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 다시, 한국을 물들일 색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9월 8일 1: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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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

다시, 한국을 물들일 색채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라일란트가 메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프랑스 음악을 펼쳐낸다

David Reiland ©Christophe Urbain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지낸 그는, 어느 순간 한국의 지휘대가 “진정으로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한국 관객과 오랜 시간을 나눈 그가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자신에게 익숙한 한국의 객석 앞에, 우리에게는 아직 다소 낯선 이름인 메스 그랑테스트 국립 오케스트라(이하 메스 오케스트라)를 데리고서다. 익숙한 사람(라일란트)이 낯선 풍경(메스 오케스트라)의 문을 열어줄 순간이다.

파리가 프랑스의 화려한 중심이라면, 메스는 그와는 다른 표정을 지닌 도시다. 독일·룩셈부르크와 가까운 프랑스 동북부의 국경 도시로, 오랜 세월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와 문화가 겹쳐졌다. 수도의 거대함과 빠른 속도 대신 중세의 흔적과 제국 시대의 건축, 강과 정원이 어우러져 차분하고 단정한 풍경을 이룬다. 라일란트의 표현을 빌리면 메스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장소”다.

그래서 이번 내한은 한 지휘자의 귀환을 넘어, 서로 다른 두 풍경이 다시 만나는 자리처럼 보인다. 마침 올해는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는 해다. 드뷔시(목신의 오후·바다)와 라벨(라 발스)을 통해 프랑스 오케스트레이션 특유의 빛과 투명성을 보여주되, 그 사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협연 신창용)을 놓아 짙은 낭만의 호흡을 더한다.

 

익숙한 지휘자, 다시 한국으로

국립심포니와 함께한 뒤 이번에는 메스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찾습니다. 이전과는 어떤 감정의 차이가 있나요?

한국 관객을 알아가고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이해하면서 어느 순간 그 지휘대가 편안하게 느껴졌죠. 이번에는 메스 오케스트라와 만드는 단 한 번의 특별한 만남이기에 오히려 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가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청중에게 돌아오는 만큼 우리가 들려드리는 모든 것에 그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지금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운영 철학에 남긴 변화가 있다면요?

다른 문화는 자신의 문화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며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지휘 철학과 리허설 방식, 음악가들과 신뢰를 쌓는 방법도 더욱 풍부해졌죠. 나라마다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 차이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법을 배우면서 저 역시 성장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속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도 새롭게 바라보게 됐죠.

 

이번 투어는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합니다. 어떤 의미를 두고 있나요?

저에게 이번 투어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상징은 우리가 원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기념일은 과거를 돌아보는 날이면서 새로운 지평을 향해 함께 내딛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서로 다른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고, 말이 없어도 우리가 무엇을 공유하는지 느끼게 합니다. 이번 투어도 서로 나누고 존중하며 연결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스 오케스트라 ©Christophe Urbain

 

 

 

 

 

 

 

국경의 도시가 품은 악단과 함께

1976년 창단된 메스 오케스트라는 ‘로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렌 필하모니’를 거쳐 2002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지역 국립 오케스트라’ 지위를 얻었다. 현재 72명의 상임 단원이 해마다 9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친다.

자크 후트만, 자크 라콩브를 거쳐 2002년부터 16년간 악단을 이끈 자크 메르시에(1945~)는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악단의 색채를 다졌고, 2018년 지휘봉을 이어받은 라일란트는 그 전통 위에 모차르트·하이든의 고전주의와 동시대 작품을 적극적으로 더하고 있다.

악단의 중심 무대는 ‘아르스날 장마리 로슈’다. 옛 군사시설을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이 콘서트홀로 재구성해 1989년 문을 연 곳으로, 1,311석의 대공연장이 뛰어난 음향으로 이름나 있다. 메스 오케스트라는 1752년 개관한 메스 유로메트로폴 오페라극장의 피트에도 정기적으로 오른다. 교향악과 오페라, 오랜 전통과 새로운 창작이 한 도시 안에서 나란히 숨 쉬는 셈이다.

아르스날 장마리 로슈 무대와 관객석

 

 

 

 

 

 

 

메스는 어떤 도시이며, 그 역사와 분위기는 오케스트라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메스는 프랑스와 독일 문화가 만나는 도시입니다. 로렌 지방에 자리하며 독일·룩셈부르크·벨기에와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복잡한 시간을 겪었습니다. 오늘날 메스를 걸으면 두 문화의 흔적이 한 도시에 공존합니다. 그 이중성은 이제 상처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이 됐습니다. 하나를 택하기보다 두 문화를 함께 품는 정신이 오케스트라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에 선 악단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장소인 셈이죠.

