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마린스키 발레 퍼스트 솔리스트 전민철,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찬란한 도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9월 1일 10:58 오전

COVER STORY

마린스키 발레 퍼스트 솔리스트 전민철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찬란한 도약

얼어붙은 북방의 수도를 단숨에 매료시킨 뜨겁고도 눈부신 비상!

고전 발레의 성지, 마린스키의 스포트라이트가 지금 한 아시아의 청년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
지난 가을, 퍼스트 솔리스트로 직행해, 단 한 시즌 만에 8편의 주역을 꿰찬 무용수 전민철.
춤으로 빚어내는 완벽한 호흡과 흔들림 없는 시선은 그가 이미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총괄 유내리 기자 사진 김용호 의상협찬 제이백 쿠튀르

INTERVIEW 비상의 첫 계절 _신세나
COLUMN 1 전민철의 꿈터, 마린스키 발레의 역사 _이희나 | COLUMN 2 러시아 무대에서 활약한 한국 무용수들 _이희나
Mentor’s VIEW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조주현 교수 _유내리

 


 

INTERVIEW

비상(飛上)의 첫 계절

전례 없는 속도로 고전 발레의 심장부에 안착하다

 

“아, 이 반짝이는 샛별이 마린스키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겠구나…”

올해 봄, 마린스키 발레의 243번째 시즌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필자는 무용수 전민철의 무대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입단 1년 차 새내기 발레리노의 눈부신 비상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퍼스트 솔리스트로 전격 입단한 전민철은 시즌 초반의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지나, 수많은 전설을 탄생시킨 무대 위에 자신의 이름을 점차 또렷하게 새겨가는 중이었다.

마린스키 발레에서의 첫 시즌을 마친 전민철 무용수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연습하면서 물론 힘든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까지 포함해서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누군가 마린스키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는지,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어려움과 짧은 시간 안에 새 작품을 익히고 처음 만나는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던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그에게 마린스키 발레에서의 첫 시즌은 힘듦보다 배움과 감사가 훨씬 큰 시간이었다. 한 작품씩 새로운 배역을 더하며 레퍼토리를 넓혀갔고, 그만큼 현지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지난해 7월 객원무용수로 마린스키극장에 오른 전민철은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의 친구, ‘라 바야데르’에서는 주역 솔로르 역을 맡으며 러시아 관객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코르 드 발레 단계를 거치지 않고 수석무용수 바로 아래 등급인 퍼스트 솔리스트로 정식 입단했다. 이례적인 출발이었다. 그러나 더 눈여겨볼 것은 그에게 주어진 직급보다, 그 이후의 시간이었다.

 

낯선 무대에 스며드는 시간

이제는 마린스키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느끼나요?

“아직 제가 이곳 무대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전막 공연은 제 역할만 잘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다른 무용수들, 무대 위 모든 사람과 호흡하고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니까요. 이방인이 아니라 마린스키 무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경험,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입단 첫 시즌 동안 전민철에게 주어진 무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입단 첫 시즌, 전민철은 ‘라 바야데르’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레이몬다’ ‘파라오의 딸’까지 여덟 편의 전막 발레에서 주역을 맡았다. 신인 무용수에게 좀처럼 주어지기 어려운 기회였다.

그러나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배역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무대 위의 자신감과 표현력이 눈에 띄게 깊어졌기 때문이다. 한 시즌 동안 그의 무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변화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데지레 왕자 역을 맡은 전민철 ©Alexander Neff/사진 제공 마린스키극장

 

 

 

 

 

 

 

 

 

 

 

 

입단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써 여덟 편의 전막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극장과 단장님의 큰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드리안 파데예프 단장님께서 평소에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 늘 믿어주셔서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단장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실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유리 선생님(발레마스터 유리 파테예프)께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고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 공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아붓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동료들이 해준 말 중에 기억나는 말이 있는지요?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데요.(웃음) “네 공연이 큰 영감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래도 내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큰 힘이 됐습니다.”

