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1 내한하는 화제의 예술가들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두에냐스
스물넷, 세계의 중심에서 활을 들다
강렬한 색채와 치밀한 지성 품은 연주로 새 세대를 대표하는 그녀가 히메노/룩셈부르크필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María Dueñas ©Sonja Müller
지난해 10월에 열린 제48회 그라모폰 클래식 시상식. 열 살 때부터 용돈을 모아 음악 잡지 ‘그라모폰’를 사 읽었다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1993년에 이어 통산 두 번째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수십 년에 걸쳐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온 거장이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밤이었다. 그리고 그 무대 위로 또 한 명의 음악가가 당당히 걸어 나왔다. 스물세 살의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두에냐스였다.
그는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과 ‘기악 음반상’을 동시에 품에 안으며 21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초상을 그려냈다. “예술에 대한 젊음과 호기심의 힘을 믿어달라”고 시상식대 위에서 전했던 그의 고백처럼, 두에냐스는 지금의 클래식 음악이 새로운 세대의 열정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도대체 이 젊은 연주자는 누구길래, 쟁쟁한 거장들과 한 무대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불리는 걸까?
유년의 그라나다, 성장의 빈
2002년 스페인 남부 지방 그라나다에서 태어난 두에냐스는 음악가를 배출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유년 시절 집에서 늘 흐르던 음반과 연주회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매료되었다. 소녀는 여섯 살에 바이올린을 잡고, 이듬해 그라나다 음악원에 입학하며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 두 여동생 훌리아와 다니엘라도 각각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의 음악적 뿌리를 들여다보면 안달루시아 지방이 가진 유연하고도 강렬한 표현력이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스페인 바이올린의 전설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를 비롯해 마누엘 데 파야(1876~1946),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를 지나 파블로 카살스(1876~1973)로 이어지는 스페인 클래식 음악의 풍부한 환경 위에서, 플라멩코와 스페니시 기타의 리듬과 색채가 살아 숨 쉬는 그라나다의 음악적 환경은 두에냐스의 연주에 생생한 리듬감과 생동감을 부여했다.
2014년, 11세에 마드리드 청소년 음악 협회의 장학금을 받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로 입학하여, 2016년에는 멘토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의 추천으로 빈으로 이주해 빈 시립음악예술대학교(MUK)와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보리스 쿠슈니르(1948~)를 사사했다. 스페인의 뜨거운 생동감 위에 유럽 정통 고전주의의 엄격한 구조감이 포개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탄탄한 기본기와 재능을 결합한 두에냐스는 곧 세계 무대에 본인의 이름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2017년 주하이 모차르트 콩쿠르를 시작으로, 2018년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19년에는 마렉 야노프스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하며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무대에도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21년, 메뉴인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2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대여받는 영광을 누렸다.
베토벤으로 내놓은 첫 명함과 확장하는 세계
이듬해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 레이블은 이 19세의 신예를 일찌감치 품고, 전속 계약을 맺어 가파른 성장세에 더욱 힘을 보탰다. 10대 시절 카라얀에게 발탁된 안네 조피 무터(1963~), 11세에 뉴욕 필 무대에 데뷔한 고토 미도리(1971~), 10대에 주요 레이블을 사로잡은 힐러리 한(1979~)처럼, 두에냐스 역시 어린 나이에 국제 무대와 음반 시장의 중심으로 진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를 잇게 됐다. 특히 거장들의 음반을 남겨온 DG와의 계약은 두에냐스 본인에게도 남다른 의미였다. “저에게 도이치 그라모폰은 위대한 음악을 의미해요. 어머니께서 소장하신 밀슈타인과 오이스트라흐의 도이치 그라모폰 LP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DG와의 만남은 데뷔 음반 ‘베토벤과 그 너머(Beethoven and Beyond)’(2023)로 활짝 만개했다.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지휘자 만프레드 호네크가 이끄는 빈 심포니와 함께한 실황을 담은 이 음반에서, 두에냐스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작곡가적인 면모까지 드러냈다. 일찍부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무반주 독주 구간)를 직접 쓰며 작곡에도 눈을 뜬 그는, 이번 음반에서도 전 악장에 걸쳐 독창적인 카덴차를 작곡해 연주했다. 나아가 그는 역사 속 작곡가(슈포어·이자이·생상스·비에니아프스키·크라이슬러)들이 베토벤 협주곡 1악장을 위해 썼던 5가지 카덴차를 별도로 녹음해 담았다.
뿐만 아니라 두에냐스가 베토벤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한 자작 독주곡 ‘오마주 1770(Homage 1770)’은 2023년 별도로 발표됐고, 2016년 젊은 작곡가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피아노 독주곡 ‘작별(Farewell)’도 그의 작곡 활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대담한 데뷔 음반은 2024년 오푸스 클래식 ‘올해의 신인 예술가상’과 ‘청중상’을 안기며 커다란 수확을 거뒀다.
두에냐스는 동시대 음악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2022년, 멕시코 작곡가 가브리엘라 오르티스(1964~)가 LA 필하모닉의 위탁으로 두에냐스에게 헌정한 바이올린 협주곡 ‘현의 제단(Altar de cuerda)’을 세상에 선보였다. 나아가 이 작품이 수록된 LA 필하모닉의 음반 ‘레볼루시온 디아만티나’는 높은 찬사를 받으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현대 클래식 작곡·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최우수 클래식 컴펜디움상까지 3개 부문을 석권했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시작된 음악을 향한 꿈과 베토벤을 향한 오마주는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빈 무지크페라인, 뉴욕 카네기홀 등으로 뻗어 두에냐스를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의 선두 주자로 재빠르게 자리매김시켰다.

