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피오레(아스카니오)/알라이모(마르카니엘로)/아다모니테(니나)/비치레(네나)/파비오 비온디(지휘)/에우로파 갈란테 | Arthaus Musik 101 652 (PCM Stereo, DD 5.1, 16:9, NTSC, 160분, 한글 자막, 2DVD)
페르골레시의 ‘사랑에 빠진 오빠’는 유명한 ‘마님이 된 하녀’보다 일 년 앞선 1732년 초연된 3막 정가극이다. 1734년 리바이벌 공연 이후 완전히 잊혔다가 1989년 리카르도 무티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무대에 올리면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2시간 30분이 넘는 상연 시간은 페르골레시 오페라 가운데 가장 길지만, 당대 부파가 그러하듯 레치타티보가 절반이 넘는다. 로마 출신의 나폴리 자매 니나와 네나는 상인 마르카니엘로의 입양 아들 아스카니오를 동시에 사랑하는데, 아스카니오가 자매와 어렸을 때 헤어진 오빠로 밝혀지면서 아스카니오가 결국 연정을 품던 이복 여동생 루그레치아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음악은 세리아와 부파의 성격을 나눠 가졌다. 주인공 아스카니오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남장 배역으로 전자를 대표한다. 나머지를 지배하는 밝은 부파 선율엔 과거의 헨델과 미래의 로시니를 섞어놓은 듯한 작곡가 특유의 선율과 맵시가 돋보인다. 후속작인 ‘마님이 된 하녀’와 ‘리비에타와 트라콜로’ ‘음악 선생’의 잔향도 강하다. 1막 니나의 후견인 삼촌 돈 피에트로가 부르는 바리톤 아리아 ‘내 눈은 사랑으로 불타오르네’는 스트라빈스키가 발레곡 ‘풀치넬라’에 인용해 특히 귀에 익다. 오페라 마니아라면 무티의 리바이벌을 담은 CD와 DVD 실황(이상 EMI)을 잊지 못하겠지만 이제 비온디의 신보에 ‘전범’의 자리를 내어줄 때가 됐다. 이 영상물은 작곡가 고향인 이탈리아 중동부 예지의 페르골레시 극장 2011년 실황을 그대로 담았다. 베테랑 연출가 윌리 랜딘은 무티와 달리 무대 배경을 2차 대전 직후 1950년대 나폴리로 옮겼다. 출생의 비밀이나 배역들끼리 얽히고설킨 러브라인이 현대 정서와 잘 맞아서 그런지 어색함이 없다. 전후 이탈리아 영화 톤을 닮은 배경과 더불어 1막 4중창에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 반주를 이용해 현대 버전의 묘미를 더했다. 반면 음악은 철저히 시대악기 연주의 미덕을 살렸다. 비온디는 직접 바이올린을 들고 에우로파 갈란테를 이끌며 서곡부터 피날레까지 에너지와 박진감 넘친 반주를 빚는다. 모두가 예상하듯 무티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주는데, 진보적인 작곡가 성향을 봐서는 비온디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성악은 무티반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다. 소프라노 엘라나 벨피오레는 강건하면서도 빼어난 미감의 고음으로 아스카니오의 고뇌를 훌륭히 표출했고, 니콜라 알라이모와 필리포 모라체가 연기하는 부파 배역의 감초 연기도 일품이다.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는 점도 무티 실황에는 없는 장점이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