시즌 초반과 비교해 공연을 거듭할수록 전민철을 향한 관객들의 환호도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인사를 드리기 위해 커튼콜 무대 앞으로 나가는 순간은 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요. 커튼 뒤에서 파트너와 인사를 나누고, 단장님이나 선생님께 공연에 대한 코멘트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다 커튼이 열리고 무대 앞으로 나서는 순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분들의 환호와 웅장한 극장의 풍경을 마주하면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대에 계속 남아 관객분들 한 분 한 분께 끝없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걸요.”

“이방인이 아니라 마린스키 무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김용호 작가가 포착한 전민철의 또 다른 모습은 P.193에서 이어집니다.

빌리를 꿈꾸던 소년, 마린스키에 닿다

세계 클래식 발레의 중심지로 꼽히는 마린스키 발레는 프랑스 출신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184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간 이후부터 완성되어온 러시아 고전 발레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2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이곳은 전민철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그려온 꿈의 무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을 꿈꾸며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던 소년. 그러나 그 좌절은 꿈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무대를 향한 출발점이 됐다. 빌리는 되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마린스키 발레의 무용수가 되겠다는 꿈은 결국 현실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취미로 동네 학원에서 한국 무용을 배우던 전민철은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에 도전했다.

“운 좋게 1차 오디션에 합격한 뒤 1년 동안 뮤지컬에 필요한 여러 장르들을 배웠어요. 발레뿐 아니라 탭댄스·아크로바틱·재즈·힙합·연기까지 익혔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쏟아부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했어요. ‘정말 키 때문이었을까, 내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며 스스로 탓하기도 했죠.”

그는 결국 발레를 비롯해 배우던 모든 것을 그만두고 인문계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오디션을 준비했던 친구들을 격려하기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전민철을 지도했던 노지현 안무감독은 그가 발레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발레를 다시 배워라. 너는 발레할 때 빛이 나는 아이야.”

어쩌면 그 역시 마음 한편으로는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그는 다시 발레를 시작했고, 선화예술중학교에 편입했다. 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들어갔고, 열여덟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했다. 지난해에는 대학을 조기 졸업했으며, 졸업 전 이미 마린스키 입단이 결정돼 있었다.

마린스키 입단 전에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의 게스트 주역으로 2024년 9월 ‘라 바야데르’와 이듬해 4월 ‘지젤’ 무대에 올랐고, 그 무렵 열렸던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한 번 멈춰 섰던 소년의 발레 인생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음 장을 펼쳐왔다.

“모든 것이 운이 좋았던 덕분인것 같아요. 선화예중에 편입했을 때만 해도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고 실력도 많이 부족했거든요. 하지만 좋은 분들과 선생님들께서 늘 곁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영재원에서는 제 인생의 스승이신 조주현 교수님도 만날 수 있었죠.”

조주현 교수의 언급에 그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교수님은 발레뿐 아니라 제 인생에서 가치관을 정립해 주시고 저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신 분입니다. 저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라서 교수님께서 저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정말 궁금합니다.”(웃음)

마린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무대였다고 들었습니다. 공개 오디션 기회가 거의 없는 발레단인데, 어떻게 입단의 문이 열렸나요?

“마린스키는 제게 오랜 꿈이었습니다. 다만 외국인, 특히 아시아 무용수에게는 입단의 문이 좁다는 이야기를 들어 저도 쉽게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러던 중 김선희 교수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께서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를 계기로 인연을 맺으신 유리 파테예프 선생님(당시 마린스키 발레단장, 현 발레마스터)께 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유리 선생님께서 제 춤을 영상으로 먼저 보고 싶다고 하셔서, 기민 형(김기민·2011년 입단/현 마린스키 수석무용수)을 통해 공연 영상을 보내드렸어요. 이후 직접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고, 마린스키에서 오디션을 치른 뒤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전민철은 마린스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힘만으로 온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린스키 입단은 김선희 교수님과 그 모든 과정을 도와준 기민 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자랑스럽다, 멋지다’고 말씀해 주시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이시죠. 기민 형은 입단 과정뿐 아니라 입단 후에도 제가 이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계속 도와주셨어요. 형의 공연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는데, 늘 저를 잘 살펴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예상보다 더 깊었던 마린스키에서의 시간

전민철은 마린스키 입단을 앞두고 일부러 기대를 낮추려 했다고 회상했다.

