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집요한 탐구 정신으로 탄생한 악기가 있다. 악기 제조상의 아들로 벨기에에서 태어난 아돌프 삭스(Adolphe Sax)는 악기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클라리넷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재밌는 실험을 시도하고 마침내 원뿔형의 악기를 고안해낸다. 하지만 음폭의 한계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고, 그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악기를 길게 만들면 음폭이 넓어져 옥타브 음까지도 낼 수 있을 거야!”
긴 관을 만드는 것은 나무보다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이렇게 탄생한 악기가 바로 베이스 색소폰이다. 이 신생 악기는 발명가의 이름을 따서 색소폰(saxophone)이라 명명되고, 1846년 3월에 파리에서 특허를 얻는다.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반항아
색소폰은 금관으로 만들어졌지만 홑리드를 통해서 연주되기 때문에 목관의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목관악기로 분류하지만, 목관과 금관이 겸비된 음질은 관악기를 통틀어 제일 튀는 음색을 낸다. 색소폰 특유의 튀는 소리는 다른 악기를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하여 목관 5중주와 금관 5중주 같은 실내악을 비롯해 오케스트라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음색에 따라 다양한 길이를 보여주는 색소폰은 초기에는 열네 대의 가족이 있었다. 현재는 수가 줄어 여덟 대가 됐으며, 그중 소프라노·알토·테너·바리톤 색소폰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실내악에 끼지 못한다고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소프라노·알토·테너·바리톤 색소폰, 총 네 대가 함께 모여 연주를 진행하는 ‘색소폰 4중주’는 실내악 정규 편성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색소폰은 오케스트라의 정규 멤버는 아니다. 하지만 종종 오케스트라에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색소폰을 오케스트라에 도입한 초창기 곡은 비제의 ‘아를의 여인’이다. 이어서 라벨의 ‘볼레로’는 테너 색소폰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색소폰의 음색 매력을 극대화했다. 런던에서 재즈를 발견하고 새로운 음악에 호기심이 생긴 다리우스 미요는 ‘천지창조’에 색소폰을 도입하여 다채로운 음향적 효과를 시도했다. 이 외에도 R. 슈트라우스와 힌데미트도 색소폰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재즈와의 찰떡궁합
색소폰의 매력은 관악대·팝 음악·재즈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특히 재즈와 궁합이 제일 잘 맞는다. 색소폰을 빼놓고 재즈를 논하면 섭섭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인다. 미국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는 트럼피터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모던재즈의 기반이 된 비밥 유형을 착안했다. 그 외에도 루이스 암스트롱·덱스터 고든·웨인 쇼터 등 재즈에서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들은 열 손가락만으로는 헤아리기 힘들다.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서는 연주 기법과 음향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다이내믹을 약하게 처리하고 비브라토를 적게 넣어 소리를 부드럽게 만든다. 반면, 재즈에서는 풍부하고 개성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비브라토를 많이 넣어 귀를 자극한다.
색소폰은 홑리드를 사용하는 클라리넷과 운지법이 상당이 유사하다. 따라서 클라리넷 연주자가 색소폰 연주를 겸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클라리넷 연주자는 재교육 없이도 색소폰 주법을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러나 두 악기의 소리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색소폰이 클라리넷을 대신해 연주할 순 없는 일이다. 색소폰은 다른 악기에 비해 표현력이 넓고, 주법이 쉬운 편이라 빠른 속도로 대중화를 이뤘다.
베를리오즈의 색소폰 사랑
‘색소폰의 출생증명’에 힘쓴 작곡가
색소폰이 처음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삭스는 자신이 제작한 베이스 색소폰을 작곡가들에게 보여줬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중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작곡가는 베를리오즈다. 파리에 위치한 삭스의 악기사에서 색소폰 소리를 처음 들은 베를리오즈는 이 젊은 발명가에게 힘을 실어준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이 기고하던 칼럼 ‘주르날 데 데바(Le Journal des Debats)’에 ‘색소폰의
출생증명’이라는 글을 쓴다.
