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작곡가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 1876~1909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열리는, 폴란드의 또 다른 음악 보물함
폴란드 음악학자가 특별 기고한 카르워비치 일대기로 인해,
우리는 쇼팽 ‘이후’의 음악사를 새롭게 알게 된다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 ©Wikipedia

카르워비치가 피아니스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에게 1903년 10월 22일자로 헌정한 쇼팽의 기념품 표제지 ©Polish Music Library/Polskie Wydawnictwo Muzyczne
제18회 서울국제음악제(10.8~16)는 ‘Bravo, My Life!’를 주제로 시간과 자연, 인간의 감정이 교차하는 삶의 여러 순간을 음악으로 비춘다. 그 여정의 마지막인 10월 16일 폐막음악회에서는 우르반스키/SIMF오케스트라가 폴란드 후기 낭만주의의 작곡가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1876~1909)의 교향시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을 연주한다. 국내 무대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그의 음악을, 같은 폴란드 출신 지휘자의 해석으로 접한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R. 슈트라우스와 동시대를 살며 자신만의 교향시 세계를 펼쳤지만 서른두 해의 짧은 생애로 멈춰 선 카르워비치. 이 공연을 앞두고 음악학자 마르친 그미스의 글을 통해 그의 삶과 음악적 배경, 여섯 교향시에 응축된 사랑과 죽음, 고독의 정서를 미리 만나본다.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는 1876년, 오늘날 벨라루스에 속하고 리투아니아 국경 인근에 위치한 폴란드의 비슈니에보에 있는 어머니 이레나(결혼 전 성은 ‘술리스트로프스카’)의 가족 저택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래에 작곡가로 성장할 카르워비치의 지적·정신적 세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그의 아버지 얀 카르워비치(1836~1903)였습니다. 당시 폴란드 지식인 엘리트 사회에서 저명한 인물이었던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진정한 르네상스인이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문헌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베를린에서는 레오폴트 랑케(1795~1886)에게서 철학을, 브뤼셀에서는 프랑수아 조제프 페티스(1784~1871)에게서 음악 이론을, 프랑수아 세르베(1807~1866)에게서는 첼로를 배웠습니다.
책을 사랑하던 작곡가의 탐험과 최후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의 관심사는 결코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세심한 지도 아래, 어린 카르워비치는 문학 작품을 비롯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같은 철학서를 폭넓게 읽었습니다. 젊은 시절 카르워비치가 가장 좋아하던 취미 중 하나는 현대 폴란드 작가이자 화가인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1869~1907)가 쓴 희곡 ‘용감한 왕 볼레스와프’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극을 피아노로 즉흥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용감한 왕 볼레스와프’는 분명 ‘화음 속을 지나가는 관’ 장면으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카르워비치는 내향적이었고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리호리하고 용모가 준수한 젊은 청년이었으며, 다양한 스포츠에 열정적이었습니다. 사이클링과 더불어 음악 외에 그가 가장 열정을 쏟은 분야는 등산, 그리고 타트라산맥 #1을 도보나 스키로 누비는 탐험이었습니다. 이 작곡가는 산악 활동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고, 여러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타트라산맥에 대한 그의 애정은 새로운 예술 분야인 사진에 대한 열정과도 맞물려 있었으며, 때로는 그의 수입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관심 분야는 결국 카르워비치의 비극적인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는데, 1909년 2월 혼자 산악 탐험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스승을 거쳐 완성한 첫 번째 교향시
카르워비치가 받은 음악 교육의 계보는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처음 음악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스승은 독일의 교육자이자 작곡가인 베를린 출신의 하인리히 우르반(1837 ~1901)으로, 바그너와 R. 슈트라우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음악적 유겐트슈틸 #2을 지지한 인물이었습니다.
카르워비치의 작곡 활동은 크게 두 개의 창작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바이올린 협주곡까지 포함하는 학업기, 그리고 미에치스와프의 대표작인 6개의 교향시가 작곡된 성숙기로 구별됩니다.
카르워비치의 주목할 만한 첫 번째 관현악 작품은 1899년과 1900년을 전후하여 교향악단을 위해 작곡한 ‘비앙카 다 몰레나’입니다. 이 작품은 본래 작곡가의 친구 유제파트 노빈스키(1863~ 1906)의 희곡 ‘하얀 비둘기’ #3를 바탕으로 한 공연의 ‘교향적 프롤로그’로 작곡되었으나, 사실상 서사적 성격을 지닌 교향시입니다(카르워비치의 후기 성숙기에 작곡된 교향시 6편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노빈스키의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희미하게 모방한 작품으로, 오늘날에는 기껏해야 불쾌감을 자아낼 뿐입니다.