“오디션에 합격한 뒤에도 이곳에서의 삶이 어떨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함부로 기대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마린스키의 예술가들도 결국 나와 마찬가지로 무대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너무 큰 환상을 품지는 말자’고 각오했죠. 현실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제가 경험한 마린스키는 오히려 더 큰 기대를 품고 와도 좋았을 곳이었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화려한 명성보다도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건 무용수들과 지도위원 선생님들의 예술에 대한 진심이었습니다. 다른 무용수들의 공연을 볼 때도, 제가 리허설을 하는 연습실에서도, 공연을 하는 무대에서도 매 순간 진정성 어린 태도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모든 무용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척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린스키에서 본 공연 가운데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마린스키에 온 뒤 거의 처음으로 보았던 빅토리아 테료시키나(수석무용수)와 기민 형의 ‘백조의 호수’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 숙소로 오는 내내 ‘내가 정말 저 아티스트들과 같은 발레단에서 함께 춤출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공연의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마린스키가 고전 발레의 요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도 있을 텐데요.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가장 크게 느낍니다. 말로만 들어왔거나 역사 속에서만 접했던 위대한 무용수들의 자료 영상을 볼 때마다 ‘아, 이곳이 정말 고전 발레의 본산이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오리지널에 가장 가까운 버전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고, 선배 무용수들이 같은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했는지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영감이 됩니다.”

사실 마린스키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레이몬다’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 발레가 이곳에서 초연되거나 예술적으로 완성됐다. 고전 발레의 원형과 해석을 보존하고, 전승해 온 이 무대에서 전민철은 자신의 조심스러운 첫 시즌을 보냈다.

 

동화 속에서, 로미오의 시간 속에서

2025/26 시즌 막바지인 2026년 7월, 전민철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마린스키 발레를 대표하는 수석무용수이자 섬세한 서정성으로 사랑받는 올레샤 노비코바(1984~)와 호흡을 맞추었다.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온 수석무용수와 이제 막 비상을 시작한 신예. 두 사람이 그려낸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동화는 매우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지난 시즌의 마지막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매우 인상 깊게 봤습니다. 대선배인 노비코바와 무대를 준비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가장 어려웠던 건 리허설 시간이 사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초 한국에서 ‘인어공주’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일주일 만에 무대에 올라야 했거든요. 하지만 노비코바 선배는 워낙 무대 경험이 많고 리허설도 매우 효율적으로 이끌었어요. 무엇보다 연습 과정에서 저를 믿어주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 믿음 덕분에 저 역시 제 자신을 믿고, 무대에서 맘껏 표현하며 호흡을 맞춰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기에서는 노비코바 선배가 가진 특별한 에너지가 있었어요. 정말 오로라 공주가 저를 동화 속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춤을 출 때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는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 순간에는 제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힘이 느껴졌죠.”

2026/27 시즌 첫 작품이 벌써 공개됐습니다. 오는 9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다시 마린스키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퍼스트 솔리스트 마리아 시린키나와 함께한 ‘로미오와 줄리엣’ ©Alexander Neff/사진 제공 마린스키극장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책이나 영화 등 어떤 형태로 이 작품을 접해도 늘 눈물을 흘릴 만큼 작품이 주는 정서를 좋아해요. 음악과 이야기, 인물들의 드라마가 아름답게 맞물린 작품이라 다음 시즌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작품의 데뷔는 이미 했지만 로미오로 춤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 설렙니다. 지난 시즌 공연을 마친 뒤에는 한동안 로미오라는 인물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여운이 컸거든요. 특히 이 작품은 정서적 진폭이 워낙 커서 리허설 때보다 실제 무대에서 감정이 훨씬 깊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리아 시린키나 선배와 함께한 공연에서는 저뿐 아니라 파트너 역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무대 위에서 서로의 마음과 호흡이 맞닿았던 그날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직 맡지 않은 작품 가운데 새롭게 데뷔하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최근에 본 ‘사랑의 전설’입니다. 정식 입단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작품이 주는 감동이 압도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분석하기보다 작품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꼭 무대에서 직접 춤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전설’은 페르시아권에 전해 내려오는 페르하드와 시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짐 히크메트가 쓴 희곡에서 출발한 발레다. 이후 히크메드가 이를 발레 대본으로 각색하고 아리프 멜리코프의 음악과 지난해 작고한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로 완성돼 1961년 키로프극장(현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됐다. 여왕 메흐메네 바누와 그의 동생 시린, 화가 페르하드의 비극적인 관계를 통해 사랑과 희생, 질투와 권력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고전의 전통 위, 나만의 색채를 입히다

8월에는 한국에서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백조의 호수’ 공연(8.14~23/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마쳤습니다.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지닌 마음가짐과 각오가 있었다면?