“색소폰은 리드가 있는 금관악기라는 새로운 종류 악기의 선조가 될 것이다. 내 생각에는 현재 색소폰의 음색에 비교할 만한 금관악기는 없다. 풍부하고 유연하고 떨림이 좋으며, 매우 강력한 소리를 가졌다. 오피클래이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저음을 비교하면 음정과 소리의 명확함은 색소폰이 훨씬 우월하다.”
베를리오즈는 1844년 자신의 합창곡 ‘신성한 노래’를 색소폰이 포함된 오케스트라로 편곡하며 깊은 애정을 보였다.
글 장혜선 인턴 기자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서 아기 천사들이 불고 있는 악기는 무엇일까?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음색을 띠고 있는 악기, 트럼펫이다. 트럼펫의 화려하고 힘찬 음색은 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준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도 트럼펫이 표현하는 기쁨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게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에서도 간간히 들리는 트럼펫 소리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에는 특히 트럼펫 협주곡이 많이 작곡되었다. 하지만 실내악의 경우 트럼펫을 찾아보기 힘든데 고유의 강한 개성 때문에 좁은 실내 안에서는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전 매력의 소유자
크고 웅장한 소리의 트럼펫은 황제가 입장할 때나 기병대의 신호용 나팔로 사용되기도 했다. 군주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겨 트럼펫 연주자들의 위상이 높았을 정도이니 소리의 강렬함 또한 짐작해볼 만하다.
“트럼펫을 불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트럼펫은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큰 소리로 인해 자칫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트럼펫과 다른 악기의 조화를 각별히 신경 쓴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교향곡 8번 4악장에서 팡파르를 연주할 때 트럼펫의 매력은 돋보인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트럼펫 음색에 세련미를 적절히 조화시켜 환희를 표현해낸다.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에서는 그 특유의 웅장함이 오롯이 드러나 당장이라도 시상대에 올라가야만 할 것 같은 승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트럼펫은 남성적이고 강인한 이미지와 대조되는 부드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멤피스의 밤’에서는 약음기를 낀 트럼펫의 미묘한 음색과 부드러운 현악의 사운드로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트럼펫에 약음기를 끼면 강인한 소리가 순식간에 가냘프고 날카로운 소리로 변해 더 구슬프게 들린다.
읽기만 해도 숨이 찰 정도의 다양한 종류
트럼펫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트럼펫은 금관악기 중에서도 종류가 많기로 유명하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트럼펫의 정체는 B♭조 트럼펫이다. 19세기 말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구스타프 말러 등의 작곡가들이 트럼펫 파트를 점점 더 어렵게 작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트럼펫 연주자들은 연주가 힘들어지자 기존의 F조 트럼펫 대신 더 편한 트럼펫을 찾기 시작했고 비교적 연주하기 편한 B♭조 트럼펫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트럼펫이 된 것이다.
B♭조 트럼펫과 더불어 많이 쓰이는 트럼펫은 바로 C조 트럼펫이다. 이조악기(악보에 기보된 음과 소리 나는 음이 다른 악기)인 다른 트럼펫과는 다르게 악보에 적혀 있는 대로 소리가 나며 미국 오케스트라에서 많이 사용한다.
트럼펫은 소리가 크고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 중 트럼펫 연주자들은 유독 쉬는 시간이 많다. 곡 중간에 들어가기에는 B♭조 트럼펫보다는 기보된 음대로 소리 나는 C조 트럼펫이 편하기 때문에 트럼펫 연주자들은 점점 C조 트럼펫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 외에도 피콜로 트럼펫·D조 트럼펫·E♭조 트럼펫·E조 트럼펫·F조 트럼펫·G조 트럼펫·로터리 밸브 트럼펫 등 읽기에도 숨찰 정도로 많은 종류의 트럼펫이 있다.
너 트럼펫이니, 아니니?
코넷과 플뤼겔호른, 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이름에는 ‘트럼펫’이 들어가지 않는다. 트럼펫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엄연한 트럼펫 가족이다. 코넷은 B♭조 코넷이 가장 일반적이며 음역도 B♭조 트럼펫과 같다. 하지만 트럼펫에 비해 어두운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훨씬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따라서 트럼펫과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아름다운 음색을 표현할 수 있다.
