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7월 13일 9:00 오전

“FILM SCORE
영화에 음악을, 음악에 영화를”

영화에 음악을, 음악에 영화를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깊이’를 더하는 영화음악 거장의 이야기, ‘재미’를 더하는 영화음악 콘서트 프리뷰

지난해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멀리 지중해에 있는 한 유럽 작곡가의 죽음이 이리도 허망한 건, 그가 남긴 음악들이 오늘도 생동하기 때문이다. 다들 머릿속 한구석에 넣어둔 영화 한편씩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연스레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기억한다.

클래식 음악계는 관객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이러한 영화 팬들을 주목해왔다. 대중성이 확실한 영화 콘텐츠를 활용하면 쉽게 객석을 채울 것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유럽, 미국, 아시아 전역에 필름콘서트가 활개 쳤다. 이제는 영화 배급사까지 자사 콘텐츠를 활용해 필름콘서트 상품을 내놓고 있다.

클래식 음악과 영화음악의 협업은 비단 공연장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주요 영화음악가들은 자신의 악보를 특정 클래식 음악가를 위해 재편곡한다. 이는 대중성을 겨냥한 필름콘서트와는 달리, 온전히 영화음악가 본인의 열망에 기댄 것이다.

지난해 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가 영화음악의 대가 존 윌리엄스와 함께 신보 ‘어크로스 더 스타’(DG)를 발매했다. 존 윌리엄스가 무터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카르멘 판타지’처럼 개작(Adaptation)에 가까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말에는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와 함께 플루트 작품집 ‘에어라인’(Warner Classics)을 발매했다. 두 명의 할리우드 스타 작곡가를 시작으로 앞으로 영화음악, 클래식 음악가들의 만남을 종종 목격할 것이다. 올 하반기, 국내에는 다양한 필름콘서트가 쏟아진다.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히사이시 조의 영화를 즐겨 봤던 사람이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주목하길. 하반기 예정된 콘서트를 소개하기 전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에마뉘엘 파위와 나눈 인터뷰를 공개한다. 영화음악에 담긴 또 다른 공기를 들여 마셔보길 바란다. 글 장혜선 기자

INTERVIEW 1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INTERVIEW 2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PREVIEW 하반기 영화음악 콘서트

INTERVIEW 1

프랑스 인상주의 후예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영화 ‘황야의 무법자’로 명성을 얻은 모리코네는 그야말로 영화음악계의 ‘20세기 무법자’였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1961~)는 모리코네가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한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두 번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프랑스 출신으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명성을 얻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외에도 ‘탄생’(200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작은아씨들’(2019)등 대표작을 헤아리기 어렵다. 데스플라를 두고 “모리코네 이후 가장 낭만적인 멜로디를 만드는 영화음악가”라고 내세우던데, 과연 그럴까?

 

 

 

 

그리스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그는 그리스·프랑스의 민속음악, 미국 스타일의 재즈를 들으며 성장했다. 다섯 살에 처음 피아노를 시작해 트럼펫과 플루트를 공부했다. 요가를 가르치던 어머니는 그에게 “호흡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강조하셨다. 플루트를 불던 청년이 왜 갑자기 펜을 잡고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을까? 데스플라는 존 윌리엄스(1932~)의 ‘스타워즈’를 듣고 영화음악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그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의 시작점부터 이야기해보자.

존 윌리엄스의 무엇에 매료된 건가? 존 윌리엄스는 나의 가장 좋은 본보기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재즈·월드뮤직의 구조를 익혔다. 젊은 작곡가가 어떻게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지를 보여줬다. 그의 작품을 보면 단순하면서도 기교적인 부분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인 것 같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나의 첫 작품이다. 덕분에 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으며, 위대한 예술가, 영화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대서양 양쪽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작업했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당시 ‘인터스텔라’의 한스 짐머(1957~)를 누르고 수상했으며, 이후에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영화음악 거장 모리코네도 이 상을 단 한 번 받았으니 의미심장하다. 오스카상 수상은 어느 영화 제작자에게나 최고의 보상이다. 이 영광을 충분히 누리고자 한다.

