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칠리아 바르톨리 신보 ‘노르마’

이토록 인간적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8월 1일 12:00 오전


▲ ⓒUli Weber

‘오페라계의 인디애나 존스’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오랜 작업 끝에 ‘노르마’를 내놓았다. 데카 레이블로 나온 이번 음반에서 바르톨리는 노르마 역을, 조수미는 아달지사 역을 맡았다.

오페라를 초연한 뒤 수정본으로 개작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탄호이저’(바그너)나 ‘돈 카를로’ ‘일 트로바토레’(베르디)의 파리 버전처럼 특정 극장에서 상연하기 위해 발레를 삽입하거나 특정 장면을 삭제하는 경우, 아니면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처럼 초연 실패 이후 작곡자가 직접 수정을 가하는 경우다. 하지만 베르디보다 불과 12년 선배인 벨리니가 활동할 때만 해도 사정은 크게 달랐다. 초연 작품이 흡족하지 못해 작곡자 자신이 고치는 게 아니라 주역 가수의 변덕스러운 입김에 따라 공연 때마다 악보를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1831년 12월 26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벨리니의 ‘노르마’의 경우 작곡자가 생전에 남긴 오리지널 악보만도 세 가지나 된다. 벨리니가 생전에 들었던 노르마 역은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마리아 말리브랑·줄리아 그리시 등 세 명이다. 프리마돈나의 스타일에 따라 아리아 선율과 장식음이 달라졌다. 문제는 벨리니 생전에 이 작품을 연주한 세 명의 소프라노가 19세기의 ‘슈퍼스타’였을 뿐만 아니라 음역도 표현력도 탁월한 불세출의 성악가였다는 데 있다. 연주 때마다 가필하고 수정한 스케치까지 보태면 더 많다. 바그너도 1835년 마그데부르크, 1837년 리가에서 이 작품을 지휘하면서 관현악 반주 악보를 고치고 새로 그려넣었다. 1839년에는 드루이드 족장 오로베소를 위해 베이스 아리아를 추가로 작곡하기도 했다. 벨리니가 죽고 난 다음 ‘노르마’는 한때 잊히다시피 했으나 ‘몽유병의 여인’ 등 다른 작품의 인기 덕분에 1950년대부터 오페라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해 릴리 레만·로자 폰셀·조앤 서덜랜드·몽세라 카바예 등이 노르마 역에 도전장을 냈다. 릴리 레만은 하루 저녁에 바그너 ‘반지’의 브륀힐데 세 배역을 모두 부르는 것보다 노르마 역 하나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연주나 음반으로 듣는 ‘노르마’는 초연 때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초연 때 벨리니가 염두에 두고 작곡했던 목소리의 주인공 주디타 파스타(1797~1865)는 그냥 소프라노가 아니었다. 헨리 플레전츠는 ‘위대한 성악가’라는 책에서 파스타를 가리켜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메조소프라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벨리니는 초연을 4개월쯤 앞두고 파스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르마 역은 당신의 다양한 캐릭터에 정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적었다. 사실 노르마 역은 알토 음역에서 하이C에 이르는 폭넓은 음역과 다이내믹을 요구한다. 여사제로서 공인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남몰래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있는 자신의 이중적 삶에서 느껴야 하는 갈등·모성애·우정·질투·살해 충동과 체념 등 다양한 감정을 목소리에 담아내야 한다. 서정성과 드라마틱한 면모를 고루 갖춘 목소리를 요구한다.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소프라노에겐 매우 어려운 배역이라고 하지만 ‘노르마’를 따라갈 작품이 있겠는가. ‘벨칸토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당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벨리니는 ‘만능’ 소프라노를 만나 ‘노르마’를 작곡했지만 후배 성악가들에겐 난공불락의 성이 되고 말았다. 오리지널 악보가 부담스러운 많은 성악가들이 가위질과 생략을 서슴지 않았고, 지휘자들은 악보에 없는 악기들을 하나 둘씩 보태기 시작했다. 관현악 반주의 음량은 점점 커졌고 노르마 역도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성량이 풍부한 스핀토 소프라노가 노르마 역을 맡아오면서 순진무구한 아달지사 역에도 암네리스나 아추체나 스타일의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가리켜 “오페라계의 인디애나 존스”라고 했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오랜 작업 끝에 ‘노르마’ 음반을 내놓았다. 헨델·칼다라·스카를라티·글루크·살리에리·카스트라토에 이어 이번에는 낭만주의 오페라다. 적어도 벨리니의 오페라는 연주 관습의 측면에서 볼 때 베르디·푸치니에 가까운 게 아니라 오히려 모차르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바르톨리의 생각이다. 바르톨리가 ‘노르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마리아 말리브랑(1808~1836)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낸 기념 음반 ‘마리아’에서 ‘정결한 여신’을 부르면서부터다.
데카 레이블로 나온 이번 음반에서 바르톨리가 노르마 역을, 소프라노 조수미가 아달지사 역을 맡았다. 오케스트라 반주도 초연 당시의 악기 편성으로 되돌아갔다. 취리히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구성된 고음악 앙상블 라 신틸라가 명쾌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표준 음고도 440㎐에서 430㎐로 낮췄다. 필사본과 자필 악보를 참조한 개정판 악보를 사용했다. 이를 위해 음악학자 마우리치오 비온디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리카르도 미나시가 6년간 복원 작업에 몰두했다. 그동안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노르마 역을 맡다 보니 화려한 고음에 집착한 나머지 저음역의 색채감과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악보의 복원 이후 분명해진 사실은 여주인공 노르마가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나 꼿꼿하고 냉혹한 여사제가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여성이자 연인, 친구라는 점이다. 이번 음반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노르마’의 초상화에서 먼지와 손때를 털어내는 작업임에는 분명하지만 바르톨리가 최적의 목소리인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uy@) 사진 Uli We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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