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박재홍, 헌신하듯 마주하는 매일의 삶과 음악 속에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9월 1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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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박재홍

헌신하듯 마주하는 매일의 삶과 음악 속에서

협주곡·소나타·전주곡을 이어가며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가 되고픈 이유에 대하여

©rohsh

 

 

 

 

 

 

 

 

 

 

 

 

“이 곡을 선택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9월의 독주회를 앞둔 피아니스트에게 이번 프로그램을 선정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2021년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로 이름을 알린 박재홍(1999~)은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2024년 데뷔 음반에 수록한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에 이어 이번에는 같은 작곡가의 전주곡 24곡 전곡을 선보이며 이른바 ‘라흐마니노프 전곡 프로젝트’의 세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다시 바라본 라흐마니노프

박재홍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 롤모델인 피아니스트도 라흐마니노프였다. 그가 이 음악가에 이토록 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피아노에 깊이 빠져있던 10대 시절, 박재홍은 어린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화려함과 거대한 스케일에 빠졌다. 하지만 연주를 거듭하며, 특히 그의 소나타 1번을 연주하면서 박재홍은 작곡가의 이면을 보았다. “그동안 라흐마니노프를 가볍게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절절한 선율로 가장 사랑받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멜로디가 없었어요. 작곡가가 가진 화성적이고 구조적인 완성도에 다시 반하게 된 거죠.”

그가 이번 독주회에서 24개의 전주곡을 거대한 한 편의 이야기로 엮는 핵심은 치밀하게 이어지는 ‘처음과 끝’의 연결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스물네 곡은 각각 다른 24개의 조성으로 쓰였어요. 그 중 첫 곡은 c#단조이고, 마지막은 D♭장조인데, 이명동음(이름은 다르지만 실제 소리는 같은 음)으로 이루어져 있죠. 저는 라흐마니노프가 이것을 분명히 의도했다고 생각해요.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시대순으로 배열했는데, 이렇게 처음과 끝의 으뜸음이 연결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전곡 연주’는 그 자체로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기에 각오도 남다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박재홍은 오히려 완성된 ‘세트’ 같은 프로그램을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한 작곡가의 작품이 이어지며 유기적으로 구성되는 나름의 서사, 고점과 저점,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편해요. 물론, 계속해서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무대 위에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올라야 저의 의도가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요.”

그러니 그가 라흐마니노프의 독주 작품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는, 24개의 조성 안에서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모두 담은 ‘전주곡’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은 절제된 감정으로 연주했을 때 가장 진가를 발휘하겠다고 느껴요. 꾹꾹 참았지만 기어이 터져버리는 눈물 한 방울이 가장 위대한 울음인 것처럼요.” 섬세하지만 단단하게 기세를 몰아가는 연주 스타일이 박재홍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달라진 모습

박재홍은 지난 5월 베를린에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전곡을 녹음한 음반을 2027년에 선보일 예정이고, 같은 해 5월 1일에는 뉴욕 카네기홀 잔켈홀에서 독주 데뷔 무대가 예정되어 있다. 올해 9월 12일에는 치난달리 페스티벌에서 키안 솔타니와의 듀오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고, 9월 14일에는 엔리케 디에메케/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11월 17일부터 22일까지는 프랑스 앙제와 낭트에서 안나 라키티나/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한다. 이런 바쁜 일상 중에도 틈만 나면 사색을 즐기고, 책과 음악에서 매일 새로운 의미를 찾는 박재홍이 음악이 아닌 것에서 영감을 찾는 방법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1년 중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30일은 될까요? 저는 매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자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온전히 헌신하는 삶(fully dedicated life)을요.”

주어진 공간에서 ‘온전히 헌신하는 삶’은 그가 한국을 떠나 맞았던 새로운 일상에서도 녹아있었다. 박재홍은 2024년부터 독일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에서 언드라시 시프(1953~)를 사사했다. 그가 거주하는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수많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도시다.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에서, 박재홍의 일상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달라졌다. “당장 요리를 해 먹어야 하는데 갑자기 집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든가, 고장난 엘리베이터 고치는 데에 몇 주가 걸린다든가, 그럴 때 처음엔 ‘서울이 참 편하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유를 중시하는 베를린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그 ‘편하지 않음’을 즐기게 되고, 일상에서도 여유를 찾게 됐어요. 말하자면 바쁘면서도 여유로워졌달까요.”

그는 세계적인 거장과의 레슨 중 찾아왔던 ‘마법 같은 순간’도 회상했다. “시프 선생님께선 항상 저의 경험에 관해 물어봐 주셨어요. 이곳을 걸어봤는지, 이 음식은 먹어봤는지, 이 작품은 본 적 있는지, 그런 저의 지난 경험을 일깨우며 공감각적인 인지를 높여주려고 하셨죠.” 스승의 조언을 따라 경험해 보는 것들, 여행객이 아니라 실제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을 통해 피부로 느껴지는 ‘문화적 DNA’가 그에게서 새로운 성장과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가장 진실하고 순수하게 음악을 바라보다

독주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이지만, 실내악 연주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죠. 혼자 연주를 듣고, 판단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음악의 진정한 덕목을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과 소통하려면 음악가끼리도 좋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실내악을 정말 사랑해요. 감사하게도 훌륭한 연주자분들과 함께 무대에 설 일이 많아지면서, ‘귀 호강’을 한다는 마음으로 음악적인 지평을 넓히고 있어요.”

물론, 연주자로서의 삶만 생각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박재홍은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떠올려 본다. “이번 연주곡 중 하나인 ‘10개의 전주곡’(op.23) 중 6번은 라흐마니노프가 첫딸 이리나가 태어난 날 썼다고 전해지는 곡이에요. 몽글몽글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 안에는 아이가 탄생한 후 그가 느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죠. 저도 언젠가는 가정을 이루고, 좋은 아빠가 되고, 그렇게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습에 매진하는 도중 이루어진 인터뷰에도 음악과 삶, 철학에 관한 질문에 목소리가 반짝거리던 그는 담백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확신이 가득한, 영락없는 ‘예술가’였다. “음악가가 음악가인 이유는, 결국 피아노 앞에 앉아 몰입하는 순간 현실의 어려운 것들을 다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아이처럼 행복하게 음악을 즐기는 순간을 떠올릴 때, 그는 가장 솔직한 인간 ‘박재홍’이 되었다. 음악에 대한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갈수록 더욱 강하게 느낀다는 젊은 피아니스트. 그가 계속해서 관찰하고 성찰한 끝에 빚어낼 음악이 ‘참을 수 없이’ 기다려진다.

장지현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박재홍(1999~) 2021년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에서 4개의 특별상과 함께 우승했고, 클리블랜드 영 아티스트 콩쿠르·지나 바카우어 영 아티스트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2024년 데뷔 음반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를 발매했고,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슈타츠필하모니 뉘른베르크 등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박재홍 피아노 독주회
9월 6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흐마니노프 환상 소품 중 ‘전주곡’ Op.3 no.2,
‘10개의 전주곡’ Op.23, ‘13개의 전주곡’ O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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