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2003

부천필의 말러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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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2003
부천필의 말러 대장정

1999년 부천필은 말러 교향곡 사이클을 시작했다.
세기말 한국은 말러 열풍에 휩싸였고, 부천필의 성공은
청중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용기를 국내 음악계에 불어넣었다

2003년 10월호, 말러 시리즈 결산 스케치
자본에 찌든 우리 시대 음악의 부활을 꿈꾸며 시작된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시리즈는 4년간의 항해를 거치면서 부천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연주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경제성 제로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처음 대장정 계획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음악계는 부천필의 행보가 무모하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교향곡이 하나하나 완성되어갈수록 그들을 외면했던 음악계는 오히려 점차 그들에게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외 오케스트라가 내한 프로그램으로 말러를 들고 오더라도 기획사는 더 이상 난색을 표하지 않았다. KBS향·서울시향·코리안심포니 등 내로라하는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말러 교향곡에 투신하며 ‘말러 붐’이 조성되었다. 지난 2002년은 해방 이래 이 땅에서 단 한 번도 연주된 적이 없는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이 한꺼번에 두 번이나(KBS향·부천필) 연주된, 이른바 ‘말러 교도’들에게는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된다.

1988년, 창단된 지 1년밖에 안 된 부천필을 맡은 지휘자 임헌정은 10여 년의 세월에 빠른 속도로 오케스트라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부천필은 1999년, 국내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말러 사이클을 시작했다.
임헌정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기획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한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 기념 연주회였다. 임헌정은 심신이 고갈된 상태에서 연주회를 진행하다가 결국 1악장은 제자에게 맡기고, 2악장부터는 앉아서 지휘하게 됐다. 250명의 합창단이 “부활하라”를 외치는 마지막 악장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부활’의 경험은 엄청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말러 대장정을 감행하게 되는 필연적인 계기가 됐고, 그는 1999년 11월 27일, 교향곡 1번으로 첫 연주회를 열었다.
청중의 호응을 의식하지 않고 무모하게 시작했으나 첫 공연에서부터 유료 관객이 1천 명을 넘었다. 10회분 시리즈 티켓을 산 사람도 80명에 달했다. 10회가 넘는 커튼콜로 유례없이 긴 박수가 이어진 교향곡 2번 ‘부활’ 공연도 성공적이었다. 부천필의 말러 시리즈는 동호회 말러리아를 중심으로 청중 사이에 학구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큰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임헌정과 부천필의 항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2~4번을 연이어 연주하며 매번 8백~1천 석이 넘는 유료 매표율을 유지했으나 2002년 교향곡 5번 연주 시엔 매표율이 2백 석에 불과했다. 월드컵 광풍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운영하지 않았던 3층 객석마저 오픈해야 할 만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천인 교향곡’은 일부 합창단들의 협력이 파기되어 내부적으로 곤혹을 겪기도 했다. 지휘자의 건강 악화로 2001년에는 잠시 연주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다시 힘을 내 2002년엔 5~7번 교향곡을 연이어 올렸고, 이듬해 교향곡 8~10번에 이르러서는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드디어 사이클이 막을 내렸다.
말러 사이클에 힘을 얻은 부천필은 2003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2010년 브람스와 슈만 교향곡 전곡 연주를 감행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는 브루크너 교향곡 사이클. 2007년 교향곡 9번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6년간 전곡을 연주했다. 취임 25주년을 맞이한 임헌정은 올해 1월, 코리안심포니의 상임지휘자 직을 수락했다. 후임자가 정해지기 전까진 부천필을 계속 맡을 예정이지만, 올해 11월부터 2016년까지 다시 해보기로 한 부천필의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는 이제 새 지휘자와 함께 마무리지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2003년 6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입상을 거부해 음악계에 파문이 일었다. 그는 2위 수상자의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심사 형평성을 문제로 수상을 거부했다.


▲ 지방 최초의 전문 오페라 공연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가 8월 개관했다.


▲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착공 이후 7년 만에 완공되어 10월 문을 열었다.


▲ 판소리가 11월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어 그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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