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올라리 엘츠, 고전과 현대의 결합으로 빚을 새 감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9월 14일 8: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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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올라리 엘츠

고전과 현대의 결합으로 빚을 새 감동

예르비 부자 이후 에스토니아가 배출한 차세대 지휘자의 존재감

OLARI ELTS ©Kroot Tarkmeel

 

 

 

 

 

 

 

 

 

 

 

 

 

오늘날 에스토니아는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1935~)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게 한 나라에서 위대한 작곡가가 탄생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 헤이노 엘레르(1887~1970)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레르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음악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에스토니아 작곡가였다. 그리고 교육에 헌신하여 패르트를 비롯하여 얀 래츠(1932 ~2020), 레포 수메라(1950~2000), 에두아르드 투빈(1905~ 1982) 등을 가르치며 에스토니아를 작곡가의 나라로 키웠다.

에스토니아의 인접국인 핀란드가 지휘자의 명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라트비아는 기돈 크레머(1947~)와 얀손스 부자를 중심으로 세계 음악계에 영향력을 키운 반면, 에스토니아는 패르트를 비롯한 작곡가들의 명성에 비해 지휘자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예르비 부자 이후 떠오른 에스토니아의 지휘자 올라리 엘츠(1971~)의 등장은 ‘작곡가의 나라’ 에스토니아를 다시 주목하게 했다.

 

관현악 지휘자를 향한 길

올라리 엘츠는 1971년 4월 27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 연출가, 어머니는 무용 교사로, 엘츠는 어린 시절부터 공연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탈린 음악고등학교를 거쳐 에스토니아 음악아카데미(지금의 에스토니아 음악 연극 아카데미)에서 합창 지휘를 전공했다. 소련의 지배 시기 에스토니아에는 정식 관현악 지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지 않은 이상 지휘자를 꿈꾸는 학생은 어쩔 수 없이 합창 지휘를 선택해야 했다.

소련이 해체되자 엘츠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빈 국립음대로 유학하여 우로시 라요비치(1944~)를 사사하며 관현악 지휘를 배웠다. 하지만 그는 2019년 12월 ‘디 아츠 데스크’(영국의 문화예술 전문 온라인 매거진)에 개재된 음악평론가 데이비드 나이스(1962~)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한 핀란드의 지휘 교육자인 요르마 파눌라(1930~)로부터 마스터클래스에 참여를 권유받고 개인 지도를 받았다고 밝히며, 그가 스스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스승”으로 여기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회고했다.

엘츠의 지휘 경력의 시작점은 아직 에스토니아에서 공부 중이던 시절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현대음악 연주단체 NYYD 앙상블의 창단이 그 시점이었다. ‘NYYD(뉘우드)’는 에스토니아어로 ‘지금(nüüd)’이라는 뜻으로서 그 이름에 걸맞게 에스토니아에서 새롭게 작곡된 음악을 연주했고, 소련 시대에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서유럽의 20세기 음악을 탐구했다.

특히 에르키 스벤 튀르(1959~)·헬레나 툴베(1972~)·토이보 툴레브(1958~)·갈리나 그리고리예바(1962~)·위리 라인베레(1971~) 등 에스토니아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연주하며 고국 음악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트라빈스키와 신빈악파에서 시작해 불레즈·베리오·버트위슬 등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했으며, 개빈 브라이어스(1943~)와 제이 슈워츠(1965~)를 비롯한 해외 작곡가들의 작품도 공동 위촉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음악에 폭넓게 접근했다. 엘츠는 이 앙상블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으며, 지휘 능력을 향상하는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 복잡한 리듬과 음향 구조를 명료하게 조직하는 그의 지휘 스타일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엘츠는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이 앙상블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핵심 단원들이 유럽 각지의 악단으로 진출하면서 지속적인 운영이 어려워졌고, 탈린에 새로운 현대음악 앙상블들이 활동함으로써 NYYD가 처음 맡았던 역할도 상당 부분 완수되어 굳이 꾸려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오랜 인연

엘츠는 1999년 제1회 요르마 파눌라 지휘 콩쿠르와 2000년 제2회 장 시벨리우스 지휘 콩쿠르에 참여하여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북유럽의 주요 지휘 콩쿠르에서 연이어 거둔 우승은 그의 이름이 국제 음악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그의 활동 범위는 앙상블과 현대음악이라는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 급격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듬해인 2001년에 라트비아 국립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취임해 2006년까지 악단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프랑스 브르타뉴 국립 오케스트라 예술고문(2006~2011), 스코틀랜드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2007~2010),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2011~2014),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2007~2020), 핀란드 키미 신포니에타 예술고문(2018~2022) 등을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는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에 올라 재계약으로 임기가 연장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2026/27 시즌부터 신포니에타 리가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20년 만에 라트비아의 주요 악단에서 다시 예술적 책임을 맡게 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관현악단을 객원지휘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에스토니아 백성훈장 4등급, 2004년 에스토니아 공화국 문화상, 2005년 라트비아 대음악상을 받았다.

