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ER INSIDE
연출가 김지선 & 배우 김조민
너와 나를 위한 ‘모두의 숲’에서 만나는 동심
극단 ‘이야기꾼의 책공연’이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에
올리는 ‘코 잃은 코끼리 코바’에 담긴 공존의 철학

이들이 온 힘을 다해 무대를 짓는 이유는 명료하다. 이야기가 아이들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이크와 소품 상자를 들고 전국의 산골 분교와 공부방, 골목길 구석구석을 누벼온 원동력이었다.
사회적기업인 극단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2008년, 하자센터 프로젝트인 ‘언니 오빠가 들려주는 치마폭 이야기’에서 처음 싹을 틔웠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첫머리를 잡아주는 사람’으로 묵묵히 길을 걸어온 ‘이야기꾼의 책공연’의 철학은, 대표작 ‘코 잃은 코끼리 코바’(이하 ‘코바’)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코리아·이사장 방지영) 제33회 서울어린이연극상(2025) 대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동시에 흔든 이 성취의 중심에는, 여느 코끼리들과는 사뭇 다른 외모를 가진 아기 코끼리 ‘코바’가 서 있다.
지독한 건기, 물을 찾아 대이동을 떠난 코끼리 무리에서 뒤처진 코바는 굶주린 사자들이 도사리는 ‘으스스 숲’에서 표적이 되어 엄마도, 코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코바는 달라진 모습 그대로 의연하게 살아내며, 공존의 유토피아인 ‘모두의 숲’으로 모험을 떠난다. 길에서 독수리에게 도망치는 뱀 ‘텅’을 구해내고, 숲의 코끼리들에게 심한 텃세를 당하지만, 코바는 절망하는 대신 단짝 ‘텅’과의 우정을 무기 삼아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다. ‘상처’와 ‘차별’이라는 가장 깊은 바닥을 치고도 다시 통통 튀어 오르는 코바의 여정은, 거친 세상을 마주하게 될 아이들에게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일러주는 것만 같다.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르는 패브릭극 ‘코 잃은 코끼리 코바’. 극의 개막을 앞두고 연출가 김지선과 공동창작 배우 김조민을 만났다.
극장에 오른 코끼리 무리에서 발견한 다름의 미학
‘코 잃은 코끼리 코바’의 탄생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조민 ◎ 2021년 팬데믹 시기, 새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우연히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건기에 코끼리 무리가 대이동을 하던 중, 아기 코끼리가 사자에게 잡혀가는 장면이었죠. 엄마 코끼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결국 아기를 찾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아기의 코는 이미 잘려 나간 뒤였습니다. 엄마와 아기의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채 “험난한 정글에서 코가 잘린 코끼리는 앞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다큐멘터리가 끝이 났죠. 그 먹먹한 대사를 듣는 순간, 이 아기 코끼리의 순탄치 않은 앞날을 무대 위에서나마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꾼들이 모여 ‘다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지금의 ‘코바’가 탄생했습니다.
코바는 장애나 다문화, 외모, 성격 등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다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분이 해석한 코바는 어떤 존재인가요?
김조민 ◎ 코바는 분명 신체적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동물이라, 장애를 다룬 영화나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실제로 장애가 있는 삶을 살아보지 않은 제가 그분들이 겪는 깊은 고통과 무게를 감히 알 수도 없고 짐작조차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더 넓은 의미의 ‘다름’으로 접근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신체적·정신적인 범주뿐만 아니라, 남들과 조금 달라서 겪게 되는 사소한 소외나 어려움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요. 그러고 보니 코바는 우리 자신과 참 닮았더라고요. 어떤 날은 한없이 소심했다가도, 어떤 날은 무척 용감하고 활발해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고요.
공연을 하면서 아이들로 인해 가슴이 울컥했던 적이 있었나요?
김조민 ◎ 코바가 코끼리 무리에 들어오는 것에 찬성하냐면서, 친구들에게 동그라미(O)랑 가위표(X)로 투표를 해달라고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아이들은 진짜 숲속 동물 무리의 일원이 된 것처럼 완전히 몰입해, 번쩍 커다란 동그라미를 들어 올리죠. 대장 코끼리가 “이제 다 알았으니까 팔 내려라”고 하는데도, 애들이 팔을 번쩍 든 채 끝까지 안 내리는 거예요. 줄곧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는 조그만 팔들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왈칵 치밀어 울컥했어요. 아무런 계산도 없고, 복잡한 논리도 없잖아요. 그저 ‘친구가 얼마나 아팠는지 사연을 다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 주는 순수한 마음이요.