젊은 시절,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극작 경험이 영화음악가로 활동하는데 어떠한 도움이 됐나? 20세 때부터 극장에서 글을 써왔다. 덕분에 배우들의 목소리, 작품의 드라마투르기 등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

©(주)영화사 진진

영화, 한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

데스플라는 인상주의 대표 작곡가 드뷔시를 닮았다. 인상주의 음악은 주로 음색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표제음악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보다 암시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참여한 영화 ‘탄생’을 보자. 4분간의 오프닝 음악은 숨 막힌다. 특별한 사건 없이 앞으로 펼쳐질 긴 이야기를 오롯이 음악으로 보여준다. 음악은 직선적이기보다는 은근하다. 한없이 느슨하지만 구심점은 분명하다. 아, 이것이 드뷔시의 후예가 아니면 무엇일까. 데스플라는 드뷔시의 뒤를 잇는, 가장 ‘프랑스적인 현대음악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는 영화감독 자크 오디아르, 웨스 앤더슨, 조지 클루니 등 이미 함께한 스타 감독들과 지속적으로 작업해왔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협업한 감독 웨스 앤더슨(1969~)은 한 인터뷰에서 “(데스플라의 음악은) 이야기에 통일성을 부여해 주고, 영화의 색채를 잘 살려준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건, 아마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향이 클 테다. 그림 같은 영상미에 더해진 음악은 영화의 색채를 부각시켰다. 작품을 택할 때 대본을 우선시하는지, 영화감독의 연출을 우선시하는지 궁금한데. 나 역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 속 이미지는 대본보다 더 큰 영감을 준다. 감독과의 충분한 대화로부터 모든 출발이 결정된다.

‘영화음악’은 영화가 화제가 되어야지, 음악도 함께 주목받는다.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아시아인들에게 반응이 좋은 영화 스타일이 있는가? 일례로 최근 한국 젊은 관객은 영상미에 관심이 높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색감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고. 아무리 훌륭한 악보라고 할지라도 평범한 영화에서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 감독의 비범한 비주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흔히 음악의 무드로 작곡가의 성격을 유추하기도 한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장난스러운 면모를,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 완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신의 음악을 들으면 신비스러운 감정이 드는데,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 그건 당신이 나에게 알려주면 좋겠는데! 다큐멘터리 영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통해 당신의 비밀스러운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팀을 꾸리지 않고 모든 작업을 혼자 한다고. 스튜디오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지만, 사실 나의 작품은 대본과 연결되어 있다. 집단이 모여 예술을 만드는 형태에 익숙해져야 한다. 결국 나는 전체의 한 요소일 뿐이며, 그것을 명심하려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뮤지션을 만난다.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건 모두가 함께 한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일 테다. 그래서인가. 캐스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초에 작품을 거절한다고 들었다. 멋진 영화를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대본이 좋으면 영화 참여를 수락하지만, 모든 작품이 성공하기란 어렵다. 현실은 잔인하다. 위대한 영화는 희귀한 보석이다.

배우자인 솔레이가 리더로 있는 트래픽 퀸텟도 꼭 언급해야겠지. 1995년에 창단된 이 팀은 당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녹음에 계속 참여해왔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인 솔레이(Solrey)는 나에게 현악기 작곡에 관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솔레이는 클래식 음악과 현대음악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종종 나의 작곡의 결점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그녀는 첫 번째 청중이다. 솔레이의 까다로운 예술적 감수성은 나의 음악적 기준을 높이는 열쇠다.(트래픽 퀸텟은 솔레이·티볼트 비외(바이올린), 에스텔 빌로트(비올라), 라파엘 페라우(첼로), 필리프 노아레(더블베이스)가 함께 활동한다)

‘공기의 흐름’을 새롭게 담아내다

지난해 데스플라는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와 협업한 ‘에어라인’ 음반을 발매했다. 자신의 대표 영화음악을 플루트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한 앨범이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피아니스트 랑랑을 위해 3개의 피아노 연습곡을 작곡한 바 있다. 데스플라는 오랜 기간 트럼펫과 플루트를 배웠기에 ‘바람의 특수성’을 잘 이해한다.

