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랑랑

파리의 낭만을 그리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화려한 테크닉’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연주자는 단연코 랑랑이다. 하지만 ‘현란한 스타성’은 그의 정체성이면서 때로는 족쇄였다. 뛰어난 감성과 천부적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때론 이미지에 갇혀 그의 ‘깊이’가 가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대륙을 넘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그리고 이제는 세계 문화 예술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랑랑의 행보는 지금 눈이 부실 정도다. 소니 클래시컬에서 ‘파리의 랑랑’ 음반을 발매하는 그가 12월 8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바흐와 쇼팽, 차이콥스키 속에 담아낼 랑랑만의 피아니즘. 특히 이번 음반을 들어보면 화려한 기교의 부담에서 벗어나 한층 자유로워진 랑랑의 음악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화려함과 고요함 사이, 그의 음악세계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피아니스트 랑랑을 처음 인터뷰한 것은 그가 25살때쯤이었다. 지금도 인기가 많지만 당시 랑랑은 중국 대륙을 흔들 만큼 떠오르는 혜성이었다. 그 유명세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서면 인터뷰였지만 그 분위기는 밝고 활기참 그 자체였다. 하지만 두 차례 이어진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랑랑의 화려함을 부각하느라 그의 그림자는 조명할 생각 조차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예술가의 이면을 끄집어내기엔 인터뷰어나 인터뷰이나 너무 젊었던(?) 탓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마주한 랑랑. 이제 중국 대륙을 넘어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랑랑의 음악적 에너지는 국경을 넘나들며 SNS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오는 12월 8일 랑랑의 내한 연주회에서 만나게 될 작품은 한 편의 시(詩) 같다. 차이콥스키 ‘사계’, 바흐 ‘이탤리언 협주곡’, 쇼팽 스케르초. 각 곡마다 매력은 다르지만 예술가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이고 화려한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들이다. 특히 12개의 아름다운 피아노 소품들로 구성된 차이콥스키의 ‘사계’와 단아한 선율의 바흐의 ‘이탤리언 협주곡’, 화려한 피아니즘이 돋보이는 쇼팽의 스케르초까지 이번 무대는 랑랑의 음악 세계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랑랑은 불과 17세 때 시카고 심포니의 ‘세기의 갈라’ 공연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그동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들과 협연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연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요즘은 세계의 주요 행사에 유명 인사로 초청받아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공연 소식과 함께 얼마 전에는 소니 클래시컬을 통해 음반도 발매하면서 또 한 번 클래식 음악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이번 음반은 파리를 대표하는 오페라 바스티유의 살리베르망에서 녹음해 화제가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촬영한 실황 영상을 동시에 내놓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초겨울에 만나는 로맨틱한 만남. 한창 연주 투어를 하며 세계를 누비고 있는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미리 만나보았다.

이번에 발매된 음반에 차이콥스키의 ‘사계’가 포함되어 있네요. 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작품과는 워낙 인연이 깊은데요.

레퍼토리를 어떻게 선곡할지 오랜 시간 연구했어요. 곡의 배경,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알아야 하고, 음악을 세세하게 느껴야 했기 때문이죠.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꽤 오랫동안 연주해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서 함께 성장한 곡이에요. 지금도 이 곡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요. 연주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곡의 섬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은 그 자체로 늘 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 면에서 차이콥스키 작품 속에 담긴 ‘러시안 소울’은 음악적으로 큰 영감을 주죠. 음악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요. 그리고 바흐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바흐 음악 하나만 연구해도 아마 평생이 걸릴 거예요. 그 중에서도 ‘이탤리언 협주곡’은 피아노의 다양한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바흐의 작품은 언제나 섬세한 조화가 더해져 아름다움이 완성되거든요. 쇼팽의 스케르초는 리듬과 선율이 굉장히 다양성을 띠고 있어요. 물론 스케일이 큰 접근 방법과 혁명적인 사고방식도 찾아볼 수 있고요. 리드미컬한 성격을 끌어내면서도 조화와 구조, 강약의 변화를 잘 살려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앨범의 곡을 연주할 때나 무대 연주 때 어떤 면을 가장 중시하고 싶었나요.