김지선 ◎ 사실 함께 온 부모님들에게도 뭉클함을 느끼기도 해요. 같은 대목에서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드시더니, 아주 밝고 씩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코바를 쭉 지켜봤는데, 다른 동물들도 잘 도와주고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어요. 꼭 받아줘야 해요.” 그 대답을 듣는데, 마치 곁에 앉은 당신의 아들에게 건네는 격려이자 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어른의 정답을 벗어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연이 끝난 뒤, 함께 관람한 가족이 어떤 방향으로 대화를 나누면 좋을까요?
김지선 ◎ 오히려 부모님들께 “교훈적인 질문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른들은 아이와 대화할 때 자기도 모르게 ‘착하고 올바른 결론’으로 대화를 이끄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희에게는 아이들이 극장에서 느낀 날것의 직관적인 감정이 중요해요. 굳이 연극이 주는 메시지에 갇힐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코바가 울 때 네 마음은 어땠어?”처럼, 아이가 느낀 감각과 감정을 말갛게 물어봐 주는 대화만으로도 충분하죠.
작품은 36개월 이상 관람가입니다. 연령에 따라 반응도 다른가요?
김조민 ◎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 중 하나가 관람 연령대였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보다 훨씬 유연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품을 흡수하더라고요. 유아들은 패브릭이 동물로 변하는 모습 자체를 무척 신기해하고 즐거워해요. 코바가 울면 “쟨 왜 울어?”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반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코바의 편이 되어줍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함께 안타까워하고, 응원하고, 때로는 같이 울기도 하죠. 작품이 주는 따뜻함과 위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코 잃은 코끼리 코바’ 연계 프로그램

‘코 잃은 코끼리 코바’ 연계 프로그램

‘코 잃은 코끼리 코바’ 연계 프로그램
털목도리는 다람쥐로, 장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어릴 적 놀아본 힘으로, 어른을 산다’는 말이 있다. 잘 놀아본 경험이 평생을 버텨낼 마음의 뼈대가 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가공된 문구와 디지털 화면으로 둘러싸인 요즘 아이에게, 몸을 부딪치며 쌓는 ‘진짜 노는 경험’은 점차 귀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노는 데에도 일종의 ‘가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상상하고 사물을 비틀며 놀아본 경험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객석에 앉아서도 길을 잃기 쉽다. 코바 속 비유와 약속을 직관적으로 몰입하지 못하고, “저건 왜 그렇지?”하며 분석하기 일쑤. 연극을 온몸으로 누리는 대신, 글로 배우는 셈이다. 이들이 매끄러운 조형물 대신 집에서 쉽게 잡히는 ‘패브릭’을 선택한 이유도 동일하다. 일상에서 늘 만지는 평범한 천 조각이 순식간에 코끼리가 되고 사자가 되는 마법을 부린 것이다.
두 분은 ‘패브릭 오브제극’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독특한 작동 방식이 있다고 보시나요?
김지선 ◎ 그럼요, 옷마다 물성이 다 다른걸요. 질감, 형태, 촉감도 다르고요. 미끄덩거리고 긴 실크 넥타이는 뱀이 되고, 딱딱한 가죽 구두는 뾰족한 새 부리 같다는 느낌이 들죠. 본연의 물성을 그대로 살리려 굳이 가위질을 하거나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놔뒀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더 쉽게 상상하더라고요. 후드티를 꼬아서 코끼리를 만들어왔다는 아이도 있었어요.(웃음) 사실 이 방식은 옛날 소꿉놀이와 같아요. 양말 한 짝 펼쳐놓고 “이건 강물이야”하고, 진흙 널찍하게 발라놓고 “피자 구웠으니까 먹자” 하고, 풀 뜯어 빻던 그 시절 놀이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물을 비틀어 보던 그 힘이 이 극의 뼈대예요.
