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 이은결

마술, 예술이 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초기 영화사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온 멜리에스의 궤적을 따라가는 그의 발걸음

“한정된 시간성에서 잉태한 인간의 욕망, 그 안에서 철학과 종교, 과학과 예술, 그리고 마술이 탄생했다. 마술은 영화와 인터넷의 탄생으로 두 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 죽음이 시작되던 시대에 나는 마술을 접했고, 이제 멜리에스를 통해 실존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자 한다. 그래서 이 작업은 멜리에스가 고민했던 문제들을 멜리에스에게 가져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 EG 구성·연출 노트 중에서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피사체를 촬영해 이미지로 만드는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를 발명한 후, 영화사에서 처음 이중 노출, 페이드 인-아웃 같은 기술을 구현하며 트릭 영화로 획을 그은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1861~1938). 그는 로베르트우댕 극장을 직접 꾸릴 정도로 마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에게 움직이는 이미지, 시간을 편집하고 가공하는 실험은 마술 그 이상의 환상,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하는 획기적인 통로가 됐다. 영화는 멜리에스의 실험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예술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영화에 이어 인터넷이 등장하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중첩된 시대에서 멜리에스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마술사가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시대에 여전히 사람들은 왜 환상을 추구하는지, 마술의 궁극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마술사의 발걸음은 패러다임을 벗어나, 멜리에스가 보여준 ‘일루션(illusion)’으로 향하는 중이다.

마술, 일루션, 예술

지난 3월 25일~4월 2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는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이자 마술사인 조르주 멜리에스를 두고 재해석을 시도한 비언어극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가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개막작이자 2016 두산인문극장 첫 공연으로 올랐다. 피사체를 촬영해 이미지로 만드는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를 마술적 관점에서 다루며 초기 영화사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온 멜리에스의 궤적을 따라가는 극의 구성과 연출은 EG가 맡았다. 한국 마술계에서 독보적 존재로 인정받으며, 지난 20년간 대중적인 마술쇼를 선보여온 이은결은 2014년부터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EG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었다.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블랙·화이트·그레이. 이 색을 온몸에 뒤덮은 그의 모습은 초창기 흑백영화 속 인물이 현실로 나온 듯한 인상을 자아냈다. 극은 스톱 모션, 블루 스크린 효과, 이중 노출 등 영화사 속 용어들을 에피소드 테마로 삼아, 현장 퍼포먼스와 그것을 촬영한 영상 혹은 합성 영상을 스크린에 즉각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마술이 갖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영화로 보완하고, 평면에 갇힌 영화의 한계를 마술로 극복하는 상호보완적 구성으로 인해 이번 공연은 영화나 마술, 연극 어느 쪽으로 분류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퍼포먼스가 됐다.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 공연 이후, 데뷔 20주년 공연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5월 4~15일, 해오름극장)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이야기는 마술사 이은결과 EG의 경계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마술사 이은결이 해온 대중 공연과 비교할 때, 이번 작업은 EG라는 이름뿐 아니라 규모, 방식 면에서 많은 차이를 뒀다는 인상입니다.
대중을 위한 공연과 작가주의로 접근하는 공연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멜리에스 일루션’은 제 관점의 이야기를 보여드리는 작업이에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선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도 그것을 주 재료로 다루기는 어렵죠.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맞춰야 하는 숙제가 있잖아요. 그것이 대중 공연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이은결이 염두에 두는 건 무엇인지.
재미와 리듬이 중요해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결론맺는 식으로 공연을 구성해요.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 원하는 걸 자유롭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죠. 설령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20~30%만 더하는 편이에요. 투자하는 제작비, 상업적인 성공,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저만 좋은 걸 할 수는 없거든요. 철저하게 관객이 좋아하는 범위 안에서 풀어가는 거죠. 또 마술 공연은 전체관람가라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어느 한쪽에 초점을 맞추긴 어려워요.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이죠. 그래서 연령별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각각 배치하는 편이에요. 결정적으론 ‘이은결’이라는 행위자가 가장 중요하죠.