“늘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문훈숙 단장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셨습니다. 마침 공연 일정이 마린스키 시즌 오프 기간과 맞물려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기여서 더욱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1년 동안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저만의 지그프리드 왕자를 한국 관객분들께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관객분들께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또 오랜만에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들과 다시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기대가 컸던 무대였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어떠했나요?

“감사하게도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아 관객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30주년 기념 공연과 ‘한여름 밤의 발레 축제’ 공연도 함께했고요. 틈날 때마다 러시아에 있을 때 늘 그리웠던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한식을 먹으며 재충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첫 시즌이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고전의 전통 위에 자신만의 색과 해석을 더욱 깊이 새겨갈 차례다. 빌리를 꿈꾸던 소년은 어느새 세계 발레의 역사가 흐르는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마린스키에서 써 내려갈 그의 다음 페이지는 이제 막 시작됐다.

신세나(러시아 통신원) 사진 김용호

 

ABOUT 마린스키 발레의 등급제도

마린스키 발레의 단원은 크게 코르 드 발레→코리페→세컨드 솔리스트→퍼스트 솔리스트→프린시펄의 5단계로 나뉜다. 코르 드 발레는 군무를 중심으로 무대를 구성하는 기본 단원이며, 코리페는 군무를 이끌면서 소규모 솔로 배역도 맡는다. 세컨드 솔리스트부터 본격적으로 주요 솔로 배역을 맡으며, 그 위의 퍼스트 솔리스트는 주역으로 활약하는 핵심 무용수다. 가장 높은 등급인 프린시펄은 발레단을 대표하는 수석무용수다. 전민철은 2025년 입단 당시 코르 드 발레 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프린시펄 바로 아래인 퍼스트 솔리스트로 합류했으며, 2026년 현재 이 직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마린스키 발레 2026/27 시즌
‘로미오와 줄리엣’
9월 11일 오후 7시 마린스키극장
전민철(로미오)·마리아 호레바(줄리엣) 외
발레리 옵샤니코프(지휘)/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댄스 신·라운드 댄스’
9월 26일 오후 7시 마린스키 제2극장
전민철(‘라운드 댄스’)·야나 페네바·알리사 바리노바 외
아르세니 슈플랴코프(지휘)/마린스키 오케스트라

 


MENTOR’S VIEW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조주현 교수

남다른 ‘가능성’과 ‘가르침’이 일군 결실

전민철의 촬영이 한창이던 날, 오랜 스승인 조주현이 촬영장을 찾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제자는 어느덧 마린스키 발레의 퍼스트 솔리스트가 되었고, 조주현 역시 워싱턴 발레에서 활동(1992~2000)하며 타국의 무대를 경험한 무용수였다. 같은 길을 먼저 걸어본 스승의 눈에 지금의 전민철은 어떻게 비칠까. 타고난 재능과 성장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펼쳐갈 미래를 물었다.

 

 

 

 

교육자의 시선으로 비추어 볼 때, 전민철이 지닌 가장 희소한 재능은 무엇인가요? 여러 요소 가운데 특히 남달랐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민철에 대해 언급할 때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용수이기 때문이에요. 음악성이나 신체 조건처럼 한쪽이 유독 두드러진다기보다, 여러 요소가 아주 높은 수준에서 고르게 갖춰진 드문 경우입니다. 신체 조건과 선, 비례가 좋고 근육의 질도 타고났습니다. 움직임이 뻗어나갈 때 힘이 자연스럽게 실리고, 음악 안의 리듬을 몸으로 풀어내는 감각도 있어요. 무엇보다 그 밑바탕에는 발레에 대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모든 퍼즐 조각들이 다 채워진 아이는 교육 현장에서 만나기가 정말 힘듭니다. 특히 춤에 몰입하는 힘과 함께 나아가는 태도를 꼽고 싶습니다. 관객과 평가를 의식하기보다 음악과 동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동시에 친구들과 춤을 이야기하며 서로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합니다. 발레는 결코 혼자 완성되는 예술이 아니기에, 가르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몰입과 상생의 힘이야말로 민철이 가진 특별한 재능 중 하나죠.