트럼펫족 중 하나인 플뤼겔호른은 코넷보다 나팔이 더 넓고 마우스피스 또한 넓고 깊다. 트럼펫·코넷과 마찬가지로 B♭조 악기가 가장 일반적이며 음역과 기보법도 같아서 트럼펫이나 코넷 연주가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코넷보다도 더 어둡고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재즈·밴드·대중음악에서 주로 사용된다.
글 이지혜 인턴 기자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에서 교향곡으로는 처음 트롬본을 사용했다. 4악장에 처음 등장하는 트롬본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소리는 급박한 긴장감 속에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베토벤이 처음 사용한 이후부터 교향곡에 트롬본을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트롬본은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할 때 조화를 이루면서도 음색의 개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외에도 밴드·군악대·재즈·팝 밴드 등에서 주로 연주된다. 요즘에는 트롬본이 지닌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음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솔로악기로도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고요한 나팔’, 오페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베토벤 교향곡 5·6·9번 등이 있다.
5밀리미터의 미학
우리는 종종 주먹을 입에 댄 후 팔을 폈다 접었다 하며 트롬본 부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트롬본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다른 금관악기들과 달라 듣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상징적이면서 특색 있는 연주 자세는 슬라이드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트롬본에는 다른 금관악기와 다르게 키나 밸브가 아닌 슬라이드라 불리는 거대한 U자형 관이 있는데 연주자는 이 슬라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며 트롬본을 연주한다. 슬라이드를 끝까지 쭉 빼면 그 길이가 거의 1미터가 될 만큼 길지만 정확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5밀리미터 이내로 슬라이드를 조정하는 세밀함을 보여야 한다. 연주자는 오른팔로 슬라이드를 움직여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며 ‘5밀리미터의 미학’을 선보이는 것이다.
트롬본은 슬라이드 덕분에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갈 때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소리를 연결할 수 있는 연주법인 글리산도에 능하다. 아론 코플랜드의 ‘로데오’에서는 글리산도 기법이 해학적으로 드러난다. 여자 카우보이가 파티에서 춤을 추며 유혹하는 느낌에 그 흥겨움을 더하는 것은 다름 아닌 트롬본의 글리산도 연주다. 음과 음 사이가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이 마치 파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금관악기의 선두 주자
트롬본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트롬본은 15세기 무렵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언제 어디서 처음 나타나게 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4세기 말 무렵 직선이었던 트럼펫이 S자형이 되고 슬라이드가 부착되면서 슬라이드 트럼펫이 나타났다. 여기에서 발전된 것이 트롬본이며 ‘큰 트럼펫’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500년경에는 트롬본을 ‘색버트(sackbut)’라고 불렀는데 프랑스어 사크부트(saqueboute)에서 유래된 단어로 슬라이드를 이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당시 대부분의 금관악기는 키나 밸브가 없었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기 어려워 오로지 자연배음만 연주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트롬본은 슬라이드를 이용해 모든 음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밸브는 트롬본이 사용된 지 300년이 지나서 고안되었고, 그 후에야 비로소 다른 금관악기들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여러 음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사용하는 트롬본은 초기의 트롬본과 그 형태와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누가 누가 많이 사용되나
일반적으로 쓰이는 트롬본 종류에는 테너 트롬본·알토 트롬본·베이스 트롬본이 있다. 보통 트롬본이라고 하면 이 중에서도 테너 트롬본을 가리킨다. 기음은 B♭으로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크기가 작은 알토 트롬본은 테너 트롬본보다 높은 음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베이스 트롬본은 테너 트롬본보다 관의 길이가 길고 훨씬 낮은 소리를 낸다. 베이스 트롬본에는 B♭조 악기를 F조 악기로 전환하는 F당김쇠가 항상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기음은 F조다. 낮은 음 연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알토 트롬본이나 테너 트롬본보다 나팔이 크고 훨씬 폭 넓게 펼쳐져 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두 대의 테너 트롬본과 한 대의 베이스 트롬본이 짝을 이룬다. 테너 트롬본이 주로 많이 사용되며 베이스 트롬본·알토 트롬본 순으로 사용된다. 이 외에도 소프라노 트롬본·콘트라베이스 트롬본·밸브 트롬본 등이 있지만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글 이지혜 인턴 기자
국내외 공연 리뷰에 숱하게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전반적인 연주는 좋았으나 호른이 아쉬웠다.” “호른의 실수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심지어 호른의 실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굳이 트집 잡지 않겠다는 평론가도 있다. 그렇다. 호른은 기네스북 세계기록에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연주하기 힘든 악기’로 등재됐을 정도로 깨끗하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어려운 악기다. 우리의 귀에 호른의 실수가 자꾸만 거슬리는 이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관악기와 현악기 전체의 소리를 아우르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호른은 4개의 밸브, 그리고 그것을 누르는 4개의 손가락만을 사용합니다. 또한 다른 관악기에 비해 키와 운지에 의존하지 않고 1개의 키를 누르며 입술의 조정에 의해 16개의 음을 내죠. 음감과 연주자의 컨디션이 정확히 맞을 때 정확한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호른 주자가 실수할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호른 주자의 실수는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운명’인 것 같아요.”
