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 볕드는 삶 속, 더블베이스를 노래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9월 1일 10:59 오전

SHE IS NOW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

볕드는 삶 속, 더블베이스를 노래하다

한때의 아픔과 슬럼프를 음악으로 승화하여
‘빛의 위로’를 건네기까지

“예전에는 연주를 마치고 나면 우울했어요. 불안했고, 연주가 끝난 뒤의 허탈감도 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즐거워요. 가족의 품을 잠깐 떠나서 연주 여행을 하는 것도 정말 즐겁고, 다시 돌아와서 같이 생활할 가족이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요.”

관객은 무대 위의 연주자를 보지만, 연주자에게도 연주 이외의 삶이 존재한다. 무대에서 내려와 공허와 싸울 때 곁에서 힘을 보태주는 가족들은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내면의 불안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빛으로 나아가는 음악을 선보이는 성미경이, ‘빛으로 공간을 조각하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남양성모성지에서 열리는 ‘화성특례시 남양성모성지 클래식 음악제’(9.11~13)의 하나로 특별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연주자로 무르익어가는 그와 나눈 문답을 전한다.

 

더블베이스의 매력을 선보일 프로그램

제2회를 맞는 남양성모성지 클래식 음악제에서 리사이틀 ‘베이스 퀸, 성미경’(9.12)을 선보입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9.11), 강남심포니·국립합창단(9.13) 등이 출연하는 축제의 장인데요.

뜻깊은 장소에서 공연하게 되어 기대가 큽니다. 파가니니·피아졸라·보테시니·쿠세비츠키의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제 연주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깊은 피아니스트 김종윤 씨와 함께할 예정입니다.

프로그램 중 ‘키초’는 피아졸라가 유일하게 더블베이스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면서요?

맞습니다. 피아졸라가 친구이자 함께 연주했던 더블베이시스트 키초 디아즈(1918~1992)를 위해 쓴 작품인데, ‘이것이 바로 피아졸라다’라는 흥미로운 느낌을 받아요. 활을 자유롭고 민첩하게 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테크닉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곡 중간의 느린 선율에서는 피아노와의 합이 정말 중요한데, 김종윤 씨와 이 곡을 연주하던 중 합이 워낙 잘 맞아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올라왔던 기억도 있네요. 덧붙여, 피아졸라의 ‘아베 마리아’ 역시 제가 좋아하는 곡이에요.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는데, 명상적이기도 하고 기도하는 느낌이기도 해서 남양성모성지라는 공간과도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테시니 작품들을 즐겨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2015년 더블베이스 소사이어티(ISB) 솔로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했을 때, 보테시니 작품 최고연주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보테시니는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더블베이스를 위한 레퍼토리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은데, 그는 좋은 더블베이스 작품을 많이 써냈거든요. 서정적이면서도 멜로디가 살아 있고,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은 느낌도 주는 보테시니의 작품은 저와도 잘 맞아요. 물론 학생들에게는 시험 곡으로 부담이 되는 이름이기도 한데, 제 학생들이 보테시니를 공부하는 경우에는 ‘포지션 이동이나 테크닉 걱정부터 하지 말고, 음악을 해석하는 데 더 힘써보라’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음악과 가족이라는, 소중한 맥락 속에서

2018년경에는 상하이 심포니의 수석연주자·아카데미 교수도 역임했죠. 중국의 학생들은 어땠나요?

제자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가르쳤던 것 같아요. 바로 얼마 전 7월에 열렸던 칭다오 국제 더블베이스 페스티벌에서도 연주와 함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며 중국의 음악 전공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8년 전에 비해서 중국 학생들의 수준이 더 높아졌더라고요. 참, 이번 칭다오 페스티벌에선 더블베이시스트 300인이 함께 연주하는 ‘기네스 기록 도전’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대단했어요. 기록 도전도 성공이었습니다!

지금은 멋진 연주 활동을 즐기고 있지만,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고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10년 전쯤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부터 깊은 수렁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대체 무엇이 날 이렇게 무너지게 하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연주자인데…’라는 강박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가족과 집,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우선시되다 보니 연습에 제약이 생기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원래의 저는 연주자로서 연습의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꾸준히 연습에 임해야만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환경이었습니다. 점차 커져가는 불안감 속에서 몇 년을 암울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연주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며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마음을 가다듬으니 역설적으로 연주도 더 나아졌고, 조급해하지 않으니까 집중력도 더 좋아졌습니다. 그 당시에 남편과 부모님이 건넸던 이야기들이 저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에 위로받을 수 있었나요?

“너무 힘들거든 연주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 그 말에 상당한 위로를 받았어요. 사실 저에게 연주를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연주자여야만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항상 연습해야 하는데’라고 혼자 속으로만 앓았던 거죠. 부모님도 음악가이시다 보니 저도 음악을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음악과 잠시 멀어진 시간에 푹 쉬면서 가족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나를 좀 더 알게 되었고, 이런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그렇게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거주지도 미국으로 옮기게 됐고, 또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더 좋은 연주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체력을 열심히 기르고 있어요.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를 잘 다루려면 코어도 좋아야 하고, 왼손을 짚을 때에도 그 누르는 힘을 잘 유지해야 하거든요. 원래도 운동을 좋아하지만, 연주를 위해서 더더욱 열심히 근력 운동을 하고 있어요. 모든 컨디션을 잘 끌어올리며 매해 더 좋아지는 모습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올해와 내년의 연주 계획도 얘기해주세요.

이번 한국 투어에서 남양성모성지와 함께 울산과 부산에서도 연주합니다. 12월에는 뉴멕시코에서 협연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해요. 내년 초에는 슬로바키아 오케스트라와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요. 내년부터 런던 로열 컬리지에서 매년 마스터클래스도 가질 예정입니다.

 

‘뉴요커’라는 에세이에서 저자 박상미는 뉴욕 거리의 더블베이시스트를 보며 ‘인류를 대표해서 어두운 자아를 짊어지고’ 가는 예술가의 숙명을 떠올린다. 성미경 역시 음악인의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승화 방식을 찾아냈다. 마음속 고난을 극복해 낸 성미경의 음악은 믿음의 성전, 남양성모성지 성당에서 관객의 심연에 빛의 위로로 가닿을 준비를 마쳤다.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아델라이데 뮤직프로덕션

 

성미경(1993~) 선화예중·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을 거쳐 미국 콜번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요한 마티아스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1위, 더블베이스 소사이어티 솔로 콩쿠르 2위에 입상했다. 상하이 심포니 수석과 아카데미 강사를 역임했고, 영국 왕립음악원·샌프란시스코 음악원·노스캐롤라이나 예술학교 등에서 교육을 맡으며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성미경 더블베이스 리사이틀(피아노 김종윤)
9월 8일 오후 7시 30분 울산 서울주문화센터
9월 12일 오후 1시 화성 남양성모성지 소성당(화성특례시 남양성모성지 클래식 음악제)
9월 19일 오후 5시 부산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
파가니니 ‘모세 환상곡’, 보테시니 엘레지 2번·‘알레그로 카프리치오-쇼팽 풍으로’,
피아졸라 ‘키초’ ‘아베마리아’,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협주곡 3악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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