사실상 엘츠는 콩쿠르에 도전하기 전인 1998년부터 이미 에스토니아의 대표 관현악단인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이하 ERSO)와 연이 시작된 상태였다. 첫 공연의 제목은 ‘도시의 삶(City Life)’으로, 존 애덤스(1947~)와 스티브 라이히(1936~), 그리고 에이노 탐베르그(1930~2010)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27세의 젊은 지휘자가 첫 만남부터 선보인 당돌한 프로그램은 미국 미니멀리즘과 에스토니아 현대음악이 평행을 이루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문화행사에서 ERSO와 함께 패르트의 ‘토리노의 수의(La Sindone)’를 세계 초연한 것도 주목할 공연이다. 토리노 대성당에 보존된 성의(聖衣)를 소재로 한 관현악곡으로,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와 지휘자, 악단이 국제적인 행사에서 만난 싱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렇듯 그의 ERSO 음악감독 취임은 성공한 지휘자의 영입이라기보다는, 오랜 관계를 이어온 협업이 꾸준히 확대된 결과였다.

올라리 엘츠/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Teet Raik

 

 

 

 

 

 

 

 

고전과 현대를 연결하는 프로그래밍

엘츠의 레퍼토리에는 에스토니아 작곡가, 특히 패르트 이후 세대의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그의 녹음 활동에서는 절대적 비중이어서 에스토니아 교향악 전통의 체계적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핀란드 작곡가인 칼레비 아호(1949~)나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 등의 작품도 녹음하며, 그의 시선이 에스토니아 음악 뿐 아니라 발트와 북유럽 현대음악 전반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엘츠는 이렇게 에스토니아와 북유럽 작곡가들의 최근 음악을 국제무대에 소개하고 있지만, 그를 현대음악 전문 혹은 북유럽 레퍼토리 전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페라에서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음악회에서는 고전과 현대, 북유럽과 다른 지역을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서로를 새롭게 비추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도록 배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21세기의 음악이 20세기 후반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보는 그의 시각과 관련이 있다. 특정 악파나 미학을 따라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음악 언어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고전주의·후기 낭만주의·미니멀리즘·동시대 발트 음악을 한 프로그램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배경이 된다. 지난 3월 7일 내한에서는 국립심포니를 지휘하며 튀르와 시벨리우스를 들려주었고, 올해 9월에 열리는 엘츠와 ERSO의 내한 연주회에서는 에스토니아 작곡가 퇴누 쾨르비츠(1969~)와 베토벤을 연결하며, 10월 2일 신포니에타 리가의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에서는 튀르·바스크스·진은숙과 함께 베토벤을 올릴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엘츠의 음악적 지향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NYYD 앙상블 시절부터 현대 작품을 연주하며 익힌 리듬의 정확성, 복잡한 음향을 구분하는 청각, 악보의 세부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은 18세기 고전주의 작품을 연주하는 데에도 적용되며, 감정과 드라마를 넘어 음악적 구조를 명확히 하고 최상의 음향을 만든다. 반대로 고전적 형식과 교향악적 전개에 대한 이해는 현대 작품을 단순한 음향효과의 연속이 아니라 감상자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해석으로 이끈다.

그에게 전통과 현대음악은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동시적으로 병치되어 있다. 현대 작품에서 발견한 리듬과 음향의 가능성은 고전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고전적 형식에 대한 이해는 현대음악의 구조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 상호작용 속에서 엘츠만의 음악적 개성이 형성된다. 이렇게 그는 발트 음악의 국제적 옹호자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레퍼토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연결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올라리 엘츠(1971~) 탈린 음악고등학교·에스토니아 음악아카데미를 거쳐 빈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라트비아 국립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브르타뉴 국립 오케스트라 예술 고문, 스코틀랜드 체임버 오케스트라·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를 역임했다. 현재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올라리 엘츠/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협연 선우예권)
9월 19일 오후 5시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9월 20일 오후 5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9월 2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퇴누 쾨르비츠 ‘오로라를 위한 찬가’, 슈만 피아노 협주곡(19·22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20일), 베토벤 교향곡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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