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길병민

유한한 시간 속 무한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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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5월 6일 9:00 오전

드디어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로 내딛은 그의 발걸음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시골 의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요. 그것이 내 밑천의 전부지요.”

삶이라는 꽃을 피워가는 힘은 운명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상처 속에 있다. 상처, 고통, 결핍. 얼핏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지만, 사실 이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상처와 결핍이 자신을 다시 일으키고 단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어느덧 세계가 주목하는 성악가로 성장한 베이스 길병민은 고백한다. 어린 시절 마주했던 상처와 고통이 울분과 억울함이라는 감정으로 피어나 오히려 자신의 예술 세계와 담담히 마주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고.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무렵이었습니다. 형이 연주하는 피아노 멜로디를 노래로 따라 부르던 것이 노래와 함께한 제 첫 번째 기억이죠.”

어린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동요 교실을 시작으로 KBS어린이합창단·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서 노래했고, 선화예중에 진학한다. 본격적으로 성악 공부를 시작한 것이 열넷. 그렇게 타고난 미성으로 어딜 가나 주목받는 아이였던 그에게 슬럼프는 꽤나 일찍, 불쑥 찾아왔다. 열다섯 살에 변성기가 온 것이다.

“제 인생에 있어 최악의 혹한기였습니다. 내가 당연히 가지고 누려왔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죠. 늘 1등만 해왔는데,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니 스스로 재주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고, 이 슬럼프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믿음과 지지가 없었다면 이 길을 계속 이어가기 힘들었을 거예요. 버티는 과정 속에 좋은 멘토들을 만났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어려움을 내가 극복해낸다면, 내가 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것 또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죠.”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고 긍정의 의미를 갖는 순간, 그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회도 성과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서울대에 진학해 좋은 스승은 물론 서로의 꿈을 나누며 격려해주는 동료들을 만났고,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임하다 보니 여러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인정받는 순간들이 늘어났죠. 그렇게 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믿음과 자신감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를 향한 낮은 울림

테너로 시작해 베이스 바리톤, 그리고 결국 베이스라는 자신의 음역대를 찾은 그의 목소리는 더 큰 날개를 달고 세계무대로 날아올랐다. 2016 프랑스 툴루즈 콩쿠르 최연소 베이스 우승을 시작으로 2017 모나코 몬테카를로 콩쿠르와 빈 옷토 에델만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열린 오페라 크라운 콩쿠르 우승과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메트로폴리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단으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졌고, 지난 3월에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성악가 일다르 압드라자코프의 초청으로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존경해왔던 일다르 아브드라자코프와의 무대, 그리고 저를 ‘동료’라 부르며 건넨 “또 보자(see you later)”는 인사는 제게 다시 한번 동기부여가 되었고, 꿈에 대한 확고한 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국내를 넘어 세계 성악계가 주목하는 신예 베이스 길병민. 그의 마음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무한히 늘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삶은 유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역량을 끌어내 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하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유한한 시간이고 앞으로 어떤 길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면, 열심히 해야죠.”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을 꿈꾸는 그의 다음 스텝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다. “2016년 툴루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극장에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부족함을 잘 알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했죠. 2년 후, 오페라 크라운 콩쿠르에서 다시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디렉터를 만나 지휘자와의 개인 오디션 기회가 주어졌지만, 캐스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후에 열린 오페라 하우스의 정식 오디션을 통해 합격하게 되었죠. 제게 쉬운 길은 어울리지 않나 봅니다.(웃음) 성악가로서 더 발전하기 위한 공부에 갈증이 커지고 있는 지금,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그 물꼬를 터주리라 기대합니다. 그동안 발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에는 어떤 한계도 제한도, 정답도 없다. 한계가 없는 곳이니 그 길을 찾는 사람에 따라 그 모두 다른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서 높은 이상을 꿈꾸는 길병민, 그가 피워낼 꽃이 궁금해진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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