작곡가마다 다른 스타일과 장르의 분위기를 잘 살려 연주하고 싶었어요. 차이콥스키의 ‘사계’와 쇼팽 스케르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두 작품은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죠. 그 점이 흥미로워요. 각각 러시아와 폴란드라는 다른 나라의 작곡가이고 음악 색채도 둘 다 명확히 다르죠. 그러면서도 두 작품 모두 고유의 ‘민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두 작품 모두 제게는 보석처럼 소중하고 연주할 때마다 흥미로워요. 음악적으로 늘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곡들이죠.

현재 당신은 중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인데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고 싶은가요.

피아니스트인 만큼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특히, 세계 젊은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통해 영감을 주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니까요.

클래식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주자나 청중 모두 시간이 필요한데요. 또 모두가 좋아하기는 힘든 분야이고요. 이런 클래식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물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어렵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다가가기 쉬워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방영하는 방송만 봐도 클래식 음악보다는 다른 장르의 음악들이 훨씬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면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봐요. 우선 클래식 음악이 많이 사람에게 들려지도록 자주 연주해야 하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다각도로 클래식 음악 문화의 힘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은 그 자체로 힘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단 좋은 음악, 좋은 연주를 들으면 점점 사랑하게 될 거라 믿어요.

클래식 음악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죠.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영적인 세계예요. 클래식 음악 없이 살 수는 있지만, 만약 클래식 음악을 듣고 사랑하게 되면, 듣는 동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게 되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고요.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마음을 잠재우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행위.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영적인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는 빠른 기술과 선진화된 문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때론 그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돌아보고, 예술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연주를 소통하는 방법으로 인스타그램·트위터·유튜브·페이스북 등을 사용하는데 연주 일정도 바쁠 텐데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가요.

예술가로서, 저는 청중과 소통하는 것을 사랑해요. 그렇게 저 역시 음악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가고 있어요. 저는 주로 공연을 하러 다양한 곳을 여행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시간을 짬짬이 이용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즐기고 있어요. 거의 매일 트위터를 하고, 많은 메시지를 트위터를 통해 주고받죠. 팔로워들과 제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무척 즐겁고 행복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도 새롭게 만나고 누군가의 삶을 공유하면서 제가 몰랐던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있지요.

SNS를 통해 상처받았을 때는 없었나요.

아니요, 그런 적은 없어요. 저는 세계 많은 사람과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그럼 가장 힘들 때는 주로 누구와 이야기하고 어떻게 위로받나요.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요. 대화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깊은 우정을 나누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음악이요!

중국인으로서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자부심도 커 보여요. SNS를 통해 중국어도 가르치던데, 당신에게 ‘중국’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원하는 건 문화 소통이에요. 저는 세계를 잇는 문화 소통자가 되고 싶어요.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언어를 가르쳐보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얼마 전에는 가수 싸이가 발표한 중국어판 ‘아버지’의 피아노 편곡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요.

싸이와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싸이의 ‘챔피언’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선보이며 인연을 맺었어요. 중국에서 ‘아버지’가 많은 인기를 모았죠.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한 보편적인 가사가 공감을 일으켰고, 피아노로 편곡된 곡이 가사와 잘 어울려요. 선율도 아름답고요.

당신을 떠올릴 때 화려한 테크닉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그런 이미지가 클래식 음악가로서 부담스러운 적은 없나요. 그리고 세계의 문화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런 활동은 어떤 도움을 주나요.

전 제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을 음악으로 연주해요. 세계의 문화 대사로 활동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죠. 제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행운이고, 제 연주를 듣고 찬사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요. 사람들이 항상 클래식 음악과 더 가까워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다른 좋아하는 취미나 관심 분야는 없나요.

