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랭 오페라극장의 ‘라 트라비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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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동시대 정상의 비올레타로 손꼽히는 파트리치아 치오피. 비올레타의 내면을 꿰뚫은 감정 연기가 돋보인 무대

스트라스부르 랭 오페라극장은 12월 11~27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했다. 12월 11일 오프닝 무대는 크리스마스 시즌 테러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만원을 이뤘다. 동시대 최고의 비올레타로 추앙받는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치오피(Patrizia Ciofi)에 대한 기대감이 테러의 공포까지도 몰아낸 것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색채 감각을 지닌 뱅상 부사르(Vincent Boussard)가 연출을 맡았고, 대담하고 우아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가 의상을 담당했다. 음악은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피에르 조르조 모란디(Pier Giorgio Morandi)의 지휘 아래 랭 오페라극장 합창단과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 1막의 파티 장면에서 그랜드피아노 위에 올라 연기하는 파트리치아 치오피

원작과 동시대를 잇는 부사르의 연출

부사르 연출의 라이트모티프는 거울. 그는 이번 작품 속 거울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베르디의 시대까지 비추기를 원했다. 무대미술가 뱅상 르메어는 연출의 의도대로 거대한 거울을 무대에 설치했다. 연주자들의 동선 각도에 따라 옆으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효과를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하얀 동백꽃은 거울에 반사돼 베르디 시대의 살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뉴욕 부호들의 듀플렉스 하우스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베르디 시대의 풍성한 드레스와 현대 의상을 혼용한 라크루아의 무대의상 또한 연출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했다.

극 전개의 중요한 액세서리는 그랜드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살롱 테이블이자 비올레타를 상징하는 소재, 그리고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가 된다. 이 아이템은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 아가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실제 모델은 당시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코르티잔(상류사회 남성의 사교 모임에 동반하는 정부로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여성) 마리 뒤플레시였다. 그녀의 정부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프란츠 리스트다. 무대 위의 피아노는 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동시에 실제 모델 뒤플레시와 작품 속 비올레타를 연결한다.

사실 1막의 붉은 튜브톱 드레스라든지 피아노가 주 액세서리인 점, 비올레타가 피아노 위로 올라가 연기하는 아이디어는 2009·2011년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리바이벌된 로버트 카슨의 연출과 흡사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부사르의 연출은 독창적이었다. 막이 오르자 검은 베일 뒤로 어린 소녀의 영상이 등장한다. 음향 없이 비올레타의 분신처럼 1막과 2막에 자주 등장하는 이 소녀는 순수하던 시절을 상징하는 어린 비올레타다. 비록 돈에 팔려 다니는 코르티잔으로 살아가지만 그녀가 갈구하는 것은 순결한 사랑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극의 하이라이트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만남. ‘축배의 노래’에 이어 두 사람의 이중창이 이어진다. 이때 라크루아의 의상이 무대를 화려하게 물들였다. 치오피의 자그마한 체구를 글래머러스한 실루엣으로 바꾼 붉은 드레스나 이름처럼 꽃으로 장식한 플로라의 드레스는 멀리서도 눈을 사로잡았다. 비올레타는 붉은색 튜브톱에 검은 리본을 달았는데, 화려한 코러스의 의상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했다. 알프레도 역의 로베르토 데 비아시오(Roberto De Biasio)는 치오피보다 키가 크고 나이도 어렸으며 아름다운 미성을 지녔지만, 치오피가 지닌 카리스마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을 넘어서지는 못한 듯하다.

1막에는 하이 C(가온 C로부터 3옥타브 위의 C로, 성악가로서의 역량을 상징)보다 높은 하이 D♭이 나오는 아리아 ‘이상해, 이상해’나 하이 E가 나오는 ‘언제나 자유롭게’ 등 비올레타의 고음 테크닉이 강조된 곡이 많다. 기대했던 치오피의 퍼포먼스는 다소 경직되고 공명 테크닉의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물론 선택사항이지만, 1막 끝의 하이 E 또한 찾아보기 어려웠다.


▲ 치오피와 함께 열연한 알프레도 역의 로베르토 데 비아시오

치오피의 노련함으로 완성한 비극

2막 1장, 비올레타의 시골집. 왼쪽에는 피아노, 중앙에는 야생의 새 그림이 보인다. 하인 주세페가 알프레도의 부츠를 벗긴다. 주세페 역에는 테너 이경호가 분했는데, 그는 배달부로 분한 베이스 석영민과 함께 랭 오페라극장 합창단에 소속돼 있다. 2막의 비올레타는 1막과는 달리 남성의 시가렛 팬츠 같은 하의와 어깨가 드러난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다. 마치 남장을 한 19세기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같은 모습이었다.