처음 지도할 당시, 가장 부족했던 부분과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좋은 신체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몸을 온전히 쓰는 방법까지 이해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몸을 열고 뻗으며, 힘을 빼고 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길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몸을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뒤의 성장 속도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표현력과 예술성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마치 몸을 쓰는 능력이 재능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죠. 학습 능력 역시 뛰어나서, 선생님이나 안무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의도까지 빠르게 읽어냅니다. 가르치다 보면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이 생기는데, 민철은 그 안에 담긴 뜻까지 알아차리는 아이였어요. 정말 드문 재능이죠. 같은 시간을 가르쳐도 훨씬 많은 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빠른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중요하게 강조해 온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전민철은 교수님의 “왕관을 스스로 쓰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기대주로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주 이야기했어요. 재능 있는 아이일수록 늘 1등이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쉽죠. 처음에는 그것이 동력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왕관을 스스로 머리에 쓰는 순간부터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민철에게는 ‘잘해야 한다’는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시도에 가치를 두라고 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몸과 감정을 던질 수 있어야 진짜 예술적인 순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무용수, 자신이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것을 계속 시도하며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요.

마린스키를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퍼스트 솔리스트 입단, 그리고 첫 시즌까지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어느 발레단에 가더라도 잘해낼 수 있는 무용수라고 생각했지만, 마린스키행은 특히 기쁘고 자랑스러웠어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고전 발레의 전통과 예술적 철학 속에서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며 자신의 몸과 예술성을 더욱 깊이 다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퍼스트 솔리스트로 입단했다는 소식 역시 그동안 보여준 성장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인정받은 결과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첫 시즌의 무대를 지켜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큰 무대의 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역할 안에서 본인만의 캐릭터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작품마다 호흡과 표정이 달라졌어요. 때로는 절제된 숨으로 감정을 눌러 담고, 때로는 자유롭게 풀어내며 역할의 정서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압박과 부담 속에서도 민철의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린스키에서 첫 시즌을 마친 현재 전민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초지일관, 자강불식, 그리고 일일시호일. 처음 품었던 마음을 잃지 않고, 스스로 쉬지 않고 나아가되, 그 모든 하루를 좋은 날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발레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시작이 열리는 끝없는 도전의 세계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역할을 만나고 자신과 싸우는 과정에서 힘들고 흔들리는 순간을 만나겠지요. 그때마다 스스로 갈고닦되, 그 어려움조차 마음껏 누렸으면 합니다. 화려한 무대에 선 날뿐 아니라 연습실에서 땀 흘리고 좌절하는 날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좋은 날입니다. 무대에 서고 관객과 눈빛을 나누며 예술이 주는 벅찬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축복을 잊지 않는다면, 행복한 무용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내리 기자 사진 김용호

 


 

COLUMN 1

전민철의 꿈터, 마린스키 발레의 역사

황실 극장에서 오늘의 무대까지 늘 찬란했던 마린스키의 전통

마린스키극장 ©Valentin Barnovsky/Marinsky Theatre

안드리안 파데예프 마린스키 발레 예술감독 ©Mikhail Vilchuk/Marinsky Theatre

 

 

 

 

 

 

 

 

 

 

2024년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발레리나 나탈리아 레오노바가 자신의 발레 인생이 시작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품 속 도시는 인간의 삶과 예술, 역사와 기억이 중첩되는 공간이자 발레의 근거지로 그려진다. 그리고 실제 이 곳에는 마린스키 발레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다.

 

발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황실 문화와 풍성한 예술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다. 네바강과 운하를 따라 펼쳐진 옛 건축물과 궁전, 극장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무대로 만든다.

표트르 대제에 의해 18세기 초 새로운 수도로 건설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의 앞선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는 창구였다. 발레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1738년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의 칙령으로 프랑스 출신 무용교사 장 밥티스트 랑데가 러시아 최초의 무용학교를 세웠고, 이 학교는 이후 황실극장학교를 거쳐 오늘날의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이어졌다.