무척 많아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즐기고,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R&B·재즈·팝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어요. 특히 제가 최근 공연에서 메탈리카, 그리고 패럴 윌리엄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는데요. 이렇게 대중의 관심이 많고 실험적인 무대도 무척 좋아해요. 다음에는 어떤 다른 장르의 음악가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될지 지금부터 궁금하고 기다려지네요.

가장 행복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을 때,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해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는데, 지금 당신의 음악가로서의 삶에 만족하나요.

네, 만족해요. 물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바쁜 일정 속에 휴식은 어떻게 취하나요.

여러 방법으로 휴식을 취해요.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도 떨고 제가 좋아하는 팀의 축구 경기를 보기도 하고, 박물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죠. 때로는 자연을 접하며 해변을 걷기도 하고요. 다양한 운동도 좋아해서 테니스를 칠 때도 있어요. 아름다운 거리를 산책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어디에서 예술적 영감을 가장 많이 받나요.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음악 그 자체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제 삶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곡가와 음악가가 많아요. 리스트·쇼팽·베토벤·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죠. 호로비츠·루빈스타인·에셴 바흐·바렌보임. 이들은 모두 위대한 작곡가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어요. 모두 전통에 기반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창조한 사람들이죠. 새로운 세대의 피아니스트로서, 저는 앞으로 이들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엔 평화대사이기도 한데 동시대의 예술가로서의 책임감도 크겠네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각각 떨어져 있는 개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 이어져 있는거죠.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 음악 교육 사업에 더 많이 참여하고, 젊은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더 깊이 배울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다음 세대의 음악가를 키우는 데 지금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고요.

현재 랑랑 재단에서 하고 있는 중요한 사업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랑랑 재단은 낙후된 지역부터 보스턴 도심 지역까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기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선전(深圳)에 있는 제 음악 학교에서는 이미 카네기홀에서 두 번이나 연주했던 존슨 리 같은 영재 아이들을 포함해서 중국의 정상급 인재들을 발굴해 왔어요. 더 큰 꿈은 글로벌 음악학교를 설립하는 거예요. 랑랑 재단은 이런 저의 궁극적인 미래의 꿈들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주요 기반인 셈이죠.

앞으로 당신이 걷고 싶은 이상적인 예술가의 삶과 모습은 무엇인가요.

제가 세계를 다니며 연주하고 SNS를 통해 소통하며 느낀 것은 하나예요. 음악은 교육과 영감에 달려 있다는 것.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음악에 영감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결코 음악을 삶으로 연결할 수 없다는 거죠. 전 클래식 음악을 그들에게 연결해주고 싶어요.

랑랑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더 이상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SNS에는 오늘도 해외 연주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혼자 가기보다는 함께 가기를 원했고, 함께 앓고 싶어 했으며 예술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 달려갈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SNS를 타고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가 랑랑의 차이콥스키 ‘사계’를 반복해 들어보는 가을 저녁, 그토록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고요함을 전할 수 있는지 미스터리다. 하지만 이 음악을 누군가 세계 어디에서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야릇한 연대감마저 생긴다.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통해선 느끼기 힘든 야생의 순수함. 랑랑만의 힘이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사진 소니 클래시컬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

12월 6일 오후 6시 벡스코 오디토리움(부산)

12월 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차이콥스키의 ‘사계’, 바흐 ‘이탤리언 협주곡’. 쇼팽 스케르초 1~4번

