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스터클래스 여는 베이스 연광철

재능이 빚은 시간과 마주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베이스 연광철의 이름을 들을 때면, 몇 해 전 한국 초연된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연습실 풍경이 떠오른다. 그때 마주한 연광철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목소리뿐 아니라 눈빛이며, 걸음 하나하나가 바이로이트와 해외 여러 무대에서 살아온 시간을,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연습 후 이어진 인터뷰. 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를 돌고도 한참 지났을 즈음, 그는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젊고 재능 있는 성악가들을 일 년에 한 명씩 뽑아서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거죠.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배우는 사람도 인성·인내심·태도·신체 면에서 좋은 조건이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기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또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해요.”

그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봄, 연광철이 한국에서 첫 마스터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는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지는 그 첫걸음에 재능문화센터(이하 JCC)가 동행해 신진 음악가를 위한 지원에 나선다.

마스터클래스를 두 달여 앞둔 지난 6월 어느 날, 바스티유 오페라 ‘아이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연광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파리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러 해 전부터 재능 있는 젊은 성악가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올해 JCC와 함께 처음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해 관계자와 연주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재능문화재단의 모체인 기업이 교육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그 취지를 공유하기 위한 생각으로 올해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한 번의 연주보다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처음 진행하기에 어떤 성악가들을 만나게 될지가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디션 참가자 연령대를 만 20세 이상, 35세 이하로 정하셨습니다. 연령 제한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성악가로서 20세 이전이라면 소리 부분에서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아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기가 어렵고, 35세 이상이라면 그간의 성악 공부를 통해 전문가로서 기량을 갖췄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참가 인원은 정해져 있지만, 그 외에 성악가로서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부분에 다른 제한은 두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젊은 성악가의 노래를 듣고 조언해주셨을 텐데, 늘 공통적으로 강조하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나치게 소리만 의식하면서 공부하거나 연주하는 경향을 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리로 음악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음악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 소리의 문제까지 함께 풀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음악을 하는 목표가 되어야겠죠. 오페라는 단지 작곡가와 대본을 쓴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 당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오페라 아리아 하나를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어떤 시대적·문학적 인물을 그려내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악보대로 연주하되 어느 수준에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고 보시나요?

어느 누구도 같은 음성이 없고, 똑같은 테크닉이나 해석도 존재할 수 없죠. 악보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연주가 달라집니다. 성악가의 경우 화성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또 오페라에선 변화하는 화성에 어떤 악기들이 그 음을 해결하고 전개하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작곡가가 어떤 상태에서 작곡했는지, 이를테면 사랑을 하고 있었는지, 실연을 당했는지 등 많은 것을 알고 연주한다면 자신만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음악을 한국에서만 배운 상황에서, 앞으로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떤 영역에 힘을 쏟아야 할까요?

언어를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한국어를 몰라도 한국에 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한국인 앞에서 노래하는 건 마치 명절날 외국인이 노래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무엇보다 성악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공부하고 연주할 수 없는 예술 분야임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말을 모르면 앵무새처럼 노래하게 되니까요. 젊은 시절일수록 배우는 데 모든 힘을 쏟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008 바이로이드 페스티벌 ‘파르지팔’ ⓒBayrenther Festspiele GmbH/Enrico Nawrath

노래를 부르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사람

지난 인터뷰에서 “중요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선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음악에 영향을 준 종교, 건축, 미술, 철학 등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의 산물이자 한 분야인 오페라 음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아온 것들을 이해해야 그것을 보여주는 무대에 제대로 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판소리 ‘춘향전’은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과거 제도, 암행어사 제도, 관기 제도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암행어사 출두에 사또가 왜 그리 놀라고 무서워하는지를 알고 잘 표현할 수 있죠. 오페라 ‘맥베스’라면 베르디의 악보에 나오는 표현력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당시 어떻게 이 작품이 쓰였는지, 베르디의 작품과 다른 캐릭터가 존재하는 셰익스피어 원작과 연극도 살펴봐야 공연을 잘할 수 있겠죠. ‘외국인 치고 잘한다’와 ‘저 사람 정말 잘하네’는 아예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터넷과 산업의 발달로 클래식 음악계 역시 하루 빨리 인재를 발굴하고, 스타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과거 성악 예술이 무대에서만 이뤄지던 시절엔 유럽의 한 극장에서 작은 배역부터 시작해 조금씩 성정해나가는 것이 가수들의 통과의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사람이 빈에서 성공하면 금세 뉴욕에 가고 또 런던에도 가요. 미디어는 ‘우리가 기다리던 차세대 가수’라는 식의 수식어를 붙이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놓죠. 제가 보아온 젊은 성악가 중에는 이런 걸 꿈꾸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또 서둘러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해요. 빨리 경력을 쌓고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죠. 장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도자기 하나를 완성하듯, 오페라 무대는 긴 시간이 필요한 곳이에요. 광대처럼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공연해나가야 하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가수들은 모두 50세 이후 진정한 명성을 얻었어요. 그 전에 급하게 유명해진 사람들은 일찍 저물었죠. 독일의 경우, 워낙 극장이 많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은 눈에 띄고 소문이 나게 되어 있어요. 그걸 토대로 커리어를 쌓는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한 번에 큰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려고 하니 오히려 힘들어질 때가 많아요. 여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장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 업계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겠죠.

성악가에게 재능과 노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결국엔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능을 갖춘 사람이 정말 노력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또 재능 있는 사람은 그것을 즐길 줄도 알고, 신명나게 발휘합니다. 재능을 보여주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재능이 없는 것이라고 봐요.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게 사랑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기악 연주자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해서 재능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는 반면, 성악가는 악기가 곧 몸이기에 노래를 부르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최종 선정된 1인에게 주어지는 JCC 공연 무대 및 오디션을 위한 레코딩 지원 이외에 염두에 둔 혜택이 있습니까?

참가자의 역량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유학을 가는 것이 나을지, 중소 규모 도시의 오페라극장에서 연주할 수 있을지, 세계무대에 바로 진출할 수 있을지… 미리 확정해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흥미를 갖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음악 외적인 지식이 풍부하고 인성까지 겸비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성악적 테크닉에서 나아가 더 풍성한 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