마린스키극장의 시작은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카테리나 2세가 극장위원회를 만든 후 볼쇼이 카메니 극장(석조극장이라는 뜻)이 건설되었으며 1860년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연둣빛의 마린스키극장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황실극장의 체계 안에서 발레와 오페라를 위한 주요 무대로 성장했다.

이탈리아에서 태동해 프랑스에서 발전한 발레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예술로 자리 잡은 데에는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의 공이 크다. 1847년 러시아로 건너와 1869년 황실 발레의 수석안무가가 된 그는 고전발레의 형식을 정립했다. 대규모의 무대를 바탕으로 여러 막으로 구성된 스펙터클, 볼거리를 제공하는 디베르티스망, 아다지오와 바리에이션, 코다로 이어지는 그랑 파드되는 이 시기 고전 발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결합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호두까기 인형’(1892), ‘백조의 호수’(1895)는 러시아 고전 발레의 미학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라 바야데르’(1877), ‘레이몬다’(1898) 등 오늘날까지 세계 각국의 발레단이 공연하는 주요 클래식 레퍼토리가 탄생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마린스키는 또 하나의 발레 역사를 만들어낸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마틸다 크셰신스카야, 안나 파블로바, 바츨라프 니진스키, 미하일 포킨 등 전설적인 인물들이 춤을 췄으며, 이들 중 일부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의 기획으로 ‘러시아 시즌’과 디아길레프가 설립한 발레단인 발레 뤼스를 통해 파리에 진출해 러시아 발레의 존재감을 알렸다.
‘셰헤라자데’(1910), ‘불새’(1910), ‘페트루슈카’(1911), ‘봄의 제전’(1913) 등은 프티파가 정립한 고전 체계를 넘어 새로운 무용미학을 실험한 작품들이다. 러시아 발레는 유럽의 현대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넓혔고, 발레 뤼스에 함께했던 무용가들은 유럽과 미국 각지로 퍼져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냈다.

 

러시아 발레 교육의 메카, 바가노바

18세기부터 맥을 이어온 황실발레학교에는 유럽 각지의 발레 마스터들이 거쳐 갔으며 프티파와 포킨 등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그리고 이 학교의 졸업생이자 마린스키의 발레리나였던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 ~1951)에 이르러 발레 교육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바가노바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여러 전통이 혼합되어 있던 러시아 발레 교육을 하나의 체계적인 교수법으로 정리했다. 1934년 출간한 ‘고전발레의 기초’에는 움직임의 방법뿐 아니라 어떤 동작을 어떤 순서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 원리와 커리큘럼이 담겼다.

소비에트 시기 ‘레닌그라드 안무학교’로 불리던 발레학교는 1957년 바가노바를 기려 그의 이름을 교명에 붙였고, 오늘날의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이어졌다. 과거 황실극장과 발레학교의 긴밀한 관계와 달리 지금의 바가노바 학교는 마린스키 발레의 부속학교는 아니지만, 러시아 발레의 기본을 정리한 바가노바 메소드는 마린스키, 나아가 러시아 발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가노바 메소드의 핵심은 신체의 각 부분을 따로 훈련하지 않고 팔과 상체, 다리와 발의 테크닉, 음악성과 표현력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팔은 등에서 뻗어 나오는 듯 움직이고, 다리의 움직임도 몸통과 팔의 움직임과 이어진다. 머리와 시선, 어깨, 몸통, 골반의 방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에폴망 역시 중요한 요소다. 러시아 발레의 움직임이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전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1917년 혁명 이후 마린스키극장은 정치가 세르게이 키로프를 기리기 위해 키로프극장으로 개칭되었다. 황실발레의 유산 위에서 키로프 발레는 갈리나 울라노바·나탈리아 두딘스카야·루돌프 누레예프·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의 전설을 탄생시켰다.

냉전 시기였던 1961년 키로프 발레는 파리와 런던에서 공연하며 서구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서방에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 발레의 높은 예술적 수준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같은 해 누레예프의 망명이라는 사건까지 이어졌다. 이후 마카로바와 바리시니코프도 서방으로 망명했고, 누레예프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마카로바와 바리시니코프는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러시아 발레의 전통과 기량을 세계에 알렸다.

