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상을 음악극으로 그려낸 러시아의 젊은 연출가 판코프.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
전쟁의 참상을 음악극으로 그려낸 러시아의 젊은 연출가 판코프.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
올해 의정부음악극축제 개막작으로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체호프 시어터 페스티벌이 공동 제작한 음악극 ‘디 워(The War)’가 공연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과 ‘영·러 문화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다. 2012년, 양 단체 사이에 아이디어가 처음 논의되었고, 2014년 8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볼코프 페스티벌, 체호프 시어터 페스티벌과 부쿠레슈티 내셔널 시어터,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등에서 공연되었다.
‘디 워’는 1913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특권층이 모여 국제 정세를 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가인 조지는, 전쟁은 무의미하며 모두에게 재난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심미주의자 니콜라이는 ‘전쟁은 사회 정화를 위해 불가피하며 예술에 활기를 채우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극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조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무대 위 19명의 배우는 17개 랩소디를 연주하며 조지가 영혼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샹들리에, 공간을 붕괴시키는 거대한 회색 코트 더미, 방독면 부대 등의 이미지는 공포감을 자아내며, 공중으로 치솟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타락한 영혼과 마주하듯 불안하고 두려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조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의사는 조지의 가족, 친구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역할극을 제안한다.
작품은, 극 중 인물들이 겪은 전쟁에 대한 경험과 호메로스 ‘일리아스’에 담긴 전쟁의 의미를 교차시킨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스토리가 촘촘하게 엮여 한 폭의 태피스트리를 이룬다. 대사와 몸짓, 무대연출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소음에 가까운 소리, 이를테면 여자의 비명 소리, 다친 병사의 절규 소리가 점층적으로 하모니를 만들며 음악으로 재창조된다. 배우들은 첼로, 플루트와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고,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규정짓는 것조차 무의미한 합창을 하며 또 하나 오브제를 만든다.
‘디 워’는 42세의 젊은 연출가 블라미디르 판코프(Vladimir Pankov)의 작품이다. 모스크바의 연극예술 아카데미 GITIS를 졸업한 후 러시아의 여러 극장 소속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2000년, 판-콰르텟(Pan-Quartet)을 창단해 음악과 극을 결합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2003년, 사운드라마 스튜디오(SounDrama Studio)를 설립해 배우와 연주자의 경계, 텍스트와 악보의 경계를 지우며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개척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재작년 ‘디 워’의 초연을 불과 며칠 앞두고, 영국 외무부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 합병에 따라 영국 정부는 ‘영·러 문화의 해’와 관련된 모든 장관 및 고위관리의 참여를 철회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한 사건은,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현재성을 띠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전쟁은 현대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 시대를 겪어내고 분단 체제에 살고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판코프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디 워’에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리처드 올딩턴(1892~1962)의 ‘영웅의 죽음’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텍스트를 인용했는데, 그 이유와 과정이 궁금하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측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을 제안했고, 당시 체호프 시어터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던 발레리 샤드린이 나에게 문의했다. 자료 수집을 하던 극작가 이리나 리차기나가 올딩턴의 작품을 기반으로 호메로스의 작품을 편작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오케이’했다. 나는 대부분 러시아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기에 텍스트를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앵글로색슨족의 느낌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는 성경에 비견될 정도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문학이다. ‘일리아스’를 보면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부터 현시대까지 인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호메로스의 텍스트는 나에게 지난 몇 년 간 점점 더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며 진지하게 사색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시대도, 언어도 다른 작품을 하나의 텍스트로 완성하며 중요하게 여긴 점은 무엇인가?
작품을 직접 보면 알겠지만, 극 중 의사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영어를 자주 쓴다. 원작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각각의 인물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발상, 그리고 소리 구성 면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언어마다 독특한 선율·리듬·억양이 있어 각각의 독창성이 한데 모였을 때 음악적 색채를 풍요롭게 하더라.
제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러시아인 연출가가 만들었으니 고전적 회고록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특정 역사적 사건을 재연하지는 않았다. 작품의 스토리는 보편적 성질을 지닌다. 주인공들이 러시아인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한 국가의 대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 한 인격체로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제목도 ‘디 워’인가?
그렇다.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일반적인 전쟁’에 대해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어떤 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전쟁,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통은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같다.
