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니스트 사무엘 마리뇨, 드레스를 입은 카스트라토의 환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8월 11일 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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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니스트 사무엘 마리뇨 

드레스를 입은 카스트라토의 환생

화제의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 헨델의 아리아로 우리 설화를 노래하다

Samuel MariÑo ©Robbie Ewing

18세기 유럽 오페라 극장을 열광시켰던 카스트라토의 음색이 8월의 한여름, 서울에서 다시 울려 퍼질 예정이다. 3년 전 첫 내한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1993~)가 그 주인공.

그는 역사 속 카스트라토의 전통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영리하게 되살리고, 화려한 드레스와 하이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바로크 음악의 극적인 힘을 전하는 예술가다. 이번 내한에서 마리뇨는 헨델의 아리아를 통해 한국의 설화 ‘바리공주’가 겪는 상실과 구원, 성장의 여정을 노래하며, 장르와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무대 위에서 언제나 진솔함을 노래해 온 그의 음악과 삶, 그리고 이번 내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숨기려 했던 목소리가 운명이 되기까지

당신은 카운터테너가 아닌, ‘소프라니스트(sopranist)’, 즉 남성 소프라노(male soprano)입니다.

‘소프라니스타(Sopranista)’ 데카 클래식스 4852943

사춘기를 거치면서도 제 목소리는 일반적인 변성 과정을 겪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어머니께 병원에 데려가 이 문제를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자칫하면 목소리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의사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한마디를 건넸죠. “수술하지 마세요. 그 목소리를 훈련시키면, 언젠가 그것이 당신의 직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그 가능성을 믿고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 목소리로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관객뿐 아니라 지휘자와 음악 전문가들 역시 제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제 목소리가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 속 카스트라토의 음색에 가장 가까운 목소리 중 하나라고요. 18세기 청중을 매료시켰던 바로 그 음색, 연약하면서도 신비롭고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묘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죠.

카운터테너와 남성 소프라노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남성 소프라노인 소프라니스트는 여성 소프라노와 같은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카운터테너들은 팔세토(falsetto), 즉 가성 계열의 발성을 중심으로 이러한 음역을 구현합니다. 평소 말할 때는 낮은 목소리를 내지만, 고음역대를 꾸준히 훈련해 힘있고 안정적인 발성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죠. 그들은 가성을 사용해 노래합니다. 변성기를 거친 성인의 목소리를 높게 끌어올린 것으로, 음역과 성량 모두에서 자연스러운 한계를 지니죠. 반면 저는 진성으로 노래합니다. 발성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감정 표현에 있어서 그 차이는 매우 큽니다. 카운터테너가 음악에 우아함과 절제미를 더한다면, 저는 작곡가들이 의도했던 극한의 표현까지도 구현할 수 있죠. 아주 여린 피아니시모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뚫고 나오는 화려한 콜로라투라까지 말입니다. 한 패시지 안에서 공존하는 연약함과 강력함의 극적인 대비야말로, 바로크 시대의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추구했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남성 소프라노’라는 특별한 목소리를 지닌 음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남성 소프라노’라는 호칭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목소리는 고치고, 숨기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하지만 이제 이 목소리는 제가 무대 위에 서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소중한 무기입니다. 가장 큰 꿈은 나만의 음악을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오페라 극장에 턱시도를 입고 오는 사람뿐 아니라, 제 또래인 Z세대에게도 말이죠.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은 결코 멀거나 고리타분한 예술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단 3분 만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쓰인 것들이죠.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파격적인 스타일 또한 당신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패션은 제 진실을 전하는 중요한 방식이에요. 저는 마이클 잭슨, 비욘세, 레이디 가가처럼 패션을 목소리만큼이나 강력한 표현 수단으로 만들어낸 아티스트들을 보며 자랐죠. 그들은 옷이 하나의 메시지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제가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할머니께 물려받은 빈티지 주얼리를 착용하는 것은 “이 무대는 당신을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입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예요. 그리고, 멋지게 차려입는 건 정말 재미있잖아요! 저는 제 몸 전체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는 거예요. 관객들 역시 제 공연에 한껏 차려입고 와 주실 때면 정말 큰 기쁨을 느낍니다.

