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1997

우리가 사랑한 뮤즈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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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1997
우리가 사랑한 뮤즈의 인생

‘객석’이 사랑한 바이올리니스트 무터는 해외 연주자로는 드물게 여섯 차례나 표지를 장식했다. 그 사랑에 보답하듯, 창간 30주년 특집호를 위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무터는 정성 가득한 편지를 보내왔다

1997년 11월, 안네 조피 무터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만으로 구성된 레퍼토리로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1995년 남편과 사별한 후 1996~1997년을 아예 ‘브람스 연주의 시즌’으로 정한 듯 전 공연을 브람스 소나타로 꾸몄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음악은 창조적 욕구를 발산시키는 절실한 통로”라는 주장과 함께 대부분의 독주회에 약방의 감초처럼 삽입하던 현대곡도 연주되지 않았다.
무터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 음악계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가 사색적인 브람스에 천착하는 현상에 대해 남편 분더리히의 죽음 이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는 입장, 그리고 중견 연주자의 길로 접어들면서 한 작곡가씩 집중적인 연구를 하기 시작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대립했다. 그러나 정작 무터는 단지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 깊고 넓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담담한 심경을 전했다.
“자신의 장르를 고정시키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어요. 나는 내 음악세계가 끊임없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것 못지않게 과거에 녹음했던 곡들을 다시 꺼내 음미해보려 합니다. 그만큼 내 음악세계가 변화했기 때문이죠.”
차분하고 의연했던 당시 모습과 달리, 무터는 지난 30년을 회고하며 가장 힘들었던 사건으로 남편의 죽음을 꼽았다.

30년 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때는 제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시기였어요. 그 당시부터 현대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죠. (무터는 1989년 카라얀의 변호사였던 첫 번째 남편 데틀레프 분더리히와 결혼했다.) 저는 호기심이 매우 많고, 열린 마음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제 목표는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개발해서 생존해 있는 작곡가들의 뮤즈가 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저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애쓰고 있는 부분이죠.

지난 30년간 당신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을 초연할 때였습니다. 루토스와프스키의 ‘체인Ⅱ’에서부터 음악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펜데레츠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변형(Metamorphosen)’, 볼프강 림의 ‘시간의 노래’ ‘빛의 유희’ 등 수많은 작품을 새로 만났죠. 앙드레 프레빈도 많은 작품을 저를 위해 썼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안네 조피’를 비롯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 협주곡,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를 위한 2중 협주곡이 있습니다. 7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세바스천 커리어의 ‘타임머신’도 정말 멋진 곡입니다. 제가 연주한 이 작품들이 전 세계에서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로 정착했다는 면에서 매우 행복합니다.

늘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당신의 삶에도 힘들 때가 있나요?
매일매일이 음악적 완성을 위한 치열한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순간은 결코 무대 위나 음악과 관련된 것에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시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데서 찾아왔죠. 1995년,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남편을 잃었을 땐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제 인생에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깊은 공백을 남겼지요. 몇 해 전 스승을 잃었을 때도 정말 힘들었지만, 우리가 더 좋은 곳에서 언젠가 만날 것임을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 위안이 되더군요. 두 아이가 이제 훌륭한 젊은이로 자란 것은 음악 외적으로 제게 큰 힘을 줍니다. 저는 늘 음악은 인생을 이끄는 힘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으로는 사회의 어두운 곳에 불을 켤 수 있죠. 저는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항상 노력할 것입니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 정명훈이 아시아 8개국의 젊은 음악인들을 모아 창단한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1997년 1월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공연을 가졌다.

1997년대를 대표하는 공연인 열린 평화와 화합을 위한 ‘97 갈라콘서트’가 6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라 장·장한나·요요 마·아이작 스턴 등 화려한 출연진이 돋보였다.


▲ 뮤지컬 ‘명성황후’가 9월 뉴욕 링컨센터 내 뉴욕 주립극장에서 막을 올리며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 한예종 무용원 내 교수진과 재학생을 주축으로 창단된 크누아(KNUA) 무용단이 10월에 창단 공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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