어린 시절부터 플루트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데, 이번 음반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솔레이는 에마뉘엘 파위,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나의 음악, 콘서트를 하나로 묶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녹음부터 믹싱, 앨범 커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행을 이끈 멋진 리더였다.

파위는 어떠한 특징을 가진 플루티스트인가? 소리가 독특하다. 인토네이션은 완벽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에어라인’은 파위의 재능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편곡을 진행했다.

이번 음반 녹음을 함께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는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다.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의 녹음을 진행했고, 2018년 라디오 프랑스 오디토리엄에서 콘서트를 함께 개최했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뷔시 작품을 지휘자 장 마르티농(1910~1976)과 함께 녹음한 프랑스 최고의 악단이다.

영화음악을 녹음할 때 직접 지휘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이에서 연주자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건 특별한 순간이다. 관

심 있는 한국 영화감독이 있는지도 궁금한데. 한국에는 흥미로운 감독들이 많이 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데, 그들에게 소식을 전해줄 수 있나?

마지막으로 이번 인터뷰는 파위도 참여한다. 그에게 한 마디 한다면! 에마뉘엘! 타파넬과 고베르의 에튀드를 끊임없이 연습하기 바란다! 글 장혜선 기자

 

DISCOGRAPHY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의 곁에는 믿음직한 동료 젤다와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오고, 엘라이자는 신비로운 그에게 이끌려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호프스테틀러 박사는 그 생명체에게 지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보안책임자는 그를 해부해 이용하려 한다. 엘라이자가 그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0년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16세 소녀 그리트. 화가인 그녀의 아버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가족은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그리트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페르메이르는 그리트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걸 알게 된다. 아내와 대조적으로 그리트는 그에게 영감을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주인과 하녀가 화가와 뮤즈가 되기까지 아슬아슬한 감정을 담아낸 영화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D.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바로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그녀의 연인 구스타브.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충실한 로비보이 제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 사이 구스타브에게 남겨진 마담 D.의 유산을 노리던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는 무자비한 킬러를 고용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찾는다.

 

 

INTERVIEW 2

음악의 범주를 부수다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Warner Classics

장담컨대, 데스플라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에마뉘엘 파위(1970~)가 그와 협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턱대고 설레었을 것이다. 데스플라의 영화음악을 들으면 플루트 음색이 날카롭게 각인된다. 아직 데스플라의 음악세계가 낯선 사람이라면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주제곡 ‘그리트의 테마’를 들어보길. 신비한 플루트 선율은 소녀의 요동치는 감정과 맞닿아있다.

데스플라는 파위를 위해 주옥같은 명곡을 추려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했다. 영화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원곡은 다양한 악기가 만들어가는 색채감이 특징이다.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되어도 원곡의 음향효과가 그대로 전해질까? 우려와는 다르게 보다 풍요롭고 근사하다. 이는 플루트와 너무나 친숙한 데스플라이기에, 뛰어난 기교를 지닌 파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수학·연극·역사 등 다분야를 공부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화음악’이란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들이 있다면? 영화와 음악이 분리될 수 있을까? ‘영화음악’이라는 장르가 존재하기 전부터, 영화 안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이후 코른골트(1897~1957), 쇼스타코비치(1906~1975), 버나드 허먼(1911~1975), 존 윌리엄스(1932~)와 같은 작곡가들은 대규모 편성의 영화음악 악보를 남겼다.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으면 스릴러·드라마·코미디·사랑·전쟁 영화인지 단번에 알 수 있지 않나. 그것이 영화음악의 본질이다.