그래서 저희는 공연 전후에 즐길 수 있는 패브릭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기획했어요. 공연 전에 천이나 실 같은 재료로 세상에 없는 나만의 동물을 직접 만들어보게 하는 거죠. “내가 방금 천으로 사슴을 만들었는데, 무대 위에서도 천이 코끼리가 되네?”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의 상상력은 훨씬 더 넓어지더라고요.
김조민 ◎ 세상에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이 오브제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목소리로 움직이느냐’예요. 낡은 구두를 뒤집는 순간 날개 달린 새가 되는 것처럼, 오브제에 움직임이 입혀질 때 컵이나 모자가 비로소 하나의 생명(오브제)으로 살아 움직이거든요.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단원들끼리 밤낮없이 깔깔대며 지치도록 놀았어요.

‘찾아가는 책공연’의 연출가 김지선
충돌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
코바가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바로 ‘모두의 숲’이다. 그곳은 모든 동물이 저마다 다름을 간직한 채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종의 유토피아인 셈. 다만 이 영리한 연극은 ‘모두의 숲’을 환상 속의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고, 결핍을 품은 존재들이 부딪히고 연대하며 매일 일궈가는 터전으로 그려내었다. 이 공간은 어른과 아이에게 사뭇 달리 다가올 수도 있겠다. 이미 상처와 좌절을 아는 어른에게는 또 버텨내야 하는 도전의 공간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기꺼이 발을 내딛어보고 싶어하는 설렘의 공간으로 말이다.
두 분에게 ‘모두의 숲’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지선 ◎ 인터뷰 덕분에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인간은 저마다의 결핍을 하나둘씩 품고 살아가잖아요.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하려 버둥거릴 수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유로워질 수도 있어요.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이고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모두의 숲’이라는 결론에 가닿았어요. 그곳이 어디든 다름과 공존은 늘 존재해 왔어요. 이미 그 땅에 자리를 잡은 기존 구성원들이 있을 테고, 새로 적응하려고 들어오는 존재들도 있겠죠. 한 공간에서 섞이려면 당연히 갈등도 있고 충돌도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지켜주고 싶어서 끝내 손을 잡게 되죠. 그런 치열한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 충돌하면서도 끝내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모두의 숲’이 아닐까 싶어요.
김조민 ◎ 저는 어른이라 그런지 ‘모두의 숲’을 생각하면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어요. 거기엔 다름이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존재들과 어떻게든 잘 지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좌절과 한계가 훤히 보이잖아요. 어른들은 이미 세상의 쓴맛을 다 알아 버렸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우리 극장으로 찾아올 어린이들에게만큼은, ‘모두의 숲’이 두려운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비록 코바의 여정처럼 힘들고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가슴 뛰는 모험을 향해 기꺼이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그런 공간이기를 바라죠. 아이들에게 지레 겁을 주고 싶지는 않거든요. 대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물론 코바를 괴롭히고 배척하는 코끼리 무리 같은 존재도 있겠지만,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따뜻한 ‘텅’ 같은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텅’ 같은 존재가 되어주면 된다고요.
미지의 숲을 다루지만, 이야기꾼들이 무대라는 캔버스 위에 직조해 나간 세상은 명확하고 다정하다. 성긴 천 조각의 틈새를 아이들의 말간 상상력으로 채우고, 상처 입은 코바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결핍을 조용히 다독이게 한다. 막이 오르고 다시 내린 뒤, 극장 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품에는 직접 매듭지은 온기 서린 패브릭 동물 한 마리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갈 자그마한 용기가 한소끔 쥐여 있을 것만 같다.
글 유내리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이야기꾼의 책공연
김지선(1970~) 극단 사다리와 노리단을 거쳐, 극단 ‘이야기꾼의 책공연’ 창단 멤버 중 하나다. 작품 ‘마쯔와 신기한 돌’ ‘비가 오는날에’ 등 공동창작 및 공연했다. 2019년 김천가족국제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고, 연극 ‘코잃은 코끼리 코바’를 공동연출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
패브릭오브제극 ‘코 잃은 코끼리 코바’
7월 30일~8월 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김지선(연출)/김조민(코바), 윤자영(엄마), 서선택(텅), 김예은 외
어린이 오페라 ‘빨간모자와 늑대’
8월 14일~1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조은비(연출)/윤예지·심소연(빨간모자), 이사야·이홍범(늑대)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