호르니스트 김영률의 이야기처럼 연주자의 호흡과 음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호른과 제대로 교감할 때 비로소 원하는 음을 연주할 수 있다. 호른은 태생부터 어려운 악기였을까? 18세기에 사용된 내추럴 호른은 지금보다도 연주가 어려웠다고 한다. 밸브 하나 없이 꼬인 관에 공기를 불어넣는 속도와 입술을 벌리는 정도, 벨에 넣은 오른손으로 절묘하게 조절해 음정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감긴 ‘달팽이’의 속사정
연주자들 간에 ‘달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호른의 칭칭 감긴 관을 한 줄로 펴면 길이가 얼마나 될까? B♭호른은 2.7미터, F호른은 성인 신장의 두 배가 넘는 3.7미터에 달한다. 돌돌 말린 호른을 왼손으로 조작하고 오른손은 소리가 나오는 벨 속에 집어넣는다. 음정을 조절할 뿐 아니라 때론 약음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악기와 달리 벨의 방향이 연주자의 오른쪽을 향하는 것이 특징인데, 역동적인 표현이 필요한 경우 관객을 향해 벨을 들어 올려 연주하기도 한다.
호른의 형태는 시대를 거치면서 점점 복잡하게 발전해왔다. 싱글 호른의 경우 오케스트라에선 주로 F호른, 솔로 연주와 실내악에선 B♭호른을 사용한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더블 호른은 F관과 B♭관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어 조성 변환이 자유롭다. 이 외에 부드러운 음색은 유지한 채 높은 음역을 연주하기 위한 데스캔트 호른, 더블 호른에 관을 하나 더 얹은 트리플 호른이 개발되었다.
호른의 두 얼굴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이 악기를 좋아했던 브람스는 피아노·호른·바이올린을 위한 호른 3중주를 작곡했는데 바이올린과 호른의 음색이 어우러지며 낭만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네 대의 호른이 편성되는 교향곡 1번의 4악장에서는 클라라를 향한 사랑과 고독을 호른의 선율로 표현해냈다. 지난 3월 내한 공연을 가진 대니얼 하딩과 런던 심포니가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영화 ‘스타워즈’ 주제곡은 호른의 남성적인 매력이 폭발하는 곡이다. 다스 베이더가 등장할 때마다 강렬하게 터져 나오는 여덟 대의 호른 소리는 영화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바그너 튜바(wagner tuba)의 이름에 얽힌 비밀
바그너 튜바는 ‘튜바’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생김새 또한 튜바를 닮았지만 호른족의 대표적인 악기다. 그 이유는 이름이 아닌 연주 방법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그너 튜바의 밸브가 왼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호른 주자만 연주할 수 있다. ‘바그너’라는 이름은 이 악기가 처음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붙여졌다. 튜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트롬본과 호른의 음색을 고루 갖추고 있고, 소리가 호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더 멀리 퍼지기 때문에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에 네 대의 바그너 튜바를 배치해 지속적인 패시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학자들은 바그너 튜바가 호른의 특성에 더 가깝기 때문에 ‘바그너 호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글 김태희 인턴 기자
온갖 요괴가 모여든 으스스한 마녀들의 밤을 그린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요괴가 뛰어노는 듯 떠들썩한 선율 끝에 영롱한 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순간 분위기가 전환되며 마녀 등장! 재빨리 튜바가 나서서 조잘대던 바이올린과 피콜로·플루트를 단숨에 제압하고 무겁게 걸음을 끄는 듯 낮고 중엄한 음을 연주한다.