‘베토벤과 그 너머’
DG 4863512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DG 4865711

‘하이페츠에게 바치는 헌사’
DG 4867487
파가니니로 증명하고 하이페츠로 나아가다

‘오마주 1770
(Homage 1770)’
그동안 폭발적으로 음악적 근육을 단련해 온 그는,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높은 봉우리인 파가니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지난해 발매한 두 번째 음반에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전곡을 선보였다. 벨칸토 오페라 시대의 성악적 선율과 15년에 걸친 작곡가의 인생 여정을 담아낸 깊이 있는 해석이었다. 파가니니에 대해 두에냐스는 “화려한 기교만이 전부가 아닌, 표현 기법에 의미를 부여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파가니니는 기교에만 치중한다고 오해받지만, 그의 음악은 인생과 재치가 가득하다”고 전했다. 이 해석은 2025년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뉴욕타임스’는 그를 “할 말이 있는, 찬란히 증명하는 젊은 연주자”라고 평했다.
그의 거침없는 항해는 최근 발표한 세 번째 음반 ‘하이페츠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어지고 있다. 야샤 하이페츠(1901~1987)를 기리는 이 음반에서 두에냐스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담았다. 바이올린 전문지 ‘스트라드’는 “완벽주의적 테크닉 위에 자신만의 따뜻한 스페인 스타일 감성을 덧입혀 21세기 새로운 바이올린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평을 남겼다.
“어린 시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하이페츠예요. 아직도 그의 ‘랄로와 코른골트’ 음반이 제 방에 놓여있습니다.” 하이페츠의 자취를 좇는 대담한 시도에 대해 그는 “오만함과 진정성 사이에는 미묘한 경계가 있음을 안다”면서도 이번 음반을 “내 음악의 시작이었던 스페인과 하이페츠에 대한 순수한 존경을 담은 진솔한 기록”이라고 전했다.
이 고백이야말로 본연의 두에냐스를 가장 잘 설명한다. 디지털 태블릿 대신 손때 묻은 종이 악보를 고집하고,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비롯한 거장 6명의 운지법이 적힌 희귀 악보를 수집해 연구할 만큼 지독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9월, 세계 무대를 누비는 스물네 살 바이올리니스트의 발걸음은 마침내 한국 관객과 만난다. 구스타보 히메노(1976~)가 이끄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며 첫 내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동향의 지휘자 히메노와 룩셈부르크 필이 선사하는 음악 위에서, 스페인의 뜨거운 정열과 고전 지성을 넘나드는 마리아 두에냐스가 어떠한 소리를 펼칠지, 이제 직접 확인해 볼 시간이 다가왔다.
(※인용한 마리아 두에냐스의 인터뷰 문장들은 ‘그라모폰’ ‘인터루드’ ‘뉴욕타임스’ 등을 참조했다.)
글 유내리 기자 사진 빈체로
PERFORMANCE INFORMATION
구스타보 히메노/룩셈부르크 필하모닉(협연 마리아 두에냐스)
9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9월 13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