SNS로 엿보는 랑랑의 일상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던 랑랑이 어느새 손 안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현재 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를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생활을 공유한다. 그의 SNS에는 볼티모어에서의 협연, 파리에서의 음반 작업, 유타에서의 여행 등 모든 일정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요즘은 ‘만다린 먼데이’ 시리즈를 꾸준히 업데이트 중이다. 중국어 단어를 선정해 직접 성조와 발음을 읽고 설명하는 1분가량의 영상이다. 쇼팽, 백스테이지, 레코딩 등 음악에 관련된 용어는 물론 생활 속 모든 단어가 ‘만다린 먼데이’의 소재다.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랑랑에게 SNS는 근황을 알리는 수단이자 전 세계 팬들과의 소통 창구다. 팬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그에게서 받은 사인을 공유하며 감사를 전하면, 랑랑이 ‘좋아요’로 답한다. 가끔 이벤트도 연다. 최근 파리를 방문한 그는 페이스북에서 팬들에게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주면 자신이 직접 사진을 골라 새 앨범 트랙이 깔린 영상을 만들어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에 세계 각지 사람들이 파리 여행 사진을 올렸다.

연미복을 차려입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수수함도 엿볼 수 있다. 안경을 끼고 헐렁한 티를 입은 랑랑은 여느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신이 나 소리를 지르거나 타자기로 토카타를 연주하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옆집 친구같이 친근하다.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은 역시 연주 영상이다. 공연 전 연습이나 리허설을 할 때 랑랑은 항상 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영상에는 테크닉을 어떻게 연마하는지,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내는지 등 피아니스트 랑랑만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 있다.

무엇이 랑랑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는가?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본 피아니스트 랑랑

탄력 넘치는 리듬, 짙은 서정성이 매력인 랑랑의 신보를 듣고 있자니, 새삼 그의 연주를 CD로, 즉 ‘오디오’로만 듣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음반만 출시한 것인지를 살펴보니 역시 그것만은 아니었다. 파리에서의 라이브 공연 음원과 함께, 이번에는 그림같이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실황을 동영상으로 함께 출시했다.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과 함께 문득 드는 의문은 이제는 매우 거대해진, 그러나 갓 33살밖에 되지 않은 음악가 랑랑의 활동 스타일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랑랑은 오랜 기간 연구한 자신의 ‘실적물’을 음반이나 무대로 차분히 내놓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늘 현존하는 최고 사양의 음질과 화질을 책임지는 영상물이 함께 출시되며, 연주하는 장소나 도시, 공연과 관련된 뒷이야기들이 동시에 소개된다. 협연 무대라면 연주를 함께 하는 지휘자들이 그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훌륭한가를 설명하는 인터뷰가 뒤따르기도 한다.