작품성만으로는 흥행에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뜻인가요?
기본적으로 마술이라는 콘텐츠가 행위자인 마술사 없이 성립할 수 없어요. 눈앞에서 물건이 쓰러졌는데, 그럴 만한 액션을 취한 마술사가 있으면 마술이고, 아무도 없었다면 그건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죠. 마술의 성립 조건이 ‘행위자’에게 있기에 역사적으로 마술의 패러다임은 늘 비슷했고,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제겐 그런 구조가 갑갑하게 느껴졌죠. 마술로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보면서 자연스레 울타리 밖을 내다보게 됐어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마술 대신 ‘일루션(illusion)’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마술 행위가 궁극적으로 ‘일루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트릭으로 신기한 걸 보여주는 마술에서 대중은 ‘일루션’을 느끼죠. 그런데 일루션은 마술뿐 아니라 마임, 여타 행위에서도 경험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마술은 일루션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포장지 같은 거죠. 전 마르셀 마르소의 마임을 보면서 그가 진짜 일루셔니스트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소품이나 음악조차 없는 무대 조명 아래 그의 몸짓을 통해 사람들은 ‘새’를 발견하죠. 거기에 주문이나 주술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일루션을 경험하죠. 일루션을 한국말로 바꾸면 환영, 환상, 착시로 번역할 수 있는데, 제가 의도하는 단어 본래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어서 ‘일루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상당수 마술쇼에선 ‘일루션’이나 예술성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 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일루션을 위해 마술을 하지 않죠. 목적이나 주제의식 없이 그저 행위만 해요. 마술을 통해 어떤 가치를 보여주려는 태도가 없어요. 마술을 하는 자신에게 위대한 가치가 부여돼야 하고, 마술은 마술로서만 존속돼야 하니 신기한 것만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는 자기모순에 빠진 상태예요. 과거 영상기가 나왔을 때, 마술사들은 이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 앞에서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마술을 보여줬어요. 그런데 비슷한 기술로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라는 예술을 만들어냈죠.

100년을 가로지르는 마술사의 고민

EG로서 작업한 ‘멜리에스 일루션’에 이은결의 방향성이 함축된 것 같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조르주 멜리에스가 마술사였다는 걸 새삼 떠올렸어요.
오래전부터 조르주 멜리에스를 좋아했고 관심이 많았어요. 옛날 제 회사 이름도 ‘달세계 여행’이었죠. 그가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 마술사였어요. 그래서 뤼미에르 형제가 발견한 영화 기술을 마술사의 시선에서 흥미롭게 느끼고, 재밌게 갖고 놀 수 있었던 거죠. 덕분에 영화사 기록에 남을 최초의 픽션이 탄생할 수 있었고요.

20세기 멜리에스가 다룬 영화적 실험들과 21세기 이은결이 마술 너머, 일루션을 시도한 것들이 묘하게 중첩되네요.
‘멜리에스는 어떤 일루션을 보았을까?’라는 단순한 플롯이 이번 작업에 있습니다. 제가 멜리에스에 빠질 수 있었던 건, 일루셔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시작된 고민 때문이에요. 저와 같은 생각을 처음 했을 사람, 최초의 일루셔니스트를 멜리에스로 보는 거죠. 그저 마술만 좋아하고, 마술사로만 살고 싶었다면 이런 생각이나 시도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단순한 이유로 마술을 시작했어요. 제가 행복하고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이 마술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마술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본질적으로 속여야 하는 행위예요. 남을 더 잘 속일수록 저는 더 많이 성공하게 되죠. 이것이 마술을 시작하면서 갖게 된 딜레마였어요. 모든 마술 공연은 커튼콜 때, 마술사 혼자 나와서 인사를 해요. 뒤에서 도운 사람들은 커튼에 가려 있죠. 공연엔 주·조연이 있지만 마술은 그럴 수 없어요. 마술사 한 사람만 진짜 대단해 보여야 하니까요. 이런 구조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멜리에스 일루션’에선 같이 만드는 사람들도 보여주고, 퍼포먼스가 완성되는 프로세스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켰어요. 물론 여기엔 주문도, 주술도 없죠. 행위자인 저도 희미해지고. 관객에겐 작품만 남게 돼요. 그 가운데 관객들이 ‘일루션’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다음 ‘멜리에스 일루션’ 작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지금은 전체적인 톤이 흑백영화의 모노톤을 지키고 있지만, 결국엔 올 컬러로 나오게 될 거예요. 멜리에스로부터 시작된 행보에 점을 찍으며 따라가게 되거든요. 그의 영화 ‘달나라 여행’처럼 기차를 타고 달을 향해 가면서 별을 보는 중에 영화사의 환영들을 보게 될 거예요. 멜리에스의 미래이자, EG의 과거가 되는 지점이죠.

불가능이 줄어드는 시대, 사람들에게 ‘일루션’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인간에게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죠. 한정된 삶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요. 제한을 지닌 동물로서 인간은, 그것을 초월할 무언가를 꿈꾸죠. 누군가는 한계를 잊기 위해 종교에 심취하고, 그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와 결과물을 이어가는 과정에 과학이 있죠.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본능적인 필요 속에 마술도 들어 있었고, 예술도 그런 측면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라면, 과연 예술이 필요할까요?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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