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주년 다시 만난 세계 2000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프리드리히 굴다 1월 27일 타계 이전에도 멀쩡하게 살아있으면서 허위 사망 신고를 해와 온 나라 언론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날도 텔레비전 뉴스를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로(?) 세상을 떠났음이 확인됐다. 오스트리아 바이젠바흐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져 있었다는 그의 부인의 증언에 따라…. 모차르트 연주 해석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크로스오버의 명수였던 작곡가, 그리고 평론가로 살아왔던 그는 놀라운 기록과 온갖 기행 끝에 70세를 일기로 그렇게 영원으로 떠났다.
마우타우센 나치 수용소 해방 55주년 기념 빈 필 연주회 5월 7일 저녁 7시, 행사의 사회를 맡은 오스트리아 국립극장 여배우의 떨린 목소리가 들리자 장내는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적막의 공간으로 돌변했다. 4,700석에 1만 4천 명이 운집한 죽음의 계곡 구석으로 음산함이 배어드는 듯 싶었다. 유태 장송음악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사이먼 래틀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통해 오케스트라를 통한 ‘과거의 치유’라는 세기적 임무에 돌입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지휘자는 인사 없이 퇴장했다. 계곡의 청중들도 박수 대신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역사적인 음악회를 마감했다.
장 피에르 랑팔 5월 20일 타계 랑팔의 연주가 가진 매력은 따뜻한 소리에 있었다. 인위적인 소리를 내기보다는 기교를 뛰어넘은 편안한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은 장 피에르 랑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그는 심장마비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플루트 음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에 그렇게 사랑하던 플루트에게 작별을 고하고 만 것이다. 이제 플루트와 하나 된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백야 축제-백야의 별들’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백야축제가 5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마린스키 극장을 중심으로 필하모니아 볼쇼이홀, 필하모니아 말리홀 등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축제 초에는 리카르토 무티가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린스키를 찾아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을 비롯해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더불어 플라시도 도밍고가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갈라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 백야 축제의 중심은 마린스키 극장 자체 레퍼토리. 언제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내놓는 마린스키는 이번 시즌에도 많은 화제작을 초연했다. 뉴욕 시티 발레단의 스태프들이 참여해 만든 조지 발란신의 ‘보석’을 비롯해 게르기예프의 지휘 아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돈 조반니’ ‘전쟁과 평화’ 등의 오페라가 마린스키의 레퍼토리를 장식했다. 예술감독 게르기예프는 항상 백야 축제를 기해 새로운 오페라를 선보이곤 하는데, 이번에는 ‘니벨룽의 반지’의 첫 발포탄인 ‘라인의 황금’을 소개했다.
괴츠 프리드리히 12월 12일 타계 괴츠 프리드리히가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70세의 나이에 도이치오퍼 사임 이후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었던 그는 자신의 소박한 꿈만을 남겨놓은 채 영원한 안식 속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이 있었던 20일, 함부르크 음대 학장 페터 피셔 아펠트는 추도사에서 “이제 우리는 오페라의 다윗왕을 잃어버렸다”면서 슬픔을 참지 못했고, 에버하르트 디프겐 베를린 시장 역시 “프리드리히의 무대는 베를린 그 자체였다”면서 독일, 특히 베를린 예술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프리드리히를 애도했다.
세계 초연된 존 애덤스의 오페라 ‘엘니뇨’ 1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파리 샤틀레 극장에 공연예술계의 시선이 쏠렸다. 2000년 파리 오페라계를 마감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혀온 존 애덤스의 오페라 ‘엘니뇨’ 때문이었다. 연출을 맡은 피터 셀러스와 지휘자 켄트 나가노도 관심의 초점으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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