랑랑은 가십이 끊이지 않는 록 스타인가? 실력보다 포장이 화려한 ‘거품’ 음악가인가? 분명한 것은 위의 두 가지에는 결코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에 오래전부터 있는 영상 중에는 ‘I hate Lang Lang!’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가 연주하면서 짓는 특유의 과장된 표정만 우스꽝스럽게 캡처해놓은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모음곡(그륀펠트 편곡)을 매우 기교적으로 밀어붙이듯 연주하는 영상도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포스팅된 듯한, 같은 곡을 연주하는 예프게니 키신의 동영상 아래에는 ‘이제 랑랑의 연주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것이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여럿 붙어 있다. 사실 그의 이런 가벼운 이미지에는 스스로 일조한 부분도 있다. 쇼팽의 연습곡 ‘흑건’을 오렌지로 연주한다면서 왼손은 그대로 연주하고 오른손으로는 검은 건반을 오렌지로 굴리고 다니는 장난은 좀 지나친 면이 있다. 필자의 경우 랑랑에 대해 특별한 불만은 없다. 다만 같은 세대, 즉 198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중국의 경제력과 인해전술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불리함을 겪을 것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비판 받는 그의 해석에 대해 말하자면, 필자에게도 첫 만남에서의 놀라움은 컸다. 초창기 랑랑의 내한 공연에서 들었던 레퍼토리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이었는데, 극단적인 루바토, 광기 어린 다이내믹함과 기관차 같은 폭주가 20분간 지속됐다. 당시 라디오 실황중계석에 앉아 있던 필자는 연주 감상을 묻는 진행자에게 너무 놀라 “어… 그래도 모든 음표를 다 연주했네요.”라고 얘기한 것 같다. 국내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수가 도저히 연주를 끝까지 들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유명한 일화도 아마 이 연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속빈 강정처럼 부풀려진 인기라는 질시 어린 눈초리를 뒤로하고 랑랑은 여전히 우뚝 서 있으며, 오히려 그 위치는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과거 비음악인들과의 교류, 예를 들어 정치인들과의 만남이나 이벤트는 줄이고 요즘은 교육사업이나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재단사업에도 그 시야를 넓히는, 나름대로 바람직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셴양의 가난한 얼후 연주자의 아들이 이토록 큰 존재가 되리라고는, 아마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친화력 몇 년 전 협연차 내한했을 때 리허설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랑랑은 연습 시간을 한참 넘겨 도착했고, 단원들은 계속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오케스트라와의 약속시간을 어긴다는 것은 아무리 스타라도 욕을 먹게 마련. 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나타난 랑랑은 예의 거수경례 비슷한 것을 한 번 스윽 하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각별히 연주에 흠을 잡으려고 기다렸을 수도 있는 모든 단원들은 그의 능수능란한 연주와 동시에 자연스런 매너에 기분 좋게 ‘압도’당했고, 결국 그날의 리허설은 매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은 특유의 친화력과 사교성을 지녔다는 것은 어떤 직업을 지닌 이에게도 큰 자산이다. 이런 친숙함을 바탕으로 그는 2008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 음악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장학기금과 함께 하는 음악회,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교실 운영과 마스터클래스 등이 사업 내용으로, 세계 유수의 신용카드사와 보험사 등이 힘을 합치고 있으며, 최근 이 재단은 독일의 에코 클래식상을 받기도 했다. 또 2014년부터는 출판사와 클래식 음악 영화 TV 채널 등을 소유하고 있는 파버 뮤직과 손을 잡고 아마추어와 초심자들을 위한 교재와 악보 등을 편집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 모든 일에 랑랑이라는 존재는 열정과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상징이다. 어렵게 자란 어린 시절과 시련을 극복하고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다는 스토리가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지만,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격의 없는 태도가 없었다면 제아무리 차이나 파워를 이용한 사업이라도 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LTE급 손가락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과 랑랑이 힘을 합쳐 프로코피예프와 버르토크의 협주곡을 녹음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최고의 레벨’이다. 내용 중에는 바로 전날의 세션에서 오케스트라의 템포가 너무 빨랐다고 피아니스트가 래틀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래틀이 웃으면서 답했다. “난 나중에 내 회고록에 반드시 쓸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피아니스트 랑랑이 내게 너무 빨리 연주한다고 말했다고.” 경험 많은 베를린 필 단원들조차,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지휘자를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편안히 연주할 수 있는 그의 재주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어린 시절, 성공하기 위해 그가 독약을 옆에 놓고 죽을 각오로 연습했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각도보다 조금 밖으로 펴진 듯한 손 모양으로, 안정된 타건과 놀라운 순발력을 보이는 랑랑의 주법은 상당히 개성적이며, 물리적으로만 보아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테크닉을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의 레퍼토리 중 기억에 남는 곡은 초기에 연주한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나 스크랴빈의 연습곡들, 그리고 호로비츠 버전의 카덴차가 첨가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 등이다. 바쁜 일정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스탠더드 레퍼토리만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요즘의 스케줄이 그의 탁월한 테크닉에 득일지 실일지 알 수 없지만, 미래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탐험에 그의 손가락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꿀’ 음색 “랑랑의 스타일에 대해 호불호가 갈린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이른바 ‘톤 프로듀싱’을 그만큼 잘하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 평소 알고 지내는 원로 교수님의 의견인데, 이 분이 성악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그의 톤은 미성이고 공명도 잘되는 ‘꿀 성대’에 가깝다고 하겠다. 쇼팽을 포함한 로맨틱 프로그램도 좋지만, 랑랑의 깔끔한 음악적 기질과 변화무쌍한 음색이 가장 매력적으로 들리는 작품들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소나타들이다. 적절하게 흥이 나는 악센트와 거기서 나오는 특유의 인토네이션, 개운한 뒷맛은 소름 끼칠 듯 정확한 청각과 건반을 쓰다듬듯 연주하는 특유의 주법에서 나온다. 협주곡 ‘황하’가 수록된 ‘용의 노래’ 앨범에 실려 있는 중국 작곡가들의 피아노 소품들은 랑랑이 빚어내는 고즈넉한 사운드와 중국인 특유의 낙천적 정서가 유연한 음상과 함께 빛난 호연으로 오래 남을 듯하다.