수많은 악기 사이에서 거대한 몸집과 낮은 음색을 자랑하는 튜바는 사실 최근에서야 관현악에 편성된 오케스트라의 막내다. 하지만 막내라고 얕봤다간 그 진중한 음색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튜바는 현악 파트의 콘트라베이스, 목관악기인 바순과 함께 금관 파트의 가장 낮은 음역대를 맡아 금관악기 합주와 오케스트라의 총주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튜바의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세르팡과 오피클라이드를 만날 수 있다. 1590년경 발명된 세르팡은 뱀 모양의 목관악기로, 교회 합창단의 사운드를 보강하기 위해 사용됐지만 밸브가 발명되면서 사라졌다. 1817년 프랑스 악기 제작자 장 힐레르 아스테가 발명한 오피클라이드는 멘델스존·슈만·베르디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금관의 베이스 파트를 맡은 악기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튜바는 1835년 연주자 빌헬름 비프레히트와 악기 제작자 요한 고트프리트 모리츠에 의해 세상에 등장했다. 하지만 독일과 달리 프랑스·영국에서는 19세기 말까지 오피클라이드가 그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튜바는 가장 최근에서야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크기도 종류도 다양한 악기
타원형으로 감겨 있는 튜바는 공기가 거대한 관을 타고 올라가 꼭대기에 위치한 벨을 통해 소리를 낸다. 낮은 음역대의 악기이지만 벨을 아래가 아닌 위로 향하게 해 연주하고, 벨의 지름이 약 36~54센티미터로 나팔꽃처럼 펼쳐 있기 때문에 합창석에 앉는다면 그 속살을 엿볼 수도 있다. 최대 12킬로그램에 이르는 무게와 거대한 크기 때문에 정작 연주가 시작되면 연주자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밸브는 두 가지를 사용하는데 피스톤 밸브는 선명하고 깨끗한 음색을 내는 것이 장점이며, 로터리 밸브는 부드러운 레가토를 연주할 수 있고 훌륭한 음색의 조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자주 사용된다.
튜바는 연주하는 곡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사용된다. 콘트라베이스 튜바에는 CC튜바와 BB♭튜바가 있는데 CC튜바는 주로 미국, BB♭튜바는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오케스트라에서 선호한다. 바그너는 CC튜바에 ‘콘트라베이스 튜바’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마칭밴드와 군악대에서 사용하는 수자폰 또한 BB♭ 음역대의 튜바다. 수자폰은 벨이 연주자의 머리 앞쪽을 향하고 있어 행진하면서 연주가 용이하다. 크기가 다소 작고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베이스 튜바로는 솔로 연주에 자주 사용되는 F튜바와 브라스밴드로 구성되는 E♭튜바가 있다. 드물지만 서브콘트라베이스 튜바도 존재한다. 거대한 FFF튜바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밸브를 조작하고 마우스피스에 호흡을 불어넣는 두 명의 연주자가 필요하다.
어둡고 풍부한 음색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튜바의 깊은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레이프 본 윌리엄스의 튜바 협주곡 F단조를 들어보자. 또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에는 드물게 두 대의 튜바가 등장해 음색을 한껏 뽐낸다.
‘미니 튜바’ 유포니움(euphonium) 들여다보기
튜바 중에서도 높은 음역대를 자랑하는 유포니움은 이름은 다르지만 튜바족의 악기다.그리스어 ‘euphonos’에서 유래한 이름은 ‘좋은 소리의’ ‘달콤한 소리가 나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음색이 감미롭고 튜바에 비해 높은 음의 연주가 가능해 오케스트라에서 네 번째 트롬본 연주자를 대신하기도 한다. ‘미니 튜바’라 불릴 정도로 크기가 작아서 다양한 상황에서 연주가 가능하다. 작품에는 ‘테너 튜바’라 표기되기도 하며 바리톤·베이스 색스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글 김태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