 

메스가 지닌 음악적 역사도 특별합니다.

메스의 음악사는 중세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8세기 중반 메스의 주교 크로데강은 프랑크 왕국의 전례와 성가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곳에서는 ‘메스 성가’라 불린 전통이 발전했습니다. 훗날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어지는 중요한 뿌리 가운데 하나죠. 805년에는 샤를마뉴가 제국의 성가 가수들이 메스에서 교육받도록 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음악적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메스는 2019년 프랑스 도시 가운데 최초로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됐습니다. 저 역시 메스에 부임한 뒤 이 과정에 힘을 보탰습니다.

 

2018년부터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먼저 레퍼토리를 넓히고 싶었습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같은 18세기 음악을 시대악기 전문 앙상블에만 맡기기보다 대형 교향악단도 자연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작품 위촉과 상주작곡가 제도로 동시대 창작도 강화했습니다. 젊은 지휘자를 위한 마스터클래스와 지휘 콩쿠르 협력을 이어왔고, 음반과 공연으로 오귀스타 올메스(1847~1903), 멜 보니스(1858~1937), 세실 샤미나드(1857~1944), 20세기 불랑제 자매 등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소개했습니다.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만드는 사운드

메스 오케스트라는 한국을 찾을 때마다 뿌리인 프랑스 레퍼토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로렌 국립 오페스트라’라는 단체명으로 내한한 2016년에는 자크 메르시에의 지휘로 드뷔시와 플로랑 슈미트,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선보였고, 2022년 두 번째 내한에서는 라일란트가 베를리오즈·생상스의 음악으로 프랑스 관현악의 색채를 펼쳤다. 이번까지 세 차례의 내한을 관통하는 것도 프랑스 악단이 만들어내는 ‘색채’에 대한 일관된 탐구다.

 

프랑스 오케스트라만의 전통과 사운드를 어떤가요?

제 생각에 오케스트라라는 제도 자체에는 역사적으로 라틴 문화권보다 게르만 문화권의 철학이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개인의 개성을 집단 전체의 소리를 위해 놓는 방식이죠. 반면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이야기할 때 저는 무엇보다 ‘색채’를 떠올립니다. 프랑스어에는 모음 하나에도 여러 미묘한 음영이 있고, 레가토 역시 긴장과 이완이 섬세하게 작동합니다. 프랑스 관현악에서도 관악기가 독립적인 솔리스트처럼 움직이고, 음색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과 투명성, 모든 것을 직접 말하기보다 암시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번 한국 투어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드뷔시와 라벨이 있습니다. 어떤 흐름을 그리고 있나요?

이번 프로그램도 2022년 내한과의 연속선 위에 있습니다. 그 당시에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과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으로 프랑스 낭만주의를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분명한 인상주의적 색채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의 고요하고 관능적인 친밀감에서 출발해 ‘바다’의 광활한 풍경을 거쳐 ‘라 발스’의 현기증 나는 소용돌이로 향합니다. 세 작품은 색채와 빛을 서로 다르게 다루면서 프랑스 관현악이 음색으로 얼마나 다양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 사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 신창용과 상의해 선택했습니다. 저는 라흐마니노프가 인상주의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낭만적인 깊이와 파토스가 주변의 프랑스 작품들과 전혀 다른 정서적 층위를 만들죠.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음악들이 한 프로그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 차이를 통해 각 작품의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입니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라보라예술기획

신창용

 

 

 

 

 

 

 

 

 

다비트 라일란트(1979~) 벨기에 출신으로 브뤼셀 왕립음악원·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했다. 2012년 멜가르드 OAE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룩셈부르크 체임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국립심포니 예술감독을 역임(2022~2025)했고, 2018년부터 메스 그랑테스트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2023년부터 리에주 왕립음악원 교수로 활동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다비트 라일란트/메스 그랑테스트 국립 오케스트라(협연 신창용)
9월 15일 오후 7시 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9월 1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7일 오후 7시 30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
9월 18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9월 20일 오후 3시 부산콘서트홀
드뷔시 ‘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벨 ‘라 발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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