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LLENGE
피아니스트 김세현
롱티보 콩쿠르 이후 질풍가도를 달리며
음반 발매와 기념 독주회 소식과 함께 전하는 그간의 이야기

©Shin-Joong Kim
화상 인터뷰로 마주한 김세현은 아직 기상의 피로감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 김세현은 7시간의 시차가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오전 10시의 이른 시간에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3월 롱티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우승과 동시에 청중상·평론가상·파리 특별상까지 석권했다는 희소식을 전 세계에 알린 김세현은 그 이후로 무대에 서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세계 각지를 돌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는 인터뷰를 진행한 날, 에르베르 홀에서의 독주회(8.5)를 앞두고 빈에 머물고 있었다.
아직 피로를 풀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그에게 콩쿠르 우승 이후 본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냐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확실한 건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저보고 유명인사 다 됐다고 놀리는 횟수는 늘어났네요.”(웃음)
하지만 확실하게 변한 부분이 있다면, 본인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는 사실이었다. 연주에 있어서, 혹은 공연 현장에서 어떤 의견을 제시하거나 요청을 넣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나 태도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콩쿠르 전후로 음악을 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까? 김세현은 그렇지는 않다며 대답을 이어갔다. “결국 연주자로서의 책임감은 이전과 동일한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항상 추구해 온 음악은 연주하는 나 자신이 아닌, ‘작곡가’를 빛나게 하는 음악이거든요. 삶에 전환점이 될 만한 모종의 일을 겪는다고 해도, 음악을 대하는 본질에 차이가 생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음악으로만 빚어지지 않는다
김세현은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함과 동시에,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두 학교의 간격이 위치상 5km 안팎으로 인접해 있다고는 하지만, 연주 일정과 음악 전공만으로도 숨 가쁜 나날을 보내는 그가 음악 외 분야의 공부까지 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고된 일정이기는 해요. 무엇보다, 제 일정의 우선순위가 연주에 맞춰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거르는 일도 간혹 생기고요.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이런 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 주세요. 제가 놓쳤던 내용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충해 주시기도 합니다.”
김세현은 수업에 참여하는 순간만큼은 최대한 성실하게 임한다고 밝혔다. 아마 교수의 입장에서도 학업에 열중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 어린 모습이 충분히 마음에 와 닿았기에 그를 향한 배려도 뒤따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인문학 공부를 병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선적으로 두 분야의 성격이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문학이나 음악 모두 결국에는 ‘무엇을 말하려는가?’라는 질문을 향해 있어요. 그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내용을 파악하고, 결국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죠.”
그는 이어서 ‘프레이즈’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학의 문장 구조와 음악의 프레이즈 사이에도 상통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 “문학을 공부하며 여러 문장들이 호흡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운율을 세밀하게 읽어내다 보니 음악의 프레이즈를 연구하는 측면에서도 새롭게 포착하는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답변을 이어가던 김세현은 문득 짚고 넘어갈 부분 한 가지가 있다며 강조했는데,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모든 과정이 결국 음악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여러 경험을 쌓고 저변을 넓힌다면 그에 따라 음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도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저도 지금이야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비단 ‘문학’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추후에는 미술이나 영화와 같은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탐구해 볼 생각입니다. 마침 저희 교수님께서도 영화를 많이 보라고 권장하시기도 하고요.”
영화배우가 극중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영화감독이 빚어내는 서사의 흐름, 그 가운데 가미되는 각종 연출들이 결국 연주자로서 작품에 몰입하는 방향성과 동일한 결에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연주자는 ‘음악’이라는 영화를 다루는 감독이자 배우가 되어야겠죠. 아, 그런데 집에서 영화를 혼자 보다 보면 묘하게 조금 무서워서 아직은 잘 즐기기가 어렵네요.”(웃음)
추가로, 기자는 그에게 여가 시간에 어떤 활동을 즐기는지,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준비하였으나, 수업 개근도 어려울 만큼 두 개의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물론 미술과 영화 분야조차도 탐구의 대상이 되는 그에게는 그 질문이 들어갈 틈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던져본 질문에 그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답을 이었다. “끼니때마다 맛있는 음식 챙겨 먹는 게 최고의 여가 생활이에요. 체력 관리는…러닝머신을 타기도 하는데, 통학 거리가 가깝지는 않아서 그냥 학교 오가는 길이 걷기 운동이네요.”(웃음)
첫 음반에 실어 보내는, 파리를 향한 헌사
화제를 모았던 작년의 콩쿠르 우승에 이어 김세현이 올해 다시 한 번 들고 온 희소식은 워너클래식스와의 독점 녹음 계약 소식이었다. 체결 이후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보일 음반은 오는 9월 4일, 전 세계 동시 발매를 앞두고 있다. 수록곡은 김세현이 직접 피아노 독주로 편곡한 포레의 가곡 ‘꿈을 꾼 후에’로 시작하여, ‘뱃노래’ 1번, ‘왈츠 카프리스’ 1번, 즉흥곡 2번까지 포레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이후 쇼팽 ‘12개의 연습곡’ 전곡과 녹턴 8번이 이어지며, 바이젠베르크 편곡의 ‘4월의 파리에서’로 끝맺는다. 음반에 담긴 모든 작품에 ‘파리’라는 중심이 존재한다. 일종의 파리에 보내는 헌사인 셈이다.
