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발디와 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9일 5:16 오후

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비발디와 나’

나의 음을 찾고 나를 연주하는 시간

 

감독 다미아노 미키엘레토

음악 파비오 마시모 카포그로소

출연 테클라 인솔리아, 미셸 리온디노

 

[OST] 음악 파비오 마시모 카포그로소

비발디가 주인공이지만 영화의 서사는 자아를 찾는 한 여성의 내면에 집중한다. 비발디 고유의 고전적 선율과 파비오 마시모 카포그로소(1984~)의 현대적 스코어가 교차하면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또 하나의 미장센이 된다. 비발디의 명곡은 18세기 베네치아의 질감을 생생하게 환기하고, 카포그로소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인물의 불안과 집착, 그리고 해방을 향한 욕망을 감정적으로 증폭시킨다. 이로써 영화는 자칫 고전음악에 기대어 평이한 시대극에 머물지 않고, 자아를 찾는 여성이라는 동시대적 질문을 품은 영화로 확장된다.

SET-LIST
01 Primo sguardo di Cecilia 02 Dove sei, madre 03 Un nuovo maestro
04 Volti che non esistono 05 Inseguendo la follia 06 Inverno di Cecilia
07 Allegro molto RV152 08 Morte musica soldi 09 Echi di primavera
10 Festa a palazzo 11 Largo RV207 12 Cipria 13 Sacrificio 14 Largo RV565
15 Violino spezzato 16 Una nuova vita 17 Allegro RV269, La Primavera

 

통제와 조율이라는 단단한 구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조금 다른 리듬, 조금 어긋난 박자, 조금 늦거나 빠른 음을 내는 순간 균형은 무너진다. 우리가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연주자의 개성만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통일된 호흡, 균형 잡힌 박자와 화음의 조화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다른 음을 내어보고 싶다면, 어긋난 박자로 통제된 음악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어보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페라 연출가의 시선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피에타 고아원. 뛰어난 음악 교육과 연주 실력으로 명성이 높지만, 고아원의 소녀들은 얼굴과 이름을 숨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해야 한다. 체칠리아(테클라 인솔리아 분)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자신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새로운 음악 교사로 안토니오 비발디(미셸 리온디노 분)가 부임한다.

다미아노 미키엘레토(1975~) 감독의 ‘비발디와 나’는 비발디를 통해 음악이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달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비발디의 ‘사계’ 발표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지만 단순한 비발디의 전기 영화는 아니다. 자신의 삶을 연주할 수 없는 세상에 버려졌지만, 자신만의 음을 찾아 자신을 연주하는 삶을 선택한 한 소녀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오페라의 가장 혁신적인 연출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미키엘레토는 폐쇄된 고아원의 공간을 마치 잘 짜인 무대처럼 만들어낸다. 체칠리아의 동선은 어둠 속에서도 세밀한 빛의 조율을 따라 섬세하게 움직이며 인물의 감정과 서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음악이 흐를 때 화면의 리듬과 배우의 동선은 음악의 리듬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음악이 곧 극 자체가 되는 오페라의 특성은 영화 연출에도 스며든다.

 

익명의 연주자와 무명의 나 자신, 그 사이

자신의 존재를 지운 소녀 연주자들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엄연히 연주하는 여성은 있지만, 존재는 지워야 하는 시대 속에서 그들의 재능은 자신의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 고아원의 소녀들은 연주하다가 때가 되면 정해진 남자와 결혼한다. 결혼과 함께 고아원을 벗어날 수 있지만, 동시에 연주자로서의 경력도 끊어진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질문하지 않고, 부당한 것투성이지만 대항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체칠리아 앞에 나타난 비발디는 권위적인 스승이 아닌,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멘토다. 그는 연주자를 단순히 이용하기 보다 한 사람의 재능이 어디까지 열리는지 실험하고 격려한다.

비발디를 만나면서 체칠리아에게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 된다. ‘연주를 왜 잘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연주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만나면서 체칠리아의 삶은 변한다. 답답하지만 안전한 규율 속에서 그저 살기만 하면 되는 익명의 여성이 아니라, 불안하지만 본인의 이름을 찾아 나서는 진짜 자기 자신이 되어보려 한다.

 

음표가 아닌 나를 그려보기

‘비발디와 나’는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스트레스가상을 받은 티치아노 스카르파(1963~)의 소설 ‘어머니 왜 나를 버렸나요’(Stabat Mater)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소설이 버려진 이들의 고독과 음악을 통한 존재의 증명에 집중했다면, 감독은 음악이 체칠리아라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고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한다.

줄거리만 보면 얼핏 음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성 연주자의 성장 서사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성장 서사의 낡은 표현을 과감히 버린다. 체칠리아가 자아를 발견하고,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대서사는 없다. 체칠리아의 선택은 과감하지만 삐걱대고, 외부의 힘으로 줄곧 무너진다.

체칠리아는 연주자로 남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린다. 그 대가로 연주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비로소 음악으로부터 달아나 자신을 찾는 길을 선택한다. 과연 체칠리아의 삶을 바꾼 것은 음악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영화음악을 선택한 체칠리아의 선택이나 음악을 버리고 달아나는 체칠리아의 용기 사이에서 편을 들지 않는다. 그녀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녀가 자신의 오롯한 삶을 찾았는지에 대한 대답도 남겨두지 않는다. 삶은 결국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규율을 버리고 균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에 결론이 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음악은 그녀를 구원하지도, 완전한 자유를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음악은 체칠리아가 더 이상 이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음악이 바꾼 그녀의 삶은 구원이 아니라 균열이다. 음악엔 목적이 없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체칠리아와 소녀들에게 음악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도약을 위한 움츠림
언제나 세상은 강퍅한 시대의 통제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나의 리듬을 만들고, 조금 늦더라도 나의 음률을 연주하려는 의지는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지금 누구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비발디 ‘사계’의 선율은 단순히 계절의 정점에 머물지 않고, 그 계절이 소멸하며 다음으로 전이되는 경계의 감각을 건드린다. 계절과 계절 사이 어딘가로 흘러가는 시간의 유한함처럼 ‘비발디와 나’는 찬란한 봄이 시작되기 직전 응축된 생명력의 서툴고 거친 시간을 보여준다. 화려한 도약의 순간보다 움츠린 순간이 더욱 생동감 있고 벅차다고 말하는 것 같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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