2막의 압권은 비올레타와 제르몽이 펼치는 이중창이다.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제르몽 역의 에티엔 뒤퓌는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에 질세라 치오피가 부른 ‘가련한 내 운명이여’는 베르디가 원하던 만큼 감정이입에 성공했다고 할 만큼 치오피가 비올레타에 동화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진 제르몽의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퍼포먼스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2막 2장, 플로라의 집. 플로라는 1막에서 입었던 꽃 달린 드레스 대신 흑색과 미색이 대비된 드레스를 입고 적나라한 정사를 벌이고 있다. 난간 위 여성들은 검은 부채를 들고 있고, 스페인풍 ‘투우사의 합창’이 이어진다. 남성 코러스 중 일부는 피아노 위에서 온몸으로 투우사 안무를 선보였고 나머지는 피아노를 마치 소처럼 밀며 무대 중앙으로 전진했다. 노골적인 안무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치오피의 퍼포먼스는 3막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알프레도의 편지를 읽는 장면과 알프레도를 만난 후 부르는 이중창,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치오피의 연기를 덧입은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라기보다 한편의 거대 비극으로 다가왔다. 대사와 보칼리제(가사 없이 읖조리듯 부르는 노래) 사이에 있는 그녀의 노래는 수려한 레가토와 매끄러운 프레이즈로 한 음 한 음, 한 단어 한 단어에 빨려들게 만들었다. 죽기 전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와 마지막 사랑을 나누려는 절망스런 동작은 비장미를 더욱 자아냈다.

일부 언론은 부사르가 치오피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연출했다고 말한다. 그 어떤 연출가라도 그녀를 극의 중심에 두고 연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번 무대에서 전성기 치오피의 테크닉적 절정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기교와 드라마틱한 감성의 이상적인 균형, 비올레타의 심리를 심오하게 꿰뚫은 예술성에 갈채를 보낸다.

치오피가 이 역을 언제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호사가들의 입방아 속에 일부 언론은 ‘이 공연이 그녀의 마지막 비올레타’라는 비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점령한 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세 마디로 승전보를 전했듯, 필자는 치오피의 전설적인 비올레타 퍼포먼스에 ‘왔노라, 보았노라, 들었노라’라는 감탄으로 그녀의 열정에 화답하고 싶다.

파트리치아 치오피와 나눈 ‘라 트라비아타’ 이야기

12월 10일 공연을 앞두고 스트라스부르의 한 서점에서 치오피와 ‘라 트라비아타’에 관한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신에게 극 중 비올레타는 어떤 존재인가?

처음 비올레타 역을 요청 받았을 때만 해도 마흔 살은 돼야 소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이 역할을 만난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내 삶과 동반 성장했다는 점에서 비올레타는 큰언니 같은 존재다. 나이 들다 보니 어느새 삶도 바뀌고 목소리와 신체 조건도 변했다. 그러면서 비올레타의 인간적 한계와 복잡한 감정의 추이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성악적인 측면에서나 연극적인 차원에서 이 역을 소화한다는 것은 꿈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비올레타에만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연기한 역할인데, 어떻게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나?

1997년(라 스칼라극장, 리카르도 무티 지휘)부터 지금까지 18개 제작사에서 100회가 넘는 무대에 올랐다. 무대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매번 ‘이전 공연을 잊는다’는 자세로 임했다. 각 연출가들의 감성과 비전, 아이디어를 표출하도록 말이다. 때로는 연출가의 의도를 나만의 감수성과 경험으로 변용시키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비올레타는 나의 신체 일부처럼 느껴지는 역할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를 위한 역할이다. 온몸이 역할에 반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라 트라비아타’의 구성과 비올레타 역은 여전히 다른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면 어떤 연출가와도 작업할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3막에서 죽음을 앞두고 알프레도와의 행복을 꿈꾸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 장면을 직접 소개해 달라.

죽음을 목전에 둔 비올레타 앞에 알프레도가 나타났을 때, 그녀의 눈은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하는 삶이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자신이 완쾌해 알프레도와 행복을 꿈꾸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절망하며 쓰러진 그녀는 가혹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네가 돌아왔어도 날 구할 수가 없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구할 수가 없다.’ 놀랍고도 혹독한 한 구절이다. 사랑조차 아무런 힘이 없는 현실 앞에 그녀는 신을 원망하고 저주한다.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결국 사랑을 고차원으로 승화시키며 사랑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전한다. 이때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곁으로 부른다. 사랑이 그녀를 구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사랑이 나를 구했고 너를 구할 것이고 세상을 구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그녀는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다.

사진 Alain Ka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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