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서른’으로 가는 아름다운 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2015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데뷔 후 한국에서 정식으로 갖는 첫 리사이틀 무대

김다미의 얼굴은 오묘하다. 첫인상은 새침한 소녀 같고 웃을 땐 청순한 여인 같다. 연주할 땐 도도한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한다. 음악 색깔도 다채롭다.

오래전 어느 작은 홀에서 처음 그녀의 연주를 들었을 땐 자신감 넘치는 테크닉에 매료되었다. 얼마 후 실내악 공연에서 만난 그녀는 우아하고 따뜻한 선율로 마음을 다독였다.

2015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데뷔 후 한국에서 정식 리사이틀을 앞둔 그녀는 이번 무대에서 자유로운 판타지와 바로크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올해 공연이 정말 많아요. 행복한 일이죠. 그런데 이번 독주회는 그중에서도 아주 의미 있는 무대예요. 레퍼토리를 선곡할 때도 고심했고, 연주 준비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녀가 들려줄 레퍼토리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소나타 RV10, 비탈리의 ‘샤콘’,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로 구성한 바로크 음악과 슈만 ‘환상소곡집’ Op.73,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L140,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 Op.25로 선곡한 판타지 음악이다. 대중에게 바로크 시대 음악은 정제되고 엄격한 형식미 때문에 자유로운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게 느낄 수 있지만, 김다미는 바로크의 즉흥성을 모티브로 판타지의 자유로움과 연결시키는 연주를 시도한다. 바로크 음악의 색다른 면모를 조명하고 화려한 판타지와 조화를 이루는 무대를 선보이려는 의도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함께 호흡을 맞춘다.

“내년에 서른이 돼요. 그래서 음악적 테크닉과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뭐가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참신하고 실험적인 곡들을 연주해볼까도 생각했고요. 그러다 그 중간 합의점으로 깊이와 화려함을 동시에 들려줄 수 있는 바로크 음악과 판타지 음악을 같이 연주해 보기로 했죠. 바로크 음악은 시대가 주는 이미지나 분위기 때문에 한정된 느낌을 받기 쉬운데, 예전에 바로크 음악 수업을 들었을 때 재즈 음악처럼 연주자의 즉흥적인 재량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때마침 비탈리의 ‘샤콘’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서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2부에서는 1부에서 미처 채우지 못한 테크닉이나 화려함을 표현할 수 있는 곡들로 구성했고요.”

2015년 루체른 페스티벌의 헤로인
유럽의 유명한 음악 축제인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그녀는 2010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며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전석 매진일 만큼 인기가 높았다.

“루체른 페스티벌 감독이 일본에서 제가 하는 연주를 듣고 페스티벌에 초청해주었어요. 저 역시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음악을 즐기며 청중과 함께한 시간이 무척 좋았고 인상적이었죠. 다만 짧은 시간에 그 분위기를 만끽하기엔 아쉬웠지만, 공연 관계자들이 따뜻하게 격려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모차르트와 사라사테, 드보르자크 작품들로 다양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20대에 앞만 보며 연습에 매달리고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여러 번 수상하며 이미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그녀이기에 내년이면 맞게 될 서른의 무게는 한결 가볍고 부드럽다. 20대가 열심히 오르는 게 목표였던 산행이었다면, 30대는 옆에 핀 꽃도 보며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른이 되는 게 무척 기대돼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고 무대에 설 기회도 얻었지만, 한편으론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우선 콩쿠르 때문에 음악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꾸 변해가는 제 자신이 두려웠어요. 실수가 적어야 하고 많은 사람이 들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연주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콩쿠르 도전을 멈춰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콩쿠르 도전을 멈추자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늘 눈앞에 있던 목표가 사라진 후 찾아온 자유 시간이 문제였다.

“처음엔 좋았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마음껏 하면 되니까 행복했고요. 그런데 자유의 날개가 주어지자 나는 일도 쉽지 않더라고요. 계속 편하게 지내다 보니 긴장이 풀리고 불안해지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면서 다시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죠.”

힘든 시간 속에서 김다미가 선택한 건 복잡한 마음을 단순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의 평가와 말, 기대까지도 떨쳐내는 마음의 연습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어차피 완벽주의 성격을 지닌 제가 스스로 만족하는 연주를 하기는 힘들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여유를 갖고 음악적 깊이를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만족할 만한 연주도 할 수 있을 테고, 지금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런 생각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김다미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솔로 활동뿐 아니라 실내악 활동도 그녀를 점차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따라온 건 마음의 여유였다. 특히 연주나 연습을 끝내고 나서 갖는 휴식 시간은 그 다음 연주를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해 주었다.

“연주가 많고 무대에서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다 보니 여유 시간에는 그냥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그렇게 편히 누워서 요리와 뷰티 동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따라 하곤 하죠. 뷰티는 저에게 어울리는 화장법을 응용해 연주 때 제가 스타일을 잡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즐기는 편이에요. 요리는 먹는 것만 좋아하지 실제로 잘 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 주방이 생긴다면 지금까지 머리로만 쌓은 모든 요리 실력을 진짜로 발휘할 생각이에요.(웃음)”

뉴욕에서의 새로운 시작
커티스 음대에서 에런 로잔느를 사사하고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미리암 프리드를 사사한 김다미는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마치고 올가을부터 뉴욕주립대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다.

“실내악에 관심이 없던 저에게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과의 만남은 뜻깊은 일이었어요. 선생님은 실내악 활동이 솔리스트로서도 음악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강조하셨죠. 다른 악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실내악은 음악의 밸런스, 음정, 프레이징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고 음악을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해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솔리스트로서 활동뿐 아니라 실내악 페스티벌이나 앙상블 연주를 열심히 하고 있죠. 무엇보다 좋은 음악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실내악 활동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가장 냉정한 비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소리에 대해 집중하고 같이 연주하다 보니 어느덧 소리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점점 연주가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실내악을 함께 하는 연령대도 다양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고요.”

보스턴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냈던 그녀가 다시 뉴욕으로 향한건 지금 새로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라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고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독일에서 공부하면서는 음악적으로 깊이를 쌓을 수 있긴 했지만 학구적인 공부보다는 레슨과 마스터클래스하는 시간이 더 많았거든요. 뉴욕에서는 음악을 더 깊고 넓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뉴욕만의 활기찬 문화를 접하면서 공연도 많이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생활해보고 싶어요.”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간. 이제 꽃을 따는 마음이 아니라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삶을 바라봐야 하는 나이. 쉴 틈 없이 달려온 김다미에게 더 깊은 맛을 낼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나이 들면서 더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들을 보면 세월과 함께 더 성숙해지는 음악과 그 사람의 모습이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은데 정작 세월과 함께 깊어진 생각을 표현할 테크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아쉽고 슬픈 일이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테크닉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잖아요. 저는 그 여행에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 안에는 사랑도 있고 환희도 있고 때로는 슬픔도 있지만 그 아픔 너머엔 어느새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어요. 최선을 다해 세상에 이 음악들을 전해주면서 하루하루의 멋진 여행을 만끽하고 싶어요.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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