작년에는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베토벤: 플루트를 위한 실내악 작품’ 음반을 발매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목관 실내악은 낯선 편이다. 베토벤 목관악기 작품들은 대부분 초기작이다. 그러나 고전시대 말기 모차르트 작품에 비해 속도나 표현이 목관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까다롭다. 젊은 베토벤은 하이든 같은 이전 세대 작곡가에게 배운 고전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더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과감하고 거칠기도 하다.

이 음반에 담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은 직접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했다. 우선 베토벤 소나타는 ‘바이올린 파트를 가진 피아노 소나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편곡할 때 베토벤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음반을 함께 발매했는데, 음악 장르가 상이하여 놀랍다. 음반에 대한 영감은 스스로 모색하는 편인가? 두 음반의 출시일은 비슷하지만 작업 시기는 다르다. 2018년 말에 파리에서 ‘에어라인’을 첫 녹음했고, 이후 1년간 다양한 트랙을 채워 넣었다. 베토벤 음반은 2020년 6월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리며 베를린에 거주하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만들었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 오페라, 재즈까지 그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에 대한 취향이 자연스레 변화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음악은? 최근에는 잊힌 레퍼토리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은 살아있는 작곡가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업했다.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1961~)를 비롯해 외르크 비드만(1973~), 필립 마누리(1952~), 헤수스 토레스(1965~), 벤자민 아타히르(1989~), 필리프 에르상(1948~), 마티아스 핀처(1971~), 올가 뉴워스(1968~), 에릭 몽탈베티(1968~)와 호흡을 맞췄다. 다음 시즌에도 레라 아우어바흐(1973~), 도시오 호소카와(1955~), 에르키스벤 튀르(1959~)와 함께할 예정이다.

플루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음반 ‘에어라인’에는 동명의 곡 ‘에어라인’이 실렸다. 2018년 파위에 의해 초연된 곡이다. ‘에어라인(Airlines)’은 중의적 표현을 지녔다. ‘비행기의 항로’와 ‘공기의 흐름’이라는 뜻. 데스플라가 영화 ‘아르고’를 작업할 때 공항 비행기를 보며 상상한 이미지를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파위는 “언젠가는 데스플라를 만날 거라 예상했다”고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데스플라가 원래 플루트 연주자였단 걸 알고 있었나? 나와 데스플라는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프랑스 기반의 음악가이기에 조만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를린 필의 LA 투어에서 처음 그와 만났다. 그때 데스플라가 플루트를 연주했단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영화를 즐기는 편인지? 정말 좋아한다. 영화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다. 1990년대는 퍼시 아들론의 ‘바그다드 카페’를 즐겨보았고, 최근에는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를 재밌게 봤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TV 드라마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색, 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당신을 위해 새롭게 편곡되었다. 편곡된 악보를 접하고 처음 느낀 점은? 데스플라가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자신의 대표곡 중 일부를 재작업 했다. 곡의 본래 질감을 잃지 않고 편곡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을 테다. 나는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며 원곡과 가깝게 연주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음반에 담긴 곡 중 가장 애정 어린 작품을 꼽아준다면. 꼭 선택해야 될까? 모든 곡이 다 좋은데! 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2악장을 주의 깊게 들으면 좋겠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데스플라는 어떠한 특징을 가진 작곡가인가? 텍스처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둡다가 밝아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어떻게 해야 리듬이 조화로울지, 멜로디를 유지하는 방식을 안다. 특히 플루트 솔로 부분은 악기가 가진 음색의 빛나는 울림을 매혹적으로 표현해낸다. 대단한 작곡가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은 어땠나? 데스플라가 직접 지휘했는데. 놀랍도록 유연한 오케스트라다. 최근에는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이 대거 합류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베를린 필에 오랫동안 몸담아왔다. 당신의 고향인 프랑스의 오케스트라와 호흡할 때는 특별한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고향’이란 감정을 느끼는 것은 특정 국가보다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설 때이다.