자신감 리스트의 대표작들을 스모키 조명이 흐르는 영국 라운드하우스에서 연주한 영상이 들어있는 ‘리스트, 마이 히어로’에서 밝힌 대로, 랑랑의 자세는 늘 확고하다. “나의 활동 중 어떤 방향이 청중의 주목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수단을 통하든 젊은 세대들이 클래식 음악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랑랑이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모두 책임지는 인물은 아니며, ‘겉멋’이 들어간 듯한 그의 행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환호성 가득한 그의 무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세대들이, 그를 통해 아르헤리치나 키신을 알게 되고, 나아가 리흐테르나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즐기게 된다면 그 또한 멋진 일 아닐까. 백퍼센트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고 연기를 하듯 온갖 표정을 짓는 그의 무대 매너도 음악을 시각과 청각 양쪽을 이용해 감상하려는 세대들에게는 멋진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에서 ‘근자감’의 첫 번째 글자는 ‘근거 없는’의 뜻이지만, 어느 무대에서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한 랑랑의 자신감은 분명 근거가 있다.

센스 필자가 예전부터 주목한 일인데, 다망한 활동 속 랑랑의 해석은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그 한계를 넘지 않는다. 비르투오소 작품들을 다룰 때는 한없이 자유분방하게 연출할 때도 있지만, 진지한 작품은 세심한 배려와 오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시카고 심포니와 함께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리흐테르를 연상케 하는 거인적 행보로, 주빈 메타/빈 필과 녹음한 쇼팽의 협주곡에서는 화사한 음색과 튀지 않는 기교로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악상을 빚어냈다. 의상에 대해서도 언급하자면, 언젠가 번쩍이는 장식이 많이 달린 검정색 연주복을 애용하더니 요즘은 디자인을 좀 더 단순하게 바꿔 입는 듯하다. 요컨대, 자신과 그 음악을 ‘컨트롤’하는 데도 랑랑의 센스를 따라가는 인물이 없다는 의미다.

앞서가는 감각은 새 앨범이나 연주를 홍포하는 그의 자세에서도 나타난다. 최고 연출력이 가세한 공연 실황 동영상도 멋지지만,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 있는 짤막한 비디오 클립들이 필자에게는 더 흥미롭다. 최근 출시한 앨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지는 모차르트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거장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의 대화 모습이 흥미를 끈다. 아르농쿠르가 2악장의 솔로에서 ‘여기는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처럼’이라고 주문하니까 그 독특한 억양과 루바토를 모차르트의 멜로디에 바로 적용시키는 모습, 오케스트라 간주에서 ‘여기는 오스트리아의 농군처럼 단순하게’라고 지시하니 곧바로 특유의 어깨춤을 춰가며 화답하는 모습 등이 길지 않은(역시 유튜브 세대들을 염두에 두었다) 영상 안에 유익한 정보와 함께 담겨 있다.

중국 대륙의 광풍, 그 가운데 들어 있는 랑랑의 실체를 ‘태풍의 눈’ 가운데에서 판단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벼워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기만 하는 그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접하는 순간, 가장 진지하고 순수한 클래식 음악의 한가운데에 어느새 가까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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