그럼에도 전쟁을 소재를 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담론을 떼어놓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나는 어떤 임무를 지닌 것도, 역사적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 이 주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갈등을 만들고, 결국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우리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있고, 지금은 정치적 요소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디 워’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작품을 개발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인류에게 전쟁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여태껏 일구어온 문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 과연 꼭 일어나야 하는가? 이건 개인적인 질문이 아니다. 나는 이 질문을 정부, 그리고 신을 향해 던졌다. 극 중에서 직접적으로 외치며 묻지는 않지만, 분명 암시되어 있다. 이 작품이 기억을 환기시켜 과거를 회고하고,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주의를 주었으면 한다. 훈계를 하려는 건 아니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더욱 와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당신이 이끌고 있는 사운드라마(SounDrama)가 궁금하다. 배우·연주자·안무가들이 팀을 이루어 독창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동료들과 함께 스튜디오에 모여 연극을 만들다 우리가 하고 있는 예술을 장르적으로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의논했다. 누군가 ‘SounDrama’라는 말을 꺼냈는데 그 단어가 마음에 들어 팀명도, 우리가 하는 예술의 장르도 그렇게 지칭하고 있다. 나에게 대본은 악보와 같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그 자체로 악기가 된다. 배우마다 성격·음색·몸의 리듬이 다르다. ‘잼 세션(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하는 즉흥적 연주)’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전체 앙상블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부다.
음악과 소리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리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다면, 미적 기준과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하나?
철학적으로 접근할 문제다. 마치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고, 체호프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것과 같다. 누구든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 길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질문에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수십, 수백 년 전 전쟁 중일 때나 현대의 어려운 시대에나,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술은 어떠한 목적과 의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예술과 노동은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예술’을 위해 ‘일’을 한다, 혹은 ‘일’로서 ‘예술’을 한다, 어는 쪽도 결코 예술일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창조성(Creativity)’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결합’을 향한 끌림, ‘통합’을 향한 열망이라고 본다. 따라서 창작 작업의 각기 다른 형태들이 현대의 극 안에서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때 결속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의 요지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다.
민속음악과 클래식 음악은 각기 다른 양식의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토대다. 이는 곧 하늘과 땅처럼 주춧돌의 구실을 한다. 민속음악과 클래식 음악은 성경의 십계명에 비유할 수 있다. 수많은 종교적 산물, 주석이 딸린 구절,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십계명은 유일하다. 이는 변화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원리에 토대가 된다. 예술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는 완전히 주관적인 문제라고 본다. 충동을 감지하고 정서적 격앙을 경험하는 예술가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거기에 담긴 참된 의미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모든 예술은 사명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 워’의 명대사
#1
우리의 적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 데도 없잖아. 평화로운 삶을 지배하는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야. 서로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서로 죽이라고 우리를 보냈으니! 비겁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이야. 거짓된 이상, 황당한 신념, 기만, 위선, 우둔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잖아? 이게 바로 우리의 적이라고! (중략) 미안해.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지. 모든 게 제대로 가고 있고, 사람은 원래 아무 의미도 없는 무지막지한 전투에서 서로 죽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르잖아. 나만 이 살인적인 행위에 지쳐 이러고 있는지도….
– 조지의 대사
#2
말도 안 되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죠. 우리는 그저 미개하고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니까. 호메로스와 그의 영웅들, 현대인들에게 전쟁은 문명을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반박할 수 있습니까? 못하죠? ‘일리아스’를 쓴 호메로스는 전쟁에 심취해 있다고요. 싸움이 격렬해질 때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죠. 그러니까, 인생의 핵심이 여러분이 말하는 아름다움에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거예요. 진실은 무자비한 거라고요!
– 니콜라이의 대사
#3
“세상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이 두 발 달린 동물 수백만 명쯤 사라져도 아무 상관없는 것 아니야? 그런데 이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대단한 일은 죽는 거야, 죽는 거라고.”(조지)
“그만 좀 해. 인간이 태어나는 이유는 짧은 인생이지만, 삶 속에서 기적과 미지의 행복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야.”(블라디미르)
“소, 돼지와 다름없이 그저 도살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고?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휙 던져져버리고 말지.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거지?”(조지)
“인생, 아름다움, 사랑, 희망, 행복은 쓸모없는 게 아니야. 이게 마지막 전쟁이야.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는 거라고!”(블라디미르)
“어떤 바보가 그 말을 믿을까? 그게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거야. 물러설 곳이 없는 거라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우리가 던진 건 아니지만. 그저 죽음이 빨리 찾아오길 바랄 뿐이야.”(조지)
– 조지와 그의 친구 블라디미르의 대화
사진 의정부음악극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