영화음악, 이제 문명의 일부

클래식 음악은 대중성을 보장받은 영화 콘텐츠를 통해 관객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 로열 앨버트홀은 2015년부터 유명 영화사와 제휴해 다양한 필름콘서트를 선보였다. 워너브러더스나 디즈니와 같은 영화 배급사들도 런던 심포니나 뉴욕 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화를 상영하며 음악을 라이브로 선사하는 공연물을 내놓고 있다. 영화의 인기가 고스란히 공연의 흥행으로 이어지니 공연기획자 입장에선 안정적인 자원인 셈이다. 베를린 필의 세대교체 시기에 입단한 파위에게 필름콘서트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영국과 미국의 주요 악단이 영화음악 녹음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를린 필은 어떤가? 베를린 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음악을 하고 있었다. 영화음악도 발레나 오페라 음악처럼 우리의 정식 레퍼토리에 속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음악은 ‘21세기의 현대음악’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혹은 그냥 대중음악 범주에 두어야 할까? 나는 음악을 ‘범주(categories)’로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범주는 창의성의 한계를 유발한다. 영화음악은 100년 이상 존재해왔으며, 이미 우리 문명의 음악, 문화의 일부이다.

코로나 시대, 공연과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영화도 이제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에서 개봉하고 있다. 공연과 영화 플랫폼이 변경되면서, 연주자 입장에서 맞이한 새로운 고민이 궁금하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재개할 것이다. 온라인은 일시적인 대처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라이브 공연의 생동감은 다른 수준의 경험이다.

이번 인터뷰는 데스플라도 참여한다. 그에게 한 마디 한다면? 메르시, 데스플라! 당신의 영감에 함께했다는 건 큰 영광이었어. 브라보. 글 장혜선 기자

에어라인

Warner Classics / PWCD0094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로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그가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와 함께 플루트 작품집 ‘에어라인’을 발매했다. 그의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품들이 모두 파위를 위해 새로이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됐다. 플루트 독주곡 ‘에어라인’은 플루트를 전공한 데스플라가 특별히 파위를 위해 헌정한 곡이다. 데스플라가 직접 지휘봉을 들고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수록곡(1CD)

1. The Shape Of Water 2. Comme Un Oiseau Pourchasse 3. Ils Regardent La Lumiere 4. Rosee De Plomb, Inexorables Tenebres 5. Lust, Caution 6. Girl With A Pearl Earring 7. Birth 8. Airlines 9. The Grand Budapest Hotel

PREVIEW

영화음악을 공연장에서 하반기 영화음악 콘서트

©세종문화회관

 

 

 

 

 

 

21세기에 영화 산업의 발달과 함께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도 발전했다. 이에 ‘영화’를 전문직으로 삼은 ‘음악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스크린에 음표와 소리를 새기는 모차르트였고, 베토벤이었다. 과거에 진행되던 영화음악회는 영화에 나온 OST를 한데 모아 들려주는 음악회였다면, 오늘날은 기라성 같은 한 영화음악가를 택해 전문적으로 조명하는 콘서트가 유행하고 있다. 영화음악을 이용한 콘서트의 또 다른 진화인 셈. 올 여름에는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글 장혜선 기자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 콘서트