20세기 후반, 키로프 발레는 모리스 베자르·롤랑 프티·제롬 로빈스 등 서방 세계의 안무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오랜 고립에서 벗어났다. 1980~90년대에는 갈리나 메젠체바·타티아나 테레호바·이고르 젤렌스키·콘스탄틴 자클린스키·마하르 바지예프 등 개성이 뚜렷한 스타들이 활약했다.

1991년은 키로프 발레가 첫 내한을 가진 해다. 냉전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던 때, 러시아의 정통 발레가 한국의 무대에 올랐다는 점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레닌그라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뒤, 1992년에 극장 역시 키로프에서 마린스키라는 역사적 명칭으로 돌아왔다. 마린스키 발레의 아름다움은 고전 발레에서 확연히 드러나며, 무대와 의상, 안무에서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동시에, 2000년대 이후 서방 안무가들과의 교류, 젊은 러시아 안무가들과의 협업 등으로 발레단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마린스키에는 여러 세대의 스타들이 공존한다. 빅토리아 테료시키나·디아나 비쉬뇨바·올레샤 노비코바, 그리고 김기민·전민철이 마린스키의 얼굴이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발레를 공연한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고전발레부터 디아길레프 시절의 20세기 초 혁명적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비에트 리얼리즘 작품들과 오늘날 현대적으로 재탄생하는 작품들도 마린스키의 소중한 레퍼토리다.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곳. 오랜 시간 축적된 마린스키의 전통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희나(무용 평론가·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대표)

 


 

COLUMN 2

러시아 무대에서 활약한 한국 무용수들

러시아 발레계에서 한국 무용수들이 만들어온 도전과 성취의 궤적

바가노바 메소드의 전통과 마린스키·볼쇼이의 무대는 오랫동안 러시아 발레의 명성을 두텁게 만들어왔다. 그러나 한국 무용수들에게 이 무대는 언제나 가까웠던 곳은 아니다. 냉전의 시절을 지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낯선 러시아로 건너가 발레를 배우고 무대에 선 한국인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러시아 발레의 문을 두드린 지 30여 년, 이제는 한국인이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무용수로 활동한다. 처음에는 누군가 어렵게 열어야 했던 문이 이제 다음 세대가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된 셈이다.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선구자들부터 오늘의 무용수들까지, 러시아 발레 현장에서 이어져 온 한국인 무용가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에이프만 발레학교 학생들과 백영태

 

 

 

 

 

 

러시아 발레계의 문을 연 백영태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1946~)은 2000년 이후 한국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1990년대 초, 이미 에이프만 발레에서 활동한 한국인 발레리노가 있었으니, 현재 강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인 백영태다. 그는 러시아 발레단에서 정식 단원으로 활동한 최초의 한국인 무용수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소련이 막 교류의 물꼬를 트던 시절, 일본 순회공연 중 한국을 찾은 에이프만은 국립발레단의 백영태를 눈여겨보고 자신의 무용단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물자도 부족했던 당시 소련, 그것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용단에 한국인이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영태는 약 4년간 에이프만 발레에서 활동하며 세계 각지를 순회했고, 에이프만에게 직접 안무를 익혔다. 그는 현지에서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짧은 작품을 안무했으며, 귀국 후 국립발레단에서 에이프만의 작품을 바탕으로 ‘레퀴엠’과 ‘브라보! 휘가로’를 재안무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후 에이프만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제자들과 에이프만 발레학교에 연수를 하는 등 러시아에서의 경험을 한국 발레 교육과 창작으로 환원하고 있다.

마린스키·볼쇼이로 향한 유지연·배주윤

1990년대 초반에는 요즘처럼 해외에서 발레마스터를 초청해 클래스를 여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러시아의 발레학교에서 교사를 초빙해 워크숍을 여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유지연과 배주윤은 드문 기회를 통해 러시아 발레와 인연을 맺었다. 유지연은 예원학교 3학년이던 1991년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배주윤은 서울예고 재학 중이던 1992년 볼쇼이 발레학교로 향했다. 두 학교에서 각각 한국을 찾은 현지 교사들이 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바가노바에서는 김지영이, 볼쇼이에서는 김주원이 수학했다.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한 유지연은 2003년에 발간된 러시아 발레사 100년을 다룬 사전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실제 최초 한국인 단원은 강예나로, 그는 1994-95년 2년간 활동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솔리스트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며 15년 가까이 활동한 후, 2010년 ‘빈사의 백조’ 공연을 마지막으로 마린스키 무대를 떠났다. 귀국 후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외래교수로서 바가노바 메소드를 후학에게 전하고 있다.