유제파트 노빈스키의 희곡 ‘하얀 비둘기’
영혼과 작품이 성숙해가며
카르워비치는 ‘비앙카 다 몰레나’를 완성한 후 교향곡에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우르반의 지도를 받던 시기에 이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였으나 그의 독일인 스승이 사망한 후인 1902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교향곡 e단조 ‘부활’은 인간의 영혼이 어두운 생각을 점차 극복해 나가는 고통을 묘사하고자 의도한 작품으로, 마지막에는 부활을 찬미하는 긴 찬가로 끝납니다. 1902년에 완성된 바이올린 협주곡 A장조 역시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작품으로, 제1악장과 제3악장은 빠른 템포로 되어 있습니다.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작곡된 ‘귀환하는 파도’는 카르워비치의 성숙기 교향시 6편의 시작을 여는 작품입니다. 앞서 작곡한 교향곡과 대조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차이콥스키 음악뿐만 아니라 R. 슈트라우스와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심취 또한 드러납니다. 카르워비치의 그다음 교향시인 ‘영원한 노래’(1904~1906)는 작곡가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별한 작품입니다. 유일하게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영원한 갈망의 노래’ ‘사랑과 죽음의 노래’ ‘영원한 존재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06년 작곡된 ‘리투아니아 광시곡’은 명시된 표제 내용이 없는 유일한 작품으로, 간접적으로조차 표제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광시곡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작곡가의 다른 작품들이 지닌 우울한 정서와 전적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불안과 죽음으로 그려낸 신화

교향시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 Op.12 안토니 비트/바르샤바 필하모닉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1907)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카르워비치의 교향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효과적인 작품으로, 작곡가가 ‘비앙카 다 몰레나’에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신화’를 재해석하려 한 또 하나의 시도입니다. 이 작품은 교황에게 결혼 허가를 받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남매 간의 금기시된, 그러나 순결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이조차도 그들을 짓누르는 저주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안나는 스타니스와프가 로마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던 중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학자들은 주제의 선율에 나타나는 분리파 #4적인 형태에 주목해 왔는데, 이는 빈의 작곡가들, 특히 말러의 음악을 분명히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 교향시가 폴란드 화가 스타니스와프 베르크만(1862~1930)과 그의 그림 ‘안나의 시신 곁에 있는 스타니스와프’ #5에 대한 음악적 에크프라시스 #6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은 세 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 투티에 제시되는 첫 번째 ‘분리파적인’ 주제는 스타니스와프에 해당하고, 보다 내밀하고 서정적인 두 번째 주제는 안나를 나타내며, 세 번째는 트라이톤 #7을 바탕으로 한 강한 불협화음의 저주를 주제로 합니다(이는 음악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디아볼루스 인 무지카’의 상징입니다). 카르워비치는 안나의 죽음을 매우 암시적으로 묘사했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주의 화음 모티프와 함께 펼쳐지는 장대한 장면인 장례 행렬로, 탐탐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를 강조합니다. 카르워비치의 작품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감동적인 순간일지 모르는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젊은 작곡가가 ‘용감한 왕 볼레스와프’의 한 주제를 바탕으로 즉흥 연주를 했을 때 울려 퍼졌다고 전해지는 ‘화음 속에서 움직이는 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베르크만 ‘안나의 시신 곁에 있는 스타니스와프’
영원을 향했으나 채 못다 핀 삶의 마지막
‘슬픈 이야기’(1908)는 카르워비치가 완성한 교향곡 중 마지막이자 가장 간결한 작품으로, ‘영원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문학적 표제가 명시되지 않은 작품으로 구상되었지만, 작곡가의 한 지인이 내뱉은 ‘경솔한 발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이 작품이 자살자의 죽음 이전에 대한 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표현의 심리적 섬세함이 과장된 자연주의와 대조를 이루도록 의도되었습니다(카르워비치는 서정적 주체의 죽음의 순간을 리볼버 총성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으나 결국에는 탐탐을 상투적으로 한 번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가면무도회에서의 에피소드’는 카르워비치가 사망할 당시 작업하고 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14년 폴란드의 뛰어난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제고시 피텔베르크(1879~1953)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미에치스와프 카르워비치의 요절은 그의 음악이 마땅히 받아야 했던 만큼의 큰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이유는 쇼팽 이후 가장 뛰어난 폴란드 작곡가로 평가받는 카롤 시마노프스키(1882~1937)의 재능이 갑작스럽게 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글 마르친 그미스(음악학자) 사진 서울국제음악제
#1 폴란드 남부와 슬로바키아 북부의 국경 부근까지 동서 방향으로 뻗은 산맥이다.
#2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의 ‘아르 누보 양식’의 독일식 명칭.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예술 사조로, 예술가는 삶 속의 예술에 관한 모든 부분을 다루며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가 주변의 갈등과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 파국을 맞는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4 19세기 말 보수적인 유럽의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며 새로운 자유를 주장했던 미술 사조. 장식적이고 감성적인 곡선미를 띤 작품을 표방했다.
#5 전설 속 남매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의 비극적 사랑을 소재로, 죽은 안나의 관 곁에서 슬퍼하는 스타니스와프를 그린 역사화다.
#6 예술 작품이나 시각적 이미지를 글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문학 기법.
#7 증4도, 대체적으로 긴장감과 불안을 일으키는 음정으로 알려져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쇼팽 이후의 작곡가, 카르워비츠’
9월 15일 오후 7시 30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서울국제음악제(10.8~16)
크시슈토프 우르반스키/SIMF오케스트라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카르워비치 ‘스타니스와프와 안나 오시비엥침’,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김계희), R.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