 

18세기 바로크 음악과 설화 속 바리공주가 마주하는 지점

3년 반 만의 내한 공연에서 헨델의 아리아로 한국 설화 ‘바리공주’를 들려줍니다.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2023년 처음 한국을 방문 이후, 저는 한국의 문화와 정신성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책과 영화를 탐독하며 한국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바리공주’(편집자 주_한국의 대표적인 무속 신화 중 하나로,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나, 부모를 구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한 여성의 숭고한 여정을 다루었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헨델의 음악은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아리아는 마음을 움직이는 극적인 힘이 있으니까요. 각각의 아리아는 하나의 장면이 되고, 모든 장식음은 감정을 품으며, 모든 악구는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진정한 이야기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그래서 이번 공연을 찾는 관객들은 아름다운 성악 작품으로 바리공주의 여정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공연은 한국의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무대입니다. 그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바로크 오페라의 핵심 형식인 ‘다 카포 아리아’가 있습니다.
저에게 장식음은 아리아가 품고 있는 감정이 꽃피는 순간입니다. A부분이 다시 돌아왔을 때(A’),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B부분을 거치며 변화한 감정을 보여주는 새로운 순간이죠. 물론 기본적인 틀은 준비해 두지만, 모든 음을 미리 고정해 두지는 않습니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 관객의 반응, 그리고 공연장에서만 만들어지는 순간에 따라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죠. 이는 헨델 시대의 성악가들이 사용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같은 아리아라도 결코 똑같이 연주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 점이 바로크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2019년, 앙상블 테세오를 창단해 바로크 작품들과 연주 기법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 연주와 현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요?
저는 두 시대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음악 이론서와 연주 논문, 그리고 바로크 음악이 그 시대에 어떻게 연주되었는지를 탐구하죠. 이는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난 300여 년동안 그 역사가 끊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바로크 시대의 연주를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것은 자기기만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18세기 관객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현대적 문화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앙상블 테세오와 함께하는 큰 즐거움은 바로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는 데 있습니다. 음악이 가진 역사적 뿌리에 충실하면서도, 오늘의 감각으로 음악이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마법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아르타세르세

빈치 오페라 ‘아르타세르세’ 중 ‘잔인한 바다를 항해하네’(2023년 내한) ©SihoonKim

클레오파트라와 체사레

그라운 오페라 ‘클레오파트라와 체사레’ 중 ‘격렬한 폭풍우’(2023년 내한) ©SihoonKim

두 시간 동안 떠나는 마법 같은 목소리 여행

한국을 대표하는 고음악 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호흡을 맞춥니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는 음악을 설명할 때 자연의 풍경이나 색채 같은 이미지를 자주 활용합니다. 연주자들이 제가 그려내고자 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또한 아리아의 장식음은 직접 악보에 정리해 앙상블과 공유합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덕분에 오케스트라 악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 연주자들과 음악적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리허설에 들어가 새로운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렙니다.

이번 공연이 한국 관객에게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한국의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마치 공연이 진행되는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관객들이 자신이 앉아 있는 좌석의 존재마저 잊은 채, 온전히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요. 시간과 감정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찢어놓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치유해 주는 한 편의 이야기 속으로 말이죠. 바리공주의 여정은 상실과 용기로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한(恨)’​이라는 말로 표현하더군요.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있는 특별한 정서 말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선택한 순간부터 바로 그 감정을 강하게 느꼈고, 공연장을 찾는 모든 분들 역시 잠시라도 그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제가 가장 힘을 쏟는 것은 ‘진솔함(vulnerability)’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 얼마나 높은 음을 냈는지를 기억하기보다, 음악을 듣는 동안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가 조금은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유선옥(음악학자) 사진 예술의전당·메이지 프로덕션

 

사무엘 마리뇨(1993~)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신의 남성 소프라노(소프라니스트)로, 카스트라토를 위해 쓰인 바로크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데카 클래식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소프라니스타(Sopranista)’를 발매(2022)했으며, 런던·시드니·부에노스아이레스·토론토 등 주요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사무엘 마리뇨 with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8월 2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사무엘 마리뇨·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헨델 ‘로델린다’ ‘줄리오 체사레’ ‘시로에’ ‘알레산드로’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수록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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