7월 17일 롯데콘서트홀

로마에서 태어난 엔니오 모리코네는 트럼피터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가 작곡을 시작한 건 트럼피터보단 작곡가가 돈을 더 벌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1961년, 그는 첫 필모그래피를 기록했다. 코미디 영화 ‘일 페데달로’가 그의 데뷔작인데, 당시 본명 대신 가명을 사용했다. 클래식 음악 전공자가 B급 상업음악을 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커리어 초창기에 참여한 영화는 대부분 액션 영화였으며, 종종 포르노 음악도 의뢰받곤 했다. 이후 ‘황야의 무법자’에 참여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음악가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7월, 모리코네는 로마의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 이탈리아의 별장에 머물며 끝까지 곡을 썼다. 그는 50년 동안 무려 400여 편의 영화음악을 남겼다. 그가 참여한 ‘미션’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러브 어페어’와 같은 영화는 우리시대의 고전으로 통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을 큐레이션 한 콘서트가 열린다. 이번 콘서트 프로그램은 영화 ‘미션’ ‘러브 어페어’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석양의 무법자’ ‘황야의 무법자’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칼리파 부인’ ‘언터쳐블’까지 모리코의 상징적인 작품만 엄선하여 무대에 선보일 예정이다.

히사이시 조(1950~)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7월 3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일본에서 태어난 히사이시 조는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구니타치 음대에 재학할 때부터 현대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1983년에 히사이시 조는 음반사로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이미지 앨범 제작 의뢰를 받았다. 이미지 앨범이란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미니음반이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제2회 애니메이션 대상 음악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든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담당하며 일본 영화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2005년에는 ‘웰컴 투 동막골’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음악 외에도 17개가 넘는 솔로 앨범을 발표한 일본의 대표 대중음악가다. 경기아트센터에서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키즈 리턴’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그의 영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WE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송지원(바이올린)·브랜든 최(색소폰)·고관수(오보에)·배성우(첼로)가 협연자로 무대에 선다.

존 윌리엄스(1932~)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

8월 7일 롯데콘서트홀

필름콘서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0월 15~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현재 할리우드의 주류 작곡가는 단연 존 윌리엄스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재즈 드러머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 가까이에서 자랐다. 미군 공군에 입대한 그는 군악대에서 지휘하다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제대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재즈 클럽에서 활동했다. 1956년 여배우 바버라 뤽과 결혼해 할리우드로 활동 공간을 옮겼다. 탁월한 재주를 가진 윌리엄스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곳이 점차 많아졌고, 노먼 주이슨 감독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통해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윌리엄스가 작곡·지휘를 맡고 아이작 스턴이 바이올린 솔로를 연주한 그 영화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만남은 그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스필버그는 “내가 감독을 맡는 영화의 음악은 오직 존 윌리엄스와 함께한다”며 전적인 신뢰를 내비쳤다. 1975년 개봉해 영화사상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기록한 영화 ‘죠스’는 스필버그뿐 아니라 존 윌리엄스에게도 운명적인 작품이다. 이후 ‘E.T.’ ‘인디아나 존스’ ‘태양의 제국’ ‘후크’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링컨’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스필버그·존 윌리엄스 콤비가 엮어낸 명작은 모두 화제를 모았다.

올 하반기에는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두 개나 준비되어 있다. 8월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윌리엄스의 명곡을 추려 선보이는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가 열린다. 10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전편을 스크린에 상영하는 동시에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사운드트랙을 실연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애니메이션 첼로 페스티벌

8월 8일 롯데콘서트홀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 받아온 스튜디오 지브리와 디즈니의 영화음악.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아 따뜻한 음색을 지닌 첼로 10대가 모여 애니메이션 음악을 연주한다. ‘영화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는 들어봤다’는 지브리와 디즈니 OST를 특별히 첼로 앙상블 버전으로 편곡하여 선보인다. 1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으로 문을 열고, 2부는 대표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디즈니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시네마 런치 세트

9월 29일 롯데콘서트홀

‘시네마 런치 세트’는 제목 그대로 영화음악을 주제로 점심 시간에 연주되는 콘서트이다. 그만큼 점심을 먹듯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공연. 기존의 필름콘서트와는 달리 프로그램을 당일에 공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영화,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음악을 영상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로 선보인다. 지휘자 김남윤에 의해 창단된 W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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