배주윤 역시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볼쇼이 발레에 입단했다. 배주윤은 입단과 함께 당시 발레단 최초이자 유일한 동양인 발레리나가 되었다. 국립발레단이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작품을 잇달아 소개하던 당시에는 한국에서 김지영·김주원과 함께 주역으로 활약하며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볼쇼이 솔리스트 안드레이 볼로틴과 결혼해 모스크바에 정착한 그는 발레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볼로틴과 함께 광주시립발레단의 초청으로 2019년에 공연했던 ‘라 실피드’를 다시 한국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에이프만의 또 다른 발견 최리나

예원학교를 거쳐 캐나다 국립발레학교에서 공부한 최리나는 큰 키 때문에 고전 발레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고3 때 발등의 스트레스성 골절로 1년 반 가량 발레를 쉬기도 했다. 그러던 2006년, 에이프만 발레에서 오디션을 보러 오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도전해 합격한 그는 러시아로 건너갔다. 에이프만은 그의 큰 키와 유연성, 표현력을 눈여겨봤고, 2008년 ‘차이코프스키’에서 폰 메크 부인 역을 맡기며 그를 주요 배역으로 발탁했다.

최리나는 2010년 학업을 위해 발레단을 떠났지만, 에이프만 발레에서 주역무용수로 성장한 그의 경험은 한국인 발레리나가 러시아 무대에 진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마린스키의 스타 김기민

김기민은 이제 러시아 발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마르가리타 쿨릭과 블라디미르 킴 부부에게 배운 그는 두 스승의 눈에 띄어 2011년 마린스키 발레에 견습생으로 입단했다. 이듬해 솔리스트를 거쳐 2015년 수석무용수가 되며 러시아 발레의 중심에 섰다. 2016년에는 세계적인 발레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무용수상)를 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했다.

러시아에서 김기민의 인기는 대단하다. 엄청난 점프와 폭발적인 스피드, 뛰어난 테크닉은 그를 독보적인 무용수로 만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예술박물관의 ‘남성 발레리노’ 전시에서도 러시아 발레를 대표하는 열 명의 남성무용수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됐다. 김기민은 이제 동시대 러시아 발레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배주윤(볼쇼이극장 연습실)

마린스키 발레 ‘라 바야데르’의 김기민(2024) ©Natasha Razina

임서린(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상트페레르부르크의 또다른 미래 임서린

이제 러시아행은 마린스키와 볼쇼이만을 향하지 않는다. 러시아 발레계 곳곳에서 한국인 무용수들이 자신의 무대를 찾아가고 있다.

임서린은 2019년 로잔 발레 콩쿠르 참가를 계기로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졸업 실기시험을 지켜본 상트페테르부르크 미하일롭스키 발레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입단해 발레단 최초의 한국인 발레리나가 됐다.

2024년 페름아라베스크 콩쿠르에서 나탈리아 두딘스카야상을 수상했고, 2025년에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무대에서 볼쇼이 솔리스트 알렉세이 함진과 함께 공연하며 한국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마린스키와 볼쇼이로 대표되는 러시아 발레의 또 다른 무대에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인 발레리나라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주목된다.

백영태가 러시아 발레단의 문을 두드렸던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인 무용수가 러시아 무대에서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유지연과 배주윤이 마린스키와 볼쇼이의 문을 열었고, 김기민은 그 무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이제 전민철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에게 러시아는 더 이상 도달하기 어려운 ‘발레의 종주국’만은 아니다. 자신의 기량과 예술성을 시험하고, 하나의 무용수로 경쟁하는 여러 무대 가운데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 어렵게 열었던 문을 다음 세대가 통과했고, 그 길은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다.

이희나(무용 평론가·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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