“제가 처음으로 유럽에서 무대를 가진 곳이 파리였어요. 그때부터 파리는 제게 특별한 도시로 남아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작년에 우승한 롱티보 콩쿠르도 파리에서 열렸죠. 그 이후로 파리 시내의 공연장은 물론 개선문, 에펠탑과 같은 명소에서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렇게 연주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도시가 더욱 각별해졌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파리는 “김세현이 지닌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 도시”였다. 파리와 연관지을 수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 가운데서 쇼팽과 포레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었다. “두 인물 모두 파리에서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이 크게 열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음반의 의미와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또 쇼팽과 포레는 악풍 면에서 연결되는 지점도 있고요. 쇼팽은 예전부터 정말 많이 공부해 온 작곡가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롱티보 콩쿠르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매료된 포레와 함께 담아내면 조화로울 것 같았어요.”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쇼팽·포레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작품은 ‘4월의 파리에서’인데, 김세현은 이 작품을 일종의 앙코르와 같은 느낌으로 배치하고 싶었다고 한다. “‘파리’라는 맥락에도 맞을 뿐더러 선율적으로도 아름다운 곡이에요. 사실 전체를 선곡하는 과정에서 ‘노래’와 ‘춤’이라는 저만의 기준을 세웠는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요소를 다 품고 있기도 해요. 마침 음반의 첫 곡부터 편곡작이다 보니, 나름의 수미상관을 맞춘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다만 김세현은 ‘파리’를 음반의 타이틀로 못 박으려던 의도는 아니었다고 덧붙이며, 이 음반의 전체적인 흐름을 엮는 ‘부제’정도로 여겨줬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2025년 롱티보 콩쿠르 우승, 데뷔 음반 ‘쇼팽 & 포레’
Warner Classics 2685478313
김세현의 첫 음반 발매는 이를 기념하는 독주회로 이어진다. 1부에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이, 2부에는 쇼팽 ‘뱃노래’와 12개의 연습곡 Op.25가 연주된다. 이중 음반 수록곡과 겹치는 작품은 12개의 연습곡이 유일하며, ‘뱃노래’는 음반에 실린 포레 대신 쇼팽의 작품을 택했다. “물론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무대라지만, 음반과 동일한 틀을 가져가기보다는, 연결성을 일정 부분 확보하면서도 다른 곡들을 무대에 세워보고 싶었어요. 우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쇼팽과 슈베르트는 비슷한 시대를 공유하지만, 악풍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기 때문에, 좋은 대비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어요.”
김세현은 슈베르트를 ‘인간적인’ 작곡가라고 표현하며, 그의 음악에는 인간의 삶, 그리고 삶의 그림자가 녹아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음악은 여유를 가지고 오롯이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어요. 화려하게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질 때 마음으로 파고드는 그 감흥은 슈베르트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덜어냄’으로 완성하는 음악
기자가 인터뷰 막바지에 그에게 던진 질문은 ‘음반 녹음 시기와 독주회 사이에는 몇 달의 기간이 있는데, 그 사이에 연습을 지속하며 새롭게 살을 붙여나간 부분이 있는가?’였다. 여기서 김세현이 내놓은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물론 작품을 공부할 때는 많은 것을 채워나가야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고 나면 ‘덜어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이 쌓이다 보면 더 들여다봐야할 것을 못 보는 상태에 도달할 테니까요.”
그가 밝힌 소신은 이번의 음반 작업과 독주회 뿐 아니라 그가 음악에 접근하고 연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해당하는 신념이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에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와 다음 음반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물었더니, 이런 내용은 미리 공개하면 재미가 없다며 “일단 다음 음반은 쇼팽과 포레는 아닐 거에요”라는 말만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음반에 대해 ‘꽃다발’이라는 말로 힌트를 남겼다. 그는 확실히 덜어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연주자였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크레디아
김세현(2007~)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하여 월넛힐 예술고등학교·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졸업했다. 2023년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 1위, 2025년 롱티보 콩쿠르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 및 청중상·평론가상·파리 특별상을 동시 수상했다. 올해 데뷔 음반을 발매했으며,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하버드 대학 복수 학위로 재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세현 피아노 독주회
9월 6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쇼팽 ‘뱃노래’·‘12개의 피아노 연습곡’ Op.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