로 남는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항상 두려움을 이기고 행복을 맞이하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이야기로 유년 시절의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 시절을 딛고 선 어른들에게는 몽글거리는 추억을 선물한다.
하지만 최근 몇 해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만든 디즈니의 영화는 이상하게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났다. 추억을 재현하는데, 선명해지지 않고 훼손되는 느낌이다.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마음의 온기를 이해하지 못했고, 실사라는 형식을 빌려 무엇을 다시 말하려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최근 연속된 디즈니의 실패를 만회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화로 리메이크한 2026년 ‘모아나’는 모투누이 섬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가 섬에 내린 저주를 풀기 위해 반신반인 마우이와 함께 미지의 바다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오션 어드벤처에 담은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은 공주가 아닌 소녀가 여성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의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최근 거듭되는 실패작을 선보인 디즈니의 실사 시리즈와 달리 ‘모아나’는 원작이 지닌 정체성을 영화 안에서도 지키려 애쓴 흔적이 뚜렷해 보인다. 실제 할아버지가 사모아 제도 출신인 캐서린 라가이아가 모아나 역을 맡았고, 주요 배역 역시 사모아·뉴질랜드를 비롯한 태평양제도계 배우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애니메이션에서 마우이의 목소리 연기를 했던 드웨인 존슨이 실사판에서도 같은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등장 덕분에 애니메이션과 실사판 사이의 이음새가 매끄럽게 느껴진다.
‘백설공주’에 라틴계 배우를, ‘인어공주’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디즈니는 인종에 갇히지 않으려 애썼지만,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을 해친다는 역풍을 맞았다. 원작이 지닌 이야기는 그대로 둔 채 인종만 바꿔놓은 방식으로는 관객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캐스팅이 다양성을 증명하려는 알리바이로만 소비될 때, 관객들은 진심에 앞선 셈법을 먼저 알아챈다. ‘모아나’는 지워야 할 편견을 뒤늦게 걷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이야기 속 진짜 후손들을 찾아 캐스팅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시작 지점이 확실히 다르다.
이런 태도는 2016년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디즈니는 폴리네시아의 역사학자와 인류학자, 항해사로 구성된 자문단을 두고 이야기와 고대 문양, 노래 가사 하나까지 검토받았다. 실사판 역시 그 태도를 이어받아 다양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구호가 아닌 제작의 과정으로 증명해 보인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 속 폴리네시아는 이국적인 배경으로만 소비되었지만, ‘모아나’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와 몸짓, 억양까지 스크린에 담아낸다. 그 결과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던 문화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게 만든다. 드물기에 더욱 가치 있는 방식이다.


동일한 이야기, 다른 결의 파도
실사판 ‘모아나’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줄거리와 주요 대사·음악·캐릭터·세계관을 거의 그대로 옮겨 왔다. 그림으로 그려낸 이야기를 실사로 옮기면서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마우이의 문신이나 모아나를 이끌던 바다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실제 배우와 CG가 뒤엉킨 채로 구현해야 했기에 연출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졌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상상력만으로 자연스러웠던 장면들이 실사에서는 자칫 어색한 합성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으로 토니상과 에미상을 수상한 경력을 지닌 토마스 케일은 살아 있는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연기하는 뮤지컬 장면이 애니메이션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마우이를 연기했던 드웨인 존슨의 유쾌함과 존재감이 안정감을 주며 캐서린 라가이아의 존재감 역시 대형 스크린에서 빛난다. 원작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실사화의 이질감을 최소화한 덕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작의 장면을 너무 충실히 따라간 탓에 애니메이션을 이미 본 관객에게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으로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봤는데 굳이 실사화를 다시 봐야 하는 당위를 뚜렷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저 캐릭터를 사람으로 바꾼 3D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항상 실사보다 더 세밀하게 현실을 재현해 내는 섬세함으로 극찬 받았다. 그렇게 바람의 움직임까지 느껴지던 애니메이션 ‘모아나’와 달리 실사 ‘모아나’에서 선보이는 CG는 바람 없이 치는 파도처럼 보이면서 실사판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험과 성장이라는 교훈적 이야기도 실사화가 되면서 관객들에게 낯 뜨겁지 않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할 이유
디즈니로서는 좀 억울할 법도 하다. 변형을 시도하면 원작을 훼손했다고 하고,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면 새롭지 않다고 하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더 만들어야 하는 당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시대의 관점을 얹으려는 디즈니의 시도들이 언젠가는 그 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도 올 거라 믿어본다.
‘모아나’ 실사판은 디즈니가 그동안 겪어온 시행착오 끝에 섰다가 관객들에게 내민 하나의 숙제 검사 같다. 이야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먼저 묻고, 그 답을 스크린 앞이 아니라 스크린 뒤 캐스팅과 제작 과정에서부터 성실하게 되짚었을 때, 관객은 비로소 억지스럽지 않은 다양성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원작을 지키는 데 충실했던 만큼, 실사이기에 가능했던 과감한 재해석은 다음 디즈니의 몫으로 남았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